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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이야기- 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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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크랩 김훈 | 기사입력 2022/09/20 [10:00]

불의 이야기- Ⅹ

리스크랩 김훈 | 입력 : 2022/09/20 [10:00]

물질은 에너지다. 에너지와 물질은 서로 연결돼 있고 서로 변환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 위대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사실을 최초로 밝혀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의 질량ㆍ에너지 등가 방정식(E=mC2)은 질량이 곧 에너지라는 뜻이다. 즉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에너지다. 파동하는 에너지 다발을 양자(quantum)라고 한다. 

 

▲ 1927년 5차 솔베이 회의(출처 위키백과)

 

아인슈타인에 의해 양자역학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그가 완성한 고전물리학이 양자역학에 의해 흔들리는 걸 싫어했고 1927년에 열린 5차 솔베이 회의에서 닐스 보어와 격돌하고 만다. 5차 솔베이 회의는 고전물리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전자와 광자의 이상한 현상을 토의하는 장이었다. 이를 해석하고자 양자역학이 등장했지만 아인슈타인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일반상대성 이론으로 과학계에서 아인슈타인의 영향력은 최고였다. 하지만 젊은 과학자 닐스 보어는 이러한 아인슈타인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그의 주장을 펼쳤다.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의 오점을 지적하면 보어는 밤새 대응책을 찾아 다음날 아인슈타인에게 재역공을 가했다. 양자역학의 시대를 연 건 보어지만 그가 양자역학 이론의 문제점을 보완해 완성할 수 있었던 건 아인슈타인의 공이었다.

 

이 둘은 생각이 달랐지만 서로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게 된다. 5차 솔베이 회의가 끝나 닐스 보어가 덴마크로 돌아간 후 아인슈타인은 그에게 “내 인생에서 당신처럼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준 사람은 없었다”며 편지를 보낸다. 닐스 보어도 “당신을 만나고 당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건 내게 가장 큰 경험 중 하나였다”고 답했다. 그럼 양자역학이 태동하게 된 맥락을 살펴보자.

 

만물의 근원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고 했다. 반면 탈레스 이후의 철학자였던 아낙시메네스는 만물의 근원을 공기,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들의 주장을 통합해 엠페도클레스는 만물의 근원을 물, 불, 공기, 흙이라는 4원소라고 했다. 그에 의하면 이 네 가지 원소가 서로 결합하거나 분해되면서 물질을 형성한다.

 

엠페도클레스의 생각을 이어받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4원소설을 깊이 신봉했고 그들의 지지를 얻어 오랫동안 정설로 굳어졌다. 그 후 200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18세기 후반에 프랑스의 과학자 라부아지에는 물을 높은 온도로 가열하면 분해돼 다른 물질이 생긴다는 사실을 알아내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에 의문을 품게 된다. 

 

​오늘날 우린 모든 물질이 원자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런 원자설을 주장한 사람은 이미 2000년 전 소크라테스와 동시대를 살았던 데모크리토스라는 인물이다. 이 세상의 모든 물질은 무한히 많은 작은 원자가 모여 만들어진 거라는 그의 생각은 당시 그리스인에게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1803년 돌턴이 원자설을 제기하면서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이 부활한다. 이후 수많은 과학자에 의해 여러 가지 원소가 발견됐고 이 원소들을 성질에 따라 배열한 게 오늘날의 주기율표다. 

 

​오늘날 현대물리학이 밝혀낸 물질의 근본은 원자다. 데모크리토스의 주장과는 달리 원소는 불과 118개 정도인데 원자는 1개다. 이 하나뿐인 원자가 모든 물질을 구성한다. 하지만 원자가 만들어내는 분자 개수는 거의 무한대에 가까우니 데모크리토스가 주장했던 원자는 사실 분자에 해당하는 개념이었다. 

