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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프 하나로 세계와 맞닿다… ‘GRIMP TAIWAN’- Ⅰ

우물 밖으로 던진 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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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원소방서 박정수 | 기사입력 2026/01/02 [10:00]

로프 하나로 세계와 맞닿다… ‘GRIMP TAIWAN’- Ⅰ

우물 밖으로 던진 로프

서울 노원소방서 박정수 | 입력 : 2026/01/02 [10:00]

소방공무원 10년 차, 구조대원의 끊임없는 질문

입사한 지 10년. 화재, 구조, 구급이 혼재한 수많은 현장을 지나왔다. 무너진 건물 속에서도, 좁은 공간 속에서도, 물속에서도 우린 늘 시민의 마지막 안전망이 돼야 했다. 그 속에서 로프는 숱한 장비 중 하나였겠지만 때론 그 한 줄이 생사의 갈림길을 결정했다. 현장을 오래 경험할수록 한 가지 마음만은 선명해졌다.

 

‘지금 우리가 쓰는 구조 기술이 최선일까?’

‘다른 나라 구조대는 같은 상황을 어떻게 풀어낼까?’

 

특정 분야의 전문가라서가 아니라 더 나은 구조대원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리고 우리 팀은 답을 찾기 위해 스스로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 여정의 일부가 2025년 2월 일본(GRIMP JAPAN)과 10월 대만(GRIMP TAIWAN)에서 열린 국제 로프 구조대회 참가다.

 

그중 10월 24일부터 26일까지 사흘간 열린 대만 로프대회에 관한 글을 쓰려고 한다. 이 글은 단순히 로프 구조대회 후기가 아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작은 단서다.

 

테크니컬 로프 구조의 세계

▲ 테크니컬 로프 구조 기초이론 공부 중

 

아직 많은 이에게 생소할 수 있는 ‘테크니컬 로프 구조(Technical Rope Rescue)’로 시작하겠다.

 

과거 로프 구조는 대원의 경험과 체력, 감각에 의존해 로프 하나로 하강하거나 단순한 인양 장비를 사용해 구조대상자를 끌어올리는 걸 목표로 하는 게 대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테크니컬 로프 구조는 완전히 다른 철학 위에서 발전해왔다.

 

테크니컬 로프 구조는 말 그대로 과학적 기반의 구조 기법이다. 하중 분산이나 마찰 요소, 지렛대 원리, 기계적 이점, 이중 확보 같은 물리학 원리를 체계적으로 적용해 시스템을 설계한다. 

 

단순히 ‘빠르게 내려가서 끌어올리는 구조’가 아닌 어떤 상황에서도 실패하지 않고 유지되는 팀 단위 구조 시스템을 목표로 한다. 이 과정에서 장비 하나, 매듭 하나도 팀 전체의 역할 분담과 흐름 속에서 의미가 있다. 즉 개인 기술이 아니라 팀 전체가 하나의 시스템처럼 움직이는 구조 방식이다.

 

이런 기술을 겨루고 교류하는 장이 바로 국제 로프 구조대회다. 단순한 스포츠 경기가 아니다. 서로의 기술을 시험하고 배우는 학습 플랫폼에 가깝다. 

 

각국 구조대는 실제 재난 상황을 기반으로 만든 복잡한 시나리오를 제한된 시간 안에 해결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장비 선택과 시스템 구축 방식, 팀 운용, 위험 분석, 의사소통 능력 등 모든 게 평가된다.

 

즉 국제 로프 구조대회는 ‘누가 더 잘하나?’를 겨루는 자리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더 안전하고 더 완성도 높은 구조를 만들 수 있는가’를 공동으로 탐구하는 장이다. 이런 교류는 결국 각 나라의 구조 기술을 끌어올려 현장 구조의 안전성과 신뢰도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대한민국 구조대 역시 이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우리 팀도 그 한가운데서 배우며 도전하고 있다.

 

 

세계의 주요 로프 구조대회

 

• Grimpday(벨기에): ‘그림프(GRIMP)’는 프랑스어로 산악 등 험지구조 전문 부대를 뜻하는 용어에서 파생됐다. 벨기에 나무르에서 열리는 Grimpday는 전 세계 로프 구조의 올림픽과도 같다. 가장 권위 있고 가장 험난한 모든 구조대원의 꿈의 무대다.

 

• GRIMP Japan & Taiwan: 아시아권의 맹주들이다. 서구권의 기술을 아시아 지형과 특성에 맞게 발전시켰다. 최근엔 본고장인 유럽 팀들도 긴장할 만큼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

 

• Chiao(대만): 대만의 대표적인 초청 대회다. 교량이나 협곡 등 대만 특유의 지형을 활용한 고난도 미션이 주를 이룬다.

 

• Rescue Great Day(프랑스 등): 전 세계적으로 열리는 또 다른 형태의 메이저 대회다. 다양한 구조 시나리오를 통해 창의적인 해결 능력을 평가한다.

