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안녕! 아프리카, 봉쥬르(Bonjour)! 카메룬 30년, 수많은 언덕을 넘어 이제 정년이 보였다. 그런 소방관 인생에 꿈도 꾼 적 없던 인식 저편 아득한 아프리카 카메룬이 훅 치고 들어 왔다. ‘카메룬 병원 전 응급의료 구축 프로젝트’ 현지 매니저 일을 제안받았을 때 오래전에 읽었던 한수산의 소설 ‘아프리카여 안녕’이 떠올랐다.
하지만 왜 그 소설 제목이 ‘아프리카여 안녕’인지도 그 안녕이 어떤 안녕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소방관 생활을 그만두고 그런 멀고도 먼 아프리카로 가는 데 큰 주저함은 없었다.
다만 나이 많으신 어머니가 가시처럼 걸렸다. 아프리카에 가고 싶다는 아들의 결정에 어머니는 걱정과 염려, 불안하신 표정과 말로 반대하셨다.
여든을 훌쩍 넘긴 어머니에게 아프리카는 빈곤과 굶주림으로 쩍쩍 갈라진, 국제 구호 단체나 가는 메마른 땅이었다. 화재 현장에서 불 끄는 것보다 더 위험해 보이는 그런 ‘기아의 땅’에 아들이 가겠다니 어머니의 반대는 당연했다. 하지만 노모는 ‘이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라’며 눈물로 아들의 가시를 빼주셨다.
2024년 11월 5일로 접어든 이른 새벽을 날아 중간 기착지인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공항에 도착했다. 여기가 아프리카라는 어떤 감상도 틀어막을 만큼 아디스아바바 공항은 혼잡했다. 마치 “어때? 여기가 아프리카야”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야운데(Yaounde)행 비행기로 갈아타는데 주어진 시간은 단 1시간 20분. 환승 검사 대기 줄이 엄청났다. 아프리카 허브공항이라 그런지 이렇게 정신없고 사람 많은 곳은 처음이었다.
야운데 굿네이버스 조대성 대표 부부와 같은 비행기를 탄 게 아프리카에서의 첫 행운이었다.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잔뼈가 굵으신 이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분명 야운데행 비행기를 놓쳤을 것이다.
고국을 출발한 같은 날, 11월 5일 화요일 정오 무렵 카메룬 수도 야운데 은시말렌 공항에 첫발을 내디뎠다. 카메룬은 한국보다 8시간이 늦다. 명퇴하고 단 5일 만이었다. 꿈에서조차 생각해 본 적 없던 아프리카 카메룬으로 튄 반전 인생이자 새로운 도전의 2막이 시작됐다.
돌다리를 두드리고도 주저하는 내 성격에 비춰보면 과장해서 ‘아프리카 뽕’을 맞은 것과 다름없었다. 고백건대 사업의 주체가 국제적 원조 기구인 대한민국 코이카(KOICA)라는 것과 현지 매니저 일을 제안해 주신 분이 서울대학교병원 신상도 교수이신 점이 나를 결심하게 만든 뱃심의 배경이 됐다.
게다가 현장 구급대원과 상황실 경험 등 소방관으로 쌓아온 업무 경험이 이번 프로젝트와 상당 부분 겹쳤다.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방화복과 공기호흡기를 지탱해야 할 몸이 긴 숨을 참아내지 못한 지 한참 후에야 겨우 단 소방경 자리를 붙잡고 남은 정년을 채우느니 이제는 무식해도 용감해지고 싶었다.
사실 오랫동안 소방학교 구급 교수나 퇴직 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소망해왔다. 하지만 내가 선택하고 열려고 했던 문은 닫혀 있었고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다른 문이 튀듯이 열렸다.
그 열린 문을 통해 아프리카 카메룬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렇게 카메룬 야운데 병원 전 응급의료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 현지 매니저로 인생 2막을 시작했다.
대한민국 코이카가 추진하고 서울대학교병원이 맡아 카메룬 보건부, 미국 질병 통제소(CDC-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세계보건기구(WHO-World Health Organization)가 함께 참여하는 이 프로젝트가 국제 다자 협력사업의 새로운 시도로 주목받고 있음을 나중에 알았다.
구급차와 소방차 공여를 몽골 다음으로 가장 많이 받아 대한민국 소방과 꽤 인연이 깊은 나라가 카메룬이라는 것도 몰랐다. 이렇게 관심 밖이던 아프리카 카메룬. 세상은 넓고 나의 세상에 대한 이해가 만두피만큼 얇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줬다.
