> 선택과집중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광고
[특별기획] 터지면 대형 재난… 터널은 안전한가?
법규 강화돼도 소급 어려워… 개정 전 완공 터널은 제연 사각지대
길이에 따라 획일적 소화설비 적용… 물분무설비 확대 필요성 대두
 
이재홍 기자 기사입력  2017/10/10 [10:47]
▲ 지난해 10월 창원터널에서 발생한 트럭 화재. 이 불로 200여 명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으며 2시간가량 극심한 교통체증을 빚었다.     © 소방방재신문


[FPN 이재홍 기자] = 지난해 개봉한 하정우 주연의 재난영화 ‘터널’은 누적 관객 710만여 명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쉽게 지나치기 쉬운 ‘터널’이라는 공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극 중 이정수(하정우)는 터널을 지나던 중 갑작스러운 붕괴사고를 당해 매몰된다. 이 끔찍한 사고의 원인은 락볼트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은 부실시공이었다. 이정수는 극적으로 살아남아 구조를 기다리지만 소방대의 구조작업은 난항을 겪는다. 


가상의 사건이지만 실제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특히 터널은 그 공간적 특성상 어떤 형태의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대형 재난으로 이어지기 쉽다. 일단 사고가 발생하면 신속한 대응이 어려울뿐더러 이후의 구조와 수습도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터널 안전성에 관한 사회의 관심도는 그리 높지 않다. 대형 건축물처럼 상주 인원이 많은 것도 아니고 흔히 사고가 일어나는 곳도 아니기에 그 위험성을 체감하지 못 하고 있는 탓이다.


<FPN-소방방재신문>은 자칫 소홀하기 쉬운, 그러나 만일의 사고 시 큰 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 터널화재의 위험성을 조명하기 위한 기획 지면을 마련했다. 이를 위해 터널에서의 사고 사례들을 살펴보고 국내 터널의 안전성 확보 방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1. 사망 39명, 진화 53시간… 몽블랑 터널 화재


1999년 3월 24일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연결하는 몽블랑 터널(연장 11.4km)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화재로 인한 사망자는 무려 39명, 부상자도 27명에 달했다.


불은 터널 중간지점을 지나던 트럭 한 대에서 시작됐다. 밀가루와 마가린을 가득 실은 트럭에 불이 붙으면서 터널 내부는 순식간에 연기로 가득 찼다. 섭씨 1,000℃가 넘는 화염은 터널 내부의 콘크리트 아치까지 손상시켜 곳곳의 암반이 드러날 정도였다.


당시 몽블랑 터널은 중앙을 경계로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각각 관리하고 있었다. 사고 이후 이뤄진 조사에서는 이들 국가 간의 협조체계 부실이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됐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사고 직후 프랑스 측에서는 초당 150㎥의 연기를 배출할 수 있는 연무 제거기를 3분 만에 작동시켰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 사항을 몰랐던 이탈리아 측에서는 10여 분 뒤 팬을 반대로 회전시켜 화재부에 산소를 공급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몽블랑 터널이 자랑하던 화재대피소도 무용지물이었다. 18개의 대피소는 각각 4시간의 화재를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됐지만 불길은 무려 53시간이나 지속됐다. 사망자 중 일부는 대피소 안에서 질식해 숨진 채 발견됐다.


화재 이후 프랑스와 이탈리아 당국은 터널 내 300m 간격으로 내부기압 조절 기능과 방화복, 마스크를 갖춘 대피소 37개와 100m 간격으로 116개의 연기배출구를 설치했다. 또 터널로 진입하는 모든 트럭은 적외선 온도 감지 시스템을 통과하도록 하고 엔진 과열이 감지되면 진입을 통제한다. 화재 발생 시 구조용 통로로 활용하기 위한 피난계단도 구축했다.


#2. 사망 11명, 진화 37시간… 고타드 터널 화재


2001년 10월 24일 스위스 고타드 터널 남쪽 약 1km 지점에서 두 대의 트럭이 충돌하면서 화재가 발생했다. 확인된 사망자만 11명에, 80여 명이 실종자로 기록됐다.


