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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물질도 이기적. 모두 이기적이게도 안정화된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 거야! ②
내가 엉터리 화학자여서인지 지금까지 화학을 공부하면서 어떠한 원리를 적용하는 데 있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해석이 많다고 생각했다. 연소에 대해 이론적으로 완벽하게 해석할 순 없지만 산소, 전자와 관련해 설명할 수 있는 걸 발견했다.
한 번쯤 들어 봤을 에테인(C2H6), 에틸렌(C2H4), 아세틸렌(C2H2)을 보자. 각각 탄소를 두 개 가진 분자인데 에테인은 탄소 사이가 한 개의 결합, 에틸렌은 탄소 사이가 두 개, 아세틸렌은 세 개가 결합한다.
하나의 결합은 전자 두 개를 의미한다. 즉 에테인에서는 탄소 사이에 전자 두 개, 에틸렌은 네 개, 아세틸렌은 여섯 개가 있다. 전자를 좋아하고 빨리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산소가 봤을 때 어느 위치에 있는 누구에게로 가고 싶겠는가.
내가 산소라면 편하게 아세틸렌 쪽, 즉 전자 여섯 개가 몰려 있는 곳으로 가서 전자를 빼앗아 올 거다. 그래서 세 가지 물질 중 아세틸렌의 폭발 농도 범위가 1.5에서 100으로 가장 넓고 에테인은 3.0에서 12.5로 가장 좁다.
최소 점화에너지의 경우 에테인은 250μJ인데 반해 아세틸렌은 19μJ로 아세틸렌이 가장 작은 에너지에서 점화된다. 점화원 없이 열만 가해 불이 나는 온도도 에테인은 515℃이지만 아세틸렌은 305℃다.
이런 모든 특성을 고려하면 ‘에테인에서 아세틸렌으로 갈수록 화재 위험성이 더 커지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전자를 좋아하는 산소의 특성과 전자가 어디에 많이 몰려 있는지의 척도로 해석해 보면 여섯 개의 전자로 삼중 결합을 하는 아세틸렌이 폭발의 범위가 가장 넓고 점화시킬 수 있는 에너지가 가장 낮다.
온도를 높여 발화되는 온도도 가장 낮으니 에테인, 에틸렌, 아세틸렌 중 아세틸렌이 가장 위험한 화학물질이다.
우린 탄소와 수소로 구성된 비슷하게 생긴 물질이 이러한 단일 결합, 이중 결합, 삼중 결합의 특징을 통해 무엇이 더 위험한지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게 된다.
산소만이 연료와 반응해 불을 낼 수 있을까? 아니다. 산소와 같은 할로젠(또는 할로겐이라 부른다) 원소들이 있다. 할로젠 원소는 불소, 브롬, 염소 등을 포함한다. 실제로 할로젠 원소는 산소처럼 연료와 반응해 불을 낼 수 있다. 할로젠 원소들도 산소와 같이 전자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기억할까 모르겠지만 중ㆍ고등학교 화학 시간에 배웠듯 할로젠 원소는 최외각 전자가 일곱 개이기에 한 개만 더 가져오면 8 전자 규칙을 만족하게 된다. 전자 하나만 다른 물질로부터 빼앗으면 되기에 비교적 쉽게 다른 물질과 결합하는 특성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화학물질을 제조하는 산업에서 많이 사용한다.
할로겐 소화기는 바로 이런 할로젠 원소들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 즉 할로젠 원소가 연소 가능한 분자들에게로 가서 전자 하나를 가져오고 빠르게 결합해 산소는 가연물과 결합하지 못하게 된다. 이에 따라 연소반응은 종결되면서 불이 꺼진다. 할로젠 원소는 이런 식으로 불을 소화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불을 끄는 할로젠 원소가 때론 산소처럼 행동하면서 가연물과 결합해 불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래의 식은 수소, 할로젠 원소인 염소와의 간단한 반응의 예다.
H2+Cl2 → 2HCl
수소와 염소 반응의 결과물은 많이 들어 본 염화수소다. 염화수소가 물에 녹으면 염산이 된다. 그냥 공기 중에 있으면 염화수소, 물에 녹으면 염산이다.
염화수소가 생성되는 반응에서는 할로젠 원소인 염소가 수소로부터 전자를 가져와 에너지적으로 안정화되면서 열을 내어놓는다. 반응할 때 열이 많이 나게 되면 할로젠 원소도 산소의 반응처럼 불을 낼 수 있다.
따라서 할로젠 원소는 소화기에서 사용되는 것처럼 가연물에 찰싹 달라붙어 연소반응을 종결시킬 수도, 가연물에 산소처럼 결합해 불을 낼 수도 있다. 이렇듯 살짝 이중적인 면모를 가진 아주 간사한 원소다. 어쨌든 불이 나는 모든 반응에 꼭 산소가 필요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할로젠 원소가 이렇게 이중적인 이유를 뇌피셜로 설명해 보겠다. 산소와 할로젠 원소는 둘 다 전자를 좋아해서 전자를 더 가지고 싶어 한다. 산소는 두 개의 전자를 가져와야 안정해지므로 이중 결합이 된다. 이중 결합이니 그 결합이 단단하다.
