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온난화가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는 지금 전 세계 대부분 국가가 2035년을 기점으로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할 전망이다. 전기차는 주행 성능은 물론 연비가 더 좋고 소음이 없다.
게다가 힘이 더 좋고 통행요금도 50%를 감면해주고 있기 때문에 내연기관차는 전기차의 경쟁상대가 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전기차는 100년도 전에 내연기관차보다 먼저 개발됐다. 더구나 내연기관차와의 경쟁에서 밀려 퇴출당한 차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1899년 당시 뉴욕 택시의 90%가 전기차였다. 당시에도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에 비해 여러 가지 면에서 월등했다. 전기차는 연기나 역화를 방출하지 않았고 매우 조용했다. 기어를 변경할 필요도 없어서 여성이 운전하기 매우 편리했다.
전기차 개발의 역사는 이미 1800년대부터 시작됐다. 1834년 스코틀랜드의 로버트 데이비슨은 전기마차를 발명했다. 이후 1842년에는 미국인 토마스 대븐포트와 함께 최초의 실용차인 전기차를 만들었다. 1882년에는 영국인 윌리엄 아일턴과 존 폐리가 전기 삼륜차를 만들어 도로주행을 시작했다.
1898년에는 독일의 페르디난트 포르쉐가 포르쉐 P1이라는 전기차를 개발했는데 포르쉐 P1은 한번 충전으로 80㎞를 달렸다. 1897년 뉴욕에 전기차 충전소가 곳곳에 들어서면서 전기 택시가 공급됐다.
필라델피아 일렉트릭 캐리지 앤 왜건 컴퍼니(Electric Carriage and Wagon Company)의 전기차는 다른 모든 유형의 자동차보다 인기가 높았다.
1900년이 되자 뉴욕에는 2천여 대의 전기차가 운행됐다. 미국 전역에서는 전기차 3만여 대가 도로 위를 달렸다.
전기차가 몰락한 배경에는 자동차 왕 헨리포드가 있다. 헨리포드는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생산방식으로 내연기관차 가격을 전기차의 반값으로 떨어뜨렸다. 1900년대 초기 전기차 기본 모델 가격은 약 1천달러였다. 고급 모델은 3천달러에 가까웠다.
하지만 조립라인의 혁신으로 만들어진 포드 자동차는 500달러에 불과했다. 게다가 1920년대 텍사스에서 석유가 대량으로 발견되면서 가솔린 가격도 크게 떨어지자 가격경쟁력을 잃은 전기차는 1930년대에 들어 자취를 감추게 된다.
하지만 지금 세계 각국이 내연기관 배기가스 규제를 시작하고 지구 온난화 문제가 대두되면서 과거 속 전기차는 부활했다. 전기차가 사라진 지난 100년간 득세했던 내연기관차는 이제 반대로 퇴출 상태에 내몰리고 있다.
지난 호 ‘탄광 폭발사고를 막아라’에서는 패러데이가 데이비를 도와 안전등을 개발하게 된 배경까지 살펴봤다. 이번 호는 그 패러데이에 관한 얘기다. 패러데이는 전기와 매우 관련이 깊은 인물이다. 제2의 불인 전기를 발명했기 때문이다.
패러데이는 요즘 말로 흙수저 중 흙수저로 태어났다. 하지만 지금 인류가 누리는 현대문명은 모두 그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인슈타인은 생전에 패러데이를 매우 존경해 그의 연구실 벽에는 항상 패러데이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고 한다.
패러데이는 1791년 런던 근교 뉴인턴 버츠에서 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그의 아버지는 그가 12살이 되던 해에 가난을 피해 런던으로 이사했다.
패러데이는 한 서점 제본소에서 점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서점이라 책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틈만 나면 책을 읽고, 강연을 들으러 다니고, 화학실험을 했다.
패러데이는 서점 고객들을 통해 영국 왕립협회 위원을 알게 됐다. 그가 패러데이에게 험프리 데이비의 강연 티켓을 주면서 패러데이와 데이비의 인연이 시작된다.
강연이 끝나 집으로 돌아온 패러데이는 강연에 도취해 과학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데이비에게 편지를 쓴다. 패러데이의 편지를 받은 데이비는 그의 비범함을 알아봤다.