피해가 컸던 이유는 순식간에 퍼져버린 연기 때문이었다. 당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충돌사고 차량 중 한 차량의 연료가 유출된 상태에서 주 배터리가 단락되며 화재가 급속도로 확산됐는데 공교롭게도 그 차량에는 타이어가 적재돼 있었다.


고타드 터널에는 횡류식 환기 방식이 적용돼 있었다. 4개의 수직갱과 6개의 환기소가 설치돼 있었으며 화재가 발생했을 당시에도 환기 시설은 정상적으로 작동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상 가동에도 불구하고 고타드 터널의 환기 시스템은 급격한 연기 확산을 막지 못했다. 이후 스위스 당국은 원격조정이 가능한 댐퍼를 활용해 종방향 풍속을 제어함으로써 연기의 확산을 막는 방식을 적용했다. 이를 위해 178개의 댐퍼가 96m 간격으로 설치됐다.

 

▲ 2015년 10월 26일 상주터널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 차량 뒤로 유조차가 접근해 하마터면 더 큰 피해로 이어질 뻔 했다.     © 상주터널 CCTV영상 캡쳐


사고 계기로 안전 강화한 외국, 국내는?


다행히도 국내에서는 도로터널에서의 화재로 수많은 사망자가 나온 사례가 없다. 하지만 이 때문에 큰 사고를 계기로 안전을 강화해온 외국과 달리 국내 터널 관련 안전 기준은 여전히 미흡한 부분이 많다는 게 분야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2016년 말 기준으로 국내 터널은 총 2,189개, 그 연장은 1,626km에 이른다. 이들 터널에 설치되는 안전 관련 시설물은 국토교통부 예규 ‘도로터널 방재시설 설치 및 관리지침’과 소방청 고시 ‘도로터널의 화재안전기준’ 규정의 적용을 받는다.


그런데 서로 다른 두 기관의 규정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터널을 시공하거나 관리하는 주체들은 그간 국토부의 예규를 상위법처럼 여겨왔다. 그 결과 소방법에 반하는, 엄연히 말하자면 불법인 소방제품들이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은 채 대거 설치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모든 소방용품은 소방법에 따라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이하 기술원)의 형식승인 또는 인정을 획득해야만 유통과 설치가 가능하다. 불량제품의 유통을 막고 안전을 위한 최소성능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간 터널에는 기술원의 검증을 받지 않은 소방용품들이 무더기로 사용됐다. 국토부의 ‘도로터널 방재시설 설치 및 관리지침’에는 형식승인제품을 사용하도록 강제하는 규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소방법에서 규정하는 최소성능을 갖추려면 단가 인상이 불가피한데 기술원의 검증을 받지 않아도 납품에 문제가 없으니 성능을 보장할 수 없는 저가의 무검정품이 난립하게 된 것이다.


국토부는 지난해 7월에서야 터널에 설치되는 소방용품은 형식승인제품을 사용하도록 한다는 내용의 개정안을 마련, 올해 1월부터 시행했다. 그러나 개정ㆍ시행 전 완공된 터널 내 소방용품들의 신뢰성은 여전히 미지수다.

 
가장 위험한 연기… 제연설비 확충은 지지부진


모든 화재에서 인명 피해의 가장 큰 원인이 되는 것은 연기에 의한 질식이다. 특히 터널은 그 구조적 특성으로 인해 화재 발생 시 연기의 배출이 쉽지 않다.


이 때문에 터널에는 인위적으로 연기를 배출할 수 있는 제연설비가 설치되는데 국내에서는 지난 2009년부터 1,000m가 넘는 방재 2등급 이상 터널에만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소급 적용이 어려운 탓에 법 개정 이전에 지어진 터널 중에는 여전히 제연설비를 갖추지 못한 곳이 많다.

