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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동댕동~~ OO구급, 구급 출동 위치는 OO동 2층 OO술집 음주 만취자 폭행 건
우리는 무거운 눈꺼풀을 이겨내고 “또 음주자야? 아~~(내적) 스트레스~~”를 내뱉으며 그들에게 달려간다. 스트레스는 현대 사회에서 누구나 경험하는 감정이지만 구급대원이 겪는 스트레스는 그 강도와 성격이 조금 다르다.
매번 울리는 출동 벨 소리와 119구급차의 사이렌은 언제나 긴급한 상황을 알린다. 화재, 교통사고, 자살, 심정지, 그 현장에는 항상 누군가의 마지막 모습이 있고 119구급대원들이 있었다.
이러한 활약상을 보고 국민은 ‘히어로’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그 영웅들은 보이지 않는 상처, 즉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힘들어하고 있다.
119구급대원은 하루 평균 수차례의 사건ㆍ사고를 마주한다. 그중 상당수는 일반인이 평생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극심한 충격 장면이다. 그러나 우린 출동을 멈출 수 없다. 또 다른 신고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반복적이고 누적되는 충격의 마일리지는 결국 우리 마음 깊은 곳에 흔적을 남기고 상처를 낸다. 이번 호에서는 바로 그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무엇인가? 흔히들 PTSD는 전쟁터에서 돌아온 군인들이 겪는 거로 알려졌지만 전 세계 구급대원은 전쟁터와 유사한 일상에서 겪고 있다. 그러니 대원들의 트라우마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현장에 강해야 한다’는 조직문화, ‘참아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 지원 부서의 관심 부족 등이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PTSD를 겪게 되면 단순히 힘든 기억을 떠올리는 수준을 넘어 개인의 가정과 일상을 무너뜨리는 부정적인 정신이 지배하기 시작한다.
그럼 왜 119구급대원은 PTSD에 노출되고 취약한가? PTSD는 단 한 번의 사건으로 생길 수 있지만 더 무서운 건 ‘누적된 외상 경험’이다. 구급대원들은 평균 근무시간 동안 많은 출동을 나간다. 이 중 사망 또는 심정지, 중증외상환자, 음주 만취자를 다루는 경우가 많다.
국내 한 연구에 따르면 국내 119구급대원 가운데 약 20~30%가 PTSD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일반 직장인보다 수십 배 높은 수치의 결과다.
국내 연구 중 ‘119구급대원의 외상사건 경험, 외상 후 스트레스와 건강증진 프로그램 요구도와의 관계’에서는 16개의 외상사건 경험에 대해 대상자의 44.6%가 5개 이상의 다양한 외상사건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가장 많이 경험한 외상사건은 ‘자살한 시신 수습’으로 76.7%를 차지했다. 이어 처참한 시신 목격ㆍ수습, 사고 희생자, 환자의 죽음 목격 순으로 높게 집계됐다. PTSD 위험군에 속하는 대상자는 전체의 36.3%에 달한다.
이 연구 외에 술에 취한 환자나 보호자의 폭언과 폭행으로 실제로 많은 구급대원이 불필요한 감정에 노출되고 있다. 이처럼 구급대원들은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상황 그 자체가 트라우마일 수 있다.
이러한 사건은 단발적으로 끝나지 않고 매일 같이 반복된다. 이로 인해 구급대원들은 일반 직업군보다 훨씬 높은 빈도로 외상사건을 경험한다.
구급대원, 그날의 기억들… 구급대원에게 있어 좋지 않았던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건 상당히 조심스럽지만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대원들과 보이지 않는 상처를 꺼내 본다.
# 기억 하나, ‘후배를 지키지 못한 자책감에 극단적인 선택’ 2016년 10월 5일, 울산 ○○소속 구급대원 소방교 정OO와 소방사 강OO는 태풍 ‘차바’로 인한 집중호우 속에서 고립된 주민을 구조하기 위해 출동했다.
마을 앞을 지나던 구급차 앞에 한 주민이 다급히 뛰어와 “강변에 고립된 차 안에 사람이 있는 것 같다”고 알렸다. 두 대원은 곧장 구급차에서 내려 급류 속 차량으로 달려갔다.
