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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 47명 숨진 세종병원 화재 “예고된 인재였다”(종합)

없거나 열린 계단 방화문, 피해 키운 핵심 요인 지목
3종 도면 입수… 최초 건축 설계도면엔 있었던 방화문
전기, 배관 수직 통로 타고 화염ㆍ연기 상부로 확산
제천 화재 판박이… 층간 방화구획은 “또 무너졌다”
면적ㆍ용도 중심, 시설 특성에 눈 못 뜬 ‘허술한 소방법’
거동 불편 환자 가득한데… 부재했던 스프링클러
피난약자 시설, 1인 사용 힘든 소화전도 개선해야
화재 감지 더딘 열감지기… 3년 전 법 강화 무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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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 기자 | 기사입력 2018/02/09 [14:02]

[집중취재] 47명 숨진 세종병원 화재 “예고된 인재였다”(종합)

없거나 열린 계단 방화문, 피해 키운 핵심 요인 지목
3종 도면 입수… 최초 건축 설계도면엔 있었던 방화문
전기, 배관 수직 통로 타고 화염ㆍ연기 상부로 확산
제천 화재 판박이… 층간 방화구획은 “또 무너졌다”
면적ㆍ용도 중심, 시설 특성에 눈 못 뜬 ‘허술한 소방법’
거동 불편 환자 가득한데… 부재했던 스프링클러
피난약자 시설, 1인 사용 힘든 소화전도 개선해야
화재 감지 더딘 열감지기… 3년 전 법 강화 무색

최영 기자 | 입력 : 2018/02/09 [14:02]

▲ 지난달 26일 화재가 발생한 밀양 세종병원    

 

[FPN 최영 기자] = 분야 전문가들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밀양 세종병원 화재 사고를 두고 “올 것이 왔다”는 냉담한 반응이다. 평소 피난약자 시설을 이용하는 시설의 화재 시 대형 인명 피해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던 탓이다.


경찰 조사결과 불이 난 밀양 세종병원은 불법 구조변경까지 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1992년 지상 5층 규모로 신축된 밀양 세종병원은 2006년 1층과 4층, 5층에 147㎡ 규모의 불법 건축물이 설치됐다. 옆에 붙어 있던 요양병원도 1996년 지상 6층 규모로 지어진 뒤 2007년 2층과 6층에 20㎡ 규모로 불법 건축이 이뤄졌다. 이 문제를 두고 밀양시는 두 건물에 대해 2011년부터 시정명령을 내렸고 3천만 원 상당의 이행강제금도 부과했다. 하지만 전혀 고쳐지지 않았다. 방치된 불법 건축물이 화재 피해를 키운 셈이다.


특히 본지<FPN/소방방재신문> 취재 결과 밀양 세종병원 준공 당시에는 피해 확산의 핵심 요인으로 지목되는 1층 방화문은 최초 준공 당시 설치되도록 설계가 이뤄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지난해 12월 21일 발생한 제천 화재처럼 엉터리로 구획된 층간 방화구획의 문제도 확인됐다. 소방시설 건축물의 면적 규모로 정해지는 소방법의 한계까지 드러나면서 시설 특성을 반영한 화재안전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화재 피해 키운 허술한 건축… ‘뻥’ 뚫렸던 방화구획


세종병원 화재 역시 두 달 전 발생한 제천 화재처럼 깨져버린 방화구획이 가장 큰 문제였다. 1층 중앙계단 출입구엔 방화문 자체가 없어 불과 연기는 삽시간에 위층으로 번졌다. 2층 역시 중앙계단에서부터 들어가는 쪽 방화문이 열려 있어 내부로 유입되는 연기를 막지 못해 피해를 키웠다.

▲ 세종병원 내 중앙에 위치한 계단의 1층에는 방화문이 아예 설치돼 있지 않은 구조였다. 하지만 설계도면에는 방화문을 설치하는 것으로 인허가를 받았던 것으로 취재결과 밝혀졌다.     ©최영 기자


화염과 연기를 막아줘야 하는 방화문이 제천 화재 때처럼 제구실을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피해를 키운 1층 방화문은 설계 당시 설치되도록 인허가를 받았던 것으로 취재결과 밝혀졌다. 밀양 세종병원 화재 이후 현장을 확인한 결과 실제 이 건물 1층의 방화문은 화재 당시 아예 달리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2층으로 이어지는 층계 방화문도 활짝 열려 있었다.


