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왼쪽부터)김무광, 임소미, 김무용, 김송봉, 김송호 소방관 가족 © 유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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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PN 유은영 기자] =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 소방공무원의 이야기를 지면에 담기 위해 수소문하던 중 한 통의 제보를 받았다. 무려 한 가족에 다섯 명 모두가 소방공무원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들은 대구를 비롯해 경기, 포항 등 다양한 지역에서 시민의 안전을 지키고 있었다.
포항에서 퇴직한 김송봉 씨와 김송호 대구소방안전본부 소방령, 김무광 파주소방서 지방소방장, 임소미 양주소방서 지방소방장, 김무용 포항북부소방서 지방소방교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의 관계는 파주소방서 김무광 소방장을 중심으로 부인과 아버지, 작은아버지, 그리고 동생까지 이어진다. 김 소방장의 아버지인 김송봉 씨는 31년 동안 현장에서 화마와 싸우다 6년 전 퇴직했다. 대구소방안전본부 예방홍보팀장인 김송호 씨는 그의 작은아버지다.
경기도 여성 중 최초로 인명구조사 자격을 획득한 임소미 씨는 그의 부인으로 이들은 전국 최초 ‘부부 인명구조사’라는 타이틀도 갖고 있다. 그의 동생인 김무용 씨는 현장에서 화마와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
지난달 12일 대구소방본부에 어렵게 그들이 모였다. “서로가 똘똘 뭉쳐 함께 이해할 수 있는 범위가 넓다 보니 누구보다 행복한 소방공무원으로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특별한 소방관 가족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각자 본인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김송봉 : 1981년 6월에 임용됐다. 2012년 퇴직 전 경북 포항소방서에서 소방 펌프차 기관원으로 근무했다. 현재는 개인택시를 운영하고 있다. 해병대 출신으로 지치지 않는 체력과 빠른 판단력을 갖고 현장에서 종횡무진 활약했다. 근무 당시 관내 지리를 정확히 알고 있어 ‘인간지도’로 불리곤 했다.
김송호 : 1986년 8월 경기도 성남소방서에서 소방공무원으로 첫 발을 내디뎠다. 1992년에는 대구소방본부로 전입해 현재는 대구소방안전본부 예방안전과 예방홍보팀장으로 근무 중이다.
김무광 : 경기 파주소방서 119구조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11년 차 소방관이다.
임소미 : 2008년 1월에 임용됐다. 현재는 양주소방서 구급대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김무용 : 2011년 8월에 소방공무원 구급분야 특별채용에 합격해 임용됐다. 현재는 포항북부소방서 덕산119안전센터에서 중형 펌프차 운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소방공무원이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김송봉 : 작은 농촌 마을에서 살았었는데 농번기에 소방공무원들이 일손을 도우러 오는 것이 참 인상 깊었다. 동네에 아는 형님이 소방서에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방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어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 부모님께서도 공무원이 되길 원하셔 소방관이 돼야겠다 마음먹었다.
김송호 : 주변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 형이 포항소방서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등하굣길에 소방서가 있어 매일같이 봤다. 30여 가구가 있는 작은 마을에 살았는데 그중 8명이나 소방공무원이었던 것도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김무광 : 아버지와 작은아버지께서 소방관이셨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그 모습을 지켜봐 왔다. 언론을 통해 소방관에 대해 많이 알게 됐고 항상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음 한편 소방관이라는 꿈이 늘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임소미 : 아버지께서 공무원이 되길 원하셨다. 행정직은 적극적이고 활달한 제 성격과 맞지 않을 것 같아 고민하다 간호사인 언니가 병원에 실습 온 응급구조학과 학생들을 보고 응급구조학과를 지원하길 권유했다. 응급구조학과 진로를 검색하다 보니 소방공무원 구급 업무를 할 수 있어 아버지께 말씀드리고 미래를 착실히 준비해 소방공무원이 됐다.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이 궁금하다.
김송호 : 소방공무원은 시민의 손과 발이 되는 서비스 정신이 어느 분야보다 높은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현장에 출동 시 주변에서 소방관이 최고다, 고생한다는 말을 들을 때 가슴이 뭉클해지고 왠지 모르게 뿌듯한 적이 많다.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내가 하고 있다는 점, 내가 속한 조직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 소방공무원으로 32여 년 근무하고 있다는 점이 항상 자랑스럽다.