후대 사람들은 데이비가 당대 최고의 과학자였지만 그를 더 유명하게 만든 건 패러데이라는 천재를 알아보고 그를 채용한 일이라고 말한다. 물론 말년엔 제자가 본인보다 훨씬 월등한 천재라는 사실을 질투했지만 말이다.
패러데이는 데이비를 도와 여러 가지 실험과 연구를 해내 간다. 그는 물리와 화학 등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일반인에게 패러데이는 물리학자로 알려졌지만 그는 뛰어난 화학자이기도 했다.
케쿨레가 꿈속에서 뱀이 자기 꼬리는 무는 꿈을 꾸고 벤젠을 발견했다고 알려졌는데 실은 벤젠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패러데이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단연코 전기를 발명한 일이다.
사실 전기의 역사는 매우 오래됐다. 1936년 바그다드 근처에 있는 ‘후주트 라부’라는 마을에서 높이 15㎝의 작은 토기 하나가 발굴됐다. 처음엔 단순히 술을 담는 단지로 여겼지만 내부 구조가 매우 특이했다.
이후 이 토기는 이라크 국립박물관에 보관됐다. 1940년 박물관 디렉터인 독일인 빌헬름 쾨니히(Wilhelm Konig)는 이 물건이 현대의 배터리와 아주 흡사한 원리를 가진 고대 배터리로 전기도금에 이용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한다.
이 구조를 면밀히 분석한 빌헬름은 이 토기의 내부구조가 현대 배터리의 기본 원리와 일치하는 걸 발견했다. 확신이 든 빌헬름은 이 물건을 ‘바그다드 전지(Baghdad Battery)’란 이름으로 명명하고 세상에 그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곧이어 세계 곳곳에서 빌헬름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한 실증 실험이 진행됐다. 미국 GE 고전압 연구소에 근무하던 엔지니어 윌리어드 그레이(Williard Gray)는 바그다드 전지 구조대로 복제품을 만들어 실험했다.
그 결과 복제품에서 실제로 0.5V의 전기가 발생하는 걸 확인했다. 곧이어 미국 스미스 칼리지(Smith College) 교수인 마조리 세네샬(Marjorie Senechal) 역시 복제품 실험에서 전기를 얻는 데 성공한다.
이집트 고고학자 아르너 에게브레트(Arne Eggebrecht)도 동일한 검증에 나섰다. 단지 안에 포도주를 가득 채우고 진행한 실험에서 그도 0.87V의 전기를 얻는 데 성공한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아르너는 여러 개의 바그다드 배터리를 연결한 전기도금 실험에도 성공한다. 1/1만㎜ 두께로 은 조각품에 금박을 입히는 데 성공한 거다.
사실 전지 제조기술은 바그다드에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고대 인도 문헌 ‘아가스티아 삼히타’에도 깨끗하게 씻은 구리판을 황산구리에 적셔 도자기 그릇 속에 넣고 젖은 톱밥으로 덮으면 미트라 바루나(Mitra-Varuna)라는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고 기록돼 있다.
하지만 이런 전지들은 제한적인 용도로만 쓰였고 전기를 대량으로 생산해 사용하기 시작한 건 모두 패러데이 이후다.
패러데이는 덴마크 외르스테드(Hans Christian Oersted)와 프랑스 앙페르(Andre Marie Ampere)의 전기 실험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외르스테드는 전류가 도선 주변에 자기장을 만든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한 학자다. 앙페르는 자기력이 도선 주위에 둥근 형태로 자기 효과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입증한 인물이다.
패러데이는 ‘전류가 흐를 때 그 주위에 자기장이 생긴다면 자기장을 변화시키면서 도선에 전류가 흐르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자기장이 변하는 곳에서 전기가 발생한다는 ‘전자기유도 법칙’ 발견의 순간이었다.
패러데이는 전기 에너지를 역학적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으며 반대로 역학적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연구를 거듭한 결과 최초의 전동기를 만들어낸다.
패러데이는 이 사실들을 바탕으로 ‘전류가 흐를 때 그 주위에 자기장이 생긴다면 자기장을 변화시켜 도선에 전류가 흐르도록 할 수 있다’는 ‘전자기 유도 현상’에 관한 이론을 만든다.
그리고 전기 에너지를 역학적 에너지로 전환하는 장치를 만들어 자신의 이론을 입증한다. 이후 이 원리를 체계화해 1832년 ‘패러데이의 법칙’을 발표했다.
