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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기고] AI 도입의 병목은 기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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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리스크랩 연구소장(공학박사/기술사) | 기사입력 2025/10/27 [12:54]

[전문가 기고] AI 도입의 병목은 기술이 아니다

김훈 리스크랩 연구소장(공학박사/기술사) | 입력 : 2025/10/27 [12:54]

▲ 김훈 리스크랩 연구소장(공학박사/기술사)     ©FPN

 

한국은 ICT 강국으로 불릴 만큼 기술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지만 AI 도입 속도만 놓고 보면 선진국 중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중소벤처기업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대기업의 AI 활용률은 9.2%인 반면 전체 고용의 90%를 책임지는 중소기업의 AI 활용률은 2%에 불과하다.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기술적인 문제이기보다는 제도와 사회, 조직, 문화가 문제다.

 

​한때 일본은 세계 최고의 제조국이었다. 그러나 과거의 그 성공 경험이 일본 경제의 발목을 잡았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단순한 경제 위기가 아니라 패러다임 전환의 실패였다. 부동산과 주식 버블의 붕괴는 계기였을 뿐 더 근본적인 원인은 산업구조 변화에 대한 거부였다. 

 

일본은 버블 붕괴 후 대대적 구조조정 대신 기존 질서의 유지를 택했다. 정부 관료와 기업은 연착륙을 시도했지만 그런 시도는 연착륙이 아닌 경기 침체로 이어졌다. 버블 시기에 만들어진 행정과 금융 시스템은 그대로 유지됐고 일본 정부는 규정 준수와 절차 완비에만 집착했다.

 

한국은 6.25 전쟁 이후 불과 30년 만에 산업화를 이뤄내고 2021년에는 UN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선진국 지위를 얻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우리는 GDP 3만 불 덫에 갇혀있다.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일본처럼 패러다임 전환에 실패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우리는 1998년 IMF 위기 이후 정보통신산업에 과감히 투자해 IT 강국으로 도약했지만 AI 시대의 전환에는 뒤처지고 있다.

 

세계 최대 글로벌 컨설팅 기업 Accentura의 조사에 따르면 AI 도입으로 예상되는 생산성 증가율은 스웨덴(37%), 미국(35%), 일본(34%) 순이다. 한국은 중간 수준인 21%에 그쳤다. 생산성 향상률이 높은 국가는 공통적으로 인적자본 수준이 높고 지식 집약적 산업 비중이 크다. 또 데이터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제도와 정책이 우수하다. 한국도 이러한 특징을 두루 갖추고 있지만 제도와 정책이 과연 우수한지는 미지수다.

 

 

한국의 AI 기술도입이 늦어지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위험을 회피하는 조직문화다. AI 기술 도입은 초기 비용이 크고 수익성이 불확실하다. 그 불확실성을 감내하기보다 시범사업 수준에서 멈추는 경우가 많다. 과거 한국은 도전적인 기업가 정신으로 성장했지만 지금은 실패 가능성이 높은 시도를 꺼리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둘째, 정부 부처 간 데이터의 폐쇄성이다. 행정기관은 데이터를 공공재가 아닌 권한의 근거로 인식한다. 데이터 공유는 권한 축소로 해석되고 여기에 ‘유출 시 누가 책임지는가’라는 불분명한 책임 체계가 더해지며 결과적으로 ‘공유하지 않는 게 안전하다’는 논리가 지배하게 된다.

 

셋째, 중소기업의 디지털 격차다. 대기업 중심으로 AI가 확산되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인력ㆍ예산ㆍ인프라 모두 부족하다. 산업통상자원부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의 AI 도입률은 37.1% 지만 중소기업은 5.3%에 불과하다. 정부 차원의 집중적 지원이 절실하다.

 

넷째, 정책의 단기성과 제도의 모호함이다. 정부의 AI 예산은 매년 늘고 있지만 대부분 연구개발 중심이다. 실제 산업 현장에서 활용을 촉진할 제도적 장치는 미미하며 ‘개인정보보호법’과 ‘공공데이터법’, ‘전자정부법’은 서로 충돌해 데이터 활용의 회색 지대만 넓히고 있다.

 

다섯째, AI의 사회적 수용성과 책임 문제다. AI가 의사결정을 대체한다는 개념에 대해 사회적 신뢰가 낮고 오류나 피해 발생 시 책임 주체가 불명확하다. 이는 기술 도입을 늦추는 심리적ㆍ제도적 장애가 된다.

 

​올해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가 넘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UN 기준으로 고령화사회(7%), 고령사회(14%), 초고령 사회(20%)를 구분하는데 우리 사회는 가장 빠른 속도로 마지막 단계에 도달했다. 이 속도라면 2050년에는 고령인구 비율이 40%를 넘게 된다. 일본의 장기 침체가 ‘변화에 대한 거부’에서 시작됐다면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 한국에서도 그렇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한국은 선진국 중 그 어느 나라보다 기술ㆍ문화적 강국이지만 지금 우리의 제도와 정책, 그리고 조직의 반응 속도는 매우 느리다. 지금 개혁의 박차를 가하지 않으면 변화의 동력은 점차 힘을 잃게 된다. 개혁은 뼈를 깎는 노력을 바탕으로 한다. 세계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우리가 3만 달러의 덫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패러다임의 전환뿐이다.

 

김훈 리스크랩 연구소장(공학박사/기술사) 

 

※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 등은 <FPN/소방방재신문>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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