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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상식] “극단적 선택도 순직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요”

구급업무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극단적 선택한 소방공무원 사례
(서울행정법원 2020. 6. 11. 선고 2019구합79114 순직유족급여부지급처분취소)

변호사 한주현 법률사무소 한주현 | 기사입력 2021/07/20 [09:40]

[법률 상식] “극단적 선택도 순직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요”

구급업무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극단적 선택한 소방공무원 사례
(서울행정법원 2020. 6. 11. 선고 2019구합79114 순직유족급여부지급처분취소)

변호사 한주현 법률사무소 한주현 | 입력 : 2021/07/20 [09:40]

관련 법리

공무원 재해보상법은 공무수행과정에서 신체적ㆍ정신적 부담을 주는 업무가 원인이 돼 발생한 질병, 즉 ‘공무상 질병’으로 사망한 경우를 ‘공무상 재해’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공무수행과정에서 얻은 정신적 질환으로 인해 스스로 생을 마감한 때도 ‘공무상 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원칙적으로 극단적 선택과 같은 자해행위가 원인이 돼 사망한 경우는 ‘공무상 재해’로 보지 않지만 그 자해행위가 공무와 관련한 사유로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에서 한 행위라면 ‘공무상 재해’로 본다.

 

이렇게 공무상 재해로 인해 사망한 공무원, 즉 ‘순직공무원’의 유족은 순직유족연금 등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소방공무원이 재난ㆍ재해 현장에서 화재진압이나 인명구조, 구급 작업 등을 하다가 순직한 경우에는 ‘위험직무순직공무원’으로서 위험직무순직유족연금 등을 받을 수 있다. 

 

이 사건의 사실관계

망인은 1992년 소방공무원으로 임용돼 2001년 지방소방교, 2007년 지방소방장, 2014년 지방소방위로 승진한 사람이다. 망인은 소방공무원으로서 구급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아 공황장애 등 여러 정신적 질환을 앓다가 2015년 4월 자택에서 목을 매 사망했다. 

 

망인의 배우자는 망인이 공무상 스트레스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순직유족급여 지급 신청을 했으나 인사혁신처는 망인이 사망 전날 경제적 문제를 언급하며 배우자에게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듯한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실 등을 들어 망인이 공무상 스트레스로 사망한 건지 확실하지 않다며 순직유족급여 부지급 처분(이하 ‘이 사건 부지급 처분’)을 했다.

 

이에 망인의 배우자는 이 사건 부지급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

- 재판 과정에서는 망인이 구급 업무를 수행하며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이로 인해 여러 정신질환을 앓아온 사실이 드러났다. 

 

- 응급구조사 2급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한 망인은 2001년부터 사망 전까지 약 12년 동안 구급 업무를 담당했다. 구급 업무는 화재진압 업무보다 출동 건수가 많고 참혹한 현장에 자주 노출되기 때문에 소방관들 사이에서도 힘든 업무로 꼽힌다. 망인은 2010년 한 해 동안만 20회 이상의 참혹현장에 출동했다.

 

 -망인은 2010년 10월 정신과에 방문해 수면장애와 불안, 공포증상을 호소했고 공황장애 진단을 받아 2014년까지 38회 치료를 받았다. 2014년 특수건강검진에서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고위험군으로 진단받기도 했다. 망인은 주변 동료들에게 업무가 힘들다거나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는 호소를 자주 했다.

 

- 망인은 구급 업무에서 벗어나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근무부서 조정을 요청하기도 했다. 승진하면 구급 업무에 벗어날 수 있다고 해 노력한 결과 2014년 8월 지방소방위로 승진하며 화재진압팀으로 배정됐다. 주변 동료들은 망인이 화재진압팀에 있는 동안은 구급 업무를 하던 때에는 볼 수 없었던 밝고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했다.

 

- 그런데 망인이 소속된 안전센터는 2015년 1월 ‘타 시ㆍ도에 비해 전문자격자 배치율과 무자격 구급대원 탑승비율이 전국 최하위에 해당해 상부기관에서 문제점을 지적받았다’는 이유로 유자격자를 구급 보직으로 전보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받아 2015년 2월 응급구조사 2급 자격증을 보유한 망인을 다시 구급 업무로 배정했다.

 

- 구급 업무를 다시 맡게 된 망인은 심한 우울감과 혼란을 느꼈다. 망인의 배우자는 망인이 구급 업무로 전보 조치된 이후 거의 술에 의존해서 살았고 구급 업무는 못 하겠다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으며 죽고 싶다는 말을 종종 했다고 진술했다. 

