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119] 뛰어난 수색 감각 지닌 ‘소백’… 베테랑 구조견 되기까지[인터뷰] 광주 붕괴 현장서 맹활약한 소백의 든든한 버팀목 이민균 훈련관ㆍ김성환 핸들러
세찬 바람과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지난 1월. 충청ㆍ강원119특수구조대 소속 119구조견 ‘소백’이 철근과 콘크리트 더미가 뒤죽박죽 널브러진 곳을 쉼 없이 달렸다. 이곳저곳 냄새를 맡더니 이내 격렬하게 짖어댔다.
소백의 반응에 이민균 훈련관과 김성환 핸들러는 재빠르게 소백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잔해물을 치워보니 난간 부근에서 사람 신체 일부가 보였다. 5900여 명의 구조대원이 애타게 찾던 광주 주상복합아파트 붕괴사고로 매몰된 작업자 중 한 명이었다. 사고 발생 이틀만이다.
건물 더미와 함께 실종된 작업자 6명 전원은 사고 발생 29일 만에 모두 수습됐다. 단 한 명의 인명사고 없이 구조를 마무리할 수 있었던 건 구조대원과 119구조견 등 모든 소방인력의 헌신과 희생 덕분이다.
그중에서도 소백의 활약은 단연 돋보였다. 소백은 첫 번째 실종자에 이어 27층에서 두 번째, 여섯 번째 매몰자를 발견하는 등 사고 현장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2017년부터 119구조견으로 활약한 소백은 5년간 230여 건의 현장에 투입됐다. 소백이 베테랑 구조견의 명성을 얻기까지 그의 곁엔 늘 이민균 훈련관과 김성환 핸들러가 함께 했다.
이민균 훈련관은 소방 최초의 구조견 양성 분야 경력채용자 다. 그는 분양받은 강아지를 2년간 집중훈련해 전문 구조견으로 키우는 119구조견의 스승이자 대부다.
“농업에 종사하신 부모님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동물과 서슴없이 지냈습니다. 동물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 동물자원학과에 진학했죠. 대학 시절 개를 훈련해 사람을 돕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진로를 결정짓는 계기가 됐습니다”
졸업 후 그는 삼성에 취업했다. 당시 삼성은 사회공헌사업 일환으로 인명구조견센터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 훈련관은 이곳에서 구조견들을 교육해 소방 조직 등으로 보냈다.
“2010년 삼성에서 이 사업을 종료하면서 소방이 구조견 양성 사업을 이어받았어요. 그래서 2011년 소방에 입직했습니다. 구조견 분양부터 교육, 훈련까지 전 분야를 책임지고 있죠. 제 손을 거쳐 간 구조견만 20두가 넘습니다”
개의 청각은 인간보다 50배, 후각은 1만배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탐색ㆍ구조 능력에 탁월하지만 동물이란 특성상 소통에 한계가 있다는 게 최대 단점이다. 그렇기에 교육과 훈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구조견은 중앙119구조본부에서 2년간 사람에게 복종하는 훈련과 대견친화훈련(같은 견종끼리 싸우지 않도록 하는 훈련), 수색훈련, 장애물 극복훈련, 환경적응훈련 등을 철저하게 받는다.
“주변에서 개를 혹사한다고 걱정하시는 분들이 간혹 있습니다. 전혀 아니라고 할 순 없지만 훈련은 놀이방식으로 이뤄집니다. 제가 지시한 행동을 하면 장난감 공을 주는 등의 보상이 제공됩니다. 어린아이가 운동이나 게임을 하는 것과 같은 원리죠”
모든 교육이 끝나면 외부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감독관에게 평가를 받는다. 이 시험에서 합격한 119구조견은 각 시ㆍ도 본부와 119특수구조대에 배치된다. 여기서부턴 핸들러가 119구조견 책임의 바통을 이어받는다.
핸들러는 119구조견과 일대일로 매칭해 기본적인 훈련뿐 아니라 식단과 미용, 운동 등 모든 걸 관리한다.
군 특수부대 부사관 출신인 김성환 핸들러는 2014년 구조 특채로 소방에 입문해 영남119특수구조대에서 근무했다. 소백과의 인연은 2019년 9월 시작됐다.
