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소방연구원, 비엔나 유럽응급의학회(EUSEM)에 가다 소방청 소속 국립소방연구원은 2024년 대응기술연구실 안전대응연구팀에서 구급 분야 연구를 수행했다. 당시 구급대원의 바디캠(Body-Worn Camera) 활용 연구와 구급차 안전장치 관련 연구를 진행했다.
두 연구 모두 현장의 문제에서 출발해 학문적으로 분석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한 사례로 구급현장의 안전과 효율을 높이는 데 실질적인 의미가 있었다.
이듬해인 2025년, 연구원은 조직 개편을 단행해 대응기술연구과 산하에 구조구급연구팀을 신설했다. 구급 연구를 전담하는 독립팀이 만들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곧 우리나라 구급 연구가 제도적 기반 위에서 본격적으로 추진될 계기가 됐다.
앞서 수행한 두 건의 연구는 ‘유럽응급의학회 2025’에 투고돼 최종 학술발표 승인을 받았다. 이에 연구팀은 소방청의 국외 출장 지원 대상으로 선정돼 국제 학술 무대에서 연구 성과를 발표할 기회를 얻게 됐다.
연구자들에게는 단순한 학회 참가가 아닌 구조구급연구팀의 첫 국제무대 데뷔라는 점에서 굉장한 의미가 있었다.
출장단은 필자(국외 출장 계획 수립ㆍ 일정 관리, 구급대원 바디캠 연구 발표)와 박민영 선임연구원(현지 의사소통 지원, 구급차 안전장치 발표), 김홍식 대응기술연구과장(출장 단장, 국외 업무 총괄ㆍ로젠바우어 본사 소통) 등 세 명으로 구성됐다.
출발 당일 연구원에 모인 출장단은 이른 아침 차량에 올라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했다. 긴장과 설렘이 교차하는 차 안에서는 마지막으로 발표 자료를 점검하거나 현지 일정을 다시 확인했다.
공항에 도착한 뒤에는 장기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셔틀버스를 이용해 제2여객터미널로 이동했다. 무거운 짐을 옮기면서도 “이제 진짜 출장이 시작되는구나” 하는 실감이 밀려왔다. 국제선 출국장의 분주한 풍경은 곧 다가올 학회 현장의 긴장감을 예고하는 듯했다.
비엔나, 예술과 학문의 도시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Vienna, 독일어로 Wien)는 유럽 중심에 자리한 고도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도이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심장이다. 수 세기 동안 합스부르크 왕가는 유럽 정치와 문화의 중심을 주도하며 화려한 궁정 문화와 예술을 꽃피웠다. 지금도 도시 곳곳에서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독일과 깊은 관계를 맺어왔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큰 피해를 본 뒤 전후 복구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현대적인 도시로 재탄생했다. 고전 건축과 현대 건물이 공존하는 풍경 속에서 여전히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공간으로 자리한다.
무엇보다 비엔나는 예술의 도시로 널리 알려져 있다.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로 대표되는 비엔나 고전 악파의 음악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연주되고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가 이끈 빈 분리파(Sezession) 미술은 도시의 황금기를 상징한다.
이런 문화적 토대 덕분에 오늘날에도 음악과 미술의 메카, 그리고 국제 학술과 회의의 허브로서 전 세계 연구자와 여행자를 이끌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오스트리아(Austria)와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를 헷갈리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실제로 비엔나의 기념품 상점에서는 “No Kangaroos in Austria(오스트리아에는 캥거루가 없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자석과 엽서를 쉽게 볼 수 있다.
현지에서 마주한 그 작은 농담은 세계인이 찾는 국제도시 비엔나의 위상을 다시금 실감케 해줬다.
EUSEM, 유럽응급의학회의 위상을 확인하다 유럽응급의학회(EUSEM¹⁾)는 1994년 런던에서 창립된 이래 유럽 응급의료서비스(EMS)와 구급 체계 발전을 선도해 온 핵심 학술 플랫폼이다. 현재 30여 개국의 응급의학 학회와 수천 명의 개인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매년 개최되는 학회에는 전 세계 응급의학 전문가와 구급대원이 한자리에 모인다.
EUSEM은 학술 교류에 그치지 않고 유럽응급의학교육과정(ETR²⁾)을 제시하며 교육 표준을 마련하고 있다. 이를 통해 각국의 구급 인력이 일정 수준 이상의 역량을 확보하도록 돕는다. 나아가 환자 안전과 대원 보호라는 응급의료의 본질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올해 학회에 우리 연구팀이 참석하게 된 계기도 바로 학술발표 확정 덕분이다.
