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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조명] “피난약자시설 해법 찾았다”… 부산소방, 전국 최초 가이드 정립

‘인명피난구조공간’ 신설 등 피난약자시설 피난 효율 극대화 방안 담겨
요양병원 20년 새 10배 늘어… “기존 피난시설로 참사 막을 수 있나”
해법으로 제시된 ‘인명피난구조공간’, 공간 분할ㆍ수평 피난 실현이 핵심
4일부터 가이드 시범 운영 돌입… 모니터링 후 전국 확대ㆍ법제화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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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윤 기자 | 기사입력 2025/04/03 [18:10]

[집중조명] “피난약자시설 해법 찾았다”… 부산소방, 전국 최초 가이드 정립

‘인명피난구조공간’ 신설 등 피난약자시설 피난 효율 극대화 방안 담겨
요양병원 20년 새 10배 늘어… “기존 피난시설로 참사 막을 수 있나”
해법으로 제시된 ‘인명피난구조공간’, 공간 분할ㆍ수평 피난 실현이 핵심
4일부터 가이드 시범 운영 돌입… 모니터링 후 전국 확대ㆍ법제화 추진

김태윤 기자 | 입력 : 2025/04/03 [18:10]

▲ 부산소방재난본부의 ‘인명피난구조공간 등 피난시설 적용 가이드’  © 김태윤 기자


[FPN 김태윤 기자] = 요양병원 등 피난약자시설에서의 피난 안전성 강화를 위해 부산소방재난본부(본부장 김조일)가 관련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

 

부산소방은 피난약자시설 내 수평방화구획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인명피난구조공간 등 피난시설 적용 가이드(이하 ‘부산소방 가이드’)’를 전국 최초로 마련하고 오는 4일 시범 운영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현재 피난약자시설에 설치되는 피난시설은 건축법령에 따라 규정된다. 하지만 세부 설치기준이 없어 지난 2021년 소방청은 ‘피난약자시설 대피공간 등 설치 및 안전관리 운영 가이드라인(이하 ‘소방청 가이드’)’을 마련하고 시설주 등에게 적용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부산소방에 따르면 ‘소방청 가이드’는 병상 크기와 개수 등을 고려하지 않은 면적 산정으로 인해 피난을 위한 대피공간과 노대등의 크기가 협소하게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또 법적 의무가 없어 적용을 위한 일관성이 부족하고 설치 후 운영ㆍ관리 실태 등에 대한 문제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화재소방 전문가들 사이에선 화재 시 피난을 위한 골든타임 확보가 어려워 대형 인명피해가 우려되는 등 실효성 문제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부산소방은 이 같은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지난해 하반기부터 소방방재 분야 교수 등 여러 전문가와 제도 개선 필요성을 논의해 왔다. 또 요양병원 관계자 설문 조사와 화재안전성능평가, 자료 분석 등을 거쳐 이번 ‘부산소방 가이드’를 마련했다.

 

‘부산소방 가이드’의 가장 큰 특징은 층별 영업장을 2개 이상 구역으로 수평방화구획하는 인명피난구조공간 조성 방안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부산소방에 따르면 이 인명피난구조공간은 연기와 화염을 차단해 피난 소요 시간을 두 배 이상 단축시킨다. 또 소방대가 화재 구역에선 화재진압, 비화재 구역에선 인명 구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소방활동 환경을 개선해 준다.

 

이 밖에도 ▲대피공간ㆍ노대등 크기 확대 ▲대피공간ㆍ노대등 내부에 설비배관과 가연성 장식물 설치 금지 ▲화재 시 시설 관계인, 119상황실 간 신속한 정보 공유와 대응을 위한 훈련 매뉴얼 등의 내용이 담겼다.

 

김조일 본부장은 “현행 ‘건축법’엔 대피공간 등 피난시설에 대한 세부 설치기준이 없어 안전에 대한 국민 불안감이 큰 실정이었다”며 “적극적인 ‘부산소방 가이드’ 홍보와 지속적인 모니터링, 관계 기관과의 긴밀한 협업으로 안전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등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예방행정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최근 여러 화재로 안타까운 소식이 연일 전해지는 가운데 이번 시범 운영과 같은 선제적 화재안전대책 시행으로 시민 체감 안전도와 행정 신뢰도를 높이겠다”며 “직관적 피난 동선 확보로 피난약자시설의 자력 피난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등 시민 안전에 부산시가 앞장서겠다”고 전했다.

