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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119]시 쓰는 소방관… 충북 충주소방서 남부119안전센터 이가빈 소방사

“안주하는 삶 아닌 나아가는 삶으로 소방에 도움 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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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영 기자 | 기사입력 2020/04/20 [10:00]

[Hot!119]시 쓰는 소방관… 충북 충주소방서 남부119안전센터 이가빈 소방사

“안주하는 삶 아닌 나아가는 삶으로 소방에 도움 되고파”

유은영 기자 | 입력 : 2020/04/20 [10:00]

 

 

정감이 간다

 

저기 앞에 있는 하나의 조형물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콘크리트 덩어리

왠지 모르게 나에게는 정감 가는 존재

 

색이 바랜 페인트 글자

주변에 널브러진 부스러기

바람이 불면 날아가 버리는 흔적들

 

기억 속에 남아있는 예전의 모습이

내 눈앞에 스쳐 지나간다.

 

다른 사람들은 무심코 지나가 버린

그 모습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묵은 먼지를 손으로 닦으며 

그래 이 모습에 나는 정감이 간다.

 


충북 충주소방서 남부119안전센터에서 화재진압대원으로 근무 중인 이가빈 소방사의 시다. 그가 관창을 잡던 손으로 펜을 잡으며 시를 쓰기 시작한 이유는 같이 근무했던 최중락 팀장이 청주시에서 주관하는 ‘1인 1책’이라는 대회에 관해 설명해 주면서부터다. 

 

“팀장님 소개로 이영희 선생님을 만났는데 ‘가빈 씨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시며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시는 분들의 수필과 시집을 선물해 주셨어요. 그 말에 힘을 얻어 그간 갖고 있던 편협한 생각의 틀을 깨트리고 삶의 큰 획을 긋고 싶어 시집 출간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이가빈 소방사가 출간한 시집 이름은 ‘정감이 간다’. 근무 중 틈틈이 시간을 내 1년간 주 1회씩 교육을 받으며 써 내려간 총 60여 개의 시가 담겼다. 

 

이 시집은 청주세계직지문화협회가 주관하는 지원사업 공모에 출품해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사람들이 삶을 살아오면서 한 번씩은 과거를 회상하며 그때의 기억들을 상기하게 됩니다. ‘아, 이건 예전에도, 지금도 변하지 않고 있구나…’ 각자 마음속에 변하지 않는 무언가를 공통으로 느낄 수 있는 시를 시집의 제목으로 정했습니다”

  

정감이 간다는 경험과 물건, 자아 성찰에 관해 얘기한다. 그가 20여 년 살아오면서 주변에서 변화하는 과정,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에 대한 원론적인 분석, 또 다른 시각을 통해 지금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의문점과 스스로를 객관화해 그에 대한 느낀 점을 풀어썼다.

 

 

주검… 고양이

 

뒤편에서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니

작은 새끼고양이 한 마리가 있습니다.

 

도망가려 하는 고양이를 잡아

고등어를 쥐여 줍니다.

 

맛있게 먹던 고양이를 

우리는 좋아했습니다.

 

새끼 고양이 곁에 어미가 다가옵니다.

우리는 가버렸습니다.

시간이 지나 밖으로 나간 우리는 보았습니다.

 

한 줌의 고깃덩어리로 변해버린 존재를

커다란 눈망울이 초점 없는 존재를

말없이 쳐다봅니다.

 

“시집 출간을 목표로 하면서 다소 마음 아픈 일이 있었는데요. 그때 겪은 일을 써낸 시가 바로 ‘주검… 고양이’입니다”

 

어느 날 그가 잠시 쉬려고 밖으로 나오니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혼자 걸어가고 있었다. 때마침 점심으로 고등어 반찬이 나와 고양이를 안고 고등어를 먹이며 쓰다듬었다. 다 먹어갈 때쯤 주변에 어미로 보이는 고양이가 있어 새끼 고양이를 내려놓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밖에 나갔던 주임님이 들어오시며 차 밑에 고양이 한 마리가 죽어있다고 하셨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헐레벌떡 나가보니 점심에 만났던 새끼 고양이가 목에 상처가 생긴 채로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 있었다.

 

다가가 가만히 끌어안고 바로 옆 개울가로 갔다. 땅을 파 고양이를 묻어 주고 한참을 바라봤다. 뭐가 잘못된 건가 싶어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어미가 있는 새끼 고양이를 만지면 사람 냄새가 배어 어미가 도망가거나 새끼를 죽이니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는 게 고양이를 위한 일이라고 적혀있었다.

 

“제 마음은 새끼 고양이를 위한 일이었지만 궁극적으로 저는 고양이를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고양이를 위해 기도하며 이미 하늘나라로 가버린 고양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하면서 쓴 시입니다”

 

 

유은영 기자 fineyoo@fpn119.c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0년 4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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