소방의 한 관계자는 “화재 당시 1층 방화문이 없고 2층 방화문도 열리면서 빠르게 연기가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며 “방화문만 닫혀 있어도 급격한 연기 확산을 막을 수는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2층 세종병원 중앙 계단 방화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화재 당시에도 이 문이 열려 있어 빠르게 확산된 화염과 열기는 2층으로 급속히 펴졌던 것으로 보인다.  


김한수 세종병원 화재사건 수사본부 부본부장도 지난달 29일 경남 밀양경찰서에서 진행된 브리핑에서 “1층에서 (연기가) 차단이 됐으면 연기가 소량이었을 것”이라며 “차단이 안 돼 각층으로 연기가 올라가 엄청난 열기가 났고 피해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1층 계단실 초입의 방화문은 설계 당시 설치하도록 도면이 작성됐었다. 취재 과정에서 입수한 세종병원 도면은 총 세 가지에 이른다. 여러 번의 구조변경이 이뤄진 탓에 어떤 도면이 진짜인지조차 확인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이 세 가지 도면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1층에 방화문이 달리도록 설계가 이뤄졌던 것.

▲ 취재 과정에서 세종병원의 세 가지 도면을 입수해 확인해본 결과 실제 건물구조와 달리 모든 도면에 1층 방화문이 설치되도록 설계돼 있다. 건축법상 피난계단을 설치해야 하는 건물의 1층에는 반드시 방화문을 설치해야 한다. 설계 당시 이 중앙계단을 피난계단으로 보고 방화문을    


그중 가장 현장과 유사한 것으로 확인된 건축 도면 2곳에는 ‘갑’이라는 단어까지 표기돼 있다. 갑종방화문이라는 뜻이다. 방화문은 말 그대로 불에 견디는 문을 말하는데 종류는 갑종과 을종으로 나뉜다. 불에 버티는 시간이 갑종은 1시간 이상, 을종은 30분 이상이 기준이다.


쉽게 말해 세종병원의 1층 방화문은 1시간 이상 불에 버틸 수 있는 갑종방화문이 설치돼 있었어야 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방화문은 온데 간데 사라진 상태였다. 언제부터 이 방화문이 없었는지는 파악조차 되지 않는다. 최초부터 설치되지 않았거나 내부구조를 불법으로 변경하면서 방화문을 떼어냈을 가능성도 있다. 만약 최초 설치가 안 된 거라면 건축 감리 부실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반면 중도에 사라진 것이라면 건축 이후 불법화를 가려내지 않은 시청 책임이 크다.


이렇게 사라진 방화문 탓에 중앙계단을 타고 번진 화염과 유독가스는 방화문이 없는 1층 층계를 타고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퍼질 수밖에 없었다. 이 도면들에는 화재 이후 밀양시청 건축과에서 소방 쪽에 제공한 도면도 포함돼 있다. 건축구조를 담당하는 밀양시청이 설계도면과 다른 건축 구조물을 장기간 방치하면서 참사를 불렀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이 건물의 최초 설계자는 이 계단을 ‘피난계단’으로 보고 갑종방화문을 반영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행법상(건축법) 층수가 5층 이상인 층의 바닥면적 합계가 200㎡가 넘으면 반드시 피난계단을 설치해야 한다. 이런 ‘피난계단’ 설치 대상물 1층에는 반드시 방화문을 달아야 하기 때문에 설계 당시부터 ‘갑종방화문’을 설계에 반영했던 셈이다.


숭실사이버대학교 소방방재학과 박재성 교수는 “피난계단 1층 방화문 설치 규정은 한 차례 논란이 된 뒤 국토교통부가 5년 전 관공서를 포함한 일반 건축물의 1층에 방화문을 설치하지 않은 것은 위법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시정조치를 내렸었다”며 “더욱이 세종병원이 건축 당시부터 방화문이 설계돼 있었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제천 화재 판박이… ‘무너진 층간 방화구획’

 

밀양 세종병원 건물은 제천 화재처럼 층간 방화구획도 처참히 붕괴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1층에서 상부 전층으로 이어주는 '수직 관통부'는 말 그대로 ‘뻥’ 뚫려 있었다. 이 공간은 사고 당시 화염과 연기가 상층부로 이동하는 통로가 됐다. 방화문이 없었던 중앙계단과 함께 연기를 건물 내로 확산시킨 주범으로 꼽힌다.


소방과 경찰은 전기시설과 배관이 건물을 수직으로 관통해 지나가는 이 PS(파이프샤프트), EPS(전기용 배관 샤프트)를 통해 가장 먼저 중환자실과 수술실, 입원실 등이 위치한 3층 이상으로 연기가 퍼졌다고 보고 있다.