 

▲ 고속도로 터널 내 설치된 제트팬의 모습.     ©이재홍 기자

 

미국방화협회(National Fire Protection Association, 이하 NFPA)는 화재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까지의 시간을 6분으로 본다. 그리고 운전자의 보행속도를 1.01m/s로 가정하는데, 터널에서의 화재 시 수평으로 연기가 퍼지는 속도는 약 2.0m/s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피난자가 노약자이거나 1차 사고에서 부상을 당했다거나 등의 가정을 더하면 피난 속도는 더 늦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화재로 인한 패닉과 연기에 의한 가시도 저하 등 돌발적인 요소도 많다. 분야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연설비 의무 대상을 확대하고 추가적인 설치를 독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설비업계의 한 관계자는 “계속해서 법 규정은 강화되고 있지만 그 이전에 지어진 터널들은 무방비로 남은 것이 사실”이라며 “현재 전국의 1,000m 이상 터널 1,140여 개 중 35개, 500m 이상 1,000m 이하 터널 310여 개 중 305개에 제트팬과 같은 환기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제트팬의 경우 이미 완공된 터널에도 추가로 설치할 수 있는 설비지만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예산 부족을 이유로 시설 보완을 꺼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신규 터널의 안전 강화도 좋지만 기존 터널의 보완 역시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 터널 화재를 대비한 소방서의 배연차량 조작 훈련 모습.     © 소방방재신문


신속 출동 불가하다면 설비 강화해 대응력 높여야


터널에서는 소화설비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터널이라는 공간적 특성상 신속한 출동과 대응이 어렵고 소방대와의 물리적 거리도 멀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고속도로 터널의 경우 유지관리비용의 절감을 위해 지사 단위로 통합관리를 추진하는 추세다. 이 때문에 설비에 의한 초기 대응력 강화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2015년 ‘도로터널 방재시설 설치 및 관리지침 개정 연구’ 용역(과업총괄책임자 유지오)을 수행한 한국터널지하공간학회(이하 학회) 역시 이 같은 문제를 제기했다. 학회는 보고서를 통해 지사별 통합관리로 화재 등 비상상황에서 출동시간의 지연이 예상되는 만큼 초기 대응력 향상을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3,000m 이상 터널에는 물분무설비가 설치된다. 물분무설비는 분사되는 물의 입자를 작게 만들어 냉각 표면적을 극대화한 소화설비다. 대표적인 고정식 수계 소화설비인 스프링클러에 비해 3배 이상 높은 방수밀도(미분무의 경우 25배)로 뛰어난 소화 능력을 자랑한다.

 

▲ 미분무소화설비의 소화시험 모습     © 소방방재신문


분야의 전문가들은 위험도가 높은 장대터널에 물분무설비를 갖추도록 한 것은 그 우수한 성능을 전제한 것인데도 그 설치 대상을 단순히 터널의 연장에 따라 분류한 것은 오류가 있다고 지적한다. 


터널 내 방재시스템 관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사실상 물분무설비가 적용된 3,000m 이상 터널들을 제외하면 나머지 터널에는 소화설비라고 해봐야 소화기와 옥내소화전뿐”이라며 “옥내소화전은 사람이 직접 가동해야 하는 것으로 오히려 관리자가 상주하거나 자체 소방대가 있는 장대터널에 더 유용한 시설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터널에서의 화재는 주로 차량에서 발생하는데 가연성 물질을 적재했다거나 다른 차량으로 옮겨붙으면 화재 하중이 급격히 커질 수 있다”며 “이는 터널의 연장이 짧다고 해서 발생하지 않는 위험이 아니다”고 경고했다.


그는 또 “터널에서는 화재를 초기에 진압하지 못하면 구조부까지 위험할 수 있다. 뒤늦게 소방대가 출동해도 붕괴 위험 탓에 진입이 어려워지는 것”이라며 “사고가 발생한 뒤에는 늦다. 소화설비의 의무 설치 대상을 확대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홍 기자 hong@fpn119.co.kr

<저작권자 ⓒ 소방방재신문 (http://www.fpn119.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공감
기사입력: 2017/10/10 [10:47]  최종편집: ⓒ 소방방재신문사
 
광고

제3대 한국소방시설협회장에 김태균 후보 당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인기기사 목록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