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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주택 화재 잇따르는데… 거꾸로 간 화재안전기준

다른 규정 강화하면서도 공동주택 유도등 기준은 ‘어물쩍’ 완화
중형→ 소형으로 바꿔… “손바닥 만한 유도등 크기 문제 많다”
터무니없이 작아진 우리나라 ‘소형 유도등’, 과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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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 기자 | 기사입력 2024/02/26 [12:46]

공동주택 화재 잇따르는데… 거꾸로 간 화재안전기준

다른 규정 강화하면서도 공동주택 유도등 기준은 ‘어물쩍’ 완화
중형→ 소형으로 바꿔… “손바닥 만한 유도등 크기 문제 많다”
터무니없이 작아진 우리나라 ‘소형 유도등’, 과거보

최영 기자 | 입력 : 2024/02/26 [12:46]

▲ 실제 건물에 설치돼 있는 소형과 중형 피난 유도등의 비교 모습이다. 소형 유도등의 경우 일반 성인 남성이 한 손으로 쉽게 가려질 정도로 작은 것을 볼 수 있다.   © FPN


[FPN 최영 기자] = 올해 1월부터 새롭게 시행된 공동주택 화재안전기준이 논란을 낳고 있다. 화재 피해를 줄이기 위해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던 소방청 설명과는 달리 일부 유도등 기준은 어물쩍 완화해 버렸기 때문이다.

 

소방청은 지난해 10월 13일 공동주택 화재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안전기준을 강화한다며 화재안전성능기준을 제정ㆍ고시했다.

 

최근 5년간 2만3천건 이상 발생한 공동주택 화재로 332명이 숨지고 2525명이 다치는 등 피해가 잇따르면서 맞춤형 제도개선을 통해 법규를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올해 1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이 기준에 따라 앞으로 공동주택에는 1인이 사용 가능한 호스릴 옥내소화전을 설치해야 한다. 또 화재 장소를 구분하고 상시 상태 감시와 설치 환경에 따라 감도 조정 등이 가능한 아날로그방식 감지기 설치가 의무화됐다.

 

하나로 연결된 지하주차장 스프링클러설비 기준개수는 기존 10개에서 30개로 상향했다. 이 외에도 비상방송설비 확성기의 음성입력을 높이고 옥상 출입문에는 대형 크기의 피난구 유도등을 설치하도록 하는 등 관련 규정을 강화했다.

 

소방청의 이 같은 기준 마련 조치는 기존 공동주택의 안전성 저해 요소로 꼽혀온 여러 문제를 해소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 문제는 다른 규정들과는 달리 유독 ‘유도등’ 기준을 완화했다는 점이다.

 

새로운 화재안전기준이 만들어지기 전 공동주택에 설치되는 유도등은 ‘유도등 및 유도표지의 화재안전기준’에 따라 11층이 넘어가면 반드시 중형 피난구 유도등을 설치해야만 했다. 

 

그런데 새 기준에선 소방청의 법규 강화 취지가 무색하게도 소형 유도등을 설치하도록 규정을 바꿨다. 이 탓에 앞으로 공동주택 세대 내에서 계단으로 연결되는 출입구 상부에는 무조건 소형 유도등만을 설치해야 한다.

 

소형과 중형 유도등의 차이는 크다. 소방청 고시로 운영되는 현행 ‘유도등의 형식승인 및 제품검사의 기술기준’에선 피난구 또는 통로 유도등의 크기를 소형과 중형, 대형 등 세 가지로 분류한다.

 

중형은 한 면의 크기가 최소 크기가 20㎝ 이상이어야 하지만 소형은 그 절반인 10㎝ 이상으로 정하고 있다. 정사각형 유도등 크기로 제작될 땐 표시면 차이가 4배에 달한다. 

