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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로 튄 소방관의 퇴직 인생- 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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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PMC 유기운 | 기사입력 2026/02/02 [10:00]

아프리카로 튄 소방관의 퇴직 인생- Ⅹ

서울대병원 PMC 유기운 | 입력 : 2026/02/02 [10:00]

10. 방화복을 벗고 흘리는 땀

 

“아니 평생 다닌 직장 그만두고 

아프리카인지 뒤프리카인지 가는 게 두렵지 않으세요?” 

 

친한 소방관 후배가 물었다. “선배님 대단하세요!, 정말!” 나는 자신에게 후한 사람이 아니다.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존재인지 잘 알기 때문에 그렇다.

 

소방학교에서 중부소방서 현장대응단으로 발령받고 두려웠다. 한 부서 근속기간이 갑자기 8년에서 7년으로 단축되면서 예정보다 빨리 소방학교를 나와야 했다. 인사 발령 과정에서 승진에 한참 처진 나를 처음으로 자책하기도 했다. 

 

소방관 초짜일 때 같이 근무한 윤영란 과장이 세월이 흘러 내가 일하던 부서의 장으로 왔다. 상사로 모신 1년 동안 약간 몽상가 기질이 있는 나에게 현실적 조언과 도움을 준 고마운 사람이다. 현실 파악에 굼뜨고 내 생각이 우선인 나는 말을 잘 듣지 않았고 예전에도 그랬단다. 

 

“구급만 하지 마시고, 예방도 해보시고, 

그리고 승진하세요” 

 

먼 과거에 해줬던 조언이라고 한다. 까마득히 잊고 있던 짤막한 대화였다. 묻혀있던 기억이 어스름하게 살아났다. 소방본부 앞 퇴근 무렵이었던 것 같다. 우연히 만난 나에게 그렇게 말했고 “승진보다 구급 전문가가 되고 싶습니다”고 대답했던 것 같다. 

 

소방 같은 계급 사회에서 어깨의 계급이 가벼우면 때론 경력도 헐값이 된다. 계급의 무게가 능력의 크기가 되기도 한다. 그게 인간 조직의 기본 속성이라 받아들이고 살았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그 무능을 후회하는 일이 가끔 있었다. 소방 조직을 떠나기 전까지만.

 

이제 화재 진압을 해야 할 터인데, 언제였더라? 25년이 족히 넘었다. 방화복 위에 공기호흡기를 매고 관창을 잡아본 지가. 구급대원으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노력 대부분을 그쪽에 쏟아부었다. 

 

이제 직장 경력에서 관심 밖이던 진압대원으로 일해야 한다. 두 가지 다짐을 세웠다. 첫째, 동료들에게 도움은 되지 못할망정 짐은 되지 말자. 둘째, 화재현장에 가장 앞서 들어가고 가장 나중에 나오지는(First in, Last out) 못하더라도 동료들 옆에는 같이 있자.  

 

▲ 실화재 훈련

 

소방서 현장대응단 진압대 근무는 조금 낯설었다. 세대가 바뀐 만큼 근무 분위기가 달랐다. 장비도 세월만큼 변했다. 무엇보다 내 몸이 새로운 것에 서툴렀다. 화재 진압에 이제 막 소방학교 신임자 교육을 마친 초짜보다 더 생초짜인 셈이다. 

 

중부소방서 현장대응단 사무실 옆에 작은 체력 단련실이 붙어있었다. 일과 후 방화복을 입고 공기호흡기를 맨 채 걷는 연습부터 했다. 장비 착용과 조작에 익숙해져야 했다. 내 호흡이 한 통의 산소를 얼마 만에 비워내는지, 어떻게 해야 더 오래 버틸 수 있는지를 몸으로 배워야 했다. 

 

화재현장에서 누구를 살린다는 숭고한 목표보다 내가 먼저 살기 위해 절박했다. 쭉 뻗은 한쪽 팔 길이의 앞도 보이지 않는 곳이 화재현장이다. 거대한 뱀이 먹이를 삼키기 전에 먼저 질식시키듯 불도 태우기 전에 암흑의 유독가스로 생명을 빼앗는다. 

