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취재] 23명 다친 부산 목욕탕 폭발 사고… 위험물 탱크 ‘안전 사각지대’였다옥내탱크저장소로 허가… 현행법상 정기점검 대상서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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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PN 박준호 기자] = 소방관 등 23명이 다친 부산 목욕탕 건물이 33년간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사실상 방치된 것으로 <FPN/소방방재신문> 취재결과 드러났다.
지난 1일 오후 1시 40분께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의 한 목욕탕 건물 지하층에서 폭발을 동반한 화재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소방관 10명(중상 2, 경상 8)과 경찰관 3명, 구청 관계자 4명, 주민 6명 등 23명이 다쳤다.
지하 1층, 지상 4층, 연면적 889㎡ 규모의 이 건물은 지난 1990년 11월 26일 사용승인을 받아 지상 2층과 3층을 목욕장으로 사용해왔다. 지하층엔 제4위험물 제2석유류(비수용성액체)로 분류되는 경유 약 5800ℓ가 저장돼 있었다. 경유는 목욕탕 특성상 물을 데우는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 보관해온 것으로 추정된다.
부산 목욕탕은 인화성 또는 발화성 등의 성질을 갖는 위험물을 지정수량 이상으로 저장하는 위험물저장소 중 ‘옥내에 있는 탱크에 위험물을 저장하는 장소’인 옥내탱크저장소로 허가받았다.
하지만 옥내탱크저장소는 위험물시설로 최초 허가를 받은 뒤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대상에선 쏙 빠져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현행 ‘위험물안전관리법’에 따르면 지하탱크저장소와 이동탱크저장소, 위험물을 취급하는 탱크로서 지하에 매설된 탱크가 있는 제조소ㆍ주유취급소 또는 일반취급소 등은 법에서 정한 규정에 따라 정기적으로 점검을 받아야 한다.
해당 시설에 선임된 위험물안전관리자는 제조소등이 각 기술기준에 적합한지를 연 1회 이상 점검하고 그 결과를 30일 이내에 시도지사에게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에 화재가 발생한 목욕탕은 이 정기점검 대상에서 빠졌다. 지하탱크나 옥외 탱크저장소 등의 시설보다 비교적 안전하다는 이유에서다.
소방청 관계자는 “옥내탱크저장소는 내화구조로 된 탱크 전용실에 위험물을 보관해 다른 시설보단 안전하다고 판단했다”며 “상대적으로 영세한 곳이 많아 규제 시 이점보단 불이익이 더 큰 점도 고려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해당 건물은 부산시가 2~4년마다 자체적으로 시행한 특별점검 때만 위험물시설 이상 유무를 점검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점검표 없고 처벌조항 부재… ‘곳곳’ 허점
부산소방에 따르면 이 건물은 지난 7년간 세 차례(’16ㆍ’18ㆍ’22년)만 점검이 진행됐다. 하지만 지자체를 통해 실시된 이 점검 과정에서 위험물 저장시설에 대한 안전성을 확실하게 체크하진 못 했을 거란 지적이 나온다. 옥내탱크저장소와 관련한 법규상 허점이 많기 때문이다.
<FPN/소방방재신문> 취재결과 옥내탱크저장소는 다른 위험물제조소등과 달리 위험물안전관리자가 위험물시설의 균열ㆍ손상 여부 등을 전반적으로 확인하는 ‘점검표’가 전무한 것으로 드러났다.
‘위험물안전관리법’상 모든 위험물제조소등엔 위험물시설을 점검하는 안전관리자가 배치된다. 이들은 점검표를 토대로 제조소등의 위치ㆍ구조 및 설비가 기술기준에 적합한지 점검하고 그 점검상황을 기록한 후 보존해야 한다. 그러나 옥내탱크저장소는 점검표 자체가 없어 안전관리자가 살펴봐야 하는 항목조차 분명하지 않다.