▲ 밀양 세종병원 주사실 뒤편에 위치한 공용 샤프트에는 위층으로 이어진 전기 배선과 배관 등이 들어서 있다. 하지만 틈새가 메워지지 않아 화재 시 굴뚝 역할을 했다.    


세종병원의 시설 공용 샤프트는 1층 중앙계단과 마주보고 있는 주사실 뒤편 벽면에 위치해 있다. 이곳을 통해 퍼진 연기는 굴뚝효과로 인해 최상층까지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대형 화재 때마다 화염과 연기의 수직 확산 원인으로 꼽히는 이 ‘수직관통부’ 문제는 제천 화재 때도, 2015년 의정부 화재 때도 똑같았다. 대형 화재 때 마다 문제로 드러나는 단골 메뉴다.


제천 화재도 1층 PD(파이프덕트)의 수직 관통부가 방화구획되지 않아 PVC배관 등을 타고 위층으로 확산됐다. EPS(전기용 배관 샤프트) 역시 방화구획이 이뤄지지 않아 화염과 연기는 상층부로 빠르게 올라갔다. 의정부 화재 때도 마찬가지였다.

▲ 왼쪽은 지난달 21일 29명이 숨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때 화염과 연기의 확산 경로가 된 EPS(전기용 배관 샤프트)의 모습이다. 오른쪽은 2015년 발생한 의정부 대봉그린아파트 화재 시 화염과 연기의 경로가 됐던 EPS다. 당시 건물 지하부터 10층까지 연결된 이  


모든 건축물에는 각종 배관이나 전선 등 전기, 통신 등 시설을 위아래 층 또는 수평으로 연결한다. 이를 위해선 층의 바닥이나 벽, 천정을 뚫게 된다. 이게 바로 ‘수직 관통부’다. 하지만 이 배관이나 전기설비가 지나가는 사이 틈새를 제대로 메우지 않으면 화염이나 연기의 확산 경로가 될 수밖에 없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내화충전구조’를 반드시 갖춰야 한다.


‘내화충전구조’란 건축물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화염이나 연기가 옆 실이나 상층부로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방화구획 사이 또는 층별 관통부(벽이나 바닥면) 틈새를 일정시간 이상 화염에 견딜 수 있도록 밀폐시키는 구조를 말한다. 보통 1시간에서 2시간의 수준이 확보돼야 한다. 하지만 세종병원에는 이런 틈새에 대한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 내화충전구조가 제대로 갖춰진 EPS, PD의 모습이다. 최근에 지어지는 건축물은 이같은 형태로 배관이나 전기시설 등의 틈새를 메우기 때문에 화재 시 상층부나 수평 공간으로 화염이나 연기가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최영 기자


내화충전구조 개념은 우리나라에 2006년 최초 도입됐다. 그러나 세부 규정이 정립되지 않아 실제 건축물에 적용되지 않았다. 그러다 2010년 10월 1일 발생한 골든스위트 화재를 계기로 관련 규정이 만들어졌고 그 이후 지어진 건물은 그나마 내화충전구조를 의무적으로 갖추고 있다.


밀양 세종병원은 1992년 준공 후 2005년 증축이 이뤄졌다. 법 시행 이전에 지어진 건물이라 내화충전이란 개념 자체가 반영되지 않았다. 문제는 법 시행 이전 지어진 수많은 건축물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내부 수직관통부는 언제든지 또다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이영주 교수는 “수직관통부의 부실한 층간 방화구획은 수많은 화재 사례에서 화재 확산을 부르는 동일한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며 “유사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법규 시행 이전에 지어진 건축물에 대해서도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내화충전구조에 관한 시공과 유지관리에 있어서도 체계적인 제도 정립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세종병원의 전기, 배관 통로였던 샤프트의 문도 정상이 아니었다. 경찰 조사결과 원래 불에 타지 않는 철판 재질의 문으로 구성돼야 했지만 세종병원의 샤프트 문은 일반 문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병실과 진료실, 검사실 등을 구획하기 위해 세운 수많은 벽도 화재를 키운 원인으로 꼽힌다. 1층의 각 실별 벽면이 대부분이 목재 합판으로 구획돼 있었던 탓이다. 내부의 무분별한 합판 구획 구조는 불길이 급속도로 확산되는데 있어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한국소방기술인협회 김기항 회장은 “보통 건물의 내부 실내를 구획하는데 있어서는 석고 재질의 판을 사용하는 게 보편화돼 있다”며 “그런데 대부분의 실내 공간을 목재로 구획한 세종병원의 구조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설 특성에 눈 못 뜬 ‘허술한 소방법’

