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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을 요청한 A 소방관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119 버튼을 누른다는 건 누군가의 도움이 절박한 상황일 것이다. 그리고 그 절박한 상황에 가장 먼저 응답하는 곳, 바로 119종합상황실이다.
“숨을 안 쉬어요? 의식은요?” “없어요. 없어. 빨리요. 빨리” “네네, 알겠습니다. 흥분하지 마시고 침착하세요. 구급차 출동 중입니다”
2019년 가을, 심정지 신고를 접수한 광주소방안전본부 소속 119종합상황실 A 소방관. 신고자에게 “침착하라”고 말했지만 심정지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A 소방관의 목소리는 비상벨처럼 커졌고 손에는 땀이 났다.
“신고자분! 흥분하지 마시고 구급차는 출동 중이에요. 전화 끊지 마세요. 지금 구급상황팀으로 전화 연결됩니다. 함께 가슴 압박 시작할게요”
심정지 환자가 발생하면 구급상황팀을 연결해 신고자가 응급처치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한편 심정지 발생 장소로부터 인접한 구급차 두 대를 동시에 출동시킨다. 현장에선 영상통화를 통한 의료지도와 약물 투여 등 응급실 수준의 적극적인 처치가 이뤄진다.
자신의 역할을 다한 A 소방관이 한숨을 돌릴 때쯤 또 다른 신고가 걸려 왔다.
“아이가 열이 나요. 열경련 같은데… 빨리 와주세요” “알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정확한 주소 알려주시겠어요?”
신고자가 불러주는 위치를 지령 PC에 옮겨적는데 A 소방관은 마치 그 주소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익숙했다. 기분 탓일 거로 생각하며 구급차를 출동시킨 A 소방관. 출동지령을 내렸지만 묘한 기시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허리를 바로 세우고 다시 한번 지령 PC를 살펴본다. 확인해 보니 조금 전 걸려온 심정지 환자 발생 장소와 같은 아파트, 같은 라인이었다.
정말 쉽지 않은 우연이라 생각할 때쯤 머릿속에 뭔가 ‘훅’하고 지나가는 느낌이 들면서 혹시나 있을지 모를 상황이 A 소방관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A 소방관은 신고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신고자분, 혹시 집 밖으로 나와 계시나요?” “네, 아파트 앞이에요. 빨리 와주세요” “지금 구급차는 가고 있는데 같은 아파트, 같은 동, 같은 라인에 심정지로 출동한 구급차가 있어요. 그런데 그 구급차를 타시면 안 되고 그다음 구급차를 타시면 돼요” “네? 뭐라고요? 구급차를 타지 말라고요?” “아니… 그게 아니고, 다시 한번 설명해 드릴게요…”
아이의 엄마로 추정되는 신고자에게 상황 설명을 했지만 이성을 잃고 흥분한 신고자는 이해하지 못했다. 통화를 제대로 이어갈 수 없었다.
통화를 마친 A 소방관은 불안한 마음에 지령 PC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출동하는 구급차의 이동 경로를 주시했다. 화면 위로 구급차 2대가 현장에 차례로 도착했고 저 멀리서 세 번째 구급차가 도착했다.
세 번째 구급차가 현장에 도착하고 열경련 아이를 병원으로 이송한다는 무전을 들은 뒤에야 모든 상황이 완벽하게 종료됐음을 확인했다. 그제야 A 소방관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원 이송을 마친 구급대원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현장 상황을 물었다.
“아, 신고자분이 아이를 안고 계셨는데 심정지 출동한 구급차 타시면서 ‘왜 출발을 안 하냐’고 구급대원들에게 따졌다고 하더라고요”
완벽하게 처리됐을 거란 A 소방관의 바람과는 다르게 심정지로 출동한 구급차에 올라탔다는 것이다.
“뭐… 다행히 저희 구급차가 바로 도착해서 병원 이송했는데 이송하는 내내 ‘우리 아이는 응급환자가 아니냐’, ‘왜 구급차를 못 타게 하냐’며 이해를 못 하시더라고요. 환자에 우선순위가 있다고 했는데도… 결국엔 그냥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구급대원과 통화를 마친 A 소방관은 ‘내가 좀 더 잘 설명했으면 그런 불편한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자책감이 밀려왔다.
어쩌면 열경련 아이를 안고 119의 도움을 바랐지만 눈앞에서 구급차를 한 대도 아닌 두 대를 놓친(?) 게 엄마로서는 속상하고 화가 났을지 모른다.
이 사건으로 119구급대에 대한 오해와 불신이 생겼을지 모를 신고자에게 A 소방관은 이 글을 통해 “구급 상황에도 우선순위가 있다”고 전하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광주 남부소방서_ 이태영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11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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