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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발표와 토론 열기 둘째 날 아침, Pre-Hospital/EMS/Out of Hospital #1세션이 오전 9시부터 시작됐다. 주제는 현장 구급 활동과 사전 병원 단계(Pre-Hospital) 연구로 다양한 발표가 이어졌다.
심폐소생술 중 자발순환회복(ROSC) 사례와 불필요한 응급실 내원 줄이기 전략, 현장 변수를 고려한 구급 관리 등 실제 구급대원들이 매일 맞닥뜨리는 문제들이 논의됐다.
나는 다섯 번째 발표자로 9시 20분부터 25분까지 연단에 섰다. 발표 주제는 ‘Understanding Paramedics’ Use of Body-Worn Cameras Against Assault: An Empirical Study Based on the Knowledge-Attitude-Practice (KAP) Model in Korea’.
이 연구는 2024년 국립소방연구원에서 수행한 성과로 국내 구급대원 5818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실증 분석이다. 단순한 학문적 보고가 아니라 국외 학회 무대에서 다룰 만큼 의미 있는 결과라고 평가받았다.
무엇보다 구급대원 폭행이라는 전 세계적 문제를 한국 사례를 통해 학술적으로 체계화했다는 점에서 학문ㆍ실무적 가치가 크다.
연구 결과는 기존 가설과는 다른 흐름을 보여줬다. 바디캠 착용률은 64.8%로 절반 이상이 실제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식은 태도ㆍ행동과 양의 상관이 아니라 오히려 약한 음의 상관관계를 보였다.
반대로 실제 사용을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은 태도(ρ= 0.769, p<0.001)였다. 즉 법적 지식이나 매뉴얼 교육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구급대원들이 장비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ㆍ문화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토론은 발표 직후부터 활발하게 이어졌다. 영국 연구자는 ‘영상의 법적 증거 효력’, 독일 연구자는 ‘촬영 동의 절차의 복잡성’, 오스트리아 구급대원은 ‘기관 차원의 강제성 부족’을 각각 언급하며 자국의 상황을 공유했다.
한국의 연구는 곧바로 국제적 대화의 출발점이 됐다. 각국은 공통의 고민과 차이를 확인하며 토론을 진행했다.
둘째 날 아침의 30분 세션은 결국 ‘구급대원 안전을 어떻게 보장할 건가’라는 국제적 화두를 공유하는 시간이 됐다. 한국의 연구는 그 대화의 기점이 됐고 발표 이후 여러 연구자가 자국의 정책과 현장 환경을 소개하며 서로 비교했다.
각국이 직면한 공통 과제와 차이를 확인하면서 앞으로 어떤 연구를 추가로 이어가야 할지 의견을 나누는 생산적이고 뜻깊은 토론의 장이 됐다.
비엔나에서 린츠로… 로젠바우어 방문길에 오르다 오전 내 발표 일정을 마친 뒤 우린 오스트리아 린츠에 있는 로젠바우어(Rosenbauer) 본사로 향했다.
로젠바우어는 세계 최대 규모의 소방차량 제작 전문업체로 150년이 넘는 전통을 지닌 기업이다. 최신 기술과 디자인을 접목한 소방차를 개발ㆍ생산하며 전 세계에 공급하고 있다. “소방차의 세계 표준은 곧 로젠바우어”라는 말이 있을 만큼 글로벌 소방 산업을 선도한다.
이번 방문은 단순 견학보단 국립소방연구원 대응기술연구과에서 추진 중인 여러 연구 과제와 직결된 일정이었다. 화재진압 장비와 차세대 소방차량 기술, 전기차 화재대응 장비 아이디어 발굴 등 앞으로의 연구 방향 모색을 위해 세계적 기업의 기술과 시설을 직접 확인코자 했다.
이를 위해 사전에 본사 측에 방문 목적을 담은 이메일을 보냈고 정식 승인과 함께 환영 메시지를 받은 뒤 일정을 확정할 수 있었다.
비엔나 중앙역(Wien Hauptbahnhof)에서 린츠행 고속열차에 몸을 실었다. 약 1시간 10분 동안 이어진 여정 내내 창밖으로는 알프스 자락과 전원 풍경이 펼쳐졌다. 학회 열기로 가득했던 비엔나와 달리 린츠로 다가갈수록 차분하고 묵직한 산업 도시의 기운이 스며들었다.
린츠는 오스트리아 제3의 도시로 약 21만명이 거주하는 상공업 중심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큰 피해를 당했지만 전후 복구 과정을 거치며 산업 기반을 단단히 다졌다.
