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이번 달은 소방과 관련된 판례는 잠시 미뤄두고 최근 상담 요청이 빈번한 ‘계약갱신청구권’에 대해 얘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해 주택임대차보호법(이하 ‘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되면서 임차인(세입자)은 ‘계약갱신청구권’이라는 걸 사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계약갱신청구권이 무엇이고 이를 잘 사용하기 위해서는(혹은 잘 거절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계약갱신청구권이란 지금까지는 정해진 전세기간이 만료되면 임대인은 계약갱신을 거절하고 새로운 임차인을 구하거나 자신이 해당 집에 들어가서 거주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기존 임차인과 계약갱신을 하고 싶다면 전세금을 얼마나 증액할지 논의한 후 계약갱신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개정된 임대차보호법에 의하면 임차인은 1회에 한해 임대인에게 ‘계약갱신청구권’이라는 걸 행사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때 임대인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를 거절할 수 없게 됐습니다. 정당한 사유는 임대인(임대인의 직계존속, 직계비속 포함)이 실거주하려는 경우나 임차인이 임차주택의 전부 또는 일부를 파손한 경우 등입니다(아래 표 참조).
기존에도 임대인이 임차인과 계약을 갱신하는 경우는 많았습니다. 새로운 임차인을 구하는 일도 번거롭고 비용이 들어가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전세금 부분에 있습니다. 기존에는 임대인과 임차인이 계약갱신 시 자유롭게 합의해 전세금을 얼마나 증액할지를 논의할 수 있었는데 개정법에서는 증액 한도를 기존 전세금의 5%로 정해뒀습니다.
즉 임차인이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면 임대인은 이를 거절할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계약을 갱신하면서 전세금을 기존 금액의 5% 한도에서만 증액할 수 있게 된 겁니다.
개정법을 피해가려는 임대인의 전략, 임차인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임대인들로서는 2년 전 전세금보다 시세가 50~100%씩 오른 현 상황에서 계약갱신 시 기존 전세금의 5%밖에 증액하지 못한다니 당황스러울 겁니다. 이 때문에 최근 많은 임대인이 개정법 적용을 피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전략을 많이 쓴다고 합니다.
“전세금을 시세에 맞춰준다면 계약을 갱신하거나 새로운 전세 계약을 체결해 주겠다. 하지만 전세금을 시세에 맞춰주지 않는다면 실거주할 것이니 계약갱신청구권은 미리 거절하겠다”
이러한 임대인의 전략에 개정법의 수혜를 받을 것으로 생각했던 임차인들은 울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위와 같은 임대인의 엄포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법률상담도 폭주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임대인의 위와 같은 제안은 법적으로 정당한 걸까요? 법이 개정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위 사안에 대한 판례는 없습니다. 하지만 위와 같은 임대인의 제안은 위법한 것으로 판단받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임대인의 위와 같은 제안은 계약갱신 시 전세금을 5%의 범위에서만 증액하라는 개정법 규정을 회피하기 위한 겁니다. 실거주해야 할 별다른 이유도 없으면서 전세금을 시세만큼 올려주지 않으면 실거주를 하겠다는 제안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 법원이 일관되게 무효로 판단하고 있는 ‘탈법행위’1)로 판단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이런 경우 임차인은 임대인의 위와 같은 제안을 꼭 증거로 남겨둬야 합니다. 내용증명 우편이나 문자메시지 등 증거가 남는 방법으로 임대인과 대화하고 전화통화는 녹음하는 게 좋습니다.
이러한 경우 임차인이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면 임대인으로서는 명도소송을 제기함으로써 승소 판결을 얻어 임차인을 강제로 퇴거시키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위와 같은 탈법행위의 증거가 명백히 있다면 소송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란 어려울 것으로 판단됩니다. 임대인이 명도소송에서 패소한다면 임차인은 정당하게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한 것이므로 2년의 기간을 문제없이 거주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임대인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법이 계약갱신청구권을 명백히 인정하고 있는 이상 임대인 입장에서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임대인분들에게 아래와 같은 두 가지 방법을 안내해드립니다.
첫 번째는 임차인에게 상당한 보상을 제공하는 겁니다. 개정법은 ‘서로 합의하여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상당한 보상을 제공하는 경우’에는 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권을 거절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만약 새로운 임차인을 구해 시세대로 새로운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는 게 기존 임차인에게 상당한 보상을 제공하는 것보다 경제적으로 이득인 상황이라면 이 방법이 가장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할 방법입니다.
두 번째는 임차인에게 새로운 임대차계약의 체결을 제안하는 겁니다. 새로운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게 되면 임차인 입장에서는 새로운 임대차계약이 만료될 시기에 계약갱신청구권을 다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즉 4년의 거주가 보장되는 셈이죠. 기존 계약을 갱신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는 거라면 ‘5%’의 제한을 받지 않으므로 시세대로 계약을 체결해도 무방합니다.
단 이 경우 임차인이 제안을 거절하고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겠다고 한다면 별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이때 임대인이 실거주하겠다고 나선다면 앞서 설명한 것처럼 소송에서 굉장히 불리한 상황에 놓이기 때문입니다.
결어 여러모로 복잡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법 시행 초기 단계에는 늘 혼란이 뒤따르는 데다가 최근의 이례적인 주택시장 상황까지 더해지면서 임대인, 임차인 그 누구도 만족하거나 행복하지 않은 상황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시행된 법을 어길 수는 없죠. 그 경우 더욱 큰 손해가 뒤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법 테두리 내에서 최대한 자신의 원하는 바를 쟁취할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 때입니다.
1) 강행규정 자체를 정면으로 위반하면 당연히 무효지만 강행규정을 간접적으로 위반하는 경우, 즉 강행규정을 직접 위반하진 않지만 회피수단을 통해 강행규정을 위반하는 결과를 실질적으로 실현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한주현 변호사는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관으로 근무하며(2018-2020) 재난ㆍ안전 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현재는 변호사 한주현 법률사무소의 대표변호사로 보험이나 손해배상 등의 민사사건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법률사무소 청원_ 한주현 : attorney.jhha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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