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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평창 횡계 호우 침수로 갈 곳 잃은 주민들… 원인은 人災

주민들 “대형 태풍때도 멀쩡했는데, 올림픽 승하차장이 하천 물길 막아”

배석원 기자 | 입력 : 2018/05/23 [20:38]

▲ 지난 18일 강원도에 내린 폭우로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의 차항천이 범람했다. 인근 주택 66가구가 침수됐고 주민 136명은 대관령면사무소로 긴급 대피했다.   © 배석원 기자

 

[FPN 배석원 기자] = “물살이 얼마나 쏜살같던지 물이 무릎까지 차는데 지금도 심장이 벌렁벌렁해” 

 

지난 17일에서 18일 오전 사이 강원도에 쏟아진 폭우로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차항천이 범람하면서 횡계6리 66가구가 침수되고 136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19일 확인한 횡계리 수해피해 현장의 모습은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 하천 범람으로 집안에 흙탕물이 들어오면서 냉장고가 쓰러지는 등 집안 내부가 엉망이 된 모습이다.   © 배석원 기자

 

길목은 온통 뻘밭이었고 흙탕물이 출렁거린 자국이 벽면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곳곳에서는 코를 찌르는 악취가 풍겼다. 집안 살림살이도 어느 하나 온전한 게 없었다. 힘없이 쓰러진 냉장고와 진흙더미에 널브러진 옷가지들은 침수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짐작케 했다. 

 

망연자실한 얼굴로 집을 바라보던 집주인 A씨는 “그동안 여기 살면서 ‘매미와 루사’ 같은 대형 태풍이 왔을 때도 천이 범람했던 적이 없었다”며 “평창올림픽 하면서 저 승하차장이 설치되면서 처음으로 물이 넘쳤다. 이건 자연재해가 아닌 명백한 인재다”고 호소했다.

 

또 다른 집 마당에는 말 없이 멍하게 서서 담배만 피우던 70대 노인이 “물이 다 들어 찼다. 온전한 곳이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 인근 주택 66가구가 침수되면서 피해 주민 136명이 대관령면사무소로 긴급 대피해 생활하고 있다.   © 배석원 기자

 

피해 주민들이 모여 있는 대관령면사무소 2층 강당에는 100여 명이 삶의 터전을 잃은 채 구호단체가 나눠준 이불과 돗자리, 의류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대피소에서 만난 양은자(여, 77)씨는 “물이 집안으로 들어오는 데 다리가 아파서 나갈 수가 없었다”며 “물은 집안에 계속 차오르고 그때 119구급대원이 창문을 통해 날 업어 구조했다”고 긴박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양 할머니는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심장이 떨린다고 했다. 다리에는 대피 때 생긴 피멍 자국이 여러 군데 눈에 띄었다.

 

주민들은 이번 침수 피해는 명백한 인재(人災)라고 입을 모았다. 그 원인으로 평창동계올림픽을 위해 차항천에 시공된 차량승하차 횡단구조물을 지목했다.

 

이 구조물은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강원도에 ‘수송시설 기반공사 시행자 사업계획 승인 신청’을 내고 평창군청 시설관리과로부터 ‘하천점용허가’를 받아 2016년 12월 27일부터 존치 시까지의 기한을 두고 지은 시설물이다.

 

주민들은 경기가 끝난 뒤부터 군청과 조직위에 여러 차례 승하차장 철거를 요청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 이번 횡계리 침수피해의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는 차항천의 승하차시설물(개비온)의 모습이다. 폭우로 일부는 무너져 내린 상태다.   © 배석원 기자

 

성백유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대변인은 “주민과 군청으로부터 정식문서로 개비온 철거를 요청받은 적은 없었다”며 “조직위 직원이나 현장소장에게 전화나 구두요청은 있었다”고 사실관계를 설명했다.  

 

조직위는 “이미 철거에 돌입한 상태였고 승하차장 전기, 컨테이너 등 임시 시설물 철거를 시작으로 가드레일 과 보도블록, 아스콘 반출을 비롯해 토사ㆍ개비온석 반출 순으로 5월 말까지 완료할 계획이었다”고 해명했다.  