▲ 화마가 휩쓸고간 밀양 세종병원 1층 내부는 처참하게 타 버렸다. 분야 전문가들은 같은 사고를 또다시 반복하지 않으려면 방화문 등 화재에 취약한 건축 구조는 물론 피난약자 시설에 대한 소방시설 기준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


세종병원의 소방시설은 소화기 24대와 자동확산소화장치 3대, 자동화재탐지설비(화재 감지기 51개), 시각경보기 27개, 구조대 3개, 유도등 37개, 인명구조기구 2개가 전부였다. 화재 시 피난 자체가 어려운 환자들을 수용하는 취약시설이었지만 이런 특수성은 소방법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피해 나갔다. 시설 특성을 고려한 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현행법상 병원의 경우 한 층의 바닥면적 1,000㎡ 이상일 경우 의무적으로 스프링클러설비를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세종병원의 한 층 바닥면적은 394.78㎡에 그쳤다. 이로 인해 화재 초기 불을 끄거나 제어할 수 있는 자동소화설비는 없었다.


거동 불편 환자가 입원해 스스로 대피할 수 없다는 취약성을 가졌지만  이런 시설의 특수성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건물 규모를 중심으로 소방시설을 갖추도록 한 소방법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번 사고는 화재 참사 때마다 문제가 된 시설만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소방법규의 한계성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노인요양시설이나 병원 등은 사고 때 마다 대상물 특성에 맞춰 소방법규가 강화돼 왔다. 노인이나 환자 등 피난약자 수용시설이었던 포항 인덕요양원과 장성 요양병원 화재 등의 연이은 사고를 겪고 나서도 일반 병원은 규제 대상에서 빠졌다.


2010년 11월 12일 화재로 10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다친 포항 인덕요양원 화재는 40분 만에 불이 꺼졌지만, 거동이 힘든 노령층 환자 10명이 1층에서 모두 숨졌다. 이 사고로 자동소화설비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정부는 24시간 숙식을 제공하는 노인ㆍ장애인 요양시설에 간이스프링클러 설비를 강제했다.


지난 2014년 21명이 숨지고 5명이 다친 장성 효사랑 요양병원 화재 땐 그간 포항 요양원 화재를 겪으면서도 요양시설과 달리 요양병원은 소방법 강화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당시 이 요양병원에는 비상구와 출입구에 강제 잠금장치가 설치돼 있어 탈출도 어려웠다. 게다가 스프링클러설비가 부재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 지난 2010년 11월 12일 포항 인덕요양원의 화재 당시 10명 중 6명이 숨졌던 2호실 내부의 모습이다. 지난 2014년 5월 28일 21명이 숨진 장성 효사랑 나눔요양병원 화재 당시 처음 화재가 발생했던 2층 3006호의 모습이다. 이 요양원과 요양병원 화재로 정     ©소방방재신문

그러자 정부는 병상 30개 이상 요양병원에 대해 올해 6월 30일까지 스프링클러설비를 설치토록 법을 강화했다. 그러나 세종병원과 같은 일반 중소병원은 규제 대상이 아니었다. 사고 때마다 강화되는 소방법이 실질적인 안전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림대학교 건축설비소방과 강윤진 교수는 “거동이 불편한 환자 등 자력 대피가 힘든 시설의 화재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자동소화설비 설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이번 사고를 계기로 취약시설에 스프링클러설비를 의무화시키는 조치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병원에는 건물 내 관계자가 화재 초기에 대처할 수 있는 옥내소화전조차 없었다. 옥내소화전은 화재 시 가장 효과적인 수동 소화설비다. 건물 내 소방차로 불릴 정도다. 현행법상 모든 층의 바닥면적 합계가 1,500㎡를 넘어야만 의무 설치 대상이 된다.


그런데 세종병원은 1,489.32㎡로 소화전 설치 대상에서 빠졌다. 건물 내 전용 배관을 설치해야 하는 등 공사 규모가 커질 수 있어 의도적으로 설계 과정에서 면적을 작게 맞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소방시설설계업에 오랜 기간 종사해 온 A씨는 “소방시설이 반영될 경우 건축비 상승으로 이어지고 복잡성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면적 규모로 규정된 기준에서 고의로 미달되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며 “변전실이나 발전기실 같은 곳도 300㎡가 넘으면 의무적으로 자동소화설비인 물분무등소화설비(물이 아닌 가스나 기타 소화약제로 불을 자동으로 끄는 설비)를 갖춰야 하는데 일부로 구획을 줄이거나 나눠 법규에 미달되게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귀띔했다.