 

​인류는 아인슈타인의 광전효과를 통해 빛이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모두 갖는다는 걸 알았다. 그렇다면 물질은 어떠한가? 모든 물질을 이루고 있는 건 원자다.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이뤄져 있다. 원자핵은 양성자(proton)와 중성자(neutron), 양성자와 중성자는 쿼크(quark)라는 소립자로 이뤄진다. 전자는 더 쪼갤 수 없는 물질이지만 양성자는 베타붕괴를 통해 중성자와 양전자, 중성미자로 변환된다. 그리고 중성자 역시 양성자와 전자, 반 중성미자로 쪼개진다.

 

​이처럼 원자를 쪼개고 쪼개서 들어가 보면 결국엔 다 입자다. 하지만 물질의 근원이 입자가 아니라 파동이 아닐까 하고 의심한 31살의 프랑스 젊은이가 있었다. 지금 들어도 황당하기 그지없는 이론인데 그때야 오죽했겠는가. 당시 유럽의 과학기술을 주도했던 국가는 영국과 독일이고 프랑스는 과학의 변방국으로 알려진 시대였다.

 

그런데 프랑스의 한 젊은이가 엉뚱한 주제를 들고나왔으니 그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가 1923년 박사학위 논문에 이러한 주장을 담아 심사위원들에게 제출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그 논문을 반려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는 귀족 가문의 자제였다. 이를 부담스러워했던 심사위원들은 말도 안 되는 논문이라는 답변을 기대하며 아인슈타인에게 보낸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말이 걸작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이 젊은이의 논문을 “물리학의 커다란 베일을 걷어냈다”고 극찬했다. 결국 심사위원들은 만장일치로 그의 박사 논문을 통과시킨다. 이 젊은이가 양자역학의 기초를 닦은 드브로이(1892~1987)다. 이 공로로 그는 1929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고 슈뢰딩거의 파동역학을 세우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다.

 

그의 논문이 바로 노벨상으로 이어진 건 아니다. 드브로이는 자신이 주장한 물질의 파동성을 입증하고자 여러 가지 실험을 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그러다가 1927년 데이비슨과 톰슨의 실험에 의해 파동성이 입증돼 드브로이는 1929년, 데이비슨과 톰슨은 1937년에 각각 노벨상을 받게 된다. 

 

물질파(matter wave)

드브로이가 만물의 물질 근원이 입자가 아니라 파동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아인슈타인의 등장 전 19세기에는 빛의 파동설이 승리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아인슈타인이 빛의 입자설을 주장했고 광양자 가설을 이용해 광전효과를 입증하면서 빛은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드브로이는 ‘빛이 입자라면 입자로 이뤄진 물질도 파동의 성질을 가지지 않을까’하고 생각한다. 

 

​원자는 소립자의 진동이다. 소립자가 존재하는 극미세계에서 소립자가 진동하면 그 주변에 전자기장이 형성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발산된다. 이게 파동이다.

 

이 파동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서로 극성이 다른 원자핵과 전자가 서로 끌어당기기도 하고 반발하기 때문이다. 이 진동이 에너지의 근원이 된다. 이 진동이 모여 밀도가 커지면 파동은 물질로 바뀐다. 드브로이의 주장에 따르면 모든 입자는 자신의 운동량에 반비례하는 파장을 지닌다.

 

즉 물질은 파장이라는 이야기다. 어떤 물질의 운동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파장은 작아지고 운동량이 적으면 적을수록 파장은 커진다. 이게 모든 물질은 파동으로 이뤄진다는 물질파 이론(matter wave)이다. 

 

​그동안 입자라고 여겨진 전자도 파동이고 운동량에 따라 달라지는 파장을 가진다. 드브로이는 모든 물질이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지닌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모든 물질이 실상은 파동임을 주장한다. 물질이 입자가 아니라 파동으로 구성돼 있다면 닐스 보어의 원자모형 문제점도 쉽게 설명된다.

 

닐스 보어는 관찰을 통해 원자모형을 완성했지만 원자가 그런 형태를 띠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드브로이를 통해 보어의 원자모형은 가설이 아니라 실제가 된다. 