“소백 담당 핸들러가 인사발령 나면서 핸들러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올라왔어요. 애견훈련사 자격증까지 취득했을 만큼 평소 개에 대한 관심이 많던 제게 놓칠 수 없는 기회였죠. 그렇게 소방에서의 인생 2막이 열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온했던 사무실에 전화벨이 울렸다. 붕괴한 아파트에 작업자가 매몰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출동명령이 내려지자 김성환 핸들러와 소백은 곧장 광주로 향했다. 이어 이민균 훈련관도 합류했다. 이 훈련관은 현장을 확인하곤 투입 대신 작전부터 세웠다.
“무너진 건물을 보고 많이 긴장했어요. 소백은 붕괴사고 현장에 특화된 베테랑 구조견은 맞지만 광주처럼 높은 곳에서의 수색 경험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죠. 훈련시설 건물 높이는 5m 정도밖에 안 됩니다. 구조견에게 경험은 무엇보다 중요한데 과연 소백이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습니다”
이들은 긴 논의 끝에 매몰자가 있다고 추정되는 지상 27층까지 천천히 진입하기로 했다. 소백이 한 번에 이렇게 많은 계단을 마주한 건 처음이다. 이 훈련관과 김 핸들러가 천천히 박자를 맞추며 소백을 안심시켰다.
20분 정도가 걸려 겨우 27층에 도착할 수 있었다. 김성한 핸들러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입이 딱 벌어졌다. 한쪽이 완전히 외부와 개방된 모습. 그야말로 낭떠러지와 마주했기 때문이다.
“보통 구조견은 현장에서 자신의 후각에만 집중해서 움직입니다. 자유롭게 수색하도록 목줄도 묶지 않죠. 광주 현장은 자칫 잘못하면 아래로 추락할 수 있는 정말 위험한 곳이었어요. 저희야 인지하면 뒤로 물러서지만 구조견은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소백을 저와 함께 로프로 묶었습니다. 목숨을 건 수색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현장은 악조건의 연속이었다. 강한 바람과 추위, 추가 붕괴 우려, 수십t의 콘크리트 더미와 날카로운 철근에 뒤엉킨 현장은 모두를 힘들게 했다. 이민균 훈련관은 낙석 등 계속 떨어지는 잔해물에 특히 주의를 기울였다.
“우리 대원들은 헬멧이라도 착용하지만 달리 안전장비가 없는 소백에겐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죠. 결국 소백은 잔해물 더미에 부딪혀 오른발을 다쳤어요. 응급처치만 하고 또다시 매몰자 수색에 전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첫 매몰자 발견 후 12일간 수색에 진전이 없던 1월 25일. 27층을 수색하던 소백이 거실과 안방 사이 가벽을 향해 계속 짖기 시작했다. 무언가 있다는 신호다. 이 훈련관이 등반용 도끼를 이용해 석고보드를 뚫고 안으로 들어가자 작업자가 보였다. 두 번째 실종자 발견 순간이다.
“이번 사고 수습의 터닝포인트라고 할 만큼 두 번째 발견은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이 매몰자를 구조하는 도중에 세 번째 실종자를 찾았고 나머지 세 분 모두 27층 주변에서 발견됐어요. 소백이 수색 지역을 특정해 준 덕분에 예상보다 빨리 모두 구할 수 있었죠”
그렇게 28일간 현장을 누비고 구조대로 복귀한 9살 119구조견 소백. 사람으로 치면 중장년에 속하는 소백은 은퇴를 앞두고 있다. 김성환 핸들러는 119구조견으로 지낼 소백의 마지막까지 함께할 예정이다.
“임무를 다한 구조견은 일반인에게 분양돼 여생을 보냅니다. 소방 조직을 떠나도 잘 지내고 있는지 계속해서 연락하고 지내려고요”
현재 활동하는 119구조견은 총 34두. 소방청은 2024년까지 화재조사견과 수난구조견 등 특수목적견 20두를 추가 배치해 운영할 계획이다. 이민균 훈련관은 119구조견 수만 늘릴 게 아니라 구조견을 교육ㆍ훈련시키는 인력에 더해 장비 확충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소방에 훈련관은 여덟 명밖에 없고 훈련시설도 부족합니다. 특수목적견을 늘리는 덴 찬성하지만 그에 맞는 행정시스템과 최첨단 장비 등이 함께 갖춰져야 합니다. 그래야 119구조견의 역량이 향상되고 이는 곧 국민 안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119구조견이 다양한 재난 현장에서 더 많은 활약을 할 수 있도록 훈련관과 핸들러 모두 노력하겠습니다”
박준호 기자 parkjh@fpn119.c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2년 4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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