이미 빗물은 무릎까지 차올라 있었다. 이들은 거센 물살을 헤치며 차량에 도착했으나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돌아서려던 찰나, 물은 순식간에 허리 높이까지 불어나며 탈출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정 소방교는 가까운 전봇대의 쇠 손잡이를 붙잡고 버텼고 강 소방사는 옆의 가로등 같은 구조물에 몸을 의지해 필사적으로 버텼다. 그러나 강 소방사는 거센 물살에 휘청이며 중심을 잃어갔다. 결국 그는 “선배님, 저 더는 힘들어서 못 잡고 있겠어요”라는 말을 남겼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세월은 흘러 3년 뒤, 당시 선임이던 정OO 소방장은 한 저수지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의 개인 사물함 안에는 먼저 떠난 후배의 활동복이 소중히 보관돼 있었다. 그는 후배의 죽음을 끝내 잊지 못했고 3년의 세월 동안 깊은 상처와 죄책감 속에서 홀로 버텨왔던 것이다. 결국 그 고통은 그의 생을 앗아가는 또 다른 비극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 기억 둘, 울산 OO 소속 구급대원 여섯 살 딸을 키우는 아버지입니다. 아이가 없을 땐 아동 관련 출동을 나가더라도 특별한 감정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딸이 생긴 후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어느 날 “아이가 숨을 쉬지 않는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팀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지만 결국 아이는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딸을 볼 때마다 그 아이의 얼굴이 겹쳐 떠올라 심장이 두근거리고 쉽게 잠들 수 없었습니다. 시간은 흘렀지만 상처는 아물지 않았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지 2년이 지난 지금도 비슷한 상황의 출동을 하게 되면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온종일 마음이 무겁고 불안한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출동이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영향을 받곤 합니다.
# 기억 셋, 서울 OO 소속 구급대원 구급대원으로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조심스럽습니다. 유가족이 겪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테니까요. 하지만 그날 이태원역 인근에 출동해 수많은 인파를 뚫고 쓰러진 환자들에게 심폐소생술을 시작했습니다. 사방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정작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스스로가 원망스러웠습니다.
현장은 마치 지옥 또는 전쟁터와 같은 비현실적인 상황이었습니다. 한쪽에서는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이어갔고 불과 몇 m 떨어진 다른 한쪽에서는 여전히 축제를 즐기며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극명한 대비는 출동한 모든 대원의 마음에 깊은 트라우마로 남게 됐습니다. 현재까지도 구급대원들을 대상으로 심리상담이 진행되고 있지만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는 걸 여전히 힘들어하는 대원들이 많다고 합니다.
차마 말하지 못한 그 날의 기억은 각자의 마음속에서 여전히 무겁게 남아 있습니다.
소방청ㆍ각 소방본부의 대응은? 소방청은 PTSD 문제를 인식하고 다양한 심리 지원 체계를 마련해 왔다. 지역마다 조금 차이가 날 순 있지만 사건 직후 시행되는 사건 스트레스 디브리핑, 정기적인 심리상담 프로그램, 찾아가는 상담실, 심신안정실 설치 등 소방공무원들이 안심하고 안전하게 직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2018년부터 소방청 주관으로 실시하는 마음ㆍ건강 설문조사 역시 소방공무원의 정신건강 정책 수립에 주요한 기초자료를 제공한다. 아울러 소방청은 PTSD, 우울증 등 마음ㆍ건강이 필요한 대원들에게 전문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관련 프로그램인 ‘찾아가는 상담실’은 2015년부터 각 시도에서 운영 중이다. 정신건강 전문가가 소방관서를 직접 방문해 전 직원을 대상으로 PTSD, 우울증 등과 관련한 상담으로 심리적 안정과 트라우마 회복에 힘쓰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남아 있는 한계는? 1. 사회적 특수성 우리나라 구급차의 출동 건수는 1일 약 1만건이다. 높은 출동 빈도로 인한 업무 부담감이나 고도의 집중력 요구, 긴장감, 위험하고 충격적인 현장 경험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심한 스트레스를 겪는다.
특히 출동이 잦을수록 외상성 스트레스를 더 많이 경험한다. 24시간 긴장된 상태에서 생명과 관련된 응급처치를 시행하며 감염 위험, 화재나 교통사고 현장 같은 위험 환경에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노출로 신체적 어려움을 겪는다.
이러한 스트레스는 외부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본인도 모르는 사이 상처가 커진다.
2. 조직문화의 벽 소방조직은 아직 계급문화와 남아 있는 위계질서의 특성상 심리적 고통을 털어놓는 분위기를 만들기 힘들다. 구급대원에게 강인하고 뛰어난 봉사 정신과 함께 침착하게 환자에 대응하는 모습을 당연하게 요구한다.
이에 따라 정신적 고통이나 트라우마를 드러내는 건 곧 약함으로 비치고 “그렇게 해서 구급대원 하겠냐?”라는 암묵적인 낙인이 찍혀버린다.
그로 인해 스스로 심리적 지원을 요청하는 것 자체가 능력 부족을 인정하는 행위처럼 여겨지면서 상담받을 기회마저 차단된다.
또 충격적인 사건에 노출됐을 때 침묵하게 된다. 출동에서 돌아오는 길 또는 귀소 후 팀원끼리 많은 얘기를 할 수 있는데도 자기 자리로 가기 바쁘다. 그 사건에 대해 함께 분노할 수도, 울 수도, 격려할 수도 있지만 서로의 눈치를 보며 침묵을 선택한다. 그렇게 대원들은 모두 혼자가 되고 고립된다.
이렇게 낙인과 침묵하는 문화는 결국 구급대원의 PTSD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조직과 사회의 문제로 만들고 대원들 스스로 상처를 깊게 만든다.
