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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화재/집중취재③] 시설 특성에 눈 못 뜬 ‘허술한 소방법’

- 거동 불편 환자 가득한데… “스프링클러는 없었다”
- 턱걸이로 규정 피한 옥내소화전, 일부러 피해갔나
- 피난약자 시설, 1인 사용 힘든 소화전도 개선해야
- 화재 감지 더딘 열감지기… 3년 전 법 강화 무색

최영 기자 | 입력 : 2018/01/31 [16:26]

▲ 화마가 휩쓸고간 밀양 세종병원 1층 내부는 처참한 모습이다. 분야 전문가들은 유사 사고가 또다시 반복되지 않으려면 방화문 등 화재에 취약한 건축 구조는 물론 피난약자 시설에 대한 소방시설 기준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FPN 최영 기자] = 화재로 39명이 숨진 세종병원의 소방시설은 소화기 24대와 자동확산소화장치 3대, 자동화재탐지설비(화재 감지기 51개), 시각경보기 27개, 구조대 3개, 유도등 37개, 인명구조기구 2개가 전부였다. 화재 시 피난 자체가 어려운 환자들을 수용하는 취약시설이었지만 이런 특수성은 소방법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피해 나갔다. 시설 특성을 고려한 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현행법상 병원의 경우 한 층의 바닥면적 1,000㎡ 이상일 경우 의무적으로 스프링클러설비를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세종병원의 한 층 바닥면적은 394.78㎡에 그쳤다. 이로 인해 화재 초기 불을 끄거나 제어할 수 있는 자동소화설비는 없었다.


거동 불편 환자가 입원해 스스로 대피할 수 없다는 취약성을 가졌지만  이런 시설의 특수성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건물 규모를 중심으로 소방시설을 갖추도록 한 소방법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번 사고는 화재 참사 때마다 문제가 된 시설만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소방법규의 한계성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노인요양시설이나 병원 등은 사고 때 마다 대상물 특성에 맞춰 소방법규가 강화돼 왔다. 노인이나 환자 등 피난약자 수용시설이었던 포항 인덕요양원과 장성 요양병원 화재 등의 연이은 사고를 겪고 나서도 일반 병원은 규제 대상에서 빠졌다.


2010년 11월 12일 화재로 10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다친 포항 인덕요양원 화재는 40분 만에 불이 꺼졌지만, 거동이 힘든 노령층 환자 10명이 1층에서 모두 숨졌다. 이 사고로 자동소화설비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정부는 24시간 숙식을 제공하는 노인ㆍ장애인 요양시설에 간이스프링클러 설비를 강제했다.

 

▲ 지난 2010년 11월 12일 포항 인덕요양원의 화재 당시 10명 중 6명이 숨졌던 2호실 내부의 모습이다. 지난 2014년 5월 28일 21명이 숨진 장성 효사랑 나눔요양병원 화재 당시 처음 화재가 발생했던 2층 3006호의 모습이다. 이 요양원과 요양병원 화재로 정부는 간이스프링클러설비를 갖추도록 법규를 강화했다. 하지만 일반 중소병원은 규제 대상에서 빠졌다.  


지난 2014년 21명이 숨지고 5명이 다친 장성 효사랑 요양병원 화재 땐 그간 포항 요양원 화재를 겪으면서도 요양시설과 달리 요양병원은 소방법 강화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당시 이 요양병원에는 비상구와 출입구에 강제 잠금장치가 설치돼 있어 탈출도 어려웠다. 게다가 스프링클러설비가 부재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그러자 정부는 병상 30개 이상 요양병원에 대해 올해 6월 30일까지 스프링클러설비를 설치토록 법을 강화했다. 그러나 세종병원과 같은 일반 중소병원은 규제 대상이 아니었다. 사고 때마다 강화되는 소방법이 실질적인 안전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림대학교 건축설비소방과 강윤진 교수는 “거동이 불편한 환자 등 자력 대피가 힘든 시설의 화재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자동소화설비 설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이번 사고를 계기로 취약시설에 스프링클러설비를 의무화시키는 조치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병원에는 건물 내 관계자가 화재 초기에 대처할 수 있는 옥내소화전조차 없었다. 옥내소화전은 화재 시 가장 효과적인 수동 소화설비다. 건물 내 소방차로 불릴 정도다. 현행법상 모든 층의 바닥면적 합계가 1,500㎡를 넘어야만 의무 설치 대상이 된다.


그런데 세종병원은 1,489.32㎡로 소화전 설치 대상에서 빠졌다. 건물 내 전용 배관을 설치해야 하는 등 공사 규모가 커질 수 있어 의도적으로 설계 과정에서 면적을 작게 맞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소방시설설계업에 오랜 기간 종사해 온 A씨는 “소방시설이 반영될 경우 건축비 상승으로 이어지고 복잡성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면적 규모로 규정된 기준에서 고의로 미달되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며 “변전실이나 발전기실 같은 곳도 300㎡가 넘으면 의무적으로 자동소화설비인 물분무등소화설비(물이 아닌 가스나 기타 소화약제로 불을 자동으로 끄는 설비)를 갖춰야 하는데 일부로 구획을 줄이거나 나눠 법규에 미달되게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귀띔했다.


