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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상식] 사고가 터지면 왜 현장만 문제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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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유) 정진 한주현 | 기사입력 2022/12/20 [10:00]

[법률 상식] 사고가 터지면 왜 현장만 문제삼는가

법무법인(유) 정진 한주현 | 입력 : 2022/12/20 [10:00]

지난 10월 29일 서울 한복판 이태원에서 큰 참사가 발생했다. 정부의 재난관리책임이 도마 위에 오르리라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너무나도 일상적인 공간에서 허망하게 죽었기 때문이다. 예방, 대비가 충분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사고였던 만큼 대응기관보다는 예방, 대비의 책임이 있는 기관이 문제 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필자의 예상은 좀 빗나가는 듯싶다. ‘주최 없는 축제’였기 때문에 예방, 대비를 하기 어려웠다는 분석이 잠깐 이어지더니 갑자기 참사의 책임이 현장에 있던 대응기관에 집중되고 있다. 수사기관은 ‘왜 좀 더 일찍 보고받지 못했냐’, ‘왜 좀 더 일찍 대응 단계를 상향하지 않았냐’ 등을 문제 삼으며 대응상 과실을 도마 위에 올리고 있다.

 

사고가 터지면 현장만 문제가 되는 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물론 현장이라고 해서 문제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건 아니다. 현장도 마땅히 해야 할 구조의무를 다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문제가 돼야 한다. 중요한 건 항상 현장‘만’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국민에게 큰 충격을 준 세월호 참사에서 구조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형사처벌을 받은 공무원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단 한 명, 세월호 침몰 현장으로 출동했던 해경인 123정의 정장 김경일이다.1) 해경 지휘부 중에는 단 한 명도 구조 실패를 이유로 형사처벌을 받은 이가 없다.

 

사실 해경 지휘부는 세월호 참사 발생 당시엔 수사 대상 자체가 되지 않았다. 123정장에 대한 수사만이 진행됐을 뿐이다. 그러다가 세월호 참사 발생 6년 후에야 당시 해양경찰청장과 서해지방해양경찰청장, 목포해양경찰서장 등을 비롯한 해경 지휘부 10명이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됐고 그들은 1심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고 현재 항소심을 진행 중이다.

 

해경 지휘부에 대한 1심 무죄 판결을 보면 현장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법적 책임에서도 멀어지는 게 얼마나 쉬운지를 알 수 있다. 1심 판결은 당시 해경 지휘부가 엉망진창이었던 사실은 인정하고 있다. 아래는 1심 판결문에 실린 내용이다.

 

해경 지휘부에 대한 1심 판결문(서울중앙지방법원 2021. 2. 15. 선고 2020고합128 판결) 중

 

“해경에서는 대형 해상사고에 대비하여 각급 구조본부와 구조세력이 합동으로 참여하는 수색구조훈련이 실시되지 않았다. 각급 구조본부 사이에 누가 사고선박 및 현장 구조세력과 교신을 전담할지 교신체계가 정립되지 않았고, 그 결과 개별 단위에서 수집한 정보가 원활하게 공유되지 않았으며, 각 구조본부 단위의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중앙구조본부는 사고 초기부터 광역 및 지역구조본부에서 현장지휘를 하라고 지시하였으면서도 여전히 123정에 대하여 직접 지시하거나 현장상황을 보고받았고, 광역 및 지역구조본부도 각자 123정을 지휘하고 보고를 지시하는 등 구조활동에 대한 지휘통제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수난사고에서 구조업무를 총괄하는 해경이 이 사건에서 보여준 구조능력과 지휘능력에는 분명한 한계가 노출되었고, 피고인들이 해경 지휘관으로서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최선의 결과를 낳지 못하였음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

 

사실 123정장 김경일에 대한 판결에서도 해경 지휘부의 책임이 언급됐다. 아래는 123정장 김경일에 대한 항소심 판결문에 실린 내용이다.

 

김경일에 대한 2심 판결문(광주고등법원 2015. 7. 14. 선고 2015노177 판결) 중

 

“피고인을 ‘현장지휘관’으로 지정한 후에도 해양경찰청 상황실에서는 2014. 4. 16. 09:36경 피고인에게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 2분 22초 동안 통화하고,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상황실 등에서도 피고인과 TRS로 20여 회 통신하여 보고하게 하는 등 피고인으로 하여금 구조 활동에 전념하기 어렵게 하였으며, 평소 해경들에게 조난사고에 대한 교육훈련을 소홀히 하는 등 해경 지휘부나 사고 현장에 같이 출동한 해경들에게도 승객 구조 소홀에 대한 공동책임이 있으므로, 피고인에게만 피해자들의 사망ㆍ상해에 대한 모든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가혹한 점 …(중략)… 을 고려하여 주문과 같이 형기를 정한다”

 

그런데도 재판부는 해경 지휘부 모두에게 구조 실패의 법적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현장과 물리적 거리가 멀었던 지휘부들로서는 당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엔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므로 현장에서 구조에 실패한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현장(123정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지휘부의 권한, 현장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던 다년간에 걸쳐 구축된 각종 인적, 물적 시스템 등은 고려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결국 이 재판을 통해 사람들에게 각인된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현장에 있으면 처벌받고 현장에 없으면 처벌받지 않는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진행되고 있는 수사도 비슷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듯하다. 매년 열리던 행사임에도 안전조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던 이유에 대한 정부 차원의 심층적인 분석은 온데간데없고(이러한 분석이 현장과 멀리 떨어져 있던 권한 있는 사람들을 문제 삼을 수 있기 때문일까?) 참혹한 참사 현장에서 분초를 다투며 구조활동을 벌인 현장에 대한 먼지털이식 수사만 이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한 수사가 우리 사회의 안전에 대체 무슨 보탬이 될 것인지 고민해봐야 한다. 필자의 단견으로는 구조기관의 사기와 자긍심만 떨어트려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안전을 저해하는 결과만 가져오지 않을까 우려된다.

 


1) 물론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구조활동을 벌인 구조세력들을 123정장과 비교할 수는 없다. 단지 참사 현장에서 활동한 현장세력이라는 점에서만 123정장을 언급하는 것뿐이다. 김경일 정장은 현장 지휘관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해 충분히 구조할 수 있었던 300여 명의 생명을 구조하지 못한 책임이 분명히 있는 사람이고 이는 재판을 통해 모두 인정된 사실이다. 

 


 

한주현 변호사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관으로 근무하며(2018-2020) 재난ㆍ안전 분야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현재는 법무법인(유) 정진의 변호사로 이혼이나 상속 등의 가사사건 및 보험이나 손해배상 등의 민사사건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법무법인(유) 정진_ 한주현 : jhhan@jungjinlaw.com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2년 12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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