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잘라선 안 된다

탁일천 한국소방안전권익협회장 | 입력 : 2018/02/26 [10:34]

▲ 탁일천 한국소방안전권익협회장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은 기존 전통 산업사회와는 차원이 다르다. 예측이 불가능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조업과 정보기술은 결합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는 사라질 것이다.

 

이는 곧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올 전망이다. 이런 흐름은 학문과 산업, 사물 간 융복합을 통한 인공지능, 빅데이터, 로봇공학, 클라우드 등 새로운 형태의 승자독식 논리가 지배하는 국가와 기업 간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국 보호무역주의와 정치적 불확실성 속에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얼마 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의 참사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경남 밀양 세종병원 응급실 화재로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 소방안전이 위협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던 소방은 축소돼 힘없는 조직으로 비춰지고 있고 자신의 건물은 자신이 지켜야 된다는 인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골든타임이 지난 후 출동한 소방의 부실대응 논란으로 마녀사냥식 질책과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여기에 사법처리 수순까지 밟고 있는 형국을 보자니 한숨이 나온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은 소방의 목적이다. 그렇기에 이번 사건을 뼈아픈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소방인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무지개가 과연 일곱 가지 색 뿐일까. 자세히 보면 빨강과 주황 사이에도 수많은 색이 존재하지만 그 사이의 색들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본질을 호도한 채 결과론에만 치중하는 편향적 시각으로 소방을 대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얼마 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지적처럼 이번 사건의 핵심은 방화구획, 내ㆍ외장재, 피난통로 장애물 설치와 폐쇄, 불법 증축, 임의 가설물, 유독가스를 발생시키는 가연성 물질 등이다. 원인 규명에 따른 부실한 건축법을 먼저 고쳐야 한다는 얘기다.


안전에 대한 인식과 건물 규모, 그리고 특성 등 구조적인 문제는 방치한 채 화재진압에 대한 책임만 묻는 것은 근시안적 사고로 임시 미봉책에 불과하다.


이는 일찍이 조선시대의 선각자로 시대를 통찰하고 스스로 경계를 늦추지 않았던 연암 박지원이 과정록에서 지적한 것과 다르지 않다. 현실의 문제를 개혁하지 않는 한 미래의 장밋빛 비전 역시 없다.


인순고식(因循姑息), 구차미봉(苟且彌縫), 천하만사(天下萬事), 종차타괴(從此墮壞) “타성에 젖어 하던 대로 일하고 그러다 문제가 생기면 임시변통으로 덮는다. 천하 모든 일이 이 때문에 무너지고 만다”


경제 규모에 따른 화재는 돌이킬 수 없는 인명 손실을 동반한다. 안전은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율안전의 올바른 정착과 소방시설의 자진설비 개선비용은 사회적 합의 도출에 따른 세액공제 혜택 극대화와 위험 분산의 보험요율 할인 혜택 부여로 해소해야 한다.


또 불량 시설 개선을 위해 안전 감시 신고를 강화하는 방법도 추진해 볼 만하다. 이번 기회에 소방용품 내용연수도 즉시 시행해 신뢰성을 확보하고 모든 건물에는 스프링클러 설치와 내ㆍ외장재를 불연제품으로 사용토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지진과 화재 등에 대비한 내진과 방화구획은 우리의 생명줄이기에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압축 성장의 뒤안길에서 안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적정 비용을 지불할 때 안전의 선순환이 구축될 수 있다. 다중이 이용하는 건축물은 공공의 안전을 확보할 의무가 있기에 당연히 건물주에게 모든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끊임없는 위기와 불확실성, 수많은 희생으로 점철된 소방의 역사는 공동체 안에서 사고하고 행동하지 않는 사람을 결코 소방인이라 부르지 않는다. 모두가 깨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탁일천 한국소방안전권익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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