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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로 튄 소방관의 퇴직 인생-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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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PMC 유기운 | 기사입력 2025/06/02 [10:00]

아프리카로 튄 소방관의 퇴직 인생- Ⅱ

서울대병원 PMC 유기운 | 입력 : 2025/06/02 [10:00]

02. 아프리카 초짜의 아프면서 카메룬 

프로젝트 1차 출장 기간 주말에 신상도, 정중식 교수의 오랜 친구인 큐리 병원 의사 메토고(Metogo) 씨 집을 출장팀과 방문했다. 저녁 식사 대접도 잘 받았고 무엇보다 메토고 씨 부친인 음바가 메토고(Mbarga Metogo) 선생이 자신의 결혼 50주년 파티에 초대해 주셨다. 

 

출장팀이 한국으로 돌아간 뒤인 2024년 12월 21일 야운데 바스토스에서 차로 1시간 반 정도 떨어진 캄파(Kampa)에서 선생의 금혼식이 열렸다.

 

마땅한 선물을 구하기 어려워 한국에서 가져간 마스크 팩 등 작은 선물을 준비해 갔다. 그나마 우리나라 전통 혼례 카드가 있어 축하의 마음을 담아 변변치 않은 선물을 대신할 수 있었다. 

 

▲ 음바가 메토고 선생의 금혼식 초대장과 결혼 50주년 축제

 

캄파는 시골이지만 생각보다 도로 사정이 야운데보다 좋았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곳곳에 축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금혼식이 열린 곳은 선생의 고향 집으로 저택이었다. 입구에는 무장한 군인들이 보였다. 음바가 메토고 선생의 친구인 현직 총리 부부가 참석했기 때문으로 보였다.

 

안에는 십여 명의 경호원도 있었다. 금혼식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진행됐다. 교회 예배를 겸한 금혼식은 축제의 한마당이었다. 여기에 아프리카의 흥이 더해지니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특히 교회 성가대 합창은 1992년 영화 우피 골드버그의 ‘시스터 액트’가 떠오를 만큼 아프리카 특유의 소울(Soul)이 넘쳐 내성적인 나조차 어깨를 들썩이게 했다.

 

선생의 자녀 11명과 며느리, 사위 그리고 손자, 손녀들이 인생의 고락을 함께한 부모 앞에서 펼치는 가족 공연은 특별함을 넘어 감동 그 자체였다. 축제를 카메라에 담으면서 그들처럼 감동의 일부가 됐다. 

 

▲ 교회 성가대

 

▲ 손님들의 축하 인사

 

주위에 경호원을 둔 총리 부부 역시 자리를 뜰 때까지 축제와 이질적이지 않았다. 돌아가는 총리 부부에게 메토고 선생은 살아있는 암염소 한 마리와 와인 한 상자 그리고 쁠랑땅 한 무더기를 선물로 줬다. 

 

쁠랑땅은 바나나와 같은 모양에 바나나보다 크기가 큰데 주로 카메룬 사람들이 튀기거나 쪄 먹는다. 닥터 메토고가 아버지께서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셨다면서 차가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총리 부부에게 하신 것처럼 염소 한 마리와 와인 한 상자, 쁠랑땅을 차에 실어 주셨다. 

 

이 세 가지 선물은 귀한 손님에게 드리는 카메룬 전통이라는데 총리 부부를 카메라로 찍으면서 본 염소 몇 마리 중 한 마리가 나에게 선물로 주어질지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순간 ‘살아있는 생명을 어떻게 하지?’라는 난감한 생각이 스쳤지만 백 명이 훌쩍 넘은 하객 중에서 단 몇 사람에게만 주는 특별한 선물을 사양하는 건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에 감사히 받았다.

 

▲ 의사 메토고 씨 부부, 현지 봉사단원 김수미 간호사 선생, 우리 부부

 

▲ 선물로 받은 염소, 와인 한 상자, 쁠랑땅

 

이제 축제에서 데려온 어린 염소가 숙제로 남았다. 우여곡절 끝에 옥수수밭이 딸린 뒷집에 맡겼는데 자주 울어대니 임시 보호에 불과했다. 결국 교민의 현지 운전 기사에게 시장에 팔아달라고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염소값은 정중식 교수께서 돈 없는 환자를 위해 마련하신 큐리 병원 코리아 펀드에 보태거나 가난한 집 아이를 위해 쓸 생각으로 남겨뒀다. 

 

음바가 메토고 선생 금혼식에 참석하기 사흘 전인 12월 18일부터 야운데 응급의료센터(Centre des Urgences de Yaoundé)인 큐리(CURY)로 출근을 시작했다. 큐리는 대한민국 국민을 대신해 코이카가 2015년에 지은 카메룬 최초 응급 의료 전문병원이다. 

