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 있음과 없음 장자의 인간세(人間世)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목수 장석이 제나라로 가다가 사당 앞에 있는 큰 도토리나무를 봤다. 그 크기는 수천 마리의 소를 덮을 만했고 그 둘레는 백 아름이나 됐으며 그 높이는 산을 위에서 내려다볼 만했다.
구경꾼들이 장터를 이뤘지만 장석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가 버렸다. 그의 제자가 장석에게 달려가 말했다. “제가 도끼를 들고 선생님을 따라다닌 이래로 이처럼 훌륭한 재목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선생님께서는 거들떠보지도 않으시니 어찌 된 일입니까?”
장석이 말했다. “그런 말 말아라. 쓸데없는 나무다. 그것으로 배를 만들면 가라앉고, 관을 만들면 빨리 썩어버리고, 그릇을 만들면 쉬이 깨져버리고, 문짝을 만들면 나뭇진이 흘러내리고, 기둥을 만들면 곧 좀이 먹는다. 그것은 재목이 못 될 나무야. 쓸모가 없어서 그토록 오래 사는 것이야”
과일나무는 과일이 열리면 따게 되고 딸 적에는 욕을 당하게 된다. 큰 가지는 꺾이고 작은 가지는 찢어진다. 이들은 자기의 재능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당하는 것이지. 그래서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일찍 죽는 것이다. 스스로 화를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다.
세상 만물이 이와 같지 않은 게 없다. 나는 쓸모없길 바란지가 오래다.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이제야 뜻대로 돼 쓸모없음이 내 큰 쓸모가 된 것이다. 만약 내가 쓸모가 있었다면 어찌 이렇게 커질 수 있었겠는가? 그대와 나는 다 같이 하찮은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 어찌하여 서로를 하찮은 것이라고 헐뜯을 수 있겠는가? 그대처럼 죽을 날이 머지않은 쓸모없는 사람이 어찌 쓸모없는 나무를 알 수가 있겠는가”
우리가 세상에서 유용하다고 하는 게 쓸모가 없을 때도 있고, 반대로 세상에서 쓸모없다고 하는 게 쓸모가 있을 때도 있다. 어느 물건의 쓸모 있고 없음의 차이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르기 마련이고 보는 관점에 따라 바뀐다.
우리나라 대부분은 쓸모 있는 기술을 연구하는 응용과학연구소가 많다. 하지만 미국은 그 쓸모와 관계없이 자유롭게 연구하는 분위기가 활성화돼 있는데 대표적인 연구소가 아인슈타인이 있었던 프린스턴 고등연구소다.
미국 뉴저지 프린스턴 시에 있는 프린스턴 고등연구소(IAS, Institute for Advanced Study)는 1900년대 초반 백화점으로 큰 돈을 번 루이스 뱀버거와 캐롤린 뱀버거가 설립한 곳이다.
이들은 1930년 이 연구소를 설립할 당시 지역을 위해 치과대학을 만들 생각이었지만 연구소의 초대 소장이자 그들의 친구였던 에이브러햄 플렉스너(1866~1959)가 이들을 설득해 치과대학이 아닌 고등연구소를 만들었다.
지금 이 연구소는 매년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200명 미만의 소수 연구원만을 뽑아 연구 기금 2천억원으로 그들의 연구를 지원한다.
이곳에서 공부하는 연구원들은 연구비를 얻기 위해 어떠한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연구 분야도 연구자 본인의 자율에 맡긴다. 위치가 프린스턴 시에 있어서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지 영어 이름은 그냥 IAS다. 프린스턴대학교와 교류를 하긴 하지만 대학에 부속된 연구기관이 아닌 독립된 연구기관이다.
이 연구소가 유명한 이유는 수많은 유명 과학자가 이 연구소를 거쳐 갔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과 핵폭탄을 만든 오펜하이머, 컴퓨터를 만든 에런 튜링, 헝가리가 낳은 천재 폰 노이만, 뷰티플 마인드의 존 내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한 앤드루 와일즈 등이 이곳에 있었다.
한국인으로는 핵공학자인 이휘소 박사와 국내 최초 필드상 수상자인 허준이 박사도 이곳을 다녀갔다.
