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광고

아프리카로 튄 소방관의 퇴직 인생- Ⅶ

광고
서울대병원 PMC 유기운 | 기사입력 2025/11/03 [10:00]

아프리카로 튄 소방관의 퇴직 인생- Ⅶ

서울대병원 PMC 유기운 | 입력 : 2025/11/03 [10:00]

07. 한 코, 한 코 그물 짜는 사람들

나는 생계형 소방관으로 30년을 일했다. 나 같은 생계형 인간은 봉사나 사명감 같은 고상한 이유로 보상이 없는 일에 선뜻 나서지 못한다.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봉사하시는 분들이 생계 고민이 없거나 봉사를 고상한 취미로 생각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람을 대할 때 개인적 성취와 사회적 성취를 구분하는 편이다. 공익에 이바지한 바가 없거나 오히려 공동체에 해가 되는 성공한 인간들이 넘쳐나는 곳이 한국 사회다. 나도 속물이라 이런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대접하는 인생을 살았다. 하지만 존경하진 않는다. 

 

내가 존경하는 사람은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공동체에 유익을 주는 사람이다. 존경이라는 ‘말 그릇’에 담을 수 없는 분도 있다. 아프리카 남수단 이태석 신부님이 그렇다. 그간 대가를 받으며 구급현장과 화재현장을 오랜 세월 쫓았다. 이제 카메룬에 적을지언정 유익을 가져다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살다 보면 눈곱만큼도 의심하지 않던 것들이 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가 그랬다. 그물의 ‘눈과 코’가 사람 얼굴의 ‘눈’과 ‘코’라고 철석같이 믿고 살았다. 최근에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에서 ‘코’는 그물 ‘눈’마다의 매듭을 말하고 코와 코를 이어 만든 구멍이 바로 ‘눈’임을 알았다. 

 

그물이 찢어질 듯 물고기가 잡힐 때 그물의 ‘눈코’를 손질할 틈도 없이 바쁜 그 상황을 사람의 눈과 코로 알고 있었으니 어이없는 일이다. 내게 카메룬은 아직 어이없는 무지와 어설픈 이해가 섞인 땅이다. 그런 내가 어찌 홀로 이 땅의 안전그물을 튼튼하게 만들 수 있겠는가? 

 

응급의료체계는 ‘코’와 ‘눈’의 작은 그물 조각들을 촘촘하게 기워야 만들 수 있다. 이 체계를 이루는 굵직한 파이프라인만 꼽아봐도 119와 같은 응급 신고 번호와 통신시스템, 상황실, 구급대, 병원 등 인ㆍ물적 요소가 서로 엮여 있다. 이 그물은 교육과 재정, 법률 같은 기본 토대가 없으면 쉽게 찢어진다. 

 

카메룬 병원 전 응급의료 그물에는 없는 ‘코’들이 너무 많아 ‘눈’들도 없다. 안전망이라고 하기엔 너무 허술했다. 이 프로젝트는 없는 ‘코’를 한 코, 한 코 만들면서 허술한 ‘코’는 손질해야 하기에 어려운 사업이다.

 

내가 ‘눈코’ 뜰 새 없이 아무리 바빠도 카메룬 응급의료 안전그물을 혼자서 만들 수 없다. 꽤 많은 한국과 카메룬 사람들이 이 그물에 둘러앉아 함께 일하고 있다.

 

평소 나와는 다른 배경, 경험을 가진 분들과 대화하길 좋아한다. 카메룬 선택에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었지만 한국에서 공부라면 첫째간다는 서울대 의사들이 일하는 방식이 궁금하기도 했다. 지금은 고인 물이 된 오래 한 일 대신 새로운 일을 하면서 많이 배우고 있다. 

 

성장한다는 느낌이 좋다. 특히 신 교수님께 많이 배웠다. 프로젝트의 굵직한 현안뿐 아니라 작은 과제까지도 꿰뚫고 추진 방향과 문제해결을 제시하시는 이분을 보면서 단지 똑똑함을 넘어 탁월한 역량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었다.

 

▲ 신상도 교수와 큐리 병원 사람들

 

정중식 박사님께는 부드러운 숨결이 느껴졌다. ‘이태석상’과 2025년 제6회 ‘4ㆍ19 민주평화상’을 수상하신 그는 진심으로 카메룬과 카메룬 사람들을 사랑하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의사다.