무엇보다 아프리카는 값싼 땅인 줄 알았다. 동남아 여러 나라보다 더 가성비 좋은 나라들이 있는 대륙으로 생각했다. 야생의 날것 그대로의 풍광과 자연의 품속에서 생활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큰 착각이었다. 카메룬 야운데는 비싼 도시였다. 외국인에게 비싼 도시라는 말이 적합한 표현일 것이다. 출국 전 검색해 본 호텔 가격이 상당했다. 동남아 여느 나라 비슷한 수준의 호텔보다 비싼 가격이라 바스토스(Bastos) 지역에 있는 에어비앤비를 1박당 14만원 정도에 일주일을 예약했다.
야운데 바스토스는 대사관과 국제기구 등 주로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동네인데 월세 200만원은 기본값으로 각오해야 했다. 지금까지 적지 않은 나라를 여행했는데 그중 카메룬은 가성비 최악의 나라였다. 월세뿐 아니라 일상 생활용품 역시 한 가격씩 했다.
질이 다이소에서 파는 물건의 반에도 못 미치는데 가격은 두 배 내지 세 배였다. 저렴한 비용으로 한국에서의 생활 수준과 비슷하게나마 누리면서 살 수 없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카메룬은 가난한 나라다. 가난의 또 다른 얼굴은 오염이다. 특히 대기 오염이 심각했다. 폐차를 넘어 고철에 가까운 차들이 버젓이 운행되는 곳이다.
곳곳이 파인 좁은 도로에 옛날 연식의 차들이 내뿜은 매연으로 가득한 울퉁불퉁한 길가를 걷는 게 힘들었다. 길가에 방치된 쓰레기 더미를 태우는 냄새가 화재 현장 유독가스 기억을 자극하기도 했다.
카메룬에 온 지 3주 만에 신상도, 정중식, 노영선 교수 등 일곱 분의 프로젝트 각 분야 전문가 선생님이 첫 번째 출장을 오셨다. 열흘하고도 이틀 동안 카메룬 보건부, CDCㆍWHO 카메룬 지부, 큐리(CURY)병원, 야운데 의대 등 프로젝트 참여 여러 기관과의 회의, 실태 파악 등 바쁜 일정이었다.
그 전에 카메룬 공식 행사에 걸맞은 전통의상을 맞추고 싶었다. 사실 나는 옷을 직접 사 본 적이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사람이다. 옷에 대한 감각이 꽝인 데다 평생을 제복 공무원으로 살았던 탓이다.
그렇지만 카메룬 분들에게 전통 공식 복장으로 이 땅의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는 내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집주인 마담 로지(Rosy)에게 부탁해 칭가(Tsinga)라는 동네에 전통의상을 맞추러 갔다.
우리 돈 16만원 정도 들었는데 내 의지로 이 정도 고가의 맞춤옷을 사본 건 처음인 것 같다. 재봉사 보조로 보이는 10대가 옷 맞추러 온 외국인이 신기했나 보다. 옷 만드는 빈방으로 끌더니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각자 휴대전화로 한 장씩 찍었다.
이번 1차 출장에서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인 착수 보고 회의(Kick-Off Meeting)가 12월 2일 월요일 카메룬 보건부(The Department of Public Health) 청사에서 차관 주재로 열렸다.
회의 모두에 신상도 교수께서 프로젝트 소개 발표를 하셨다. 프로젝트 참여 기관 책임자들, 코이카 김상철 소장과 서주희 부소장이 의견을 내고 보건부 차관이 조율하면서 응급의료체계 구축 사업의 구체적인 틀이 결정됐다.
이후 여러 번의 세부 회의와 현지 조사가 계획대로 무탈하게 마무리됐다. 예기치 못한 변수가 없진 않았지만 아직 카메룬 땅에 깊이 뿌리 내리지 못한 내게 참 고마운 일이다.
이번 출장의 실무자인 김수희 팀장 등 도와주신 모든 분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아직 부초(浮草)처럼 흔들리는 카메룬 생활을 소개할 지면을 내어주신 <119플러스>에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앞으로 이 귀한 지면을 통해 현직에 계신 소방 동료들이 경력을 쌓고 퇴직 후 인생을 설계하는 데 작은 참고 사례가 되길 희망한다. 한 마디 더 덧붙여 코이카에서 의료 분야 카메룬 봉사단원을 모집하고 있으니 관심 가져주시길….
유기운 서울에서 생계형 소방관으로 30년 근무했다. 현재 소방관 인생을 마무리하고 갑자기 아프리카로 튀어 카메룬 야운데에서 코이카 병원 전 응급의료체계(EMSS) 구축 프로젝트 현지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PMC_ 유기운 : waterfire119@naver.com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5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프리카로 튄 소방관의 퇴직 인생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