과거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아인슈타인을 받아들일 때의 일이다. 연구소장은 그에게 원하는 연봉이 얼마인지 물었고 아인슈타인은 3천 달러를 말했다. 이는 당시 그의 유명세에 비해 턱없이 낮은 금액이었다.
연구소는 아인슈타인에게 5배나 되는 1만5천 달러를 역으로 제안했고 나치를 피해 고향을 떠나왔던 아인슈타인은 생각지 못한 거액의 제안에 프린스턴 연구소를 고향으로 여기며 연구에 몰두했다.
현재 연구소장은 로베르트 헨리퀴즈 데이크흐라프(Robbert Henricus Dijkgraaf)로 네덜란드 수리물리학자다. 그는 인류가 진정 폭발력이 있는 발견과 발명을 원한다면 겉으로는 쓸모없고 무가치해 보이는 실험을 더 많이 용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인류의 삶을 변화시킨 대단한 학문적 성취는 대부분이 호기심에 근거한 자유로운 연구에서 탄생했다. 상상력은 지식보다 더 중요하다. 지식은 우리의 생각을 확장시키지만 상상은 우리의 생활을 창조한다.
지식은 현재 현상의 이해에 국한돼 있지만 상상은 미래의 현실까지 확장된다. 그래서 우린 쓸모없는 상상의 유용성을 인식해야 한다.
상상력 상상력은 언덕 너머 미지의 세계에서 밝게 빛나는 어스름한 불빛을 보는 능력이다. 이 불빛을 먼저 감지하고 탐험하는 사람들에게는 남들이 느낄 수 없는 희열이 있다. 언덕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어 하고 탐험하고 싶어 하는 건 어찌 보면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른다. 이 본성이 현대문명을 만들었다.
지식은 유한하지만 상상은 무한하다. 상상을 현실로 착각하는 건 위험하지만 상상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문을 여는 건 멋진 일이다. 그동안 인류가 이룩한 모든 위대한 발명은 모두 그 상상력으로부터 나왔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상상력이 풍부한 영화를 만드는 영화감독들은 그저 낡은 지식만 전달하고 연구하는 학자보다 중요하다. 이들은 아이들이 미래를 상상하게 하고 창조하게 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대부분이 기업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학과를 쓸모 있는 곳과 없는 곳으로 나눠 반도체 등의 공학 쪽 계열을 확장하고 철학, 문학과 같은 인문계열은 축소하고 있다.
쓸모없는 학문이라고 평가받는 인문학은 학생이 점점 줄어들어 학과가 없어질 정도다. 많은 사람이 철학을 쓸모없는 학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철학은 장자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거목과도 같은 존재다. 철학의 힘은 쓸모없음에 있다. 철학을 한다고 돈이나 권력이 생기는 건 아니지만 철학은 우리에게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준다. 쓸모없는 게 쓸모 있는 것이고, 쓸모 있는 게 쓸모없는 것이라고 말한 장자는 이를 두고 한 말이다.
과거와는 달리 오늘날 지식은 그 유효기간이 더욱 짧아졌다. 세상은 빨리 변해 어제의 가설이 오늘의 진리가 될 수도, 오늘의 진리가 내일의 가설로 끝날 수도 있다.
현재의 양자역학이라는 학문은 모두 상상력에서 출발했다. 연구가 거듭될수록 원자의 모형도 점차 진화돼 갔다. 우리 몸은 무수하게 많은 원자로 구성돼 있다.
그리고 각각의 원자는 원자핵과 주변을 도는 전자로 구성되는데 그 속도가 자그마치 초속 2200㎞나 된다. 원자핵과 전자 사이 어마어마한 거리로 그사이는 텅 비어 있다.
수소 원자의 원자핵 위치가 서울시청이라면 전자의 위치는 수원 정도의 거리다. 그 사이는 빛조차 통과할 수 없는 전자기파가 넘쳐나는 에너지 요동의 공간이다. 만약 이 공간을 압축시킬 수 있다면 123층의 롯데타워도 쌀 한 톨의 크기로 줄어든다.
영화 앤트맨은 핌입자를 이용, 원자핵과 전자사이의 빈 곳을 조절해 몸의 크기를 자유롭게 조절한다. 영화 속에서 행크 핌은 이렇게 말한다.
