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화재/집중취재⑥-단독] 건축부터 전무했던 피난 개념… “건축법 어겼다”

서로 연결 복도 없는 두 직통계단… 불법 논란
거실과 막바로 이어지는 계단 구조 “위험성 커”

최영 기자 | 입력 : 2018/01/04 [15:33]

▲ 20명의 사망자가 발견된 2층 여성 사우나 뒤편 계단 출입문(비상구) 앞에는 촘촘히 붙은 선반이 들어서 있고 목욕품 등을 진열하는 창고로 쓰이고 있었다.  이 출입문과 연결되는 계단은 건축법상 의무설치해야 하는 직통계단 중 하나였지만 관련 법규의 본래 취지와 달리 다른 한 쪽의 계단과 연결되지 않는 구조다.   ©최영 기자

 

[FPN 최영 기자] = 지난 21일 화재로 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천 스포츠센터 건물 구조의 안전성은 말 그대로 제로였다. 만약에 있을 화재 사고 시 원활한 피난은 꿈꿀 수 없을 정도라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 중에서도 건물 양쪽으로 트여 있는 계단 구조는 건축 초기부터 피난에 대한 개념이 부재했던 것으로 <FPN/소방방재신문> 취재결과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현행 건축법을 어겼다는 지적까지 내놓고 있다.


제천 스포츠센터 주 출입구 쪽에 있는 계단과 후방 측면에 자리 잡은 하나의 계단. 이 두 계단은 건축법에 따라 의무 설치된 ‘직통계단’이다. 건축법상 ‘직통계단’이란, 건물의 모든 층에서 원활한 피난이 가능하도록 땅과 닿는 층(피난층)까지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연결된 계단을 말한다. 화재 시 피난을 위해 건축 구조에서부터 고려돼야만 하는 안전시설이다.


건축법에서는 이 직통계단을 설치할 때 몇 가지 제한사항을 두고 있다. 대표적인 사항은 거실 각 부분으로부터 직통계단까지의 거리, 그리고 계단의 개수다. 법에서는 이 거리 규정으로 ‘거실’의 각 부분부터 계단에 이르는 보행거리를 짧게는 30~50m까지 제한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거실은 영업장 등으로 사용되는 내부 구획 공간을 말한다.


제천 스포츠센터는 주요 구조부가 불연재료인 콘크리트로 지어졌기 때문에 법에 따라 각 거실과의 거리는 50m 이내로 제한된다. 쉽게 말해 각 직통계단과의 거리가 50m 이내여야 한다는 얘기다. 또 반드시 두 개의 직통계단을 설치해야 하는 건물이다. 전면 주차장 쪽 계단 한 곳과 화재 당시 3층 남성 사우나 이용객들이 대피했던(2층의 경우 막혀 있던 비상구 쪽 계단) 다른 한 곳의 계단이 바로 이 ‘직통계단’이다.

 

▲ 제천 스포츠센터 건물의 직통계단은 주출입구로 사용되는 방향과 뒤편 북동쪽 방향에 각각 두 개가 존재한다.     © 최영 기자


특히 건축법에서는 이 직통계단을 설치할 때 피난에 지장이 없도록 계단과 계단 사이를 복도 등 통로로 연결해 설치토록 규정하고 있다. 제천 스포츠센터의 직통계단 두 개 역시 이 같은 법 규정에 따라 서로 복도 등 통로를 통해 연결됐어야 했다. 그런데 뒤편 직통계단은 사우나나 헬스장 등 실내 점유 공간과 곧바로 연결되는 구조를 띄고 있다.


평소 사람들이 오가는 정문 쪽 직통계단으로 들어가면 각 층 복도를 거쳐 영업장으로 연결되지만 뒤편 직통계단은 복도나 통로 없이 거실이 곧장 나오는 구조다. 이런 형태에선 영업장을 이용하는 사람은 뒤편에 계단이 있는 사실조차 쉽게 알 수 없게 된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두 개 이상의 직통계단을 연결해야 하는 이유는 계단 사이에 복도 등을 이어 화재 시 한 쪽 계단이 불이나 연기로 오염되더라도 다른 하나를 이용할 수 있도록 고려한 것이다.