3. PTSD 제도적 대응 시스템 아직 우리나라는 사후 상담 중심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사건이 터진 뒤에야 상담이나 디브리핑이 진행되는데 이는 이미 깊어진 상처에는 충분치가 않다. 또 교대근무 특성상 정기적으로 상담이나 치료에 전념할 수 없어 심리상담 프로그램이 있어도 참여율은 저조할 뿐이다.
게다가 외상 후 스트레스를 사유로 공무상 요양*을 신청하면 업무와 연관성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불승인 통보를 받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4. 개인의 잘못된 대처방식 구급대원들은 현장에서 마주하는 충격적인 장면을 잊기 위해 본능적으로 회피적 대처를 선택한다. 이는 자신을 보호하려는 심리적 방어지만 장기적으로는 PTSD를 더 깊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어떤 대원은 일부러 사고가 발생했던 도로를 피해 다니고 환자를 떠올리게 하는 장소나 상황을 철저히 회피한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마주하지 않으려고 구태여 감정을 억누르고 동료가 사건에 관해 이야기해도 대화 자체를 차단하곤 한다.
이처럼 회피는 처음엔 자신을 지키는 내적 안정감으로 느끼지만 장기적으로는 외상을 직면하고 처리할 기회를 빼앗는다. 결국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회피하면 할수록 더 큰 두려움과 불안으로 돌아오게 된다.
앞으로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구급대원의 PTSD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약함이나 심리적 취약성의 문제가 아니다. 소방조직 특유의 위계질서와 강인함을 요구하는 문화, 사후 중심의 상담 제도, 그리고 회피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개인적 대처방식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조직문화의 변화가 필요하다. 심리적 고통을 이야기하는 게 능력 부족이나 약함이 아닌, 오히려 건강한 회복 과정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간부들이 먼저 상담 경험을 공유하고 지원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대원들이 안전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제도적 대응 또한 사후 상담 중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건이 발생한 뒤에만 진행되는 상담과 디브리핑은 이미 깊어진 상처를 치유하기엔 역부족이다. 이때 필요한 방법이 조기개입 시스템이다.
사고 직후 경험한 충격과 감정을 안전하게 풀어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심리적 응급처치와 같은 기본 상담, 그들을 가장 이해할 수 있는 동료들과의 치유 프로그램 등을 단계적으로 제공한다면 비로소 대원들이 고통을 억누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회복하는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개인 차원에서는 회피적 대처가 아닌 건강한 대응 방식을 인지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사건 직후 감정을 안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명상이나 운동ㆍ호흡법 같은 스트레스 관리 훈련을 소방 정규 교육과정에 포함해 대원들이 자신을 돌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단순히 개인의 회복을 넘어 조직 전체의 회복력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거로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구급대원의 정신건강 문제는 결코 개인적 결함이 아니라 재난과 응급 상황이라는 극한 환경에서 일하는 직업적 특성에서 비롯된 당연한 결과다.
따라서 사회와 지역사회가 이들을 지지하고 이해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언론과 공공기관은 이를 널리 알리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구급대원의 PTSD 문제는 개인의 몫으로만 떠넘겨선 안 된다. 조직, 제도, 사회가 함께 안전망을 마련하고 지지하는 구조를 만들어나갈 때 비로소 대원들이 겪는 고통은 줄어들고 더 건강하게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본연의 역할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다.
이태원 사고에 힘들어하는 선ㆍ후배님께…🌼 그날 여러분이 보여주신 용기와 헌신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의 아들, 딸, 가족을 살리기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한 모습은 우리 사회가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 여러분이 겪는 고통과 불안은 약함의 증거가 아니라 그만큼 치열하게 사람을 살리고자 한 뜨거운 마음의 흔적입니다.
혼자가 아님을 꼭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여러분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지지하는 동료와 국민이 곁에 있습니다. 때로는 쉬어가셔도 됩니다. 때로는 눈물 흘려도 괜찮습니다. 그건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누구보다 인간적이고 진실한 대원이라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길, 그리고 언젠가 지금의 상처가 아물어 다시 환하게 웃을 수 있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여러분은 결코 혼자가 아니며 우리 모두가 여러분과 함께할 겁니다.
참고 자료 구급대원의 외상성 스트레스 영향 요인. 백미례 소방청 보도자료 ‘소방청 소방공무원 안심, 안전, 정책 총력 추진’ ‘119구급대원의 외상사건 경험, 외상 후 스트레스와 건강증진 프로그램 요구도와의 관계’. 강미숙, 김영임, 근효근 ‘119구급대원의 직무관련 특성과 외상 후 스트레스가 직무만족도에 미치는 영향’. 최성수, 한미아, 박 종, 류소연, 최성우, 김해란 ‘내 인생을 힘들게 하는 트라우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서 벗어나는 법. 바빗 로스차일드 지음. 최주연 감수. 김좌준 옮김.
울산남부소방서_ 안신욱 : khkool@korea.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11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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