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인 폭염이 지나가면 시민들의 표정에는 여유가 번진다. 답답했던 실내를 벗어나 산과 들, 강과 바다로 나서며 야외활동이 활기를 되찾는다. 그러나 구급대원으로서 필자가 느끼는 건 또 다른 긴장감이다. 무더위가 지나간 자리를 대신해 각종 응급환자가 급증하는 시기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폭염 이후에 왜 환자가 늘어날까?
폭염 속에서는 활동량이 줄어들고 야외활동을 자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기온이 누그러지면 억눌렸던 활동 욕구가 분출되면서 무리한 운동, 장시간 야외활동이 늘어나고 그만큼 위험도 증가한다.
이런 시기에는 아래와 같은 유형의 응급환자가 많아진다.
첫째, 심혈관계 환자다.
고온에 장시간 노출됐던 신체는 이미 탈수와 혈액 점도 상승 상태에 놓여 있다. 이런 상태에서 갑작스러운 등산, 조깅, 축구 등 격렬한 운동을 하면 심근경색, 협심증, 뇌졸중 등 치명적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65세 이상 고령자와 만성질환자는 위험이 훨씬 커진다.
들째, 외상 환자다.
앞서 언급했듯 가을철로 접어들면서 산행ㆍ레저활동이 증가하고 캠핑장 불꽃놀이로 인한 화상, 자전거 사고, 하천 활동 중 골절 등 다양한 외상이 발생한다. 실제로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폭염 이후 가을철 산악사고 출동 건수는 여름철 대비 20% 이상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
셋째, 소아ㆍ청소년ㆍ노약자 환자다.
아이들은 활동량이 급격히 늘어나 탈수와 열사병, 놀이터 추락사고를 당할 수 있다. 노인은 폭염 후 갑작스러운 일교차와 체력 소모로 실신ㆍ저혈압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구급대원으로서 종종 ‘조금만 준비했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사고’를 마주한다. 예컨대 가을 등산길에서 충분한 수분을 챙기지 않아 쓰러진 어르신, 캠핑장에서 구급상자 없이 불을 피우다 화상을 입은 아이, 간단한 보호장비만 착용했어도 예방할 수 있었던 자전거 사고 등이 그것이다. 환자 본인은 물론 가족들에게도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 소방공무원에게도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처럼 폭염이 끝났다고 안전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이 시기에 꼭 지켜야 할 생활 수칙을 당부드리고 싶다.
첫째, 충분한 수분과 휴식
갈증을 느끼지 않아도 정기적으로 수분을 섭취해야 한다. 음주는 탈수를 촉진하므로 야외활동 전후에는 삼가한다.
둘째, 건강 상태 확인 후 활동이다.
고혈압ㆍ당뇨ㆍ심혈관질환 환자는 무리한 활동을 피하고 증상이 느껴지면 즉시 중단해야 한다. ‘괜찮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진다.
셋째, 안전 장비 준비다.
등산 시 지팡이나 헤드랜턴, 휴대용 구급상자를 구비하고 캠핑할 때는 소화기와 응급약품을 준비한다. 작은 준비가 위기에서 큰 차이를 만든다.
넷째, 응급처치 지식 습득이다.
심폐소생술(CPR)과 자동심장충격기(AED) 사용법은 누구나 배울 수 있다. 평소 교육을 통해 익혀두면 가족과 이웃의 생명을 지킬 수 있다.
119구급대원은 폭염 속에서도, 폭염이 끝난 뒤에도 늘 현장에서 시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달려간다. 그러나 안전은 결코 구급대원만의 노력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시민 스스로의 준비와 협조가 함께할 때 우리 사회는 더욱 안전해질 수 있다.
폭염이 끝나고 가을이 찾아오면 더 많은 환자가 발생하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안전이 확보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구급대원으로서 오늘도 시민 여러분께 당부드린다. 안전은 습관이고, 준비는 생명이다.
대전서부소방서 119구급대 소방장 민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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