 

‘철거가 2주 만에 가능하겠냐’는 지적에 대해서 조직위는 “보도블록과 아스콘 철거ㆍ반출은 이미 완료한 상태였고 토사는 18,000㎥ 중 6,000㎥도 반출했다”며 “잔여 토사물 12,000㎥와 개비온석 3,400㎥도 계획상 12일 이내에 가능한 공정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는 피해 주민과 협의가 완료되면 공사를 재개해 토사와 개비온석을 동시에 반출할 계획이다”고 덧붙였다.

 

주민들은 부실한 지자체의 재난 경보 시스템도 지적됐다. 지난 18일 강원소방본부 종합상황실로 최초 신고가 접수된 시간은 00시 11분께었다. 그 뒤로 18, 29, 36, 42, 45분 간격으로 횡계리 지역 일대 신고가 연달아 접수됐다. 

 

김종하 (남, 28)씨는 “밤에 하천이 범람해 대피해야 한다는 걸 이웃 주민이 막 소리쳐서 알았다”며 “그 뒤로 대피장소에 도착한 뒤에야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음성 대피방송이 아닌 ‘웽~‘ 하는 소리뿐이었다”며 “근처에 불이 난 걸로 안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대피사이렌 방송은 119 종합상황실에 최초 접수가 들어 온 시간으로부터 약 50여 분 뒤인 오전 1시쯤 울린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당시 현장에서 대피한 주민들은 현장에 출동한 소방대원과 군청 공무원 등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스스로 대피해야만 했다.  

 

▲ 공무원150명과 평창경찰서 116명, 평창조직위원회 60명, 자원봉사자 100여 명 등 총 400여 명이 지난 20일 수해피해 지역 외부 복구작업을 벌이고 있다.     © 평창군청 제공

 

평창군은 사고 직후 즉시 대관령면사무소에 재난안전대책본부를 마련한 상태다. 피해복구와 대피주민 지원을 위해 군청 전 직원을 동원하는 등 피해조사와 응급복구에 매진하고 있다. 

 

지난 19일부터는 조직위와 군청 주민대표 등이 모여 본격적인 보상협의와 복구계획을 논의했다. 20일부터 본격적인 수해 현장 외부 복구가 시작된 상황이다. 공무원 257명, 평창경찰서 250명, 소방서 31명, 평창조직위원회 60명, 자원봉사자 109명 등 그간 총 800여 명과 장비 58대 등이 투입해 복구를 진행하고 있다.

 

어승담 평창군 부군수는 “주민들이 일상으로 돌아가 안정적인 생활이 이루어질 때까지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지원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평창군과 조직위는 주민과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 보상문제와 함께 향후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수립한다는 방침이다.

 

배석원 기자 sw.note@fpn119.co.kr 

 

이하 평창군 횡계리 현장 사진 

 

▲ 지난 18일 밤사이 쏟아진 폭우로 횡계리 차항천이 범람하면서 인근 주택 66가구가 침수피해를 입었다.  © 배석원 기자  

▲ 지난 18일 밤사이 쏟아진 폭우로 횡계리 차항천이 범람해 인근 주택가를 덮치면서 세간살이 등을 휩쓸고 간 모습이다.  © 배석원 기자

▲ 지난 18일 내린 폭우로 차항천이 범람하면서 건물 내부에 진흙이 들어찬 모습이다.      © 배석원 기자

 

▲ 지난 18일 내린 폭우로 차항천이 범람하면서 주택마다 진흙이 들어찬 모습이다.    © 배석원 기자

 

▲ 지난 20일 집집마다 침수피해를 입은 가구와 쓰레기들이 골목에 쌓여 있다.   ©배석원 기자

 

▲ 지난 18일 내린 폭우로 차항천이 범람하면서 대피한 주민의 다리에는 여러군데 피멍이 들었다.   © 배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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