임소미 : 구급차 안에서 아이를 받았을 때, 심정지 환자를 살렸을 때, 어려움에 처하신 분들을 도와드렸을 때, 독거 노인분들의 손과 발이 돼드렸을 때, 그리고 무엇보다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음에도 시민께서 감사하다고 표현해 주셨을 때입니다.
김무용 : 사람을 살리는 일이 제 직업이지만 3년 전 겨울 구급 출동 중 심정지 환자를 실제로 소생시켰을 때가 현재까지 기억에 남는다. 또 작년 9월 출근길에 쓰러져 있는 70대 노인을 응급처치해 구급대원에게 인계했는데 언론에까지 보도돼 제 직업에 대해 다시 한번 자부심을 느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
김송호 : 최근 제천 화재로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해 언론에서 화재진압 활동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뉴스를 들으면 가슴이 아프다. 또 일반 시민이 그런 말을 할 때 눈을 마주치기 힘들기도 하다. 건물구조나 시간, 날씨 등 여러 조건에 따라 화재 현상은 다르게 나타난다. 시민은 이런 내부적인 요인보다 눈에 보이는 결과를 중시하기 때문에 괜스레 가족이나 친구 등의 관계가 조심스러워지고 만남을 피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김무광 : 지난해 같이 근무하는 선배가 출동 시 탑승했던 구급 차량이 사고가 나서 그 현장에 출동을 나갔다. 사고가 생각보다 커서 구조시간이 많이 걸렸다. 무엇보다 선배님이 많이 다치셔서 계속 걱정됐다. 다행히 지금은 잘 치료 받고 건강을 회복하셔서 정말 좋다.
임소미 : 지금은 예쁜 공주 둘의 엄마지만 유산한 경험이 있다. 임신하게 되면 보통 행정업무로 전환되지만 당시 인원이 없어 구급보다는 출동이 없는 펌프 차량에 탑승해 경방 업무를 했다. 임신 사실을 확인하고 2주 후에 다시 병원을 찾았는데 태아의 심장이 뛰지 않았다. 아이와 남편에게 너무 미안했고 개인적으로 정말 힘들었다.
김무용 : 주취자를 응대하는 게 가장 힘들다. 대부분 주취 상태에서는 구급대원에게 비협조적이거나 폭력적으로 대하기 때문에 매뉴얼대로 한다 하더라고 애로사항이 많다. 언론에서도 많이 다루듯 구급대원들이 현장에서 주취자로부터 폭언이나 폭행을 당하는 일은 무척 많다. 이런 이유로 외상 후 스트레스를 겪는 구급대원도 많다.
▲가족 소방관, 장ㆍ단점이 모두 있을 것 같다.
김송호 : 가족끼리 융화가 잘 된다는 장점이 있다. 명절이나 집안 행사에서 만나면 자연스럽게 서로의 근무 환경, 화재 현장 활동 등 소방 관련 대화를 할 수 있다. 반면 얘기 주제가 소방으로 국한되다 보니 회사에 다니는 다른 가족은 소외되기도 한다.
김무광 : 직업 특성을 이해해 줄 수 있어 좋다. 직업 특성상 교대 근무를 해야 하고 항상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걱정 반, 격려 반으로 항상 응원하고 이해해줄 수 있어 좋다.
임소미 : 명절에 비상근무를 서야 하므로 시댁에 갈 수 없어 아이들만 내려보내곤 하는데 시댁 어른들께서 이해해주시고 도와주신다. 이런 점이 정말 큰 힘이 되고 늘 감사하다. 아버님께서는 선배 소방관으로서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신다. 반면 남편과 다른 팀이다 보니 이틀에 한 번씩 만나게 돼 그리운 날이 많다.
▲전국 동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없나.
김송호 : 소방관들은 지역은 다르지만 ‘소방’이라는 운명 공동체다. 다른 지역에서 소방활동으로 인한 직원의 안전사고나 대형화재에 따른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를 결코 남의 일로 받아드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남의 일보다는 자기 일로 인식하고 이른 시간 안에 함께 극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임소미 : 소방관이라고 해서 항상 강하고 멋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힘들면 힘들다고 표현하고 슬프면 눈물도 흘리고 웃기면 웃었으면 한다.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증거다. 겉으로는 건강하고 멀쩡해 보여도 외상 후 스트레스를 겪는 직원이 많다. 정신 건강은 신체의 건강보다 더 중요하다. ‘나는 괜찮다’며 참지 말고 긍정 심리 훈련과 심리 상담 등을 통해 빠른 시일 내 회복하는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 웃기만 해도 짧은 인생이다. 행복한 나날을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유은영 기자 fineyoo@fpn119.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