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불 껐더니… 돌아온 건 ‘소송’

최근 2년 6개월간 자비 변상 20건, 금액도 1,700여 만원 달해
사고 따른 불이익 우려, 보상절차 미비 등으로 개인 변상 많아
일선 소방관 “법적 근거 마련 환영하지만, 현실적 문제도 있어”

이재홍 기자 | 입력 : 2017/11/24 [11:58]

[FPN 이재홍 기자] = 경기도에서 근무하는 A 소방관은 한 빌라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으로 출동했다. 불이 난 곳은 건물 2층. A 소방관은 사다리를 이용해 2층 진입을 시도했다. 그때 낡은 방범창이 아래로 떨어졌다. 방범창은 1층에 주차돼 있던 차량 위로 떨어졌고 차주는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A 소방관은 자비로 25만원을 변상했다.

 

경남의 B 소방관은 화재 신고를 받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한시가 급한 상황, 가까스로 현장에 도착한 B 소방관은 화재 진압 후 자비로 5만원을 배상해야 했다. 출동 중 근처 마늘밭을 훼손했다는 이유였다.    

 

모두 최근 2년 6개월(2015년~2017년 6월)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이 기간 전국적으로 이런 일들은 20건에 달했다. 시ㆍ도별로는 서울이 6건, 부산 4건, 경남 3건, 대구와 경기가 2건, 충북과 전북, 전남이 각각 1건으로 나타났다.

 

사유도 다양했다. 화재 진압 중 방화문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25만원 배상을 요구하는가 하면 구조출동 과정에서 모기장을 파손했다며 5만원, 생활안전조치 중 에어컨 실외기 커버를 부쉈다며 6만3,000원 배상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 기간 소방관들이 자비로 배상한 금액만 1,732만원에 이르렀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 일각에서는 소방관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 법적 장치의 미비를 그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한다.

 

국민의당 이용호 의원(전북 남원ㆍ임실ㆍ순창군, 행정안전위원회)은 지난달 30일 ‘소방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개정안에는 소방활동 등으로 물건이 파손되거나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 때 소방관의 중대 과실이 없다면 그 형사책임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도록 하고 민ㆍ형사상 소송이 진행될 경우에는 소방청장에게 필요한 지원을 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용호 의원은 “현행 ‘119구조ㆍ구급에 관한 법률’에서는 구조ㆍ구급활동에 불가피하고 중대 과실이 없는 경우 과실치사 및 치상죄를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그런데 화재 진압 등 소방활동을 규정하는 ‘소방기본법’에는 이 같은 내용이 없어 소방관 개인이 공무 수행 중 발생한 사고의 피고가 되는 경우 법률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의원(서울 동대문을, 정무위원회)도 20일 정당한 업무수행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한 피해에 대해 소방관에게 면책규정을 마련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소방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민병두 의원은 제안 이유에서 “현행 소방기본법에는 소방관의 정당한 활동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타인의 권익 침해나 재산상 손실에 관한 면책규정이 부재해 개인적 책임 부담으로 이어지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보다 앞선 지난해 9월 11일,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의원(인천 남동을, 국토교통위원회)도 소방활동 과정에서 발생한 재산상 손해나 사상에 대해 소방관의 고의 또는 중대 과실이 없는 경우 민ㆍ형사상 책임을 감면해주는 ‘소방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한 바 있다.

 

당시 윤관석 의원은 “현재 긴급출동 중 사고뿐 아니라 화재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재산 피해에 대해서도 소방관 개인에게 책임이 돌아가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는 소방관의 적극적인 업무수행을 위축시켜 결국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문제로 귀결된다”고 지적했다.

 

윤 의원은 “이 개정안은 모든 소방활동에 대한 민ㆍ형사상 책임을 감면한다는 점에서 타 법안과 차이가 있다”며 “개정안이 통과되면 소방관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소방활동에 전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해당 개정안은 1년 넘게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이 때문에 최근 잇달아 발의된 개정안을 바라보는 일선 소방관들의 전망은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은 실정이다.

 

지역의 한 일선 119안전센터에서 근무하는 C 소방관은 “실제로 법이 통과되고 그로 인해 달라진 것들을 체감하기 전까지는 잘 모르겠다”며 “엄밀히 말하자면 지금도 법으로는 현장에서 피해가 발생했을 때 시ㆍ도지사가 배상하도록 하고 있는데 크게 달라질 것이 있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구조ㆍ구급에 대해서는 그런 법이 있다고 하지만, 구조ㆍ구급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해 역시 소방관 개인이 변상하는 사례가 많은 게 현실”이라면서 “어쨌든 그런 사고가 곧 인사평가나 관서평가로 이어지는 지금의 구조에서는 현장대원들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C 소방관은 “소송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 이뤄지더라도 소방관 개개인이 겪는 고충은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냉소적인 견해를 내비치기도 했다. 중대 과실이 없었다는 증명에 대한 책임은 결국 해당 소방관에게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소방청이나 시ㆍ도지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도, 당직 근무 후 비번날 재판에 불려 다녀야 할 사람은 소방관 개인”이라며 “일반적으로 의료사고나 차량 결함에 대한 소송에서는 피고인이 그것을 증명해야 하지만 우리는 소송을 당하면 소방관 개인이 과실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애써야 하는 실정”이라고 말을 이었다.

 

이어 “무조건적인 면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확연하고 분명한 과실이 있었다면 소방관 역시 책임을 지는 것이 맞다”면서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위험을 무릅쓰고 열심히 업무를 수행한 소방관에게 어떠한 불이익도 주어져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재홍 기자 hong@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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