 

피난약자시설 화재안전대책으로 떠오른 부산소방 가이드, 내용은?

 

요양병원 등 피난약자시설, 화재 시 왜 위험한가 = ‘부산소방 가이드’에서 말하는 피난약자시설은 사회 통념상 사용되는 용어다. 화재 등 재난 발생 시 자력 대피가 곤란한 환자들이 요양ㆍ거주하는 시설로 정의할 수 있다. ‘건축법 시행령’ 제46조(방화구획 등의 설치) 제6항에 명시된 요양병원과 정신병원, 노인요양시설, 장애인거주시설, 장애인의료재활시설이 해당된다.

 

피난약자시설 중 하나인 요양병원의 경우 의학 기술 발달 등으로 노인 인구가 늘며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다. 실제로 전국 요양병원은 2005년 120개소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엔 1382개소로 집계됐다.

 

문제는 이 같은 피난약자시설이 다른 시설보다 화재 시 인명피해 발생 위험이 크다는 점이다. 요양병원 등은 24시간 고령의 입원 환자(와상 환자)를 돌보기 때문에 신속한 대피가 이뤄지기 힘들다. 특히 직통계단 등을 통한 수직 피난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 수평 피난에 대한 대책이 요구돼 왔다.

 

▲ 지난 2018년 192명의 사상자(사망 47, 중상 7, 경상 138)를 낸 밀양 세종병원 화재 현장. 화재 당시 의료 관계자 1명당 약 8명의 환자 대피를 유도해야 했다.  © FPN

 

근무 인원 부족도 위험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부산소방에 따르면 대부분의 피난약자시설은 의료인 1명이 부담해야 하는 환자 수가 과도하게 많다. 이는 원활한 피난 보조 활동을 가로막는 원인이 된다. 실제 지난 2018년 192명의 사상자(사망 47, 중상 7, 경상 138)를 낸 밀양 세종병원 화재의 경우 의료 관계자 1명당 약 8명의 환자 대피를 유도해야 했다.

 

입원실 출입문의 사용상 편의를 위해 방화문 대신 나무나 유리로 만든 미닫이문을 사용한다는 점 역시 위험 요소로 지목된다. 이 경우 화재 연기와 열에 환자가 직접 노출될 수 있고 이는 인명피해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실효성 없는 현행법… 문제가 뭐길래 = 피난약자시설 화재 안전성 확보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2018년 밀양 세종병원 화재와 이듬해 김포 요양병원 화재 등이 남긴 막대한 인명피해는 국민적 트라우마를 불러왔다. 또 급속한 초고령 사회 진입과 돌봄서비스 이용 노인의 폭발적인 증가는 피난약자시설 화재 안전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이를 위해 피난시설 세부 설치기준이 부재한 현행 ‘건축법 시행령’을 개정하고 수평 피난 방안을 마련하는 등 피난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게 부산소방 시각이다.

 

▲ '건축법 시행령' 제46조(방화구획 등의 설치) 제6항에 규정된 피난시설들  © 부산소방재난본부 제공

 

현행법상 피난약자시설의 피난층 외의 층엔 ▲층마다 별도로 방화구획된 대피공간 ▲거실에 접해 설치된 노대등 ▲계단을 이용하지 않고 건물 외부 지상으로 통하는 경사로 또는 인접 건축물로 피난할 수 있는 연결복도나 연결통로 등 세 가지 중 하나가 설치돼야 한다. 이 같은 규정은 지난 2015년 9월 개정된 ‘건축법 시행령’을 통해 법제화됐다.

 

하지만 관련 법령을 바꾼 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부 기준은 마련되지 않았다. 이에 소방청은 지난 2021년 10월 ‘소방청 가이드’를 발표하고 시설주 등에게 적용을 권고하고 있다.

 

한계는 ‘소방청 가이드’의 법적 구속력이다. 사실상 권고 수준에 그치는 가이드로는 처벌이나 강제 집행이 힘든 게 현실이다. 게다가 관련 기준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적지 않다.

 

피난약자시설엔 층별 대피공간이나 노대등을 설치하는 경우가 많다. 건축법령에 따라 설치 의무가 부여된 피난시설 구성 방안 중 경사로의 경우 공간 확보가 어렵고 연결복도ㆍ통로는 부지 내 규모가 비슷한 2개 동 이상의 건축물이 인접해야만 구현할 수 있어서다.

