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항공기 역사와 드론의 정의- Ⅴ

광고
서울 서대문소방서 허창식 | 기사입력 2023/04/20 [10:00]

항공기 역사와 드론의 정의- Ⅴ

서울 서대문소방서 허창식 | 입력 : 2023/04/20 [10:00]

<지난 호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5. 항공기의 역사(1940년대: 제2차 세계대전, 항공 기술 개발의 전성기)

제2차 세계대전이 진행될수록 연합국과 추축국은 서로 하늘과 바다를 장악하기 위해 새로운 무기 개발에 온 힘을 다했다. 특히 독일은 전쟁 초기 잠수함과 다양한 전투기를 통해 해전과 공중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습을 당한 미국이 12월 8일 일본, 11일 독일과 이탈리아에 선전포고한 후 연합국에 합류하면서 전쟁의 양상이 서서히 달라진다.

 

독일은 새로운 잠수함(Type XXI U-boat)을 개발했음에도 연합군이 소나(음파탐지기)와 레이더, 개량된 대잠수함 전술 등을 개발해 대응책을 마련하면서 간파당하기 시작했다. 공중전 또한 연합국의 공세에 완벽히 대응하지 못했다.

 

다급해진 독일은 기존 동력기관(피스톤 엔진과 프로펠러)에 의한 추력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느꼈고 다시 압도적인 성능을 보여줄 새로운 항공 기술 개발에 중점을 뒀다. 그 후 탄생한 게 바로 20세기 가장 중요한 기술 발전 중 하나로 오늘날까지 항공 과학 기술 혁명을 가져다준 제트엔진과 로켓엔진 기술이다.

 

먼저 제트엔진은 연료의 폭발적인 연소를 위해 압축 공기(산소)를 사용하는 기술이다. 엔진이 더욱 폭발적인 힘을 내기 위해선 많은 양의 연료를 순식간에 완전히 연소해야 한다. 하지만 자연 상태에서의 대기압만으로는 연료를 완전히 연소할 수 있는 충분한 양의 공기를 공급받을 수 없다.

 

따라서 엔진으로 들어오는 공기를 원심력으로 압축ㆍ공급한다. 이렇게 압축된 공기를 다량의 연료와 혼합해 함께 연소ㆍ배출하는 과정에서 반작용으로 추진하는 원리가 제트엔진이다.

 

제트엔진을 최초로 개발한 선구자는 영국의 공군 준장 프랭크 휘틀(Frank Whittle)이다. 왕립공군대학생도 시절인 1920년 설계도 제작을 시작했다. 1931년 가스 터빈 엔진 특허를 취득했으며 1937년에는 최대 약 620㎏의 추력과 최대속도 600㎞/h의 엔진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제트엔진을 탑재한 실용적인 전투기 비행에 처음 성공한 건 독일의 한스 폰 오하인(Hans Von Ohain)이다. 하인켈 사 HeS 3엔진을 개발해 만든 항공기는 He 178로 불렸으며 1939년 8월 27일 첫 비행에 성공했다. 이후 HeS 3엔진은 개발 과정에서 애프터 버너를 추가하는 등 여러 가지 성능을 개선했다. 

 

제트 전투기를 실전에 투입한 건 제2차 세계대전 대세가 결정된 막바지인 1944년에 이뤄졌다. 새로운 기술이라 설계ㆍ생산과 같은 기술적 문제로 개발 과정이 복잡했고 다른 군사 프로젝트보다 뒷순위로 비밀리에 관리하다 급작스럽게 진행됐기 때문이다.

 

그렇게 당시 개발된 실전 제트 전투기는 Me262로 제2차 세계대전 후반에 수많은 연합군의 전투기를 격추하는 역할을 했다.

 

Heinkel He 178(1939)

He 178은 성공적으로 개발됐으나 실전투입은 하지 않았다. 프로토타입은 단 한 대만 제작됐다. 그러나 이 항공기는 앞으로 몇 년 동안 항공에 혁명을 일으킬 더 진보된 제트 동력 항공기의 개발을 위한 길을 열었다.제2차 세계대전 후 He 178은 연합군에 노획돼 현재 워싱턴 D.C.의 국립항공우주박물관에서 전시 중이다. 초기 제트 항공기 개발의 개척 정신과 기술 혁신에 대한 증거로 남아 있다(출처 www.militaryfactory.com/aircraft/detail.php?aircraft_id=214).

Messerschmitt Me262(1944)

Me262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실전 투입된 최초의 제트 전투기다. 당시 압도적인 속도와 비행성으로 투입 초기 효과를 봤다. 하지만 주로 무장된 무기가 다른 피스톤 엔진 전투기와 같은 일반적인 기관포(Mk108 30㎜)였기 때문에 빠른 속도의 장점을 크게 살리지 못했다. 게다가 아무리 성능이 뛰어나다 해도 전시 중에 충분한 시험 비행을 하지 못해 여러 차례의 빠른 비행을 견디지 못한 구조적 손상, 잦은 엔진 고장, 연료 누출 등 많은 결함이 있었다(출처 www.pinterest.co.kr/pin/749849406696965327/).

 

다음은 로켓엔진이다. 로켓엔진의 선구자는 미국의 물리학자이자 로켓 공학자인 ‘로버트 고다드’다. 고다드는 1926년 3월 16일 휘발유와 액체 산소를 섞어 추진하는 액체 로켓 발사에 성공한다.

 

이는 1969년 인류가 로켓엔진을 이용해 달에 최초로 착륙할 수 있게 한 위대한 발견의 서막이었다.