 

영등포소방서 신임자 시절 화재현장 지하에서 산소가 떨어져 ‘턱’하고 숨이 막혀오자마자 나도 모르게 손이 먼저 공기호흡기 면체를 벗어버리는 경험이 신경에 생생히 박혀 있어 더 절박했는지도 모르겠다.

 

대응단 근무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화재가 발생했다. 중부소방서 관내에 있는 작은 봉제 업체 지하 작업장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펌프차 뒤를 따라 탱크차를 타고 현장에 도착했다. 지하를 삼킨 시커먼 연기가 마치 악마의 아가리에서 나오는 것처럼 지하 계단을 타고 분출하고 있었다. 

 

계단을 타고 내려선 소방 수관만이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불 구덩이로 후배 동료들이 진입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나도 따라 진입하려고 지하 계단에 발을 내디디면서 호흡기 용기 밸브를 돌리자 산소 새는 소리가 들렸다. 서두르다 산소통과 등지게 고압 조정기 결착을 잘못한 듯싶었다. 

 

멈칫하는 나를 보고 진압대장이 “들어가지 말고 입구에 대기하세요!” 한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공포의 본능은 의지보다 강했다. 세월이 주는 짬밥만으로 누구나 전문가가 되는 건 아니다. 

 

계급과 나이에 상관없이 내가 본받고 싶은 후배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서울 중부소방서 이동석 주임이었다. 이동석 주임이 진짜 소방관이라고 생각한다. 그를 보면서 화재 진압도 구급만큼 참 매력적인 분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화재현장에 출동하면서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출동하는 나조차도 ‘허접하지만 멋지다’는 자아도취에 빠지곤 했다. 이래저래 탁월함과는 거리가 먼 채 소방을 떠났고 내가 떠난 빈자리는 나보다 더 나은 누군가가 채웠을 터였다.

 

“아프리카가 두렵지 않냐?”는 후배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이제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죽음과 극단의 감정들이 나를 갈라놓았던 수많은 구급 출동과 화재현장보다는 두렵지 않다고.

 

나에게 내리쳐진 수천 번의 망치질이 아프리카 응급의료 체계를 만들 담금질이었다고. 그래서 윤동주 시인이 ‘서시’에서 말한 ‘나한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갈 수 있다고.

 

비가 내리지 않는 건기의 때가 슬금슬금 다가오는 11월에 서울대병원 출장팀이 왔다. 카메룬 병원 전 응급의료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 착수 후 세 번째이자 2025년 마지막 출장이다.

 

이번 출장도 여느 때처럼 거버넌스(Governance: 프로젝트의 무엇을 누가 책임질지 정하는 틀) 구축 관련 회의, 프로젝트 진행 현장점검, 의료 기자재ㆍ큐리병원 증축 등 여러 현안이 논의될 예정이다.

 

큐리병원 의사, 간호사 교육도 일정에 포함됐다. 의무기록 교육은 정주 교수, 출동 기록지 작성ㆍ응급처치 교육은 최슬기 교수와 정화윤 구조사께서 맡았다.

 

▲ 최슬기 교수와 정화윤 구조사가 진행한 큐리병원 직원 응급처치 교육

 

서울대 의대, 야운데 의대 간 협력 양해각서(MOU) 체결도 목표였다. 특히 이번 출장의 가장 큰 현안은 야운데 지역 응급의료 이용 관련 역학조사였다.

 

야운데 의대와 MOU 체결 합의, IRB(Institutional Review Board) 승인을 출장팀 도착 전에 마무리해야 했다. 무엇보다 역학조사의 윤리성을 증명하는 IRB 승인을 받지 못하면 출장의 가장 큰 목표인 역학조사가 무산되기에 부담이 컸다. 

 

야운데 의대와 서울대 의대 간 MOU 체결은 프로젝트 시작 전인 꽤 오래전부터 추진된 사안이다. 프로젝트 착수 후 첫 번째와 두 번째 출장 중에 신상도 교수, 정중식 박사, 코이카 서주의 부소장께서 야운데 의대 학장, 보직 교수들과 공식 회의를 했다. 

 

신상도 교수께서는 MOU 체결을 통해 야운데 의대에 응급의학과를 개설하고 미래에 카메룬 응급의료체계를 발전시킬 전문의료인을 양성토록 하는 게 장기적인 복안이었다. 내가 보기에 양 의대 간 MOU 체결은 야운데 의대에 ‘먹을 것’이 많았다. 