 

사실 나 같은 초짜가 카메룬 현지 매니저로 코이카 국제 개발원조 사업, 그것도 상당히 복잡하고 큰 프로젝트를 근근이 해나가고 있는 건 두 분이 일찌감치 닦아 놓으신 카메룬 파이프라인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짧은 시간 경험한 국제 원조사업은 사업 목적을 유지하되 추진은 현지 실정에 맞게 끌고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이 땅에 사는 이들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현실을 토대로 가야 할 방향을 정하는 능력이 꼭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신상도, 정중식 두 분 말고도 프로젝트 전문가 선생님들, 코이카 카메룬 사무소 김상철 소장님의 경륜을 통해서도 배운다. 이 프로젝트의 전임 부소장인 서주희, 새로 부임한 나혜선 부소장도 나의 스승이다. 

 

▲ 코이카 초청 연수 사전 교육 중 김상철 소장, 나혜선 부소장과 초청 대상자

 

이분들께 배우는 것만 해도 퇴직 후 나는 ‘튄’ 인생을 살고 있다. 이 사업에는 여러 협력 기관과 관계자들이 있다. 불어와 영어로 소통하는 공식 회의를 할 때마다 이분들의 능력이 솔찬히 부럽다.

 

카메룬 코이카 봉사단원이나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우리나라 젊은 친구들에게도 배운다. 이 나이 때 나는 생각과 능력이 편협한, 좁은 우물에 갇힌 개구리였다.

 

사물이란 사용으로 그 쓸모가 증명되는 경우가 많다. 코 매듭 한 개를 짜기도 벅찬 응급의료 안전그물이 그렇다. 바다에 내린 그물은 끌어당겨야 물고기를 잡을 수 있고 생명을 구할 그물은 바닥에 펼쳐져 있으면 안 된다. 

 

그물의 모서리를 묶고 네 귀퉁이를 지탱해 줘야 누군가 떨어져도 살릴 수 있다. 이 몫은 카메룬 사람들이 감당해야 한다. 이 프로젝트에는 카메룬 고위 공무원들과 의사, 보건 전문가들이 함께하고 있다. 

 

이들 없이 원조사업을 진행하면 프로젝트 종료 후 지속성까지 담보하지 못한다. 고백하건대 카메룬에 가면 모든 사람에게 환영받을 줄 알았다. 도움도 당연히 따라올 것으로 기대했다. 대한민국 국민의 세금으로 카메룬에 좋은 일을 하러 왔는데 당연하지 않은가? 

 

이것도 착각이었다. 빈곤과 부패는 DNA 사슬처럼 엮여 공동체에 대한 희생도, 애국심도 갉아먹는다. 털어먹든, 주워 먹든 내 입에 떨어질 떡고물이 더 중요한 힘센 분이 많은 나라엔 가난이 넘쳐나기 마련이다. 불쌍한 사람들은 떡고물을 구경조차 못 하는 힘없는 이들이다. 

 

새벽에 야운데 은시말렌(Nsimalen) 국제공항에 전문가 두 분을 마중 나갔을 때 일이다. 보통 한국에서 출장 오시는 분들은 이른 새벽에 오시고 이른 새벽에 떠나신다. 은시말렌 공항은 ‘국제’라는 명칭이 민망한 수준이다. 

 

자정을 넘겨 한산하기만 한 공항 청사 입국장 앞에서 두 분이 타신 에티오피아 항공 비행기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20대로 보이는 공항 직원이 다가온다. 짧은 말들이 오갔고 도착 편명과 누구를 기다리는지 묻더니 사라진다.

 

잠시 후 다시 오더니 “Mr. 유, 돈을 주시면 제가 입국장 안으로 들어가게 해드릴게요. 안에서 기다리세요!” 뜻밖의 제안에 바로 입이 열리지 않았다. 

 

국제기구나 대사관 직원들이 입국장 안까지 들어가 일행과 함께 나오는 모습을 몇 차례 본적은 있다. 공항 세관공무원들의 어이없는 까탈스러움을 막기 위함인지 그 이유는 잘 모른다. 안에서 기다리나 밖에서 기다리나 딱히 차이가 없다. 인터넷도 안 돼 무료해서인지 ‘한 번 들어가 볼까?’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3천 세파 어때요?”하고 입질을 보내 본다. 선뜻 당기지 못한다. 입질이 너무 약했나 보다. 아마도 이 젊은 친구는 나를 통과 시켜주고 챙긴 돈 일부를 위 책임자에게 주기로 ‘딜’을 하고 온 낌새였다. 