덕분에 잘츠부르크나 그라츠 같은 문화ㆍ예술 중심 도시와 달리 린츠는 독일 도시들과 비슷한 산업ㆍ실용적 분위기를 풍긴다. 현대적인 건물과 공장, 연구시설이 어우러진 풍경은 ‘산업 수도’라는 별명에 걸맞았다.
반민기 “비엔나가 예술과 음악의 도시라면 린츠는 철저히 산업과 기술의 도시라는 게 대비되더군요”
박민영 “맞아요. 관광도시와는 다른 느낌이었고 연구자 입장에선 오히려 더 흥미로웠어요”
김홍식 “우리 연구 주제와 잘 맞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게 많을 것 같았습니다”
린츠역에 도착한 뒤 택시로 15분가량을 달려 로젠바우어 본사에 도착했다. 현대적인 건물 외벽과 붉은 로고가 단번에 눈에 들어왔다. 내부로 들어서자 아시아 지역을 담당하는 직원 알렉스(Alex)가 직접 우릴 맞이했다.
그는 환영 인사를 건네고 회사 역사와 비전을 간단히 소개한 뒤 생산 공정으로 안내했다. 조립라인 내부는 보안 문제로 촬영이 금지돼 있었지만 수많은 엔지니어가 부품 하나하나를 정밀하게 조립하고 테스트하는 과정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핵심 부품은 모두 공장에서 직접 제작한다”는 알렉스의 설명은 품질과 안전에 대한 로젠바우어의 자부심을 잘 보여줬다.
로젠바우어의 강점 중 하나는 주문자 맞춤 제작 방식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사양과 옵션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전 세계 소방관서와 산업체에 차량과 장비를 공급한다.
실제로 이날 현장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터키, 한국의 한 반도체 기업에서 주문한 자체 소방차량이 최종 검수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국가와 현장에 따라 다른 요구를 반영해 제작되는 과정을 직접 확인하며 ‘세계 소방차의 표준’이라는 평가가 결코 과장이 아님을 실감했다.
로젠바우어는 차량뿐 아니라 개인보호장비(PPE) 분야에도 막대한 연구개발 예산을 투자했다. 방화복과 헬멧, 장갑 등 소방대원의 안전과 직결되는 장비 개발을 통해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이는 단순한 차량 제조업체를 넘어 소방 안전 전반을 아우르는 글로벌 리더라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박민영 “단순히 차만 잘 만드는 회사가 아니네요. 소방대원이 입는 장비까지 아우르다니 연구 범위가 상당히 넓은 것 같아요”
김홍식 “특히 맞춤 제작 방식이 인상 깊습니다. 현장의 요구를 그대로 반영한다는 점은 우리 연구에도 시사점이 크네요”
반민기 “맞습니다. 오늘 본 차들이 각국의 사양에 따라 다르게 제작되는 걸 보니 한국의 특수한 환경에 맞는 소방장비 개발도 충분히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로젠바우어 방문은 오스트리아 소방 산업의 기술력과 철학을 직접 체감한 자리였다. 현장에서 얻은 통찰은 앞으로 국립소방연구원이 추진할 연구에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견학을 마친 뒤 택시를 타고 린츠 시내로 이동해 늦은 점심 겸 저녁을 해결했다. 이어 린츠역으로 향했지만 변수가 발생했다. 사전에 예약해 둔 비엔나행 OBB 열차가 1시간 30분 이상 지연돼 버렸다. 전광판에 떠 있는 ‘Verspätung(지연)’ 표시가 점점 늦춰질수록 피로감은 더해졌다.
우린 곧장 OBB 카운터로 향해 직원에게 문의했다. 직원은 표를 확인한 뒤 별도의 대체 이용 허가증을 건네주며 “오늘은 일정이 변경됐으니 이 종이로 다른 열차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낯선 환경에서 발이 묶일 뻔했지만 작은 종이 한 장이 큰 안도감을 줬다.
결국 예정된 열차가 아닌 다른 편성 열차를 타고 비엔나로 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도착했을 땐 이미 밤 9시가 넘어버렸다. 비엔나 서역(Wien Westbahnhof)에 내려 숙소로 향하는 길, 지친 발걸음은 무겁게 느껴졌지만 모두의 마음속에는 하루의 경험이 주는 충만함이 남아 있었다.
학회 발표와 국제적 토론, 세계적 기업 방문, 그리고 예기치 못한 열차 지연까지 모든 순간이 하나의 여정을 이뤘다.