 

소형과 중형의 크기 구분점은 20㎝다. 실제 시중에 유통되는 소형 제품 대부분이 가로, 세로 13㎝ 크기인 것을 고려하면 중형 표시면보다 소형 제품이 2.3배 이상 작은 셈이다. 심지어 일부 업체는 10㎝ 크기까지 생산 중이어서 법규 완화에 따라 관련 업계가 단가 줄이기에 나선다면 초소형 제품들이 줄지어 탄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게다가 중형과 소형 유도등은 발하는 빛의 양(휘도)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유도등이 발산해야 하는 휘도 규정에 따라 중형의 경우 상용 점등 시 250㏅/㎡ 이상이어야 하지만 소형은 150㏅/㎡ 이상으로 100㏅/㎡나 낮다.

 

피난구 유도등은 화재 시 가장 직관적으로 출입구 위치와 방향을 인식할 수 있도록 알려주는 필수 피난시설이다. 고작 손바닥만 한 소형 크기의 유도등으로는 안전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소방기술자 A 씨는 “출입구 상단이나 천장에 설치되는 피난구 유도등의 경우 화재 시 발생하는 연기로 인해 가장 먼저 시야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다”며 “적정한 크기와 휘도가 나와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소형 유도등 크기는 작아도 너무 작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이나 유럽, 가까운 일본에서도 우리나라의 소형 유도등 같은 작은 크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EXIT’란 문구가 적혀 있거나 그림문자가 들어가는 유도등 대부분이 가로가 길고 세로가 짧은 형태로 우리나라 소형 유도등보다 2배 이상이 크다.

 

▲ 영국, 프랑스, 미국, 스페인, 베트남, 호주 등 세계 각국에서 사용되는 유도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유도등은 넓고 긴 형태의 모습이며 우리나라 소형 크기의 유도등은 찾아보기 힘들다.   © 오륜석 부경대학교 공학연구원 전임연구 교수 제공

 

근본적인 문제는 과거보다 터무니없이 작아지고 있는 우리나라 소형 유도등 자체와 무분별한 설치 규정에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너무 작은 크기를 허용하는 소방용품 기술기준도 문제지만 설치 규정을 정하는 화재안전기준조차 경제성을 따지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1990년대 형광등을 유도등 광원으로 사용할 당시 소형 유도등 표시면의 크기는 가로 50㎝, 세로는 15㎝ 정도로 긴 형태였다. 이후 내장되는 광원 소재가 CCFL(냉응극형광램프, Cold cathode Florecent Lamp) 등으로 변화하면서 소형 유도등 크기는 가로 40, 세로 15㎝로 줄어든 뒤 지금은 이 때 면적 대비 6배나 줄었다. LED 소자를 활용한 유도등이 등장하면서 소형 유도등 크기는 가로, 세로 10㎝ 크기까지 줄어버린 상황이다. 

 

이 같은 유도등의 크기 문제는 실제 화재 시 시인성에서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피난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 연구(반응시간 최소화를 위한 피난구 유도등 제작 및 설치 기준 개발, 오륜석)에 따르면 피난 유도등의 표시면은 한 변의 길이가 25.5㎝ 정도부터 응시거리에 관계없이 피난자들이 균일한 반응시간을 보였다. 반면 우리나라의 소형 유도등 크기는 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유도등 문제를 연구해온 오륜석 부경대학교 공학연구원 전임연구 교수는 “공간 규모와 실내조도, 기타 조명 등 주변 환경이 유도등 인지성능에 주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건축물 용도에 따라 크기와 성능을 지정하는 것은 무용지물로 만들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난자의 정확하고 신속한 피난을 위해선 무분별한 유도등 제작과 설계기준을 허용하고 있는 소방법규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영 기자 young@fpn119.co.kr

 

※ 우리나라 유도등에 관한 제보를 받습니다. 유도등의 의무 규격으로 운영되는 형식승인 기준 또는 설치 조건을 정한 화재안전기준 등 잘못된 기술과 제도는 물론 분야 발전과 개선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다양한 의견을 기다립니다(제보: young@fpn119.co.kr / 소방방재신문 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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