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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화재/집중취재④] 물류센터에 설치되는 ‘못 믿을 스프링클러’

화재 안전성 절대 요소 ‘방화구획’ 설정 어려워… “초기소화가 답”
물류창고 넘쳐나는데 위험성 고려는 먼 나라 일 “법규 손질 시급”
법에만 하자 없으면 ‘OK’ 건축 실태 민낯… “현실적인 대책 필요”

최영 기자 | 기사입력 2021/07/02 [00:16]

[쿠팡 화재/집중취재④] 물류센터에 설치되는 ‘못 믿을 스프링클러’

화재 안전성 절대 요소 ‘방화구획’ 설정 어려워… “초기소화가 답”
물류창고 넘쳐나는데 위험성 고려는 먼 나라 일 “법규 손질 시급”
법에만 하자 없으면 ‘OK’ 건축 실태 민낯… “현실적인 대책 필요”

최영 기자 | 입력 : 2021/07/02 [00:16]

▲ 화마가 휩쓸고 간 쿠팡 물류센터  © 최영 기자

 

[FPN 최영 기자] = 소방분야 전문가들은 쿠팡 물류센터 화재사고를 계기로 우리나라 물류창고의 화재 안전 제도를 시급히 고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행 법규 틀에만 맞춰 설치되는 대부분의 물류창고 소방시설이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건축물의 화재 안전에 있어 사실 가장 중요한 건 방화구획이다. 불이 나더라도 일정 공간 내에 불을 가둬 두면 전체로 확산하는 걸 막을 수 있기 때문에 방화구획은 곧 건축물의 화재 안전성을 결정하는 밑바탕이 된다. 현행법에서는 이 방화구획 기본 규모를 1천㎡로 규정하고 스프링클러 설비가 설치됐을 때 최대 3천㎡까지 완화해 주고 있다.


그러나 쿠팡 물류센터처럼 창고 내 물품의 보관이나 운반 등에 필요한 고정식 대형 컨베이어 또는 메자닌(철제 재질의 구분 층) 등이 설치된 경우 3천㎡ 이상으로도 대폭 완화받을 수 있다.


쿠팡 물류센터 역시 지상 1층 1만838㎡, 지상 2층 1만817㎡, 지상 3층 1만589㎡에 이르는 창고 면적을 통째로 완화 받았다. 화재 발생 시 초기 진압하지 못하면 최소한 이 면적을 모두 태울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화재 확산 방지를 위해서는 스프링클러 설비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


1500㎡(판넬조는 750㎡)가 넘는 랙크식 물류창고는 소방관련법에 따라 스프링클러를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 문제는 이렇게 설치되는 창고 스프링클러 규정이 세밀하지 못하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선 물류창고에 설치되는 스프링클러 설비는 ‘있으나 마나’라는 시각까지 나온다.

 

실효성 없다는 물류창고 스프링클러…

 

▲ 다양한 종류의 스프링클러헤드  © 최영 기자


우리나라 물류창고 스프링클러 설비로는 크게 천장에 설치되는 ‘일반 스프링클러’와 ‘화재조기진압용’, 물품이 쌓는 랙크 방호를 위한 ‘인랙 스프링클러’ 등이 활용된다.


법적 설치 대상이 되는 랙크식 창고시설 대부분은 기본적으로 일반 스프링클러 설비만 갖춘 곳이 많다. 천장에 일정 간격을 두고 스프링클러헤드를 다는 보편적인 형태의 소화설비다. 이 스프링클러는 화재 시 분당 80ℓ의 물을 뿌려주는데 화재의 완전 소화보단 제어 목적이 크다.


‘화재조기진압용’ 스프링클러 설비는 물의 방수량과 입자 크기를 대폭 높인 시스템이다. 미국 등 선진국과 기술자들 사이에선 ESFR(Early Suppression Fast Response)로 불린다. 일반 스프링클러와 달리 온전히 화재 초기에 불을 끄기 위한 목적으로 천장에 설치된다.

 

<미국 FM글로벌에서 진행한 ESFR 스프링클러 설비 테스트.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외국에서 실제 활용되는 스프링클러 설비의 실험 모습을 담았다.>

 


특히 랙크식 창고처럼 화재 하중이 높은 장소에는 강한 화세가 이어지기 때문에 반응이 빠르고 물방울 침투가 쉽도록 일반형 스프링클러헤드보다 최대 5배(분당 404ℓ)까지도 많은 양의 물을 뿌릴 수 있게 적용된다. 이런 ‘화재조기진압용’의 경우 우리나라 법규상 13.7m 층고 이하까지만 적용할 수 있다.

 

인랙 스프링클러 설비는 물품 적재를 위한 랙크에 설치되는 스프링클러다. 여러 층으로 이뤄진 수납 단을 고려해 전용 스프링클러헤드를 일정 간격으로 넣어 랙크 내부에서 발생하는 화재에 대비할 수 있다.