실제 옥내탱크저장소의 위험물안전관리자로 선임된 A 씨는 “주먹구구식으로 관리자마다 자발적인 별도의 서식을 만들거나 일반취급소 점검표로 점검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또 옥내탱크저장소는 정기점검 대상과 달리 위험물안전관리자가 1년에 최소 몇 번 이상 시행해야 하는 횟수 규정이 없다. 점검상황을 기록하고 보존하지 않았을 때의 벌칙 조항도 부재한 상황이다.
이용재 경민대학교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위험물안전관리자가 위험물시설을 안전관리하지 않았을 때의 처벌조항은 있지만 점검한 기록을 보존하지 않았을 때의 패널티가 없는 건 아이러니”라며 “처벌조항이 없으면 누가 제대로 지키겠나. 최소한 과태료를 부과하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소방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국의 위험물제조소등은 10만9112개소에 달한다. 이중 옥내탱크저장소는 9916개소로 전체 위험물제조소등의 약 9%를 차지하고 있다. 약 1만개소에 육박하는 옥내탱크저장소가 안전 사각지대로 방치되는 셈이다.
전문가들 “위험물관련법 미비점 한두 개 아냐”… 보완 시급
전문가들은 부산 목욕탕과 같은 위험물시설로 인한 유사 사고를 예방하려면 관련법 손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옥내탱크저장소에 대한 명확한 정기점검 체계 마련에 더해 현행 점검 제도 보완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지난 2018년 고양 저유소 화재 이후 2021년 10월 21일부터 위험물시설 정기점검 결과를 30일 이내 소방서로 의무 제출토록 법규를 강화했다. 하지만 이 규정은 부산 목욕탕처럼 옥내탱크저장소는 해당되지는 않는다.
또 법적 점검 대상이 되는 시설물의 경우 관계자(위험물안전관리자)가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이른바 ‘셀프점검’이다 보니 전문성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손주달 한국위험물안전협회장은 “현재 위험물시설 정기점검은 건물 관계인 등 위험물안전관리자가 점검표를 토대로 눈으로만 체크하고 있다”며 “소방점검처럼 측정 장비를 이용한 정량적, 실질적 점검이 이뤄져야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타 업종처럼 전문기관에서 주관하는 정밀 안전진단을 도입하거나 제출받은 관할소방서에서 한 번 더 표본 점검하는 등의 조치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소방시설처럼 위험물시설의 설계와 시공, 감리 영역에 대해 명확한 자격이나 등록 기준 등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어진다. 사고가 발생할 경우 각 업무 단계에 따른 책임소재를 가리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김승수 한국소방기술사회 위험물기술위원장은 “소방시설의 경우 설계ㆍ시공ㆍ감리자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분명하지만 위험물시설 설계ㆍ시공ㆍ감리자는 법적 등록규정이 없다”며 “이는 아무나 설계해도 되고 문제가 생겼을 때 처벌할 수도 없다는 걸 의미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설계ㆍ시공ㆍ감리자에 대한 책임 규정이 없으면 위험물시설의 품질이 떨어지게 되고 이는 곧 국민의 안전에 영향을 끼친다”며 “갈수록 위험물 종류와 취급하는 양이 많아지는 상황에서 ‘위험물안전관련법’만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정체돼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소방청은 지난 6일부터 내달 6일까지 전국 목욕탕 시설 중 지정수량 이상의 위험물을 사용하는 861개소에 대해 전수검사를 진행 중이다.
목욕탕에 설치된 위험물시설(옥내탱크저장소ㆍ지하탱크저장소 등)의 기술기준 적합 여부와 각종 소화설비ㆍ경보설비 정상작동 여부, 위험물안전관리자 선임 여부, 허가된 위험물 외 불법 위험물의 저장ㆍ취급 여부 등을 집중적으로 살필 계획이다.
소방청 관계자는 “이 결과를 바탕으로 필요시 옥내탱크저장소의 전국 단위 검사 추진과 제도적 미비점에 대한 보완을 중장기적으로 검토할 방침이다”고 밝혔다.
박준호 기자 parkjh@fpn119.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