그날의 귀환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연구자로서 성찰과 경험을 되새기는 시간이었다. 늦은 밤 역사를 빠져나오며 우린 서로에게 짧게 한마디를 건넸다.
“고단했지만 오늘 하루는 그만큼 값졌다”
이번 출장의 의미 10월 1일, 귀국을 앞둔 마지막 날 오후 다시 학회장을 찾았다. 학회의 열기는 여전했고 전시관에는 여전히 많은 업체가 남아 참가자들과 교류를 이어가고 있었다.
앞선 발표와 일정으로 미처 깊이 살펴보지 못했던 부스를 다시 방문해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제품의 기술적 특징을 듣고 연구 협력 가능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전시장 한편에 마련된 E-Poster 발표장은 이번 학회에서 가장 인상적인 경험 중 하나였다. 대형 스크린에 전 세계 연구자들의 포스터가 디지털로 게시돼 있었는데 관심 있는 주제를 직접 검색해 열람할 수 있었다.
해당 페이지에서 곧바로 저자에게 이메일을 보낼 수 있는 기능까지 있었다. 발표자를 직접 만나지 못하더라도 언제든 소통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다.
나 역시 학회 초반엔 발표 준비로 긴장해 다른 연구자들의 자료를 충분히 살펴보지 못했다. 하지만 마지막 날엔 시간을 내어 차분히 탐색하며 앞으로 연구에 참고할 만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 학문 교류가 학회 기간에 머무르지 않고 이후에도 이어질 수 있음을 직접 체감한 순간이다.
마지막 클로징 세레모니에서는 올해 EUSEM 2025의 우수 발표자 시상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내년 파리에서 열릴 EUSEM 2026 소식도 전해졌다. 발표자와 청중이 서로를 격려하며 1년 뒤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는 자리는 단순한 학술대회의 마무리가 아니라 새로운 도전의 출발을 알리는 상징처럼 느껴졌다.
이번 출장은 연구 성과를 알리는 걸 넘어 국제 학술 문화와 산업 현장을 동시에 경험하며 우리 연구의 위치를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할 소중한 기회가 됐다.
학회장에서의 치열한 토론과 린츠 로젠바우어에서의 현장 탐방, 전시장에서의 다양한 교류까지…. 짧지만 밀도 높은 여정은 연구자이자 실무자로서 시야를 한층 넓히는 계기가 됐다.
특히 낯선 환경 속에서 열차 지연을 겪고 늦은 밤 비엔나 서역에 도착해 하루를 마무리한 경험은 고단함 속에서도 ‘무사히 잘 해냈다’는 성취감을 더욱 선명하게 남겼다.
Messe Wien Congress Center는 참가자를 배려하는 세심한 운영으로 깊은 인상을 줬다. 멀리서 온 방문객들을 위해 지하에는 러기지 백이나 부피가 큰 짐, 코트를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었는데 짐을 맡기면 빨간색 번호표를 나눠줬다.
작은 배려였지만 덕분에 학회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고 국제 학회가 지향하는 환대와 세심한 문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한국 소방연구의 미래를 그리다 현지 시각 10월 1일 오후, 우린 비엔나 국제공항에서 대한항공 K938 편에 탑승했다. 5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출국장의 분주한 풍경은 긴장을 풀어주는 동시에 여러 장면을 되새기게 했다.
약 11시간의 비행 끝에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땐 시차에 적응할 틈도 없이 피곤함이 몰려왔다. 몸은 지쳤지만 마음 한편은 묘한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번 출장을 통해 우린 국제 학술 무대에서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유럽 응급의료 시스템과 교육 방식을 직접 체험하고 세계적 소방장비 제조사의 현장도 둘러봤다. 단순히 ‘보고 오는 출장’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의 연구와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하게 하는 살아 있는 배움의 시간이었다.
비행기 창문 너머로 한국 땅이 보이자 스스로 다짐했다.
‘돌아가면 이번 경험을 단순한 추억으로 남기지 않겠다. 구급대원이 더 안전하게 근무하고 국민이 더 신뢰할 수 있는 구급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연구를 한층 더 발전시키겠다’
국립소방연구원 구조구급연구팀의 첫 국제무대 도전은 이렇게 막을 내렸지만 동시에 또 다른 출발점이 됐다. EUSEM 2025에서의 경험은 한국 구급 연구가 세계와 호흡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고 앞으로 이어질 연구와 협력의 길을 제시해 줬다.
국립소방연구원_ 반민기 : Banminki@korea.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12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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