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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기고] 소방장비 구매… 중국이나 한국이나
 
이진규 PBI 퍼포먼스 프로덕트 마케팅&세일즈 대표 기사입력  2017/11/10 [09:40]
▲ 이진규 PBI 퍼포먼스 프로덕트 마케팅&세일즈 대표

9월 초, 베이징에서는 2년마다 한 번 열리는 소방기술장비교류전람회가 있었다. 이 행사는 대구에서 매년 열리는 국제소방안전박람회의 중국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전시회 참석차 베이징에 갔다가 현지 방화복 회사들에게서 인상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최근 84,000여 벌의 방화복을 조달하는 전국 규모의 입찰공고가 올라왔는데, 기준 가격이 우리 돈으로 27만원 수준이라는 것이다.


중앙에서 업체 세 곳을 골라 각각 일정 비율을 공급하게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과연 당과 국가가 지배하는 나라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 소방관들이 무엇을 원하건 상관없이 국가에서 정한 동일 규격으로 모든 곳에 방화복을 지급하겠다는 발상 자체도 권위주의적이지만, 제조사에게 이윤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가격 책정 또한 폭력적이었다.


현지 파트너 사들에게 물어봤더니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이 계약을 따내야 한단다. 당장 월급을 줘야 할 직원이 있는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손가락 빨고 있을 수는 없으니 뭐라도 해서 봉제라인을 돌리고 들어오는 돈으로 급여, 임대료 등 고정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그것 참 곤란하게 됐네’라고 생각을 하다가 이내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현재 소방산업기술원(KFI)의 인정을 받아 방화복을 제조해 공급하려는 회사는 3~4곳 정도가 된다. 그리고 이 업체들의 방화복은 KFI 인정을 받았다는 점을 제외하면 사실 다 조금씩 다르다. 어느 회사 제품에는 부가적인 기능이 추가됐고, 어느 회사 제품에는 보강재가 사용됐으며, 어느 회사 제품에는 다년간의 제조로 단련된 봉제실력이 녹아있다.


비싸지만 더 좋은 소재를 쓰려고 노력하는 회사들도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요소들은 거의 고려되지 않는다. 대다수 소방본부는 일반경쟁입찰을 붙이고 대개 최저가 경쟁 입찰이기 때문에 더 낮은 가격을 써내는 쪽이 계약을 따내게 된다.


이 와중에 조달청은 한술 더 떠서 제3자단가계약의 형태로 운 좋게 낙찰하한선 이상의 최저가를 써낸 업체가 올해 잔여 발주량을 모두 수주하도록 했다. 여기에는 각 제품들이 가지는 차이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었다.


가격을 제외하면, 제품 자체의 성질과 특징이 거의 고려되지 않다보니, 방화복 제조사들은 품질이나 성능경쟁보다는 원가절감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성능의 혁신이 더 많은 수입과 이윤을 가져오는 시장 구조에서는 제조자들이 너도나도 기술혁신에 매진한다. 성능의 혁신이 비용만 상승시키고 사업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곳에서는 아무도 혁신을 시도하지 않는다.


어디 방화복만 그러한가? 두건, 장갑도 마찬가지다. 개인보호장비에 관한 표준은 꾸준히 개정되고 있지만, ‘표준에서 제시하는 최저기준만 충족하면 나머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최저가로 구매하겠다’는 세상에서 혁신은 멀고 가격전쟁은 가깝다. 다른 소방장비도 이런가 종종 궁금하기도 하다.


소방산업이 좀 더 발전해야 하고, 소방장비는 더 개선돼야 한다는 구호는 점점 커져가는 것 같다. 하지만 실상 소방장비를 구매하는 제도는 산업발전과 장비개선에 친화적이지 않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과도 별반 다르지 않는 방식으로 구매하는 관행이 이어지는 한, 높아져만 가는 현장소방관들의 눈높이와 실제로 지급되는 제품 수준과의 격차는 금세 좁혀질 것 같지 않다.


소방관에 관한 영상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있다. ‘섭씨 1,000도의 불 속으로 들어가는 소방관’, 소방관이 그렇게 위험한 현장에 들어간다면 단순히 개인호보장비를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개인보호장비를 지급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지만 현실에서 최고의 개인보호장비를 지급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아니, 최고로 저렴한 개인보호장비를 지급할 수는 있다. 그것도 최고이기는 하니까 좋아해야 하는 것일까.

 

이진규 PBI 퍼포먼스 프로덕트 마케팅&세일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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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1/10 [09:40]  최종편집: ⓒ 소방방재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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