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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우리는 왜 심폐소생술을 멈출 수 없었나?- 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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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소방서 반명준 | 기사입력 2025/06/02 [10:00]

그 순간 우리는 왜 심폐소생술을 멈출 수 없었나?- Ⅰ

경남 진주소방서 반명준 | 입력 : 2025/06/02 [10:00]

생명(生命, life)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출동하는 119구급대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마주하는 수많은 현장 가운데 특히 철학적이고 윤리적인 고민이 깊게 자리한, 그리고 오늘만큼은 부디 마주하지 않길 바라는 심정지 환자 발생 현장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해 생명을 지켜내려는 구급대원의 간절한 마음 뒤에는 말로 다 전할 수 없는 고뇌와 딜레마, 현장의 냉엄한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심정지 환자에게 심폐소생술(CPR)을 시행하는 건 구급대원의 기본 책무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환자의 상태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죽음에 이른 것으로 판단되는 상황에서도 CPR을 계속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법적으로 사망을 선언할 수 있는 권한이 없는 상황에서도, 분명히 생물학적 죽음의 징후가 드러난 경우에도 우린 ‘살아 있다’는 전제 아래 처치를 이어가야 합니다. 가족이 “그만해 주세요”라며 간곡히 요청하는 때에도 지침과 제도의 울타리 안에서 멈추지 못합니다.

 

그 순간 우린 단순한 의료적 처치가 아니라 생명과 존엄, 판단과 책임, 법과 현실 사이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구독자 여러분. 각자가 믿고 있는 신앙 혹은 종교에서는 ‘생명’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요?

‘생명(生命)’이라는 단어를 한자어로 풀어보면 그 안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生 날 생; ⽣-총 5획; [shēng]

나다, 태어나다, 천생으로, 낳다, 자식을 낳다, 살다, 살아 있다

생¹ (生)

 【명사】

① 생명.

┈┈• ∼을 받다.

┈┈• ∼을 누리다.

② 삶.

┈┈• ∼과 사(死)

┈┈• ∼에 대한 회의

┈┈• ∼을 마감하다.

↔사(死).

 

命 목숨 명; ⼝-총 8획; [mìng]

목숨, 운수, 운, 명하다, 명령을 내리다.

명ː (命)

 

【명사】

① 목숨 1.

┈┈• ∼이 길다

┈┈• ∼이 다하다.

② ‘운명’의 준말.

③ ‘명령’의 준말.

┈┈• 천자의 ∼을 받다.

 

♣ 명 붙이다 【관용구】

㉠목숨을 잇다.

㉡자신의 몸을 남에게 의지하다.

 

한자어 生命(생명)을 곱씹어 보면 우린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라’는 명령(命)을 부여받은 채 살아가는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종교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기독교에서는 단순히 육체적인 삶이나 숨이 붙어 있는 상태를 넘어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주어지는 존재의 본질로 정의됩니다. 불교에서는 기독교와 매우 다르며 단순히 생물학적 존재 이상의 인연(因緣)1), 윤회(輪回)2), 연기(緣起)3)라는 철학적 개념 안에서 이해돼야 합니다.

 

기독교 불교 

•하나님이 주신 고유한 생명

•생명은 존엄하고 고유한 영혼의 소유

•생명을 지키는 것이 선

•죽음은 끝, 혹은 영생의 시작

•인연과 업에 따라 생겨난 무상(無常)한 흐름

•생명은 ‘나’의 것이 아니라 고정된 자아도 없음

•생명을 해치지 않고 해탈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선

•죽음은 다음 생의 시작점(윤회)

 

현행 기준과 제도

구급대원은 현장에서 심정지 환자를 만나면 ‘즉시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라’는 원칙을 따릅니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과 ‘119구급대원 현장응급처치 표준지침’에서는 구급대원이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도록 규정합니다. 또 현장에서의 사망 판정은 엄격히 제한돼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대한민국 법체계에서 ‘사망’은 의사만이 판정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구급대원에게는 법적으로 사망을 ‘인정’하거나 그에 따라 심폐소생술을 유보 또는 중단할 권한이 없습니다. 

 

이로 인해 이미 사후강직, 시반, 부패 등 뚜렷한 생물학적 사망 징후가 있는 환자라도 제도적으로 여전히 ‘살아 있는 환자’로 간주해 심폐소생술을 시행해야 합니다. 가족이 DNR(연명치료 포기 표시) 의사를 밝혀도 서면 동의서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없는 경우 구급대원은 처치를 중단할 법적 근거가 없습니다.

 

응급의료의 질을 높이고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마련된 제도가 역설적으로 현장에서의 현실적인 판단을 무력화하고 환자의 존엄한 죽음을 침해하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겁니다. 게다가 구급대원이 소생술을 유보하거나 중단한 이후에 법적 책임을 져야 할 수 있다는 불안감도 큽니다. 