 

그런데도 야운데 의대는 적극적이지 않았다. 의대 교수 1년 초청 연수도 무산됐다. 야운데 의대 학장은 MOU 체결 관련 논의를 자신이 아닌 교직원 마틴(Martin) 씨와 해달라고 연락해 왔다. 공을 떠넘기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닥터 메토고와 마틴 씨를 만나러 갔다. 서류 뭉치가 쌓인 회의실 탁자 구석에서 마주 앉은 마틴의 태도는 약간 냉랭했다. 마지못해 만나는 느낌을 받았다. 한 시간 정도 MOU 취지를 설명하면서 그나마 살얼음은 녹일 수 있었다. 

 

출장을 앞두고 두 번째 만남에서 야운데 의대가 MOU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내용을 영어와 불어로 정리해 갔다. 학장과 윗선에 보고해 달라고 당부했다. 코이카 자원봉사자 파견 때 마틴 씨 관심 사항과 협업도 가능함을 덧붙였다. 

 

마틴 씨의 태도는 세 번째 만남에서 더 적극적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서울대 의대와 MOU를 체결하기로 했다고 마틴 씨가 연락해 왔다.

 

▲ 서울대 의대와 야운데 의대 MOU 체결 후 교정에서 기념 촬영(코이카 나혜선 부소장, 신상도 교수, NGO UM Esther Juliette 의대 학장, 정주 교수, 야운데 의대 교수)

 

서울대 의대와 카메룬 IRB 위원회 양측의 승인을 받아야 응급의료 이용 역학조사에 착수할 수 있었다. 역학조사 연구계획서와 관련 서류를 IRB 사무실에 제출하는 게 첫 단계였다. 11월 출장 기간 중 역학조사를 하려면 야운데 IRB 위원회 개최 일정에 맞춰 9월 23일까지 접수를 마쳐야 한다. 연구팀이 서울대 IRB 승인을 먼저 받았다. 

 

약 120쪽에 달하는 연구계획서는 서울에서 김민정 박사께서 맡아 하셨다. 이전 역학조사 IRB 승인을 받으면서 어려웠던 점을 정중식 박사께 들었던 터라 IRB 사무실에 가끔 인사차 들렀다.

 

간식을 사 가기도, 한국에서 사 온 마스크 팩을 건네기도 했다. 그러면서 접수 사무실에서 일하는 마담 소피(Sophie), 알린(Aline)과 친분이 쌓였다. 

 

하루는 퇴근 후 힐튼 호텔 근처 빵집(Le Moulin de France)에 데려갔다. 둘은 메뉴판을 받고도 선뜻 고르지 못했다.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너무 비싸다”고 말한다. “오늘은 제가 사드리는 것이니 드시고 싶으신 거 드세요!”라는 말을 듣고서야 주문한다.

 

아직 자식들이 어린 알린은 닭고기를 주문했다. 몇 점 먹지도 않고 배가 부르다고 한다. 카메룬에서는 흔히 점심을 거르거나 땅콩 같은 것으로 식사를 대신하곤 한다. 꼭 돈이 없어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알린이 배가 부르진 않았을 것이다. 어린아이들 생각에 그런 눈치였다. 포장해달라고 했다. “후식으로 아이스크림 드실래요?” 하자 안 먹겠다고 한다. “빵을 좀 사드릴까요?” 하자 얼굴이 밝아진다. 그렇지 않아도 먹을 걸 싸서 보낼 생각이었다. 엄마의 마음은 카메룬이나 한국이나 똑같다.

 

카메룬에서 내 비장의 무기는 한국의 마스크 팩이다. 몇 장의 마스크 팩을 건넬 때 좋아하지 않은 카메룬 사람은 없었다. 알린만 유일하게 내가 건넨 한국의 마스크 팩에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알린에겐 본인의 얼굴에 붙일 촉촉한 화장 종이보다 아이들 입에 넣어줄 촉촉한 크로와상이 반가웠을 것이다. 그날 알린은 하나에 사백 세파하는 바케트 몇 개와 묵직한 식빵을 골랐다. 