 

왜 우린 국제무대로 향했는가

대한민국 소방의 장비와 인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즉 구조 기술의 디테일, 국제적 트렌드 습득과 관련해선 여전히 갈등이 있었다. 국내 훈련장은 정형화돼 있고 우린 익숙한 환경에서 익숙한 방법으로 훈련하는 것에 안주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 팀이 국제대회, 특히 GRIMP 시리즈에 도전하게 된 계기는 명확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다. 세계적인 구조팀들은 어떤 장비를 쓰고 어떤 시스템을 사용하며 돌발 상황에서 어떻게 팀워크를 발휘하는지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부딪치고 싶었다. 

 

특히 지난 2월 무작정 참가한 GRIMP JAPAN은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그 경험을 발판 삼아 10월 GRIMP TAIWAN 대회에선 더 완성도 높은 대한민국 구조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

 

팀 결성, 그리고 고된 준비의 시간

국제대회 참가는 개인의 의지만으론 불가능하다. 뜻을 함께할 동료가 필요했다. 다행히 주변엔 비번 날을 반납하고 로프를 잡는 ‘괴짜’들이 있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높은 곳을 바라보는 팀원들…. 우린 그렇게 팀을 꾸렸다.

 

▲ 그렇게 모인 팀원들

 

대회 출전을 목표로 석 달이라는 시간 동안 훈련에 매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팀 결성은 시작에 불과했다. 우리 앞엔 ‘현실’이라는 거대한 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1. 훈련 환경의 한계

국제대회는 고층 구조물과 대규모 산업시설, 특수지형 등 방대한 스케일에서 진행된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장소에 접근해 훈련하는 건 쉽지 않다. 사용하지 않는 교가 밑이나 폐건물, 산악 지형을 찾아다니며 훈련해야 할 때도 있었다.

 

2. 시간의 한계

본업을 병행하며 대회를 준비해야 했기에 함께 훈련할 시간이 늘 부족했다. 대회 멤버 모두 3교대 근무인데 1ㆍ2ㆍ3팀이 섞여 있었다. 같은 소속이라도 근무일이 서로 달라 일정이 맞는 날은 손에 꼽혔다.

 

‘오늘은 두 명 가능’, ‘내일은 또 다른 두 명 가능’과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그래서 한 번이라도 전원이 모일 수 있는 날이면 피곤하다는 말보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자”가 먼저 나왔다. 24시간 당번 근무 후 퇴근하자마자 장비를 들고 뛰어오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소중히 만들어진 훈련시간 속, 손바닥은 굳은살로 뒤덮였고 로프는 닳아갔다. 우린 수 없는 반복과 실패, 피드백의 과정에서 단순한 직장 동료를 넘어 서로의 생명을 맡길 수 있는 진정한 ‘팀(Team)’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3. 금전적 한계

국제대회 준비에는 생각보다 큰 비용이 들었다. 항공료와 차량 렌트비, 통역비, 식비 등 기본 비용이 만만찮았다. 장비 무게에서 비롯된 항공 수하물 초과 요금 또한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들것부터 몇백m의 로프, 하네스, 하드웨어 장비까지 챙기면 개인당 짐이 수십㎏을 초과했다. 그 비용은 항공료와 맞먹을 정도였다. ‘장비를 줄일 수 있을까?’를 고민했지만 대회 특성상 빼고 갈 수 있는 장비가 거의 없었다.

 

여기에 더해 훈련 과정에서 필요한 고가 장비 대부분이 개인 부담이라는 점은 금전적인 압박으로 다가왔다. 부족한 장비는 팀원들이 서로 분담해 구매하며 준비를 이어가야 했다. 그렇게 우린 각자의 여건 속에서 장비를 마련하고 있는 장비는 최대한 정비해가면서 훈련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출국 전야, 리더의 무게

 

대만으로 향하는 비행기 탑승을 앞두고 짐을 꾸리며 잠을 설쳤다. 팀 리더로서의 부담감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과연 우리가 준비한 기술이 거기서 통할까?’

‘팀원들이 다치지 않고 무사히 대회를 마칠 수 있을까?’

 

대회 참가는 단순히 순위를 다투는 게 아니다. 한국 소방의 명예를 걸고 나가는 자리이자 많은 후배 구조대원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줘야 하는 자리였다. 일본 대회 때 느낀 부족함을 이번 대회에서 만회하고 싶다는 욕심과 혹시 모를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공존했다.

 

하지만 공항에서 마주한 팀원들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빛나고 있었다. 두려움보단 설렘이, 걱정보단 자신감이 그들의 눈에 서려 있었다. 그들을 믿기로 했다. 그리고 나 자신을 믿기로 했다.

 

우린 대한민국 구조대원이다. 그 어떤 현장에서도 물러서지 않던 우린, 이제 대만이라는 낯선 땅에서 우리의 로프를 펼칠 준비를 마쳤다.

 

 

서울 노원소방서 박정수 wjdtn2234@naver.com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6년 1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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