“40년 전 난 원자의 상대 거리를 바꾸는 공식을 만들었네. 원자 간 거리를 바꾸는 법을 알아냈지. 그게 슈트의 파워 소스야. 그런데 이걸 잘못 쓰면 미시 우주 세계에 진입하면서 영원히 시공간으로부터 격리돼 버릴 가능성도 있네”
뉴튼 역학에서의 결정론은 시간과 공간의 불변이다. 하지만 현대물리학으로 들어오면서 시간과 공간조차도 상대적이라는 게 밝혀졌다.
원자핵과 전자 사이의 거리를 줄이는 것이므로 전체적인 질량은 감소하지 않는다. 따라서 개미만큼 작아진 앤트맨의 몸무게는 변신 전과 같다.
반대로 엄청나게 커진 앤트맨의 몸무게도 변신 전과 같다. 질량이 같으므로 작아지면 몸의 밀도는 증가하고 커지면 밀도가 감소한다.
영화 속에서 앤트맨이 개미 등을 타고 이동하거나 거인이 돼 자동차를 집어 올리는 행위는 불가능하다. 개미가 태우기엔 너무 무겁고 자동차 등을 들어올리기엔 너무 가볍기 때문이다. 영화 어벤져스의 엔드게임에도 양자역학이 등장한다.
인피니티 워 이후 지구는 각국의 정부가 붕괴하고 생명체의 50%가 소멸했다. 히어로들은 절망에 빠져 힘겨운 삶을 이어나가고 있을 무렵 죽은 줄만 알았던 앤트맨이 나타난다. 영화 속에서 양자 세계에 갇혀 있던 앤트맨은 5시간의 경과가 현실 세계에서 5년이 지난 걸 알고 시간여행의 가능성을 얘기한다.
이에 히어로들은 타임 내비게이션과 양자 수트를 개발해 과거로 돌아간다. 이들이 과거로 돌아가 사건의 순서를 바꾸는 건 타임 파라독스 때문에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내가 만약 과거로 돌아가 내 할아버지를 죽이면 나는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엔드게임에서 히어로들이 간 세계는 과거의 세계가 아니라 평행우주의 세계였다. 그래서 아이언맨이 그의 아버지를 만나거나 캡틴 아메리카가 또 다른 나를 만나고 네뷸라가 스포일러 영상을 타노스에게 알려줘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양자역학에서 원자의 위치는 확률적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가 관측하기 전까지 확률적으로 다양한 위치에 동시에 있을 수가 있다. 그리고 관측하는 순간 그중 하나가 구현된다. 이것이 양자역학의 여러 가지 해석 중 하나인 다세계 해석이다.
미국 양자물리학자 휴 에버렛(1930~1982)은 그가 제창한 다세계 해석(에버렛 해석)을 들고 1959년 코펜하겐의 닐스 보어를 찾아갔다.
그리고 보어에게 그의 이론을 얘기한다. 닐스 보어는 당연히 그의 주장을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완강히 반대했다.
사실 휴 에버렛의 다세계 해석은 좀 더 고전적인 입장에서 보면 어린 애들이 말하는 만화 속 얘기와 같이 허무맹랑하기도 하다. 세계가 무수히 갈라진다는 사실은 말도, 이해하기도 매우 쉽다.
하지만 그 이론의 최대 약점은 관측과 실험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에버렛의 해석은 매우 많은 사람의 상상력을 크게 자극했다.
일부에서는 다세계 해석을 실험적으로 구현하는 실험결과가 나오기도 했지만 재현성이 부족했다.
물질의 근원 다세계 해석에 등장하는 다중 우주(multi universe)의 개념은 인플레이션 우주론에서 시작됐다. 우리가 사는 우주는 처음에 밀도가 아주 아주 높은 한 점에서 시작했고 대폭발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며 서로 다른 물리적 법칙들의 적용을 받는 다양한 우주가 생겨났다는 거다.
하지만 다중우주론은 아직 가설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관측할 수 없는 우주가 존재한다고 믿는 건 과학자의 자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상상들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그런 근거가 되는 이론 중 하나가 초끈이론이다. 우주를 구성하는 최소의 단위, 즉 양성자와 중성자, 전자를 구성하는 물질이 입자가 아니라 끈의 진동이라는 거다.