옥내소화전 자체가 부재했지만 이런 피난약자 시설에 설치되는 소화전 법규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행법상 건물 내 설치되는 옥내소화전은 ‘일반 소화전’과 ‘호스릴 소화전’ 등 두 가지로 구분된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 소화전은 혼자서 사용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호스를 끝까지 전개해야만 하고 이 과정에서 호스가 꼬이는 경우도 많다. 밸브 개방 시 수압으로 인해 사용자가 부상을 입기도 한다.

 

▲ 왼쪽은 보통 건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 소화전으로 밀양 세종병원 옆 건물에 실제 설치돼 있던 소화전이다. 오른쪽은 혼자 사용하기 쉬운 호스릴소화전의 국내 건축물 실제 설치 모습이다. 최근에는 노유자시설이나 대형 건축물 등에서 호스릴 소화전을 자발적으로 설치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반면 호스의 직경이 작고 원형을 유지하는 호스릴소화전은 혼자서도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노유자시설이나 병원과 같은 피난약자 시설에서도 쉽게 활용될 수 있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화재 시 초기 진압을 고려해 이 같은 호스릴소화전이 사용되는 추세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법규 수준에만 맞춘 싼 값의 소방시설만을 설치하면서 건물 특성을 고려한 소방시설이 갖춰지지 않는 실정이다.


한국국제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김유식 교수는 “노인 병원처럼 노유자시설의 피난약자들 대부분이 힘이 약해 일반 소화전을 사용하기도 힘들다”며 “시설 관계자 또한 빠른 대처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런 특수시설에 화재 초기 대처가 가능하도록 무게가 덜 나가고 전개가 쉬운 호스릴 소화전을 강제화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병원은 초기 적정 피난시간을 좌우하는 화재감지시설도 부실했다. 정부는 지난 2015년 1월 의료시설이나 공동주택, 오피스텔처럼 화재 시 다수 인명피해가 우려되는 대상물에 연기감지기 설치를 의무화했다. 대부분의 건축물에 열감지기가 설치되는 우리나라 특성상 화재 대피 시간이 늦춰지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 화재가 발생한 밀양 세종병원 내 병실에 설치돼 있는 열감지기는 차동식 감지기로 우리나라 건물에 가장 많이 설치되는 종류였다. 화재 시 발생되는 열에 의해 일정 온도 이상이 도달했을 때 화재를 감지한다. 하지만 연기감지기에 비해 8분 정도 차이가 나기 때문에 화재의 초기 감지에는 한계가 따른다. 하지만 법규상 취침시설 등에 대해서만 제한하고 있어 대부분의 건물에 설치되고 있다.  가격이 2,000원 대로 가장 싸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지난 2008년 소방청 전신인 소방방재청이 실시한 주택화재 실물화재 실험에서는 연기감지기가 열감지기보다 무려 8분이나 빠르게 감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열감지기는 화재 조기 감지가 어려워 인명피해를 예방하기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 실험에선 열감지기는 스프링클러 헤드와 거의 유사한 시점에서 작동하기도 했다. 스프링클러 헤드는 열기를 받아 일정 온도에 도달했을 때 개방된다. 그런데 가장 먼저 울려야할 화재감지기는 화세가 이미 커진 뒤에야 감지할 수 있다는 충격적인 실험 결과였다.


특히 밀양 화재 당시 초기 CCTV에는 응급실에서 차오르는 연기가 밖으로 세어 나오자 이를 육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대처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소방 조사결과 5층 환자는 화재 이후 경종 소리를 듣고 대피했다고 진술했다. 이 당시 화재경보가 정상 작동했다고 보더라도 병원에 설치된 열감지기의 감지 속도가 느렸던 탓에 화재 인지는 늦을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의료시설이나 공동주택, 오피스텔 등에서 늦은 밤 화재가 발생하면 취침 시간 특성상 열감지기를 활용한 화재 발생 인지는 더욱 늦어질 수밖에 없다. 소방청이 3년 전 연기감지기 설치를 의무화했던 것도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정작 법규 시행 이전 지어진 세종병원 같은 시설들은 변한 게 없다.


호서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김시국 교수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중소병원에 스프링클러설비를 강제한다고 해도 적정한 피난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선 시설물의 화재 감지기를 강화된 법규처럼 연기감지기로 개선해야만 효용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정확한 화재 발생 위지조차 파악할 수 없는 국내 화재감지시스템도 손질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최영 기자 young@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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