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배터리 소화기’ 활개 치는데… 소방청 대책은 ‘헛바퀴’형식승인만 통과한 일반 소화기, 배터리 성능 불분명한 채 여전히 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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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PN 최누리 기자] = 배터리 화재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커지는 가운데 소화 성능이 불분명한 소화기가 여전히 시장에 유통돼 논란이다. 일반 화재의 적응성만 승인받은 소화기를 인증서나 시험성적서를 내세워 마치 정부로부터 배터리 소화 성능까지 인증받은 것처럼 홍보되고 있다. 이로 인해 배터리 화재에 대비하려는 소비자들의 혼란을 키우고 그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행법상 소화기는 화재 유형에 따라 A급(일반)과 B급(유류), C급(전기), D급(금속), K급(주방) 등 5종으로 나뉜다. 제조ㆍ수입 시에는 소방법에 따라 한국소방산업기술원(KFI)의 형식승인을 받아야 한다.
배터리 소화 성능을 공인받으려면 1차 형식승인을 받은 소화기로 ‘소화기의 소형리튬이온전지 화재 소화성능의 KFI인증기준(이하 배터리 소화기 기준)’을 별도 통과해야 한다. KFI에 따르면 배터리 소화기 기준 제정 이후 인증을 통과한 제품은 지금까지 단 1개뿐이다.
문제는 배터리 소화기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제품들이 버젓이 시장에 유통되고 있다는 점이다. 판매업체들이 일반 소화기로 형식승인을 득한 사실을 내세우며 마치 정부로부터 배터리 소화 성능을 입증받은 것처럼 홍보하기 때문이다.
실제 온라인에선 ‘배터리 소화기’나 ‘전기차 소화기’로 검색하면 상품명에 ▲소화장치 리튬배터리 테스트 인증 ▲리튬이온 배터리 소화기 전기화재용 ▲KFI인증 리튬배터리 테스트 완료 등의 문구를 표기한 제품이 다수 확인된다. 심지어 일반 분말 소화기를 ‘리튬이온 배터리 소화장비’로 소개하는 경우도 있다.
상세페이지의 과장 광고도 심각하다. 한 판매업체는 “분사와 동시에 화기를 잠재우며 배터리 내부에 침투해 냉각 작용을 일으킨다”며 “실화재 테스트를 통한 수많은 검증”이라고 제품을 홍보한다. 또 다른 업체는 해외 테스트 결과를 통해 배터리 화재 적응성이 검증된 것처럼 안내하기도 했다.
이런 홍보는 잇따른 배터리 화재로 커진 소비자의 공포심을 파고들고 있다. 구매 후기에는 ‘전용 소화기라 안심된다’, ‘전기차 충전시설용으로 샀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무정전전원장치(UPS) 화재 대비용으로 구매했다는 후기도 있다. 배터리 소화 성능이 불분명한 소화기를 믿었다가 초기 진화 실패는 물론 2차 피해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상황이 이런데도 소화기의 승인을 담당하는 소방청은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관계기관 모니터링을 통해 허위ㆍ과장 광고를 막고 있다고 해명하면서도 온라인 유통 특성과 법적 권한의 한계를 들어 “완벽한 차단은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소방청은 “배터리 화재 적응성이 검증되지 않은 제품을 허위ㆍ과장 광고하는 행위는 소비자에게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면서도 “해외 직구나 개인 판매자 등 온라인 판매 중개 플랫폼 특성상 사전 판매행위를 제재하기 어렵고 허위ㆍ과장 광고 판매 사항은 공정거래위원회 소관이기에 지속해서 협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온라인 키워드를 설정해 판매처 등록을 원천 차단하는 건 어려움이 있어 온라인플랫폼 정보제공을 강화하고 SNS 게시와 안내문 발송, 홍보 등을 진행하고 있다”며 “소화기 등 소비자 사용이 잦은 소방용품을 판매할 때 형식승인 정보를 의무 제공하도록 공정거래위원회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상품 등의 정보제공에 관한 고시’ 개정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소화기가 국민의 생명ㆍ안전과 직결된 만큼 일반 공산품보다 훨씬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동현 전주대학교 소방안전공학과 교수는 “소화기는 승인받은 용도 외의 성능을 암시하거나 표시해선 안 된다”며 “인증 사항을 오인하거나 혼동하게 만드는 광고는 위법 소지가 있는 만큼 소방청이 책임지고 관리ㆍ감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영주 경일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배터리 소화기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제품이 정부로부터 성능을 입증받은 것처럼 팔리는 건 단순한 표시ㆍ광고 위반을 넘어선 문제”라며 “해당 소화기가 제 역할을 못 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꼬집었다.
이어 “소방청이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제재를 해야 한다”며 “적발 시 강력한 제재를 통해 업체 스스로 자정하도록 유도하고 각 인증품에 대한 정의를 재설정해 해당 용도 외의 성능을 홍보할 경우 위법이라는 근거를 마련하는 등 다각적인 방안을 통해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누리 기자 nuri@fpn119.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