두 연구 모두 구급현장의 안전성과 효율성이라는 공통의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구급차가 교차로에서 얼마나 빨리 인식될 수 있는지, 구급대원이 폭행 상황에 직면했을 때 어떤 장비와 제도가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지는 한국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높은 관심을 끄는 주제였다.
이처럼 구급현장의 실제 문제를 다룬 연구가 국제 학술대회에서 채택됐다는 사실은 큰 의미가 있었다. 첫 참석자인 우리에게 EUSEM은 단순한 학문 교류의 장이 아니라 구급대원의 목소리를 세계에 알리고 EMS의 미래를 함께 논의하는 무대로 다가왔다.
Pre-Course 참여, 선진 교육 현장을 체험하다 정식 학회가 개막되기 전날 ‘Research Essentials in Emergency Medicine’이라는 주제로 열린 프리코스에 참석했다. 단순히 강의를 듣는 자리가 아니라 연구의 출발점부터 초록 작성까지 직접 경험하는 실습형 교육 과정이었다.
사전 온라인 과정에서는 최신 응급의학 논문을 바탕으로 연구 설계와 방법론, 통계 해석, 연구 윤리 등을 학습했다. 특히 Lancet Regional Health에 실린 복부 통증 환자 관리 연구가 주요 사례로 제시돼 응급실 연구 설계와 환자 모집 과정에서 부딪히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비엔나 현장에서 열린 이 교육은 훨씬 역동적이었다. 참가자들은 3~4명씩 4개의 소그룹으로 나뉘어 ‘왜 유럽 환자들은 일반 개원의(일차 진료 의사, GP³⁾)를 거치지 않고 바로 종합병원 응급실(ED⁴⁾)로 내원하는가’라는 주제로 토론을 시작했다.
각 그룹은 연구 목적과 질문을 설정하고 대상ㆍ방법ㆍ윤리 검토ㆍ통계 계획까지 짧은 시간 안에 정리해 초록 형태로 완성해야 했다. 화이트보드 앞에선 다양한 논의가 이어졌다.
“비응급 환자가 응급실로 몰리는 문제를 줄이는 방법은 뭘까?” “환자들이 GP 대신 ED를 선택하는 이유는 뭘까?”
질문이 쏟아졌다. 교수진은 정답을 제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참가자들이 주제에서 벗어난 의견을 내도 “좋은 시각이다. 그 접근도 의미 있다”고 격려한 뒤 “그럼 어떻게 하면 본래의 질문과 더 연결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덕분에 교육생들은 스스로 생각을 다듬고 다시 발표하며 마치 모두가 하나의 연구팀이 된 듯한 몰입을 경험했다.
박민영 “짧은 시간 안에 연구 목적부터 방법까지 정리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현장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구조화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어요”
반민기 “교수진이 의견을 존중하면서도 방향을 잡아주니 팀 전체가 하나의 목표를 완성해 가는 기분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학습 방식이라 더 특별했어요”
김홍식 “맞습니다. 우리 EMS 현실을 설명할 때도 교수진이 끝까지 귀를 기울였고 유럽 참가자들 역시 적극적으로 비교하며 질문하더군요”
토론이 무르익자 유럽 참가자들은 한국과 대만처럼 구급차 중심 EMS 체계를 가진 국가 사례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유럽 다수 국가는 GP 제도가 탄탄히 자리 잡아 환자가 응급실에 진입하기까지 여러 단계를 거친다.
반면 한국과 대만은 환자가 곧바로 응급실로 이송되는 구조여서 참가자들이 “접근성은 뛰어나지만 과밀화 문제는 어떻게 관리하느냐”라는 질문을 집중적으로 던졌다.
오전과 오후를 거쳐 완성된 각 그룹의 초록은 실제 연구 제안서에 가까울 정도로 구체적이었다.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⁵⁾) 심사 요건, 표본 수 산출 방식, 다기관 연구 설계 등 실무적인 고민이 곳곳에 담겼다. 발표 시간에는 각국 참가자의 다양한 아이디어가 교차해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박민영 “우리 EMS 현실을 설명하다 보니 다른 나라 연구자들도 공감하면서 자기 나라와 비교하는 모습이 흥미로웠어요”
반민기 “대만 참가자도 우리와 비슷한 구조라고 하면서 환자 과밀 문제 해결을 위해 공동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하더군요”
김홍식 “이런 교류야말로 국제 학회의 진짜 의미 아닐까요? 단순히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서로 다른 체계를 비교하면서 답을 찾아가는 과정 말이죠”
이번 프리코스는 단순한 교육을 넘어 현장 문제를 연구 주제로 전환하는 과정을 몸소 체험하는 자리였다. 특히 “환자가 응급실을 선택하는 이유를 어떻게 과학적으로 규명한 것인가”라는 질문은 우리 역시 구급현장에서 자주 마주하는 고민과 맞닿아 있어 큰 울림을 줬다.