 

응급의료체계 거점 병원인 큐리를 확장하는 2차 큐리 사업이 프로젝트에 포함되면서 현지 매니저인 내가 서둘러야 할 일 중 하나가 큐리 구급대원 교육이었다. 

 

▲ 2015년 큐리 병원 개원식 사진

 

▲ 큐리 2차 건축 예정지인 주차장에서 본 2025년 큐리 

 

야운데 바스토스 월세 집에서 큐리까지 출근을 위해 굿네이버스 임무를 마치고 귀국하는 한국인 부부의 차를 샀다. 오랜 연식의 차였지만 이 정도면 카메룬에서 그래도 괜찮은 차에 속했다. 사실 나는 운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무사고 장롱면허 소유자다. 

 

이 도시의 누더기 도로에 차와 오토바이, 사람이 쉽게 뒤섞이는 혼잡함을 보고 운전에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차가 없는 불편함이 용기를 내게 했다.

 

야운데에는 버스나 트램 같은 대중교통이 없다. 일제 중고 경차 택시들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길가에 선 승객들은 운행 중인 택시에 행선지와 요금을 불러 맞으면 탄다. 

 

운전사는 그 작은 공간에 한 몸집 하는 카메룬 사람들을 자신 포함 7명까지도 욱여넣는다. 야운데 택시에는 에어컨이 없다. 길가 손님과의 흥정을 위해 항상 창문을 연 채 달리면서 같은 방향의 손님을 더 태우기 위해 수시로 차를 세운다. 매연이 더운 바람을 타고 흘러든다. 오늘 탄 택시에는 사이드미러가 없었다. 

 

오토바이도 야운데 사람들의 발 역할을 한다. 지나가는 오토바이 운전자에게 얼마에 어디까지 가자고 하면 데려다준다. 야운데에도 카카오택시 같은 택시 호출 서비스인 양고(Yango)가 있다.

 

하지만 신속성과 정확성이 떨어지고 양고 운전사들이 주로 불어를 사용해 의사소통도 걸림돌이었다. 카메룬에서의 운전은 내 차가 카메룬 택시처럼 변해가면서 차츰 익숙해졌다. 

 

▲ 야운데 중심가 큐리 병원 출근길 

 

▲ 야운데 끝 소아(SOA) 출장지에서 카메룬 가족과 함께

 

내 사무실은 병원 3층에 있었다. 먼저 와계신 코이카 봉사단원 김수미 간호사 선생과 같은 방을 쓰게 됐다. 과거 큐리 부원장으로 일하신 정중식 교수께서 쓰신 사무실이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큐리 병원에서 원장과 임원 사무실 다음으로 좋은 공간이었다. 

 

모두 코이카 사무실에서 마음 써준 덕분이었다. 큐리 의사들과 직원들이 일하는 비좁고 무더운 사무 공간을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큐리 출근 후 무엇보다 병원 직원들, 특히 구급대원들과 친해지고 서로 믿는 관계(rapport, 라포)가 되려고 노력했다. 급하게 프로젝트 과제를 추진하기보다 카메룬 사람들의 정서와 문화에 익숙해지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먼저 인사하고 먹을 것을 나눴다. 같이 밥을 먹기도 했다. 라포는 큐리뿐 아니라 이번 프로젝트와 관련 있는 모든 카메룬 인사,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이웃과도 잘 맺고 싶었다.

 

큐리에 적응하는 데 코이카 김상철 소장님과 서주희 부소장, 사무실 직원들 그리고 코이카 봉사단원 김수미 간호사 선생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 큐리 구급대 1차 교육 공고

 

그렇게 큐리 사람들과 구급대원 수준ㆍ교육 여건을 파악하면서 교육을 시작할 준비를 해갔다. 첫 교육을 2025년 1월 15일로 잡았다. 큐리 원장에게 교육 계획을 보고하고 불어로 된 교육 공고문을 병원 게시판에 붙였다. 

 

▲ 교육 PPT의 첫 슬라이드

 

교육 PPT를 만들면서 첫 슬라이드에 큐리 구급대 동료들을 찍은 사진으로 CURY 글자를 꾸몄다. 구급대원들의 다양한 얼굴 사진으로 CURY라는 의미를 만들 듯 나도 카메룬 초짜의 위기를 넘겨 가며 퇴직 후 인생 2막의 의미를 만들어가고 싶었다. 카메룬 생활은 기대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살만했다.

 


유기운

서울에서 생계형 소방관으로 30년 근무했다. 현재 소방관 인생을 마무리하고 갑자기 아프리카로 튀어 카메룬 야운데에서 코이카 병원 전 응급의료체계(EMSS) 구축 프로젝트 현지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PMC_ 유기운 : waterfire119@naver.com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6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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