 

1만 세파라면 ‘거래’가 성사될 것 같았지만 더 ‘판돈’을 올리지 않았다. 대신 이런저런 말들을 꽤 길게 나눴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이런 말을 했다. 

 

“나이도 아직 28살이고 이런 식으로 몇천 세파 받으면서 있기엔 아깝네요.

미래를 위해 좀 더 노력하면 좋을 것 같아요.

프랑스나 캐나다 퀘벡 같은데 불어가 되는 곳으로 이민 같은 것도 고려해 볼 수 있잖아요.

영어랑 불어도 유창하고요. 한국 사람은 이민 가려면 영어 공부 열심히 해야 합니다.

당신은 그럴 필요 없잖아요. 그게 얼마나 큰 건데요” 

 

그가 떠나고 카메룬 청춘에게 ‘노오력’만을 강조한 스스로가 공허해졌다. 그가 어떤 방식으로든 희망을 만들어 갈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도착 시각을 넘긴 비행기가 오지 않는다. 흔한 일이다. 그날따라 환송을 나온 사람이 무척 적었다. 둘러보니 외국인은 나와 어떤 백인 여성 둘 뿐이다.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1시 30분에 도착하는 비행기 기다리나요?” 

 

그녀가 물었다. EU에서 일하는 벨기에 출신 여성이다. 새로 부임하는 직원 배웅을 나왔다고 한다. 그녀와 대화하던 중 마침내 비행기 하강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한참 동안 기다려도 두 분이 나오지 않는다. 입국 절차에 걸리는 시간과 공항 직원들의 딴지를 생각해도 그렇다. 

 

무엇보다 나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공항에서는 어떤 안내도 없었고 직원들에게 물어봐도 시원한 말이 없다. 같이 기다리던 EU 벨기에 사람이 여기저기 전화해 보더니 “비행기가 두알라로 갔다고 합니다” 두알라(Douala)는 카메룬 상업 중심지로 가장 큰 도시다. “대통령 일가 행사 때문에 착륙하던 비행기를 돌렸다네요. 카메룬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어안이 벙벙했다. 얼마 후 그가 “승객 모두 두알라에 있는 호텔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하고 발걸음을 돌린다. 출장 오신 분들과 연락할 수 없었던 나는 두 분도 호텔에서 주무신다고 생각하고 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두 분은 다음날 낮 비행기로 오셨다. 

 

이 기막힌 일을 카메룬에서 오래 사신 분들에게 말하니 “착륙 중이던 비행기가 갑자기 두알라로 간 게 그런 이유라면 오히려 설득력이 있네요” 하고 대답한다. 여전히 비행기 회항 ‘사건’이 진짜 대통령 일가 행사 때문인지 알지 못한다. 확인할 방법도 없다. 어쨌든 착륙 중이던 비행기가 갑자기 다른 도시로 갔고 그 이유도 모를 수 있는 곳이 바로 카메룬이다.

 

그간 만난 카메룬 파트너들은 나보다 영특한 사람들이었다. 다만 개인적으로 똑똑한 그들도 병원 전 응급의료체계를 직접 경험하지 못했기에 어쩔 수 없는 한계가 느껴졌다. 내겐 현장에서 경험을 축적한 강점이 있다. 서로 보완재인 셈이다. 

 

메토고(Metogo)는 내과 전문의다. 아이가 여덟이다. 아홉이었는데 하나는 사고로 잃었다. 그가 더 말하지 않고 나도 묻지 않아서 그 이유는 모른다. 한국 이름이 마동고인 매토고가 좋다. 마동고는 내가 가장 의지하는 카메룬 사람이다.

 

월롱(Hollong)은 응급의학 의사다. 남아프리카에서 공부했다. 1대 원장 취임 후 10년 만에 바뀐 2대 원장이다. 월롱은 큐리에서 일했던 적이 있다. 그가 온 후 큐리는 긍정적으로 많이 변하고 있다. 그에게서 리더십의 중요성을 봤다. 큐리 원장으로 딱 맞게 온 그가 프로젝트에 큰 축복이다. 

 

닥터 메토고와 월롱은 신 교수님, 정 박사님의 친구기도 하다. 닥터 조아(Zoa)는 카메룬 정부가 프로젝트 실무 협의체로 만든 PIU(Project Implementation Unit)의 책임자다. 의사고 보건부 주요 직위 중 하나인 General Inspector로 퇴직했다가 PIU 책임자로 컴백했다. 