우린 이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물질은 원자라는 걸 안다. 리처드 파인먼은 모든 과학 지식이 다 파괴되고 다음 세대에게 가장 많은 정보를 담은 짧은 문장 하나만을 남길 수 있다면 “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뤄져 있다는 말을 남기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틀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세계를 달 위의 세계인 천상계와 달 아래의 세계인 지상계로 나눈 후 지상계는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물, 불, 흙, 공기로 구성돼 있고 천상계는 완전해 변하지 않는 물질인 에테르(ether)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했다.
그 후 근대에 들어오면서 여러 화학자에 의해 다양한 원소가 발견되고 이를 바탕으로 원자번호 1번인 수소부터 원자번호 92번인 우라늄까지의 주기율표가 완성됐다. 현대 물리학자들은 원자를 더 쪼개기 시작했다. 그 결과 300종이 넘는 소립자가 발견된다.
수백 종의 소립자가 있지만 그중에서 기본이 되는 물질은 쿼크(quark)와 렙톤(lepton)이었다. 양성자는 업쿼크 2개와 다운쿼크 1개로 이뤄져 있고 중성자는 업쿼크 1개와 다운쿼크 2개로 이뤄져 있다. 그리고 그 주위를 렙톤이 돌고 있다. 전자는 대표적인 렙톤이다.
과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을 비롯해 세계를 지배하는 4대 힘인 중력과 전자기력, 약력, 강력을 합치려는 시도를 오랫동안 해왔다.
그 결과 1867년 맥스웰에 의해 전기력과 자기력이 합쳐졌다. 1967년에는 와인버그와 살람에 의해 전자기력과 약력이 합쳐졌다. 이후 여기에 강력을 합치려는 연구가 있었지만 이 힘은 합쳐지지 않았다.
여기에 중력을 합치려는 노력은 더 힘들었다. 아인슈타인이 그토록 완성하고 싶었던 통일장 이론(Unified field Theory)부터 모든 것의 이론인 TOE(Theory of Everything) 이론까지 많은 연구가 진행됐지만 진전이 없었다.
이때 초끈이론이 등장한다. 물리학자들은 각각의 힘을 매개하는 입자들을 연구한 결과 전자기력을 매개하는 입자 광자(Photon)와 약력을 매개하는 입자 보손(Boson), 강력을 매개하는 입자 글루온(Gluon)을 발견했다.
그러나 중력을 매개하는 가상의 힘인 중력자(graviton)는 아직도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초끈이론에서는 중력자의 존재까지도 설명이 된다.
이 초끈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게 홀로그램 우주론이다. 우리가 우주에서 관찰하는 현상들은 다중우주의 특정 경계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마치 홀로그램을 보는 것처럼 우리 세계에 투영된 결과가 홀로그램 우주다. 이는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에 플라톤이 주장했던 이데아론과도 유사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은 내 스승이자 소중한 벗이지만 진리는 더 소중한 벗이다’고 말하며 그의 스승의 이론을 부정했다. 심지어 그의 저서에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 말했을 정도다.
다중우주론이나 초끈이론 등은 이미 물리학이 아니라 형이상학적 철학의 영역으로 들어갔다. 이제 과학은 철학을 접목하지 않고선 설명이 불가능한 학문이 되고 말았다.
김훈 리스크랩 연구소장(공학박사/기술사)은 * 서울과학기술대 공학박사(안전공학) * 리스크랩(김훈위험관리연구소) 연구소장 * 현대해상 위험관리연구소 수석연구원 * 한국소방정책학회 감사 * 한국화재감식학회 정보이사 * 소방청 화재감식 자문위원 * 한국지역정보개발원(KLID)평가위원 *,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평가위원 * 국립재난안전연구원(NDMRI) 평가위원 *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 평가위원 *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KETEP)평가위원 * Crane & construction Equipment 칼럼리스트 * 소방방재신문 119 Plus Magazine 칼럼리스트 * 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 칼럼리스트 * 기술사(국제기술사, 기계안전기술사, 인간공학기술사) * 미(美)공인 위험관리전문가(ARM), 미(美)공인 화재폭발조사관(CFEI) * 안전보건전문가(OHSAS, ISO45001),* 재난관리전문가(ISO22301,기업재난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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