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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은 설명이 아니라 환경으로 완성된다”- Ⅰ

싱가포르 민방위학교(CDA) 연수에서 본 소방교육의 한 가지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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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소방학교 표수정 | 기사입력 2026/02/02 [10:00]

“훈련은 설명이 아니라 환경으로 완성된다”- Ⅰ

싱가포르 민방위학교(CDA) 연수에서 본 소방교육의 한 가지 방식

중앙소방학교 표수정 | 입력 : 2026/02/02 [10:00]

 

소방교육에서 늘 ‘현장 중심’이란 말을 사용한다. 하지만 교육을 설계하는 관점에서 현장을 어디까지, 어떻게 미리 경험하게 할 건지는 쉽지 않은 문제다. 

 

훈련은 반복되지만 그 반복이 실제 상황과 얼마나 닮아있는지, 훈련이 끝나고 남는 게 현장에서 작동할 경험인지, 익숙함에 가까운 건지를 곱씹어보게 된다.

 

이번 싱가포르 민방위학교(Civil Defence Academy, CDA) 연수는 이런 고민에서 출발했다. 무엇을 더 가르칠 것인가 보단 어떤 환경을 먼저 경험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Train as We Operate’ 훈련을 바로 보는 한 가지 원칙

연수 기간 교관들이 설명 속에서 반복해 들었던 문장이 있다.

 

“Train as we operate”

 

이 문장은 단순 구호라기 보다 훈련을 실제 재난현장의 축소판으로 만들겠다는 다짐에 가깝게 느껴졌다. 교육 과정과 시설은 훈련을 위해 단순화하기보다 재난현장이 가진 불확실성과 복잡함을 가능한 한 그대로 옮겨 놓으려는 시도인 것 같았다.

 

이 원칙은 교관 제도나 교육 과정보다 훈련시설 전반에서 분명하게 체감됐다.

 

통합재난대응 실험실, Odyssey

 

▲ Odyssey는 실화재 훈련이 가능한 내화 블록으로 마감돼 있었다. 

 

▲ 침수사고를 훈련할 수 있는 급배수 설비도 갖춰져 있었다. 

 

Odyssey는 단순한 훈련장이 아니라 하나의 통합재난대응 실험실에 가까웠다.

 

화재 상황만 가정한 게 아니라 생화학 사고나 테러 상황, 차량 침수사고 등 다수 사상자가 발생하는 복합 재난까지 한 공간 안에서 동시에 설정할 수 있도록 설계됐기 때문이다. 훈련대상 역시 팀 단위부터 군, 경찰 등 다부처 협업으로 진행됐다.

 

이 공간에서는 화재 진압 중 유해물질 노출 상황이 발생하거나 구조 활동 중 테러 위협이 겹치는 식의 설정을 통해 훈련 단계서부터 하나의 흐름을 파악하게 한다. 이렇듯 복잡한 훈련을 통해 상황 전체를 통합적으로 판단하고 어디까지 통제할 수 있는지를 경험하게 한다.

 

재난을 분리해서 대응하는 게 아니라 한 공간 안에서 동시에 관리해 대응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현장을 설명하기보다 먼저 겪게 하는 방식인 셈이다. ‘Train as we operate’라는 문장이 가장 현실적으로 체감되는 공간이었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공간, Lean House

Lean House에 들어서는 순간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시야에 들어오는 구조보다 균형감각이 먼저 무너졌고 잠깐이지만 현기증이 느껴졌다. 바닥 면이 심하게 기울어진 층에 올라서자 훈련용 로프를 잡지 않고선 똑바로 서 있기조차 쉽지 않았다.

 

 

Lean House에서는 이 상태 그대로 구조 활동이 이어진다. 기울어진 바닥 위에서 이동하고, 장비를 다루고, 구조대상자를 구출해야 하기에 평지에서 당연했던 동작들이 여기선 전혀 다른 난도로 다가온다.

 

 

 

▲ 싱가포르 Mandai, Home Team Tactical Centre(HTTC)에 위치한 Lean House

 

훈련의 목적은 ‘균형을 잡는 방법’이 아니라 불안정한 상태 자체를 경험하게 한다는 데 있다. 재난현장에서의 건물은 늘 수직을 유지하지 않고 구조 활동은 언제나 안정된 조건에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전제를 훈련 환경에 그대로 옮겨 놓은 셈이다. 

 

이곳에서의 경험은 싱가포르 소방교육이 무엇을 먼저 단련하려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현장을 설명하기 전에 현장을 그대로 겪게 만드는 것. 그들의 교육훈련 철학은 이 기울어진 공간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전술을 데이터로 다시 보는 공간, STRiVE

 

 

 

▲ 360° 가상환경과 6자 유도 모션플랫폼 시스템을 갖춘인체공학 훈련시설인 STRiVE

 

STRiVE에 처음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넓은 돔 형태의 공간 한가운데 놓인 대형 트레드밀이었다. 단순한 체력 측정 장비가 아니라 그 위에서 실제 작전 동작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도록 설계된 공간이다.

 

대원은 보호장비를 착용한 상태로 트레드밀 위에 올라가는데 몸에는 여러 측정 장비가 부착된다. 그 상태에서 걷고, 뛰고, 방향을 전환하며 실제 현장에서의 움직임을 그대로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측정되는 건 단순하게 속도나 심박수만이 아니다. 보폭과 하체 하중 분포를 통해 신체에 가해지는 압력과 특정 동작에서 어느 부위에 부담이 집중되는지, 재활 과정에서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하는지까지 데이터로 축적된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화재 진압 주수 동작을 분석하는 방식이다. 주수 과정에서 하체 하중을 어디에 둬야 가장 안정적인지, 어떤 자세에서 반동을 가장 효율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지가 수치로 정리됐다.

 

교관 설명에 따르면 이런 분석 결과는 단순히 연구 자료로 끝나지 않는다. 가장 이상적인 자세와 하중 분포를 기준으로 교육 내용이 정리되고 다시 매뉴얼로 연결된다. 전술 동작이 개인의 감각이나 경험에만 의존하지 않고 측정과 검증을 거쳐 표준화되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전술을 ‘잘하는 방법’이 아니라 ‘신체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가장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방법’으로 관리한다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점은 데이터 구축의 방향이다. 그간 서양인의 체형을 기준으로 한 자료는 어느 정도 축적돼 있었지만 동양인의 체형과 근력 분포에 맞는 전술 동작 데이터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게 CDA 측 설명이다.

 

STRiVE에서는 바로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한 데이터 축적이 진행 중이다. 체형에 맞지 않는 전술은 결국 부상과 피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전제로 한다.

 

STRiVE를 둘러보며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전술은 숙련이나 경험으로만 관리할 영역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측정되고

지속해서 업데이트돼야 할 대상이다’

 

가장 이상적인 자세로, 가장 효율적인 주수를 가능케 하는 이 과정은 전술 역시 훈련과 마찬가지로 관리ㆍ발전돼야 한다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중앙소방학교_ 표수정 : su7177@korea.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6년 2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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