옥내소화전 자체가 부재했지만 이런 피난약자 시설에 설치되는 소화전 법규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행법상 건물 내 설치되는 옥내소화전은 ‘일반 소화전’과 ‘호스릴 소화전’ 등 두 가지로 구분된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 소화전은 혼자서 사용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호스를 끝까지 전개해야만 하고 이 과정에서 호스가 꼬이는 경우도 많다. 밸브 개방 시 수압으로 인해 사용자가 부상을 입기도 한다.


반면 호스의 직경이 작고 원형을 유지하는 호스릴소화전은 혼자서도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노유자시설이나 병원과 같은 피난약자 시설에서도 쉽게 활용될 수 있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화재 시 초기 진압을 고려해 이 같은 호스릴소화전이 사용되는 추세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법규 수준에만 맞춘 싼 값의 소방시설만을 설치하면서 건물 특성을 고려한 소방시설이 갖춰지지 않는 실정이다.

▲ 왼쪽은 보통 건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 소화전으로 밀양 세종병원 옆 건물에 실제 설치돼 있는 모습이다. 오른쪽은 선진국에서 주로 사용하는 호스릴소화전의 건축물 실제 설치 모습.     ©소방방재신문


한국국제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김유식 교수는 “노인 병원처럼 노유자시설의 피난약자들 대부분이 힘이 약해 일반 소화전을 사용하기도 힘들다”며 “시설 관계자 또한 빠른 대처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런 특수시설에 화재 초기 대처가 가능하도록 무게가 덜 나가고 전개가 쉬운 호스릴 소화전을 강제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병원은 초기 적정 피난시간을 좌우하는 화재감지시설도 부실했다. 정부는 지난 2015년 1월 의료시설이나 공동주택, 오피스텔처럼 화재 시 다수 인명피해가 우려되는 대상물에 연기감지기 설치를 의무화했다. 대부분의 건축물에 열감지기가 설치되는 우리나라 특성상 화재 대피 시간이 늦춰지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 화재가 발생한 밀양 세종병원 내 병실에 설치돼 있는 열감지기는 차동식 감지기로 우리나라 건물에 가장 많이 설치되는 종류다. 화재 시 발생되는 열에 의해 일정 온도 이상이 됐을 때 화재를 감지한다. 하지만 연기감지기에 비해 8분 정도 차이가 나기 때문에 화재의 초기 감지     ©소방방재신문


실제 지난 2008년 소방청 전신인 소방방재청이 실시한 주택화재 실물화재 실험에서는 연기감지기가 열감지기보다 무려 8분이나 빠르게 감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열감지기는 화재 조기 감지가 어려워 인명피해를 예방하기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 실험에선 열감지기는 스프링클러 헤드와 거의 유사한 시점에서 작동하기도 했다. 스프링클러 헤드는 열기를 받아 일정 온도에 도달했을 때 개방된다. 그런데 가장 먼저 울려야할 화재감지기는 화세가 이미 커진 뒤에야 감지할 수 있다는 충격적인 실험 결과였다.


특히 밀양 화재 당시 초기 CCTV에는 응급실에서 차오르는 연기가 밖으로 세어 나오자 이를 육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대처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소방 조사결과 5층 환자는 화재 이후 경종 소리를 듣고 대피했다고 진술했다. 이 당시 화재경보가 정상 작동했다고 보더라도 병원에 설치된 열감지기의 감지 속도가 느렸던 탓에 화재 인지는 늦을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의료시설이나 공동주택, 오피스텔 등에서 늦은 밤 화재가 발생하면 취침 시간 특성상 열감지기를 활용한 화재 발생 인지는 더욱 늦어질 수밖에 없다. 소방청이 3년 전 연기감지기 설치를 의무화했던 것도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정작 법규 시행 이전 지어진 세종병원 같은 시설들은 변한 게 없다.


호서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김시국 교수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중소병원에 스프링클러설비를 강제한다고 해도 적정한 피난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선 시설물의 화재 감지기를 강화된 법규처럼 연기감지기로 개선해야만 효용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정확한 화재 발생 위치조차 파악할 수 없는 국내 화재감지시스템도 손질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최영 기자 young@fpn119.co.kr

 

[인터뷰]
[인터뷰] “다양한 경험ㆍ조직 이해 바탕으로 새로운 변화 물결 만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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