그 후로 많은 사람이 패러데이의 전자기 유도 현상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해내는 발전기를 만드는 일에 뛰어든다. 1860년에는 프랑스 공학자인 제노브 테오필 그람이 최초로 발전기를 만든다. 1866년에는 독일 지멘스가 전자석을 이용한 대형발전기를 완성하면서 인류는 제2차 산업혁명 시기에 접어든다.
1881년 뉴욕시에는 에디슨의 백열전구가 설치됐다. 곧 가정의 조명과 공장 기계들을 돌리는 데에도 사용되기 시작한다.
또 패러데이의 법칙은 맥스웰의 전자기장 이론으로 계승된 뒤 1887년 다시 헤르츠의 전자기파 검출로 이어져 오늘날의 무선통신이 가능하게 하는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자석의 운동이 전류를 만들어낸다는 패러데이의 발견은 인류의 생활방식을 완전히 뒤바꿔 놨다.
패러데이가 전자기 유도 현상을 발견한 후 강연을 하던 어느 날 일이다. 당시 강연을 유심히 듣던 영국의 재무장관이 “이 법칙이 도대체 어디에 도움이 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패러데이는 “이것으로 장래에 세금을 매기게 될 수도 있습니다”고 재치 있게 답변했다. 그가 발견한 전자기 유도 현상은 사실 그의 말대로 지금 많은 세금을 거둬들이고 있다.
제2의 불인 전기는 인류의 문명을 바꿔 놨다. 전기의 가장 큰 장점은 에너지 전환의 자유성이다. 인간이 지금의 고도 문명을 일으킨 건 에너지 전환기술의 발전 덕분이다.
산업혁명을 일으킬 당시 증기엔진은 석탄을 연소해 발생하는 화학에너지를 열에너지로 전환한 다음 다시 운동에너지를 전환해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 이상의 에너지 전환은 불가능하다. 전기는 운동에너지와 화학에너지, 전자에너지, 빛에너지, 소리에너지, 통신에너지 등 모든 에너지의 형태로 전환할 수 있다.
이런 전기혁명은 제3의 산업혁명인 정보통신혁명과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제4차 산업혁명으로 이어졌다. 전기혁명은 과거와 다르게 다양한 기계를 가정 안으로 들여놓을 수 있게 만들었다.
집안을 환히 밝히는 전구를 비롯해 주방기계와 청소기계, 컴퓨터, 세탁기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다. 사실 인터넷 발명보다 세상을 더 많이 바꾼 발명품은 세탁기다.
세탁기가 도입된 후 세탁에 소비하는 인간 노동력과 시간은 1/10로 줄었다. 전기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인류는 세탁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을 거다.
패러데이는 전기와 자기가 서로 연관된다는 사실을 알아냈지만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를 수학적으로 정리해 내진 못했다.
이런 전자기학 전체를 하나의 깔끔한 식으로 정리해 낸 사람이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James Clerk Maxwell)이다. 맥스웰의 방정식으로부터 그 유명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유도된다. 아인슈타인 등장과 그의 상대성 이론은 패러데이에게 많은 걸 빚지고 있었다.
1) 철선을 여러 겹으로 감은 고리에 두 짝의 절연된 철사를 감은 장치를 만들고 한 짝은 전류계, 다른 한 짝은 전지에 연결해 이를 연결하거나 떼는 순간 전류가 흐르게 하는 실험이다. 패러데이는 직접 전지에 연결되지 않은 쪽 철사에도 전류가 흐를 수 있다는 유도전류를 발견하고 실제 그것을 입증한다.
김훈 리스크랩 연구소장(공학박사)은 ㆍ현대해상 위험관리연구소 수석연구원 ㆍ한국소방정책학회 감사 ㆍ한국화재감식학회 정보이사 ㆍ한국기술혁신평가단 정위원 ㆍ소방청 화재감식 전문자문위원 ㆍ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전문자문위원 ㆍ한국기술사회 4차산업위원회 전문위원 ㆍ미(美)공인 위험관리전문가 ㆍ미(美)공인 화재폭발조사관 ㆍ안전보건전문가(OHSAS, ISO45001) ㆍ재난관리전문가(ISO22301, 기업재난관리사) ㆍ기술사(기계안전, 인간공학, 국제)
리스크랩_ 김훈 : firerisk@naver.com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2년 3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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