 

▲ 실제 제천 스포츠센터의 도면(왼쪽)을 보면 주출입구 방향의 직통계단(실)과 뒤편 계단(실)은 서로 복도 통로 등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구조를 띄고 있다. 전문가들은 오른쪽 형태와 같이 복도 통로가 연결돼 있어야만 다른 방향으로의 피난이 가능하고 거실(영압장 등으로 사용되는 내부공간)로 사유화되는 문제점을 방지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 최영 기자


공용으로 사용되는 복도가 한 쪽의 직통계단하고만 맞닿아 있을 때에는 다른 쪽 계단은 영업장과 같은 거실 등에 점유돼 피난 안전성이 저하된다. 직통계단 출입구가 복도를 거치지 않고 영업장 내부와 직결돼 뒤로 숨어버리면 해당 공간을 드나드는 불특정 이용자가 출구 존재 사실조차 알 수 없게 된다는 얘기다. 게다가 거실과 바로 통하게 되는 피난계단 출구는 평소 사용하지 않거나 방범 문제 등을 우려해 잠궈 놓는 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이번 화재 때처럼 목욕 바구니를 쌓아 놓은 창고 속 계단 출구 존재를 아무도 몰랐던 것도 어떻게 보면 예견된 일이었다는 지적이다. 만약 계단과 계단 사이가 복도로 연결된 구조였다면 양 쪽 직통계단의 존재 자체를 이용자들 또한 모를 리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구조는 법에서 정한 규정과도 어긋난다는 논란에도 휩싸이고 있다. 분야 전문가들도 해당 건물의 직통계단 구조가 불법이라는 시각을 보이고 있다. 숭실사이버대학교 소방방재학과 박재성 교수는 “두 개의 직통계단을 설치할 땐 건축법에 따라 반드시 복도나 통로 등을 가로질러 설치해야 한다”며 “한 쪽 직통 계단이 거실과 면해져 있다는 것 자체는 법 규정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또 박 교수는 “피난의 기본 개념은 양방향 피난로 확보인데, 둘 중 하나의 계단이라도 공용부인 복도나 통로에 접해있지 않다면 피난 안전성은 담보될 수 없게 된다”며 “이런 문제를 인허가 과정에서 거르지 못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백화점처럼 건축물의 모든 시설이 하나의 소유주가 책임, 관리하거나 공간 자체가 모두 트인 경우에는 직통계단이 바로 거실과 연결돼도 안전성에 큰 문제는 없다”며 “그러나 계단과 이어진 곳이 사유 공간이 돼버리면 건물의 피난 안전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다.


제천 스포츠센터의 직통계단 구조가 화재 때 인명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계단끼리 복도가 연결된 구조였다면 출입구 외 다른 방향의 계단을 이용객이 쉽게 인지하고 소방활동도 수월했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화재안전 전문가 A씨는  “심각한 문제는 이렇게 법 규정에 어긋나는 공공기관과 건축물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이라며 “피난 안전성이 취약한 건물이 법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으로 허가가 이뤄지면서 국민은 잠재적인 위험 속에 살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서울시립대학교 소방방재학과 이영주 교수는 “각 피난계단 간의 복도 연결을 규정하는 건축법은 피난 안전을 고려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대부분의 건물에서는 정확히 지켜지지 않고 있다”면서 “이번 제천 화재를 계기로 법 취지를 살려 엄격하게 적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FPN/소방방재신문>은 21일 발생한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의 심도 있는 문제점 분석을 위해 이번 사고의 피해 확산 요인에 대한 시리즈 보도를 이어갑니다.


최영 기자 young@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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