 

그러나 당시 그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언론은 고다드에게 고등학교 수준의 과학도 모른다면서 조롱과 비판을 했을 정도다.

 

많은 사람의 무관심 속에서 로켓 연구에 관심을 둔 또 다른 선구자가 있었다. 바로 독일의 로켓 과학자 베르너 폰 브라운(Werner Von Braun)이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독일은 1919년 체결된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공군 보유 전투기ㆍ폭격기, 장거리 포병 화기의 개발ㆍ보유가 금지됐다.

 

그런데 당시 이론 정립조차 제대로 돼 있지 않던 로켓, 특히 액체 로켓 분야는 제약이 없었다. 덕분에 독일 육군은 꾸준히 장거리 포병 화기로서의 로켓, 특히 액체연료 로켓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다. 당시 독일의 로켓 연구는 국가기관에서만 할 수 있었다.

 

따라서 베르너 폰 브라운은 로켓 연구를 위해 1930년대 초 나치당원에 가입한 후 독일 육군의 로켓 연구 프로젝트에 지원한다. 이후 빠르게 승진해 1942년 드디어 세계 최초로 탄도미사일인 V2 로켓을 성공적으로 개발한다.

 

여담으로 1945년 종전 후 미국은 전쟁 기간 중 설립된 JIC(Joint Intelligence Commission, 합동정보위원회)의 산하기관인 JIOA(Joint Intelligence Objectives Agency, 합동정보목표기구)에서 1945년부터 1959년까지 미국에 이바지할 수 있는 독일 과학자나 엔지니어, 기타 기술 전문가 등을 식별하고 모집(Operation Paperclip, 페이퍼 클립)했다.

 

그중 나치 독일의 로켓 프로그램 개발을 주도한 베르너 폰 브라운은 모든 강대국에서 가장 필요한 주요 인물이었다. 이후 베르너 폰 브라운은 미국으로 건너가 미 육군의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NASA(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 미국항공우주국)에서도 우주선 발사에 필요한 새턴Ⅴ로켓 개발과 아폴로 달 착륙선 설계, 우주선 시스템 통합 등 광범위한 미국 항공우주기술 개발에 독보적인 역할을 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당시 독일은 로켓엔진 기술을 탄도 미사일로만 사용하지 않았다. 연합군의 고고도 폭격기에 대항하기 위해 더 높은 상승력으로 신속하게 고고도까지 진입할 수 있는 로켓엔진 요격기인 Me163 Komet을 추가 개발해 1944년 7월 실전 배치한다.

 

로켓엔진은 공기밀도가 낮은 고고도에서도 충분히 성능을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실전 배치 초기부터 독일 상공 폭격 임무 후 귀환하는 미군의 고고도 폭격기 B-17 플라잉 포트리스를 더 높은 고도에서 격추하며 그 진가를 발휘했다.

 

Messerschmitt Me163(1944)

Me163은 약 900㎞/h의 폭발적인 힘으로 2분 정도면 1만m 고도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수 분을 넘지 못한 비행시간과 좁은 작전 반경(40㎞)으로 인해 주로 고고도 폭격기 대응용으로 쓰였다. 또 고속 상승으로 인한 높은 압력변화와 폭발 가능성이 크고 독성이 강한(피부에 노출 시 괴사) 연료로 인해 조종사는 항상 위험 부담을 안고 비행해야 했다(출처 b17flyingfortress.de/en/jagdflugzeuge/messerschmitt-me-163).


항공 기술 외에도 제2차 세계대전 기간 개발된 무기로는 원자폭탄이 있다. 미국은 독일이 우라늄 유통을 통제하자 원자폭탄 개발을 시작했다고 판단했다.

 

당시 대통령인 프랭클린 D.루스벨트는 1942년 독일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개발하기 위해 국가 예산이 무한정 지원되는 맨해튼 프로젝트를 극비리에 추진한다. 그리고 1945년 7월 16일 뉴멕시코 트리니티 시험장에서 최초의 원자폭탄을 성공적으로 개발한다.

Boeing B-29(1944)

B-29의 사양은 승무원 13명이 동시에 탑승할 수 있고 길이 30.2m 윙스팬 43.1m, 총중량 60t, 폭장량 9.1t, 4대의 2200마력 터보 슈퍼차저 엔진이 탑재됐다. 유일한 단점으로는 고출력 엔진을 냉각해 줄 수 있는 냉각 계통의 성능이 떨어져 과열되면 화재로 이어졌고 엔진 수명도 매우 짧았다. 그로 인해 엔진을 75시간 비행 시마다 엔진을 교체할 수밖에 없어 엄청난 유지비용이 들어갔다(출처 namu.wiki/w/B-29).

 

그러나 Super fortress라고 불리는 B-29급의 폭격기가 없었다면 원자폭탄의 사용은 쉽지 않았을 거다. 당시 원자폭탄의 무게는 약 4~5t이었으며 B-29를 제외하면 다른 어떤 항공기도 크고 무거운 원자폭탄을 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B-29의 작전 반경은 약 5천㎞, 최고 속도는 약 575㎞/h, 비행 가능 고도는 3만ft 이상으로 사실상 적국의 전투기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위치에서 원자폭탄을 투하하도록 특별히 설계된 유일한 폭격기였다.

 

서울 서대문소방서_ 허창식 hcs119@seoul.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3년 4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항공기 역사와 드론의 정의 관련기사목록
광고
소다Talk
[소방수다Talk] 계급장 불문하고 소방관을 교육하는 소방관들… 교수 요원
1/3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