 

▲ IRB 사무실 알린에게 연구계획서 접수

 

연구계획서 접수에도 시간이 꽤 걸렸다. 참여 연구진 서명과 IRB 요구 서식에 맞춰 연구계획서를 수정하는 데 품이 많이 들었다.

 

마담 소피와 알린을 큐리병원 사무실로 오게 해서 직접 검토하고 수정할 부분에 첨삭해달라고 했다. 물론 수고비는 따로 챙겨줬다. 연구계획서 심사비 50만 세파도 은행에 가서 납부했다. IRB 승인은 끝까지 애를 먹였다. 접수 후 사후 절차도 번거로웠다. 무엇보다도 담당 공무원들이 움직이지 않았다.

 

한국 같으면 담당 직원이 사소한 실수나 절차를 전화로 알려주지만 여기서는 그런 기대를 접는 게 좋다. 

사소한 서명 누락이나 보완 요구 사항같이 한두 시간이면 될 일이 여기선 며칠씩 걸리곤 했다. 행정 전산화가 돼 있지 않으니 일일이 서류를 들고 수정해서 다시 출력하고 보완해야 했다.

 

이전 단계 담당자가 출장을 가면 출장에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음 단계로 가서 담당자를 찾으면 자리에 없는 식이다.

 

우여곡절 끝에 출장팀이 도착하고 역학조사 시작 이삼일을 앞두고서야 최종 승인을 받았다. 닥터 메토고와 함께라서 할 수 있었다. 큐리 병원에 코이카 자원봉사자로 온 이수한 선생도 많이 도와줬다.

 

▲ 큐리 원장 닥터 월롱이 마련한 서울 연수 기간 중 환대 답례 만찬

▲ 큐리 야외 계단에서 고은희, 윤실빈 연구원

 

야운데 인근 여러 마을에 거주하는 약 2천 가구를 대상으로 한 응급의료 이용 역학조사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DLMEP 안야(Anya) 박사가 교육하고 선발한 역학 조사원 40명을 고용해 수행했는데 조사원 관리가 쉽지 않았다. 

 

2명씩 20개 조를 짜서 약 2주에 걸쳐 매일 조마다 일곱 가구에 대한 조사지와 교통비, 간식, 조사 가구 답례품 등을 챙겨 보내야 했다.

 

출발 전에 전날 조사한 조사지 내용과 휴대전화로 입력한 내용을 검토해 잘못된 건 수정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교육해야 했다. 이렇게 서울로 보내진 자료는 김민정 박사와 서울대병원 통계팀 검토를 거쳤다. 

 

▲ 야운데 역학조사 현장

▲ 역학조사 참여 인증서 수여식(코이카 카메룬 사무소 나혜선 부소장) 

 

역학 조사원 40명은 변덕스러운 요구가 많았다. 계약 조건 이상을 해줘도 더 없냐고 할 때는 힘이 빠지곤 했다. 신상도 교수 등 네 분이 먼저 귀국했다.

 

윤실빈, 고은희 두 연구원은 뒤에 남아 2주 동안 주말도 없이 설문지에 묻혀 밤잠을 설쳐가며 일해야 했다. 서울대 PMC 출장이 항상 시간에 쫓겨가며 진행됐지만 이 두 분만큼 귀국 날까지 일에 치이다 간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래도 마무리는 했다. 이번에도 막힌 곳을 뚫어주는 ‘카메룬 뚫어뻥’ 메토고의 도움이 컸다. 역학조사도 ‘나의 일’이라면서 두 사람 몫을 해준 이수한 선생의 도움을 빼놓을 수 없다. 쉬는 날인데도 역학조사 마무리 행사에 참석해 도와주신 코이카 나혜선 부소장께도 감사드린다. 

 

자신에게 박한 나도 수고한 내 어깨를 토닥여 주고 싶다. 인천공항에 잘 도착했다고 보내온 사진 속 윤실빈, 고은희 연구원 표정은 조사 착수 전 큐리 병원에서 찍은 사진처럼 행복해 보였다.

 

 


유기운

서울에서 생계형 소방관으로 30년 근무했다. 현재 소방관 인생을 마무리하고 갑자기 아프리카로 튀어 카메룬 야운데에서 코이카 병원 전 응급의료체계(EMSS) 구축 프로젝트 현지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PMC_ 유기운 : waterfire119@naver.com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6년 2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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