 

- 재판에서 선정된 감정의(醫)는 망인의 진료기록 등을 참조해 당시 망인이 공황장애와 임소공포증, 강박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불면증, 우울증 등 여러 질환을 동시에 앓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망인의 근무 이력 등
1992년 소방공무원 임용
2001년 지방소방교 승진(구급 업무 시작)
2007년 지방소방장 승진
2010년 정신과 진료ㆍ공황장애 등 진단
2014년 지방소방위 승진
2014년 8월 화재진압팀 배정 (구급 업무 배제)
2015년 2월 구급 업무 복귀
2015년 4월 사망

 

법원의 판단

재판부는 여러 사실을 종합해 봤을 때 “망인은 극심한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정신질환으로 심신의 고통을 받다가 이를 견디지 못하고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결여되거나 현저히 저하돼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이르러 극단적 선택을 해 사망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 사건 부지급 처분을 취소했다. 

 

재판부는 망인의 정신질환이 구급 업무를 하면서 발병ㆍ악화한 것임에도 망인이 구급 업무에서 멀어지지 못했던 점에 주목했다. 특히 망인이 구급 업무에서 벗어난 지 6개월 만에 다시 구급 업무로 복귀하게 되면서 깊은 절망감에 빠졌다고 봤다.

 

당시 망인은 응급구조사 2급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구급 업무로 복귀하게 되었던바 이는 앞으로도 계속 구급 업무에 투입될 수도 있다는 걸 뜻하는 거라서 망인으로서는 구급 업무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거라고 봤다.

 

재판부는 망인이 겪은 경제적 어려움이 망인의 극단적 선택에 일부 개입했을 순 있어도 이는 부수적일 뿐만 아니라 그것 또한 정신질환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즉 부정적인 감정과 절망감, 무력감 등에 빠지기 쉽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큰 문제가 아닌 것도 당사자에게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 공황장애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강박장애의 특성을 고려하면 망인이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한 이후 극단적 선택을 한 것 역시 구급 업무로 인해 발현된 정신질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결어

극단적 선택을 한 근로자의 유족을 대리한 유족급여 부지급 처분 취소소송에서는 ①망인이 맡은 업무의 내용 또는 환경 등이 정신적 스트레스를 유발할만한 것인 점, ②망인이 실제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아왔던 점을 입증해야만 한다. 그 중 ②의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 일반적으로 망인의 생전 정신과 진료기록 또는 주변 동료의 진술 등을 제시한다.

 

그런데 극심한 정신질환을 앓으면서도 업무상 불이익을 받을 게 두려워 정신과 진료를 받지 않다가 질환이 악화돼 극단적 선택에 이르는 사례가 종종 있다. 이런 사례는 신체와 정신의 건강 상태가 업무평가 등에 중요하게 작용하는 소방공무원에도 자주 발견되곤 하는데 당연히 소송에서 입증의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최근 들어 소방공무원의 정신 건강에 관한 관심이 커지면서 소방청 차원에서 전국 소방서를 대상으로 한 찾아가는 상담실을 운영하고 소방공무원들의 정신과 진료비용을 지원하는 등의 다양한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소방공무원들이 상담이나 정신과 진료를 좀 더 쉽고 친근하게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자신의 정신 건강에 적신호가 들어왔다고 생각된다면 시급히 진료를 받는 게 어느 모로 보든 좋은 선택이다. 빠른 회복을 위해서도, 질환이 악화된 경우 각종 급여를 신청하기 위한 입증자료를 구비하는 데에도 좋은 선택이다. 최악의 경우 소송을 하게 되더라도 병원 진료기록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는 천지 차이다. 

 

무엇보다도 소방공무원의 건강은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다. 소방공무원이 상담이나 정신과 진료 등에 쉽게 접근해 정신적 스트레스에서 빠르게 회복돼야 국민 안전도 담보될 수 있다. 소방공무원의 정신 건강에 대한 국가 차원의 세심한 관리가 행해져야만 하는 이유다.

 


 

한주현 변호사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관으로 근무하며(2018-2020) 재난ㆍ안전 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현재는 변호사 한주현 법률사무소의 대표변호사로 보험이나 손해배상 등의 민사사건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법률사무소 청원_ 한주현 : attorney.jhhan@gmail.com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1년 7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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