 

비록 보호자가 원했더라도 혹시나 불복하거나 문제가 제기되면 민ㆍ형사적 책임이 본인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는 CPR을 멈추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큰 장벽 중 하나입니다. 

 

현장은 숨 가쁘게 돌아가고 생명은 시간을 다투지만 구급대원이 처한 판단의 틀은 지나치게 협소하고 경직돼 있습니다. 그 결과 때로는 환자와 보호자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시간만 연장하는 아이러니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소생술 유보, 소생술 중단

‘119구급대원 현장응급처치 표준지침’에서는 ‘소생술 유보와 소생술 중단에 관한 목적은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 대해 소생술을 유보하거나 중단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함으로써 구급대원이 더 효율적으로 응급의료자원을 운용하고 재난이나 범죄 대응 등 더욱 긴급한 상황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소생술 유보 방침은 다음과 같습니다. 

 

ㆍ과학적 근거와 사회적 통념상 심폐소생술 제공이 효과가 없다고 판단될 때에는 소생술을 시행하지 아니할 수 있다.

ㆍ회복 불능 상태를 판정하거나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려우므로 예후가 불확실한 상황이라면 응급처치 및 소생술을 시작하고 처치는 시행하는 동안 추가로 환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면서 직접의료지도를 요청한다.

ㆍ구급대원은 소생술 유보의 판단이 필요한 경우(DNAR: Do Not Attempt Resuscitation 등 포함) 반드시 의료지도를 요청하고 지도에 따르며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지 않는 경우 현장 보존 및 경찰 등에 인계한다.

ㆍ현장의 상황이 범죄와 연관(추정)이 된 경우 ‘범죄현장지침’을 따른다.

ㆍ소생술 유보가 가능한 현장 상황

-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는 구급대원에게 심각한 위험이 초래될 수 있는 상황

- 사망이 명백한 임상적 징후가 있는 경우

▶ 사후강직(2개 이상 관절 확인)

▶ 시반

▶ 참수(목의 절단)

▶ 체간 절단(몸통의 절단)

▶ 외상에 의한 뇌실질 탈출

▶ 부패(시취, 변색, 변형)

- 다수사상자 발생 시 무맥, 무호흡(한정된 자원에서 생존자의 처치ㆍ이송이 우선시 돼야 하는 경우)

- 심폐소생술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학적 지시 또는 소생술 시도 금지(DNAR: Do Not Attempt Resuscitation)표식이 있는 경우

-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연명의료중단 결정이 내려진 환자

 

다음은 소생술 중단에 대한 방침입니다.

 

ㆍ환자의 회생 가능성에 관한 판단이 조금이라도 불확실한 경우 응급처치 및 소생술을 계속한다.

ㆍ응급환자의 사망에 관한 판단은 법적으로 의사만이 할 수 있으므로 소생술 중단을 결정하는 경우 반드시 직접 의료지도를 받는다.

ㆍ현장에서 소생술을 중단할 수 있는 경우

- 자발 순환이 회복된 경우

- 구급대원이 지쳐서 더는 소생술을 지속할 수 없는 경우

- 구급대원이 소생술을 지속하기 어려운 환경에 노출되는 경우

- 소생술을 시작했지만 시행 중 ‘소생술 유보’의 조건이 확인된 경우

- 직접의료지도를 요청해 ‘소생술 중단’의 의료지도를 받은 경우

 

사후강직(Postmortem rigidity4), rigor mortis5))이란?

사망 직후에는 근육의 긴장이 전면적으로 소실되면서 일시적으로 이완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근육이 경직돼 관절이 고정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1. 발생 기전

아데노신삼인산 ATP(Adenosine Triphosphate)6)는 근육수축의 에너지원으로 사후에 생성이 중단되고 지속해서 소비됩니다. 근육 내 ATP가 저하돼 완전히 소실되면 

 

액틴(actin)7)은 미오신(myosin)8)이 결합해 악토미오신(Actomyosin)9)을 형성하면서 경직이 일어납니다.

 

 

 

2. 영향 인자

1) 기온: 온도가 높을수록 출혈과 소실이 모두 빠릅니다.

2) 개인차: 근육 발달이 좋을수록 강하고 오래 지속되며 어린이, 노인과 쇠약자는 출현이 빠른 대신 지속시간이 짧고 정도도 약합니다.

3) 죽음 직전의 상태ㆍ사인: 죽음 직전 격렬한 운동, 스트리크닌(strychnine)10) 중독, 급성 열성 질환, 열사병 등의 경우 출현이 빠릅니다.

 

▲ 출처 ‘Practical Emergency Medicine’ 재구성


3. 사후 경과 시간

경직의 소실은 근육의 자가융해로 인해 발생된 순서와 같은 순서로 소실됩니다. 계절별로 다른데 봄ㆍ가을(48~60시간), 여름(24~36시간), 겨울(3~7일) 등이며 부패가 빨리 시작하는 조건에서는 9~12시간에 소실됩니다.