하지만 할로젠 원소는 전자 한 개만 더 가져오면 안정해지므로 단일 결합을 통해 쉽게 결합하면서 반응물을 만든다. 때론 자기가 속한 물질과 쉽게 헤어질 수 있다.
이산화탄소는 종종 소화약제로 사용된다. 불을 끄기 위해 마냥 사용해도 괜찮을까? 실제로 이산화탄소가 마그네슘과 반응하면 불이 난다. 따라서 마그네슘 화재에서는 이산화탄소를 뿌리면 안 된다.
이처럼 화재를 진압할 수 있는 소화약제라고 생각한 물질이 불을 더 크게 낼 수도 있다. 따라서 소화약제, 가연물과의 반응성을 정확하게 알아야 화재를 제대로 진압할 수 있다. 다양한 가연물을 고려한다면 물도, 할로겐 소화약제도, 이산화탄소 소화약제도 모든 화재에서 만능이 아니라는 걸 꼭 명심해야 한다.
불을 낼 때 쓰이는 물질을 말해보라고 하면 알케인이라고 불리는 탄화수소가 떠오를 것이다. 이들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불을 내서 자동차의 동력, 겨울 난방 시 연료, 양초의 재료 등으로 쓰인다.
알케인은 탄소와 수소의 단일 결합으로만 이뤄진 탄화수소를 말한다(이중 결합이 있으면 알켄, 삼중 결합이 있으면 알카인이라고 부른다). 알케인의 경우 화학식으로는 CnH2n+2로 표현한다. 탄소 하나를 갖는 메테인은 CH4, 탄소 10개를 갖는 데케인은 C10H22로 표현한다.
탄소는 팔이 네 개, 수소는 한 개인 원소다. 탄화수소에서 수소는 탄소에게 손을 하나 내밀어 잡고 있다. 따라서 탄소가 한 개인 메테인에서는 탄소 하나가 수소 네 개와 결합할 수 있다.
탄소가 두 개인 에테인은 탄소, 탄소 결합 하나와 각각의 탄소가 수소 세 개와 결합한다. 탄소는 네 개 결합, 수소는 한 개 결합하는 특성을 활용해 다양한 탄화수소의 구조를 쉽게 그릴 수 있을 것이다.
화학을 공부하면서 원하는 물질을 합성할 때 과연 책 속 그림의 구조처럼 화학물질들이 세상에 존재할까란 의심이 들었다. 알케인 분자 하나는 정말 작은 화학 물질이라 우리 눈으로는 볼 수가 없다. 사실 세상에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게 몇 개나 될까 싶다.
실제로 눈앞에 산소도, 질소도 보이지 않는다. 일부 물질은 빛이 통과되기 때문에, 즉 반사되거나 흡수하지 않으므로 우리 눈엔 보이지 않는다. 탄소-탄소 결합은 대략 1.5×10⁻¹⁰m이다.
일직선(사실 지그재그 모양이지만)의 알케인의 경우 탄소-탄소 결합으로 분자의 뼈대를 이루기에 탄소의 개수로 대략 길이를 예측할 수 있다. 탄소 10개가 있는 데케인의 경우 대략 1.5㎚ 정도 될 것이다.
그럼 이렇게 작은 물질을 볼 수 있을까? 답을 하자면 볼 수 있다. 심지어 원자 하나도 볼 수 있다. 물론 사진을 찍어 볼 순 없다. 초저온에 더해 초진공도 잡아야 하는 수고를 해야 겨우 볼 수 있다.
컴퓨터회사로 알려진 IBM에서 주사 탐침 현미경(STM, scanning tunneling microscope) 또는 원자힘 현미경(AFM, atomic force microscope)으로 여러 원자, 분자 이미지를 봤을 때의 감동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분자. 그간 보지 못해서 얼마나 답답했는지…. 교과서에서 그림으로만 봤던 그 분자들은 볼 수 없었을 뿐이지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유튜브에서 ‘A Boy and His Atom’이라고 검색하면 IBM이 만든 세상에서 가장 작은 사이즈의 영화(영화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를 볼 수 있다. 그림의 작은 구 하나가 원자다. 구슬 모양의 원자로 소년의 모습을 표현해 소년이 공을 갖고 노는 장면을 영화화했다.
이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원자는 우리가 상상했던 것처럼 구의 형태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오늘날의 과학자들은 원자 하나하나를 조작할 수 있다. 그리고 분자 단위, 즉 분자 하나끼리의 반응도 볼 수 있다.
원자를 볼 수 있으니 당연히 더 큰 분자를 보는 건 식은 죽 먹기다. IBM의 또 다른 그림에서는 다섯 개의 링 구조로 된 펜타센이라는 물질을 원자힘 현미경으로 관찰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본 탄소 여섯 개의 링으로 된 탄화수소도 우리가 생각한 그 모양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여러분은 교과서에서 배운 분자 구조의 모습이 우리가 생각한 그대로 존재한다고 믿으면 된다. 우리가 IBM의 연구에서 봤으니 믿어야 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탄소와 수소로 이뤄진 알케인들은 불이 나 산소와 반응하면 에너지적으로 안정되면서 열을 내고 상대적으로 안정된 이산화탄소와 물을 만들어 내는 건 당연한 세상의 이치다.