 

​당시 보어의 원자모형은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첫 번째 문제는 전자가 원자핵의 인력에 끌려가 충돌해 소멸하지 않고 계속 공전하는 이유였다. 두 번째는 일정한 궤도를 돌던 전자가 중간 단계를 거치지 않고 갑자기 사라졌다가 다른 궤도로 이동하는 현상(양자 도약)이었다.

 

하지만 전자가 입자가 아니라 파동이라면 정상파 궤도에서 돌다가 가속이 없어져 에너지를 잃고 원자핵 속으로 빠져들어 파괴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전자가 갑자기 다른 궤도로 이동하는 양자 도약(Quantum jump)도 설명이 가능해진다. 

 

​전자가 원자핵의 인력권에 들어가 충돌해 소멸하지 않는 이유는 전자의 궤도는 전자가 드문드문 입자의 형태로 원자핵 주변을 떠도는 구름 형태가 아니라 시작과 끝이 이어진 정상파의 형태를 취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같은 위상의 두 파동이 중첩될 때 발생하는 보강간섭이 일어난다. 전자가 원자핵을 향해 추락하지 않고 계속해서 정상궤도를 유지할 수 있다. 

 

​양자 도약의 문제는 이렇다. 보어의 원자모형에서 전자의 궤도는 원자핵을 중심으로 항상 정수배의 위치에만 존재해야 하는 불연속적인 모습을 보인다. 즉 전자는 1번 궤도와 2번 궤도 사이에 있는 1.5번 궤도가 등장할 수 없다.

 

전자가 입자라면 궤도를 이동하면서 중간 단계를 거칠 수밖에 없지만 파동이라면 가능하다. 파동은 시간 간격인 진동수와 공간 간격인 파장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이걸 파동의 개념으로 설명하자면 전자 궤도에서는 특정 진동수만 발생한다는 뜻이다. 

 

​첫 번째 문제에서 전자가 원자핵을 향해 추락하지 않는 이유가 보강간섭 때문이라고 했는데 두 번째 문제에서는 파장끼리의 상쇄간섭 때문에 파동이 정수배의 파장 조건을 갖추지 못하면 소멸하게 된다. 이럴 때 전자가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된다. 따라서 전자의 궤도가 띄엄띄엄 있는 이유는 상쇄간섭을 일으키는 정상파는 사라지고 물질파의 보강간섭을 일으키는 정상파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 (왼쪽부터)보강간섭과 소멸간섭

 

양자란 더 나눌 수 없는 에너지의 최소단위다. 물질에 있어 양자장이 중첩되면 파동이 되고 파동이 중첩되면 에너지가 된다. 에너지가 중첩되면 소립자가 되고 소립자가 중첩되면 원자가 된다. 원자가 중첩되면 분자가 되고 분자가 중첩되면 물질이 된다. 따라서 모든 물질은 양자장이 중첩된 에너지 덩어리라고 할 수 있다.

 

빛은 입자인가? 파동인가? 라는 빛의 정체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된 꼬리에 꼬리는 무는 질문이 양자역학을 낳았다. 양자역학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이제 과학과 철학은 서서히 합쳐지기 시작한다. 

 

 


 김훈 리스크랩 연구소장(공학박사/기술사)

* 서울과학기술대 공학박사(안전공학)

* 리스크랩(김훈위험관리연구소) 연구소장

* 현대해상 위험관리연구소 수석연구원

* 한국소방정책학회 감사

* 한국화재감식학회 정보이사

* 소방청 화재감식 자문위원

* 한국지역정보개발원(KLID)평가위원

*,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평가위원

* 국립재난안전연구원(NDMRI) 평가위원

*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 평가위원

*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KETEP)평가위원

* Crane & construction Equipment 칼럼리스트

* 소방방재신문 119 Plus Magazine 칼럼리스트

* 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 칼럼리스트

* 기술사(국제기술사, 기계안전기술사, 인간공학기술사)

* 미(美)공인 위험관리전문가(ARM), 미(美)공인 화재폭발조사관(CFEI)

* 안전보건전문가(OHSAS, ISO45001),* 재난관리전문가(ISO22301,기업재난관리사)


 

리스크랩_ 김훈 : firerisk@naver.com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2년 9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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