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119] “누군가를 꾸준히 돕는 나눔을 계속해서 실천하고 싶어요”전상기 서울 광진소방서 소방경
“처음엔 누군가를 돕다가 괜한 오해를 사거나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까 싶어 선뜻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죠. 소방관이 되고 재난 현장에서 다양한 구조대상자를 마주하다 보니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게 기쁜 일이란 걸 새삼 깨닫게 됐어요. 그때부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후원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1986년 소방에 입문한 전상기 서울 광진소방서 소방경은 강동소방서와 성동소방서, 중부소방서 등에서 화재 진압과 구급대원으로 활동한 36년차 베테랑 소방관이다. 성수대교ㆍ삼풍백화점 붕괴사고와 숭례문 화재, 우면산 산사태, 세월호 침몰사고 등 국내 굵직한 재난 현장에서 활약했다.
전상기 소방경은 ‘키다리 아저씨’로도 유명하다. 1990년부터 독거노인을 찾아 돌보고 1994년부터 2015년까지는 동료들과 소년소녀가장 6명을 후원했다.
“어느 날 TV에서 독거노인 관련 프로그램을 시청했는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어요. 어떻게 도움을 줄지 몰라 주변 복지관을 찾았죠. 복지관에서 독거노인을 도우면서 예상외로 혼자 사는 청소년이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학생들이 혼자 집안일을 하는 모습이 안쓰럽기 그지 없었죠”
전상기 소방경은 성동소방서에서 근무할 당시 구청에서 받은 독거노인 명단을 보고 한 가정을 찾았다. 그 집엔 독거노인 대신 어렵게 생계를 꾸리는 남매가 있었다. 노인만큼이나 소년소녀가장에게도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낀 전 소방경은 고민 끝에 동료들과 매달 10만원을 후원키로 했다. 후원은 물론 학용품이나 신발, 간식거리도 챙겨줬다.
“한 명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또 다른 한 명을 후원하는 방식으로 모두 6명을 도왔어요. 별도로 매달 적금을 들어 졸업할 때 보태기도 했죠. 처음 후원했던 학생은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아요. 큰 도움을 주진 못했지만 작게나마 학생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는 게 기뻤습니다”
전 소방경은 학생들에게 자신을 ‘소방관 아저씨’라고 소개했다. 이름과 직장은 절대 알려주지 않았다. 전화나 편지도 못 하게 했다. 학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학생들이 제 전화번호를 알지 못하도록 공중전화로 안부를 묻곤 했어요. 아이들이 저를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죠. 안타까운 건 대부분 학생이 집안 형편으로 학업을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현재 전상기 소방경은 다문화가정 청소년 4명을 후원하고 있다. 매달 적립되는 출동간식비로 참치통조림 등 먹거리를 사다 다문화가정에 전달한다. 아이들에게 제일 필요한 건 ‘식비’라는 대답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한 지역아동센터에서 학생을 소개받았는데 좁은 방에 엄마와 아이들 11명이 살고 있었어요. 여러 곳에서 후원받고 있지만 그 가족에겐 턱없이 부족했죠. 아이들 엄마에게 가장 시급한 걸 물으니 ‘먹을거리’란 답이 돌아오더라고요. 원래는 2명만 후원하는데 사정이 딱해 학생 4명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전상기 소방경은 한국복지사이버대학에서 다문화보육복지학과로 학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다문화가정을 더욱 이해해야겠다는 생각에서다.
“수업을 들으면서 다문화가정에 대해 좀 더 이해할 수 있었어요. 한편으론 조심스러워지더라고요. 문화적 차이를 모를 땐 멋모르고 다가갔지만 수업을 마친 후엔 말이나 행동을 주의하고 있습니다. 제가 뱉은 말이나 행동이 학생들에겐 마음의 상처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학생들을 후원하기 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해오는 게 있다. 월급을 쪼개 각종 병원과 복지관을 돕는 일이다. 1995년부턴 성가복지병원, 1999년부턴 자양종합사회복지관과 성동종합사회복지관, 대한적십자에 후원금을 내고 있다.
1981년부터 헌혈을 시작한 전 소방경은 ‘헌혈왕’으로도 유명하다. 소방에 입문한 1986년 이후엔 한 달에 두 번씩 정기적으로 헌혈하면서 지금까지 656번을 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 제2회 행복나눔인’ 보건복지부 장관상 등을 받기도 했다.
“1981년 고향 친구가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피가 부족해 난감해했어요. 혈액형이 맞는 저와 또 다른 친구들이 헌혈했는데 제가 나눠준 피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죠. 이후 헌혈을 위해 술과 담배, 커피도 끊었어요. 운동도 열심히 하고요. 이왕이면 건강한 피를 선물하자는 마음에서죠”
전상기 소방경이 꾸준히 나눔을 실천할 수 있었던 건 의용소방대장으로 활동하던 아버지 영향이 컸다. 그 당시 면 단위 작은 시골엔 소방서가 없어 불이 나면 네 사람이 펌프질해서 불을 꺼야 할 만큼 열악했다.
“경북 문경에서 밭농사를 지으시며 불이 나면 몸을 사리지 않고 화마와 맞선 아버지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동네 독거노인을 돕는 봉사활동도 하셨는데 이들이 돌아가시면 장례까지 치르셨어요. 나중엔 6ㆍ25 참전용사이셨던 것도 알게 됐죠.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제가 소방관이 된 건 숙명이 아니었을까요?”
“한번 결정하면 끝까지 돕는 게 제 원칙입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건강관리 하면서 헌혈과 같은 봉사활동을 이어갈 계획입니다. 누군가를 꾸준히 돕는 나눔을 계속해서 실천하고 싶어요”
최누리 기자 nuri@fpn119.c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2년 3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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