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광고

[기고] 재난심리안정지원

광고
소방방재청 김영철 예방전략과장 | 기사입력 2011/03/03 [19:07]

[기고] 재난심리안정지원

소방방재청 김영철 예방전략과장 | 입력 : 2011/03/03 [19:07]
▲ 소방방재청 김영철 예방전략과장

고베 중앙구에 위치한 나기사(なぎさ)초등학교는 몇 년 전까지 종소리가 울리지 않는 학교로 알려져 있었다.
 
1995년 1월 17일 한신아와지대지진(阪神淡路大震災, 고베대지진)의 처참한 악몽을 학생들이 다시는 떠올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교육청의 배려였다.
 
많은 학생들이 고베대지진으로 가족이나 친척 혹은 친구를 잃었거나 지진의 처참한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보아 지진 후 10년이 지나도록 당시의 정신적, 심리적 충격이 뇌리에 잠재되어 학교 종소리에 이상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종소리에 놀라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어떤 어린이는 멍하게 하늘을 쳐다보는 증상을 보이기도 했다.
 
지진을 경험한 학생들이 모두 졸업하면서 종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게 되었지만, 재난으로 인한 심리적 충격의 심각성을 알 수 있는 좋은 사례다.

우리나라에서도 태안 유류유출 주민자살(‘08년), 성수대교 붕괴 피해 학부모 알코올중독(’05), 대구지하철 참사 생존자 정신분열증세(‘04년), 태풍 ’매미‘ 재산피해 농민 자살(’03년) 등 정신적 심리적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불행한 결과로 이어지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자동차 사고자의 12%, 성폭행 피해자의 80%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는데 비해, 태안 유류유출 지역 주민의 약 60%가 ptsd를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이처럼 재난으로 인한 심리적 충격의 심각성이 극단적인 행동으로 표출되는 요인으로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재난은 수습활동이 장기화되기 쉬워 심리적 충격도 함께 심각해진다는 점이다. 태안 주민들은 기름 제거 작업이 길어지면서 경제적 불안, 육체적 피로가 쌓여, 심리적 충격으로 이어진 경우이다.
 
둘째, 재난피해는 경제생활 기반을 위협한다는 점이다. 태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폐허만 남아 먹고 살 일이 막막해 진다.
 
셋째,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있지만 오히려 인간은 정신적으로 나약한 존재가 되어 간다는 점이다.

이런 현실을 깊이 인식한 유럽, 미국, 일본 등 방재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재난으로 인한 심리적, 정신적 충격을 국가차원에서 관리해 오고 있다.
 
늦은 감은 있지만 우리나라도 지난 2006년부터 ‘재난심리안정지원’ 정책을 도입 親서민 재난관리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그동안 16개 시도에 ‘재난심리지원센터’를 지정하고, 전문의, 교수, 심리상담사 등으로 구성된 약 2천명의 전문가들이 유사시 재난현장으로 달려가 심리적 충격과 불안을 어루만져 줌으로써 정신질환 등으로 진행을 예방한다.
 
태풍 ‘나리’(‘07년, 제주)를 시작으로 서해안유류유출(’08년, 태안), 봉화군 집중호우(‘08년) 등 그동안의 심리지원 활동경험을 바탕으로 2010년에는 북한 포격으로 인한 연평도 주민을 대상으로 심리안정지원 활동(35일간, 총 369명)을 전개했다.
 
대피생활 장기화로 심리적 충격이 심해짐에 따라 김포 등 임시거주지로 찾아가는 심리지원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대피생활의 장기화에도 불구하고 자살 등 극단행동을 한건도 없이 예방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재산ㆍ신체 피해 위주의 재난관리정책으로 심리적인 피해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졌다.
 
 ‘재난심리안정지원’은 이러한 기존의 물질보상 위주의 사후적 재난관리에서 심리적 충격으로 인한 자살, 학대, 폭력, 정신분열, 가족해체, 중독 등 병리현상을 사전에 예방하여 사회적 간접비용을 절감하고 재난이전 생활로 신속히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기존의 시설피해 복구, 이재민구호 차원을 넘어 재난피해자의 마음의 충격을 완화ㆍ해소하는 것이다.

재난심리안정지원 정책은 이제 걸음마를 시작했다. 재난심리 상담활동으로 자살과 같은 극한 행동을 한명이라도 예방할 수 있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소방방재청은 지난해 재난심리안정지원 대상 범위를 사회적 재난까지 확대하는 등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구제역, ai 등 피해자를 대상으로 심리안정지원 사업을 전국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2월말 현재 7개 시ㆍ도, 1800여명을 대상으로 상담활동을 전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상담소를 찾은 피해 농민들은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가슴속의 응어리를 맘껏 털어 내고, 밝은 미소와 가벼운 발걸음으로 상담소를 나서고 있다.

그러나 구제역 발생 지역의 출입통제가 장기화되면서 상담활동을 위한 현장접근이 어려워 농민들의 불안한 심리상태가 염려스러운 상황이다.
 
설문조사, 전화상담 등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심리안정지원을 정신병 상담쯤으로 인식하는 국민정서상의 벽(壁)도 넘어야 한다. 본인이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는 막연한 인식, 또 심리상담을 받은 타인을 그렇게 보는 국민정서가 재난심리안정지원의 장애물이다.
 
재난심리안정지원에 대한 막연한 오해와 국민정서는 선진국 진입을 위해서는 반드시 극복하고 가야 할 과제다.

광고
릴레이 인터뷰
[릴레이 인터뷰] “적재적소 역량 발휘할 응급구조사 배출 위해 노력”
1/5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