 

▲ Dr. Metogo

 

▲ CURY 병원 2대 원장 Dr. Hollong

 

닥터 조아와 월롱 원장의 사이가 매끄럽지 않다. 프로젝트에 큐리병원 한국 초청 연수 프로그램이 있었다. 원장이 초청 연수자 선정을 주도했다. 큐리병원 원장인 월롱이 선정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닥터 조아의 생각은 달랐다. 공개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프로젝트 진행에 있어 큐리병원은 PIU 아래인데 보건부 PIU와 사전협의 없이 초청 연수자를 선정하다니 아주 유감입니다. 더구나 큐리 원장과 부원장이 함께 가다니요. 업무 공백은 어쩌고요?” 

 

닥터 조아의 의견을 에둘러 전한 나에게 월롱은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닥터 조아의 부하가 아닙니다. 내 상관은 보건부 장관입니다” 

 

한국 초청 연수는 보건부 허가가 필요하다. 월롱은 직접 보건부 장관 명의의 허가 공문을 받아 낼만큼 능력도 있다. 이런 ‘기싸움’은 어디든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중요한 협력 파트너인 두 사람을 잘 달래가며 일을 진행 시키는 것도 내 몫이라고 생각한다. 

 

로무스(Romus)는 능력 있는 의공 엔지니어고 아내가 의사다. 야운데 외곽 신도시에 이층집을 지었다. 프로젝트 출장팀을 초대해서 가본 적이 있다. 아직 공사 중인 집이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 프로젝트 역학조사 전문가 양성 과정 수료자 최종 발표ㆍ자격증 수여식에서 DLMEP 부국장 이만과 안야 박사

 

▲ 역학조사 전문가 과정을 수료한 큐리 의사 음본도(Mvondo)와 함께

 

▲ WHO 보리스(가운데)와 야운데에 하나뿐인 한국식당 김치에서

 

보건부 DLMEP(Directorate for the Fight against Disease, Epidemics and Pandemics) 국장 닥터 린다(Linda)와 부국장 닥터 이만(Eman), 역학박사 안야(Anya), 세계보건기구(WHO)의 보리스(Boris), 보건부 법무ㆍ소송국, DAJC(불어로 Direction des Affaires Juridiques et du Contentieux) 국장 토마스(Thomas)가 모두 협력 파트너다. 

 

미국 질병통제소(US. CDC), 야운데 대학교 의대와 대학병원 사람들도 빼놓을 수 없다. 묵묵히 현장을 지키는 실무자들은 더 많다. 큐리 사뮤(SAMU) 수간호사 야사(Nyassa Margllerite)가 있고 한국 초청 연수자에 포함됐지만 남편에게 허락을 받지 못해 결국 못 가게 된 큐리 수간호사도 있다.

 

코이카 사무소 카메룬 직원 에릭(Eric)도 소중하다.

 

▲ 큐리 사뮤 수간호사 야사

 

때론 제사보다 잿밥에 관심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론 동상이몽을 꾸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둘러앉아 카메룬 응급의료의 안전그물을 짜고 있다. 카메룬 응급의료체계는 아직 땅속 깊이 뿌리내리지 못한 연약한 식물 같다. 

 

코이카와 서울대학교병원이라는 물뿌리개에서 물 공급이 끊기면 곧 죽을 것만 같다. 그래도 카메룬과 한국 전문가들이 어깨를 맞대고 끌고 가는 프로젝트기에 성공하리라 믿는다. 현지 매니저로서 작아도 쉽게 마르지 않을 샘을 만들어 가고 싶다.

 


 

유기운

서울에서 생계형 소방관으로 30년 근무했다. 현재 소방관 인생을 마무리하고 갑자기 아프리카로 튀어 카메룬 야운데에서 코이카 병원 전 응급의료체계(EMSS) 구축 프로젝트 현지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PMC_ 유기운 : waterfire119@naver.com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11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119플러스 정기 구독 신청 바로가기

119플러스 네이버스토어 구독 신청 바로가기

아프리카로 튄 소방관의 퇴직 인생 관련기사목록
광고
GO! 119
[GO! 119] “덜 뜨거운 셀은 뭐야?”… 전북소방 실화재 훈련시설에 가다
1/4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