사후강직과 관련된 최신의 연구 논문


사후강직, 시반, 부패 소견을 통한 사망 후 경과 시간 추정에 관한 부검 연구(Estimation of Time since Death from Rigor Mortis, Postmortem Staining, and Decomposition: An Autopsy-Based Study, Nirban Das 외)라는 연구의 목적은 사후강직, 시반, 부패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사망 추정 시간을 더 정확히 판단하는 데 있습니다.

 

이를 위해 인도 트리푸라 지역의 시신 94구를 대상으로 각 사후 변화의 발생 시점을 관찰하고 분석했습니다. 

 

주요 결과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ㆍ사후강직: 

사망 후 3~24시간 이내에 전신으로 진행

24~36시간 구간에서는 일부에서 소실 시작

36시간 이후에는 모든 시신에서 소실됨

 

ㆍ시반: 

6~24시간 이내에 완전 고정

3~6시간 구간에서는 발현됐으나 고정되지 않음

 

ㆍ부패: 

18시간 이전에는 육안상 변화 없음

18~24시간 내 13.8%에서 오른쪽 장골 부위에 녹변색 발생

36시간 이후 모든 시신에서 전신 녹갈색 변화 관찰

 

이 연구는 사후강직, 시반, 부패 변화를 단일지표가 아닌 복합적 관찰을 통해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게 사망 경과 시간 추정의 정확도를 높이는 데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이러한 통합적 접근은 현장 판단, 특히 응급의료ㆍ법의학 수사에서 중요한 기준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현장의 딜레마

현장에서 구급대원이 마주하는 심정지 환자의 상황은 매뉴얼처럼 단순하지 않습니다. 현실은 언제나 더 복잡하고 때로는 제도적 기준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판단이 요구됩니다.

 

말기 암 환자, 만성 질환으로 수차례 병원과 응급실을 오간 고령자, 혹은 이미 자택에서 임종을 준비하던 환자. 이런 환자에게서 심정지가 발생했을 때 가족들은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고생 너무 많이 했어요…. 이제 보내드리고 싶어요”

“병원에서도 더는 치료 방법이 없다고 했어요”

 

그러나 아무리 명백한 말기 상황이라도 구급대원은 심폐소생술을 유보하거나 중단할 수 없습니다. 설령 환자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더라도 구급대원이 이를 현장에서 직접 확인하고 법적 효력을 판단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보호자의 구두 요청만으로는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으며 이는 곧 법적 책임의 부담으로 이어집니다. 때로는 보호자가 없을 때도 있습니다. 구급대원은 홀로 거주하던 환자가 발견된 상황에서 명백한 사후강직이 있어도 구급지도의사의 유보 지시를 받기 전까지는 기본소생술을 진행해야 합니다.

 

그 순간 구급대원은 자신에게 묻습니다.

 

‘이 처치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과연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이 결정을 내가 감당할 수 있는가?’

 

구급지도의사의 판단을 기다리는 짧지만 긴 시간 동안 현장은 긴장감과 침묵으로 가득 차며 대원은 결정의 무게를 온전히 떠안습니다. 심정지 현장에서의 선택은 생명을 살리는 숭고한 사명이지만 때로는 존엄한 죽음을 방해하는 행위가 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매 순간 생명과 죽음의 경계선 위에 서있는 구급대원은 응급의료인의 양심과 구급대원의 책무 사이에서 외로운 판단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1)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 

2) 차례로 돌아감. 불교 용어. 중생이 생사 사계를 계속 돌고 도는 일. 생명이 태어나 늙고 병들었다가 죽기를 반복한다는 의미. 

3) 모든 현상이 생기(生起) 소멸하는 법칙. 표준국어대사전

4) 사후강직을 의미하는 일반적인 표현 

5) 의학적, 법의학적 정식 용어. 교과서, 논문, 공식 보고서에서 표준. 라틴어 어원을 가진 고유 명사처럼 취급

6) 우리 몸의 모든 세포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분자. 근육수축, 이온 펌프 작용, 효소 활성화 등 거의 모든 생명 활동에 관여

7) 세포 내 미세섬유를 구성하는 단백질로 특히 근육수축과 세포 골격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8) 운동 단백질의 일종으로 액틴과 상호작용해 근육수축을 유발

9) 근육수축 과정에서 액틴과 미오신이 결합해 형성되는 복합체

10) 중추신경계를 흥분시키는 강력한 알칼로이드 독성물질. 임상 증상으로는 전신 강직, 얼굴 찡그림, 질식사 가능성, 살쥐약, 곤충제로 사용(현재 대부분 금지 또는 제한)

 

경남 진주소방서_반명준 : emtbmj@korea.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6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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