 

건축법령과 맞물려 하나의 기준으로 준용하는 ‘소방청 가이드’에선 대피공간과 노대등의 설치 방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 공간이 협소하고 화재 시 출입문 등 개구부를 통해 열ㆍ연기가 확산할 우려가 있어 피난 공간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게 부산소방 분석이다.

 

현실 맞춤형 피난구조공간 구성 방안 찾은 ‘부산소방’ = ‘부산소방 가이드’의 가장 큰 차별성은 인명피난구조공간에 관한 설치기준을 신설하고 협소한 대피공간과 노대등의 크기를 확대하는 등 실질적 피난 효과를 고려했다는 점이다.

 

핵심은 요양병원 등 피난약자시설을 하나의 층마다 최소 2개 구역으로 방화구획해 인명피난구조공간을 구성하도록 한 점이다. 화재 시 신속한 수평 피난과 원활한 소방활동까지 가능하도록 한 공간이다.

 

한 층을 2개 이상의 구역으로 나누는 만큼 한쪽 구역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자연스레 다른 쪽 구역이 인명피난구조공간의 역할을 하게 되는 방식이다. 공간 사이는 방화문(60분, 60분+) 또는 방화셔터(스크린) 등을 활용해 방화구획하도록 했다.

 

▲ 인명피난구조공간 평면도(복도, 통로 구조)  © 부산소방재난본부 제공

 

가이드 개발을 추진해 온 부산소방 소방제도계 관계자는 “이 방식을 적용하면 기존 국지적 대피공간에 비해 충분한 대피공간 면적을 확보할 수 있고 피난 동선상의 출입문 등 개구부 개방에 따른 열ㆍ연기 노출도 최소화할 수 있다”며 “피난 소요 시간은 두 배 이상 줄어드는 거로 분석됐다”고 설명했다.

 

이 방식의 장점 중 하나는 신속한 피난으로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수평 피난 방식인 만큼 계단 등을 거치지 않아도 되고 병상째 환자를 옮길 수 있다. 비교적 적은 인력으로도 많은 거동 불편자를 피난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더불어 현장에 출동한 소방대는 화재 구역과 인명피난구조공간(비화재 구역)을 완벽히 구분해 각 구역 특성에 맞춘 효과적인 대응을 펼칠 수 있게 된다. 

 

이 같은 방식의 대책은 가이드 정립 과정에서 전문가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검토에 참여한 이영주 경일대학교 소방방재학부 교수는 “실효성이 낮은 대피공간보다 수평방화구획을 통한 인명피난구조공간의 설치가 더 바람직하다”며 “해외 의료시설 등에선 이와 같은 개념의 설계를 기본적으로 반영하고 있다”고 했다.

 

부산소방 “인명피난구조공간 법제화, 전국 확대 적극 추진” = 부산소방은 인명피난구조공간을 설치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부산소방 가이드’가 정착되면 최소한의 피난 조력만으로도 비화재 구역으로의 신속한 대피는 물론 원활한 화재진압, 인명 구조 환경 등이 만들어질 수 있을 거로 기대하고 있다.

 

부산소방은 3일 가이드 시행을 위한 행정 절차와 관련 기관 간 협의를 모두 마치고 오는 4일 시범 운영에 들어간다. 이에 따라 앞으로 건축 허가 또는 용도변경 허가를 신청하는 대상물은 가이드 기준을 적용해야 할 전망이다.

 

가이드는 기존에 건축된 피난약자시설에도 적용된다. 부산소방은 정부나 부산시의 지방보조사업 등으로 예산을 마련해 소급 적용에 대한 관계인 부담을 최소화할 방침이다. 특히 요양병원과 노인요양시설 등 대표적 피난약자시설을 중심으로 순차적으로 적용할 계획이다. 다만 기존 대상물 중 가이드에 따른 공사가 현저히 곤란할 경우에 대해선 일부 완화 적용한다.

 

부산시 건축정책과는 이 같은 가이드 내용의 법제화를 국토교통부에 건의하고 군ㆍ구 건축허가 부서에 안내할 계획이다. 부산소방 역시 ‘소방청 가이드’ 개선을 소방청에 건의하는 한편 전국 소방서 담당 부서에도 안내할 예정이다. 또 법제화 전까지는 부산 내 자체 시행을 통해 효과성을 검증하고 향후 전국 확대를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김태윤 기자 tyry9798@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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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최장우 한국소방시설협회 강원도회장 “운영위원회 확대해 회원사 소통 강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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