박민영 연구원 발표에 대한 국제적 관심 학회 첫날 오후, 드디어 우리 팀의 첫 발표 순서가 다가왔다. 박민영 연구원은 ‘Enhancing Ambulance Recognition at Intersections Using Visual-Auditory Warning Systems’라는 제목의 연구를 소개했다.
이 연구는 교차로 사고 위험이 큰 한국 구급차 운행 현실에서 출발했다. 기존의 사이렌과 경광등만으로는 고층 건물이 빽빽한 도심이나 소음이 심한 환경에서 운전자의 인지를 확보하긴 한계가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해결책으로는 두 가지 장치를 제시했다. 첫째, 고보조명(로고젝터)은 노란ㆍ빨간ㆍ흰색 같은 고대비 색상을 활용해 응급의료 전용 심볼을 도로 위에 직접 투사, 원거리 운전자의 시각적 인지를 돕는다.
둘째, 지향성 사이렌은 진행 방향으로만 소리를 집중시켜 접근 차량에는 충분한 가청거리를 확보하면서도 주변 소음 공해는 줄이는 방식이다. 두 장치는 구급차 서치라이트 위치에 장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발열 제어와 독립 전원 기능도 갖췄다.
발표는 9월 29일 오후 2시 45분부터 4시 15분까지 열린 ‘Disease & Injury Prevention’ 세션에 배정됐다. 박민영 선임연구원은 오후 3시 5분부터 10분 사이에 발표했다.
EUSEM은 모든 세션 프로그램을 홈페이지에 사전 공개하기에 관심 있는 분야의 연구자들이 해당 시간과 장소에 모여 경청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덕분에 발표 장소인 e-포스터 존(Screen #1)은 시작 전부터 활기가 넘쳤다.
짧지만 임팩트 있는 5분간의 발표에서 인지율이 평균 14.6% 향상된 VR 시뮬레이션 결과와 지향성 사이렌이 운전자 탐지 거리를 약 95m까지 확대한 데이터가 공개되자 청중들의 집중도가 크게 높아졌다.
특히 여러 유럽 연구자는 “사이렌과 경광등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부분에 크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박민영 “짧은 발표였지만 참가자들이 메모하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니 연구가 국제적으로도 의미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반민기 “맞아요. 유럽 대도시에서도 교차로 사고는 중요한 문제잖아요. 한국에서 개발한 장비와 실험 결과가 공통의 화두로 이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김홍식 “무엇보다 발표 직후 다가와서 장비 사양이나 규제 적용 가능성을 묻는 연구자가 많았던 게 인상 깊었어요”
실제로 발표가 끝난 뒤 여러 나라 연구자가 “현장 시범 적용이 진행 중인지”, “규제나 표준화 과정에서 과제는 무엇인지”를 묻는 등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일부는 자국의 EMS 장비 정책과 비교하며 적극적으로 토론을 이어갔다.
EUSEM의 e-포스터 세션은 전통적인 포스터 전시와 달리 90분 동안 주제별 발표와 토론을 함께 진행한다. 연구자는 5분 발표 후에도 자리를 지키며 다른 연구를 경청하고 토론에 참여한다. 단순히 자신의 소개를 하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의 연구를 공유하고 배우는 장이 되는 셈이다.
박민영 “한국에서는 포스터 세션이 조용히 지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선 짧은 발표 후 바로 질문이 이어지더라고요. 덕분에 제 연구를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반민기 “EMS 장비 연구가 단순히 기술 개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정책ㆍ교육ㆍ법규와 연결된다는 점을 함께 고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김홍식 “첫날부터 느꼈죠. 이 학회는 발표보다 토론과 교류가 중심이라는 걸요”
박민영 선임연구원의 발표는 단순히 연구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 EMS 현안이 세계적인 공통 과제임을 확인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교차로에서 구급차의 안전한 통과라는 문제는 국경을 초월한 도전이었다. 그렇게 한국에서 제시한 해법은 국제무대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1) European Society for Emergency Medicine 2) European Training Requirement 3) General Practitioner 4) Emergency Department 5) Institutional Review Board,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에서 연구 계획을 심사하고 연구 대상자의 권리와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된 위원회
국립소방연구원_ 반민기 : Banminki@korea.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11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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