소방 법규에선 창고 적재 물품이 ‘특수 가연물’에 해당하면 랙크 높이 4m 이하마다, 해당하지 않는다면 랙크 높이 6m마다 스프링클러헤드를 랙크에 설치토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 FM글로벌에서 진행한 인랙 스프링클러 테스트.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외국에서 실제 활용되는 스프링클러 설비의 실험 모습을 담았다.>

 

우리나라 물류창고에는 이렇게 세 가지 형태의 스프링클러 설비를 법규에 맞춰 설치한다. 건축주나 설계사 의지에 따라 여러 형태를 혼합하는 등 법규보다 더 보강된 형태로 설계와 적용도 가능하긴 하다.


그러나 불이 난 쿠팡 물류센터의 경우 적재 물품이 1600만 개가 넘고 무게는 만여 t에 육박하는 창고시설이지만 주거시설 같은 일반 건물에나 쓰이는 스프링클러 설비가 적용돼 있었다.


지상 3층에는 유일하게 인랙 스프링클러 설비가 일부 반영된 것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이 역시 전문가들은 위험성에 대한 적정한 고려 없이 법규에만 맞춰 단순하게 적용했을 거로 보고 있다. 이 같은 스프링클러 설비가 법적 요건에는 맞을지 모르나 ‘있으나 마나’한 소화설비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무용론 나오는 소화설비, 왜 문제일까


우리나라 물류창고 소화설비의 가장 큰 문제로 꼽히는 건 스프링클러 설비의 차별성 부재다. 쿠팡 물류창고처럼 창고 내부에 쌓인 엄청난 양의 적재물을 위험 특성 고려 없이 이른바 ‘일반 스프링클러 설비’를 무차별적으로 적용하다 보니 애초부터 소화 능력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

 

▲ 화마가 휩쓸고 간 쿠팡 물류센터 내부에 들어서 있는 물품 적재용 랙크가 보인다.  © 최영 기자


박승민 소방기술사(전 한국소방기술사회장)는 “우리나라는 물류창고 수용 물품을 특수 가연물과 일반 가연물 등 두 가지로만 구분해 소화설비를 적용한다”며 “가연물에 따라 소화할 수 있는 시설이 적정하게 적용돼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화재 안전 선진국으로 잘 알려진 미국(FM, NFPA)에선 랙크식 창고마다 고유의 위험성을 고려한 소화설비를 갖추도록 관련 기준을 운영한다. 저장 물품의 특성과 적재를 위한 랙크 구조 등에 따른 위험도를 구분하고 각각의 특성에 맞춘 소화설비 기준을 제시하고 준용한다.


저장 물품을 Class I, II, III, IV로 세밀하게 나누고 고무 타이어나 두루마리 종이, 가연성ㆍ인화성 물품에 대해서는 별도 기준을 정립하고 있다. 그리고 해당 위험도에 따라 스프링클러 설비의 수준이 결정된다.


쉽게 말해 화재 위험이 큰 플라스틱 등은 스프링클러가 뿌려주는 물의 양과 입자를 키우거나 헤드 배치 거리를 좁히고 불연성 제품 등 위험도가 낮은 물품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스프링클러 설비를 적용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 법 규정의 모태인 일본조차도 1990년대 이후 창고 사고를 겪은 뒤 물류창고 수용 물품의 발열량과 수납 용기 재질, 포장재 등을 기준으로 네 가지 등급으로 분류해 적정한 소화설비를 갖추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창고는 적재물의 화재 위험성이나 화재 강도는 고려하지 않는다. 랙크식 창고를 면적 규모와 높이로만 우선 분류하고 스프링클러 설비를 법에 맞게 적용하면 그게 실효성이 있든 없든 만사 ‘OK’다. 적재 물품도 특수 가연물인지, 아닌지만 구분해 헤드 설치 높이만을 다르게 적용하고 있을 뿐이다. 스프링클러의 성능을 결정짓는 방수량이나 반응시간, 살수 패턴, 랙크의 구조 등은 세밀하게 고려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 우리나라 소방법에선 랙크식 창고의 경우 특수 가연물을 저장 또는 취급하는 것에 있어서는 랙크 높이 4 m 이하마다, 그 밖의 것을 취급하는 것에 있어서는 랙크 높이 6 m 이하마다 스프링클러헤드를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미국은 각 랙의 단마다 헤드를 설치하고 랙의 높이, 저장창고 높이, 물품 종류 등을 모두 고려한다.  © 소방방재신문

 

<FPN/소방방재신문> 취재 결과 불이 난 쿠팡 물류센터는 적재 물품의 양이나 창고의 형태 등을 고려하지 않고 대다수 층(3층만 인랙)의 천장에만 스프링클러가 설치됐던 것으로 확인된다. 그것도 주거공간에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방수량(분당 80ℓ)을 가진 스프링클러헤드가 적용됐다.


쿠팡 물류센터에 설치된 ‘준비작동식 스프링클러’도 문제로 지적된다. 배관 내 항상 물이 차 있어 작동 속도가 빠른 ‘습식’이 아닌 ‘준비작동식’으로 설치돼 화재 감지경보를 고의로 차단하거나 화재감지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을 땐 소화설비 자체가 제 기능을 못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습식’이 아닌 형태로 스프링클러 설비를 설치할 경우 뿌려주는 물의 양을 더 늘리거나 방사압력을 높이는 등 추가 조치를 강구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스프링클러의 동결 방지와 오작동에 따른 수손 피해를 염려해 아무런 부가 조치 없이 ‘준비작동식’ 스프링클러를 무분별하게 적용하고 있다.