이러한 탄화수소는 분자량이 증가하면서 앞에 제시한 표와 같이 녹는점과 끓는점이 증가한다. 당연히 탄화수소의 크기가 커지면 무게도 무거워져 더 자유로운 상태로 만들기 어려워진다.
탄소 하나, 수소 네 개로 구성된 메테인(흔히 말하는 메탄)의 끓는 점은 대략 –161℃이니 당연히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에서 기체상태로 존재하게 된다.
표를 보면 알겠지만 부테인의 끓는 점은 0℃ 부근이다. 따라서 부테인까진 상온에서 기체이고 펜테인부터는 액체로 존재한다는 걸 추측할 수 있다. 휘발유와 등유, 경유(탄소 개수가 대부분 여섯 개 이상)는 액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양초의 탄소 개수는 대부분 스무 개 이상이므로 상온에서 고체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원유를 플랜트에서 증류할 때 LPG(부테인이나 프로페인)가 먼저 나오고 그다음 휘발유, 등유, 경유 순으로 나와 이를 분리해 제품으로 만든다.
보통 우리가 불을 낼 땐 열, 즉 점화해야 한다. 등유에 불꽃을 사용해 불을 붙여 본 적이 있는가? 불이 잘 붙을 것 같은 등유에 불을 낼 때 생각보다 불이 빨리 붙지 않는다. 이런 특징은 인화점이라는 물질의 특성을 사용해 설명하면 쉽다.
인화점은 점화원에 의해 불이 붙는 최저온도인데 밀폐 상태 또는 개방된 상태로 측정할 때가 있는 등 다양한 방식의 시험장치가 존재한다. 온도를 서서히 올리면서 측정대상물이 기화되는 표면 근처에 점화원을 둬 순간적으로 불이 붙는 가장 낮은 온도가 인화점이다.
탄소 개수가 더 많은 탄화수소의 경우 탄소의 수가 증가하면서 잘 증발하지 않으니 점화원 주변에 연료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인화가 되지 않으니 인화점도 증가한다. 앞에 제시한 표를 보면 분자 내 탄소 개수에 따라 그 물질의 특성이 일관되게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걸 알 수 있다.
탄화수소 분자에 탄소 개수가 더 많다는 건 분자량이 크다는 걸 의미한다. 이 물질을 기체화시키려면 상대적으로 좀 더 높은 온도가 필요하다.
무거운 분자를 기화시키려면 온도를 더 높여야 하고 산소ㆍ연료의 농도가 적정해져야 비로소 점화원을 가해 불을 붙일 수 있다. 탄소 수가 증가하면 인화점도 증가한다는 걸 예측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 사실인가!
이처럼 우리가 물질의 분자 내 탄소, 수소 개수를 알고 대략 구조를 추측할 수 있다면 그 물질에 불이 잘 붙을지를 짐작할 수 있다. 화학을 잘 알면 이러한 능력이 생긴다.
“탄화수소에 점화원을 가해 불이 난다면 에너지적으로 안정된 물과 이산화탄소를 만든다”고 앞서 계속 언급했다. 그러나 세상의 반응이 완벽하지 않을 때가 있다. 연소 중에 산소가 부족하다면 불완전연소가 되면서 에너지적으로 이산화탄소보다 덜 안정화된 무시무시한 일산화탄소를 만들기도 한다.
어쨌든 명확한 사실 하나는 에너지 보존 법칙에 따라 에너지는 보존된다. 불이 날 수 있는 에너지가 축적된 물질은 에너지, 즉 열을 방출하고 스스로 더 낮은 에너지 상태로 안정해지려고 한다는 사실이다.
자연에서 잘 변화하지 않는 아주 안정된 물질이 생성됐다면 그 상태가 되려고 이전부터 많은 열을 방출했을 거다. 만약 열을 방출하는 과정이 지속ㆍ연속적으로 반복됐다면 그 물질의 분자는 열을 내면서 불빛을 내는 불꽃을 만들어 냈을 수밖에 없다.
사람도 이기적이지만 자연의 물질도 이기적이라 대부분 스스로가 에너지적으로 안정화된 방향으로 가려고 한다. 그래서 불이 난다.
그 불을 만들어 내는 에너지는 화재현장의 골칫거리다. 하지만 실제 우리 인간의 삶에서는 몸을 움직이게 하고, 집을 데우고, 전기를 만들어 내는 좋은 일도 하기에 불은 양날의 검과 같다.
1) 최소점화에너지, 폭발범위, 발화온도 등은 물질이 놓여 있는 그 환경에 따라 달라지므로 상대적인 값들을 비교하자.
국립소방연구원 한동훈 : hdongh1@korea.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11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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