준비작동식 스프링클러는 평상시 2차 측 배관에 물이 없어 관리도 어렵다. 실제 지난 2014년 4월 28일 수백억원의 재산피해를 낸 대전 아모레퍼시픽 창고 화재 땐 수년 동안 배관이 잘려나간 채 방치돼 온 스프링클러 설비 문제가 뒤늦게 드러나기도 했다.(관련기사 - [집중취재] 아모레퍼시픽 화재, 소방시설 “부실 덩어리였다")


조용선 한국소방기술사회장은 “준비작동식 스프링클러는 화재감지기와 연동해 정상 작동하더라도 수십m에 달하는 배관을 채워 방수까지 이어지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며 “설비 복잡화에 따른 고장 가능성도 높기 때문에 신뢰를 높이기 위한 기능 보강과 더 강화된 관리 대책이 수립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쿠팡 물류센터 화재는 위험 특성을 외면한 채 무차별적으로 적용되는 우리나라 스프링클러 설비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법에만 하자 없다면… 안전보단 돈이 먼저”


사실 따져보면 우리나라도 물류창고 위험성을 고려해 적정한 스프링클러 설비 등 소방시설을 갖추는 게 가능하다. 실제 외국계 기업이 운영하는 극히 일부의 국내 물류창고에는 선진국 수준으로 맞춰 스프링클러 설비가 적용된 시설도 있다. 그런데 고위험성을 가진 대부분의 물류창고는 왜 실효성이 없는 소방시설을 갖추고 있는 걸까. 


소방시설 전문 설계 업체인 한방유비스 김상일 소방기술사는 “물류창고의 설계 과정에선 발주처 대다수가 법적 요건에 맞춘 수준만을 요구하기 때문에 위험성을 고려한 설계를 제안해도 이를 수용하지 않는다”며 “성능보단 법에서 정한 요건만 맞춰 어떻게든 경제성을 확보하려는 게 현실이다”고 말했다.

 

▲ 쿠팡 물류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해 불길이 솟아오르고 있다.  © 최누리 기자

소방시설은 화재 안전을 지키기 위한 필수 시설이기에 관련 법규에선 강제 설치 의무와 함께 허가 규정 등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건물을 짓는 사업자 등의 인식은 ‘그저 하자 없는 허가 통과 건물’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크다. 실제 물류창고의 위험 특성을 고려했을 땐 고기능 소방시설 구축을 위한 비용이 증가하고 추가 수원확보를 위한 공간 역시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규모의 이커머스 기업 쿠팡은 12만7178㎡가 넘는 대규모 물류창고를 운영하면서도 건물의 소방시설과 화재 대응 과정은 ‘0’점 짜리라는 지탄을 받고 있다. 대기업조차 소방시설을 ‘인허가 수준’에만 맞추는 대한민국 건축 실태의 현실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우후죽순 늘어나는 물류창고가 쿠팡 물류센터처럼 화재로 인해 전소되는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관련 법 규정을 손질해 실효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류창고 특성상 느슨한 방화구획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는 환경을 고려해 화재 초기 완전 진압이 가능한 소화설비로 변화시키는 게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김성한 소방기술사는 “일정 규모가 넘어가는 물류창고는 가연물이 많은 것에 더해 벽면과 벽면 사이 거리도 굉장히 길고 대부분 무창층이기 때문에 내부 깊숙한 곳을 소방대가 진압하는 건 불가능하다. 지금과 같은 소방시설의 수준이라면 전소되는 사고는 계속 반복될 것”이라며 “물류창고 위험성을 고려한 현실적인 제도 강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법 규정에만 맞춰지는 소방시설의 한계성을 극복하기 위해 성능위주소방설계 대상에 고위험 특성을 가진 물류창고를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건축물의 위치와 구조, 수용 인원, 가연물 현황 등을 고려해 전문가들 심의를 거쳐 강화된 화재안전 성능을 확보하는 성능위주소방설계에서 세밀한 안전성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영주 서울시립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물류의 배치나 종류 등은 사용단계에서 계속 변화하기 때문에 시방적 법 규정으로 성능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며 “공간의 형태와 물류 적치 특성, 물류 종류 등을 고려한 소방시설 설치를 위해선 성능위주소방설계 대상에 포함시켜 성능 보강이 가능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대형 물류창고 화재를 연이어 겪고 있는 경기도소방재난본부도 물류창고의 성능위주소방설계 대상 확대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경기도가 국회 서영교 행장안전위원장실(더불어민주당, 서울 중랑갑)에 제출한 ‘창고시설 관계기관 합동점검 결과보고’ 자료에 따르면 경기도는 지난해 8월부터 9월까지 한 달 동안 창고시설을 합동 점검하고 ‘연면적 3만㎡ 이상 대형창고를 성능위주설계 대상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내용의 제도개선안을 도출했다.


최영 기자 young@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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