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사례들 특별구급대원으로 근무하며 경험한 심정지 현장 중 특히 기억에 남는 소생술 유보ㆍ중단에 관한 사례를 소개해 보겠습니다(출동시간과 장소, 구체적인 정보는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생략합니다. 본 사례들은 현장에서 마주하는 어려움을 전하고자 하는 목적임을 밝힙니다).
사례 1. 80대 남성 심정지 유보 후 병원 이송 요청 1) 일시: 오전 8시께 2) 환자 정보: 80대 남성, 둘째 아들과 거주 3) LNT(Last Normal Time): 전날 오후 10시께 4) 현장 도착 시 상태: 심정지, AED 리듬 무수축(Asystole), 신체 검진 상 사후강직 세 부위 확인(턱관절, 경추부, 상지) 5) 과거력: 치매, 알츠하이머, 당뇨, 고혈압 6) 구급대원 조치ㆍ보호자 대응
7) 보호자 간 이견 발생ㆍ상황 변경
8) 병원 이송ㆍ도착
사례 1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80대 남성, 고혈압, 당뇨, 알츠하이머, 치매 병력, 둘째 아들과 함께 거주, LNT(전날 오후 10시), FAT(오전 8시), AED 리듬 무수축, 사후강직 3 부위(턱관절, 경추부, 상지) 확인.
둘째 아들과 대화를 통해 환자 상태 설명ㆍ소생술 유보 요청, 구급지도 의사에게 의료지도 요청→ 소생술 유보ㆍ경찰 인계했으나 타지역 거주 큰아들이 뒤늦게 현장 도착해 대학병원 이송 강하게 요구, 구급대원은 이미 유보 결정 상황을 재차 설명.
우리 구급대원들이 뭘 놓치고 있는지 누가 알려주세요. ㅠㅠ
사례 2. 그동안 딸아이가 너무 힘들어했어요… 1) 일시: 오후 8시께 2) 환자 정보: 30대 여성, 어머니와 거주 3) 현장 도착 시 상태: 30대 여성이 침대에 누워 있었음. AED 첫 리듬은 무수축, 사후강직 없음. 4) 과거력: 백혈병, 폐 질환, 당뇨/OO대학교 병원에서 입ㆍ퇴원을 반복하며 약물치료 중 5) 구급대원 조치ㆍ보호자 대응
사례 2: 돌봄의 끝자락에서 맞이한 심정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30대 여성, 백혈병, 폐 질환, 당뇨 등 만성질환 다수, 병원 입ㆍ퇴원 반복 중, 60대 어머니(단독보호자), 경제적ㆍ정서적 한계상황, AED 리듬 무수축, 사후강직 없음, BLS 시행 중
“병원비도 없고, 그동안 아이가 너무 힘들어했어요… 하지 말아주세요”
보호자 동의와 사정을 확인한 후 구급지도 의사와 상의 → 소생술 유보 결정, 경찰 인계 지시.
사례 3. 조용한 농막에서의 마지막 1) 일시: 오후 10시께 2) 환자 정보: 60대 남성, 비닐하우스 내 농막에서 의식을 잃 은 채 쓰러져 있는 걸 아내가 발견하고 119에 신고. 평소 오전 7시께 출근해 오후 6시 무렵 귀가하던 남편이 이날 따라 귀가 시간이 한참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자 아내가 걱정된 마음에 찾아갔다가 입에 거품 자국을 남긴 채 쓰러진 남편 발견. 3) 현장 도착 시 상태: AED 리듬 무수축. 의식, 호흡, 맥박 없음. 사후강직 두 부위 이상(악관절, 경추부) 확인. 유기인계 농약병 발견. 4) 과거력: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동네 의원에서 약물치료 중. 5) 구급대원 조치ㆍ보호자 대응 선착구급대가 BLS 시행 중인 가운데 특별구급대가 현장에 도착해 환자 상태를 인계받고 파악한 뒤 현장에 있던 보호자(아내, 아들, 딸)에게 환자 상태와 소생술 가능성에 관해 설명. 이후 구급지도 의사에게 의료지도 요청. 소생술 유보 요청.
사례 3 요약: 판단의 충돌, 책임은 누구의 몫인가? 60대 남성, 평소 건강하고 규칙적인 생활, 사후강직, 시반 등 명백한 사망 징후 있음. 농막 내 의식상실, LNT-FAT 간 15시간 이상, AED 무수축. 구급대의 보호자 동의 확보, 직접의료지도 요청→ 소생술 유보 요청했으나 구급지도 의사 유보 거부→ BLS 하면서 병원 이송 요청
판단은 없고 책임만 있는 구조 현장에서 구급대원이 환자의 상태를 신속하게 파악하고 보호자에게 충분하게 설명한 뒤 동의를 얻는 등 소생술 유보를 위한 정당한 절차를 밟았는데도 유보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명백한 사망 징후, 보호자 동의, 지속된 소생술의 무의성이 확인됐는데도 구급지도 의사는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문제’라는 표현과 함께 책임 회피적 결정, 즉 ‘병원 이송’을 지시합니다. 심지어 경찰 공의 역시 구급지도 의사의 판단을 근거로 구급대원의 의견을 완전히 배제합니다.
실제로 구급지도 의사는 환자의 상태를 눈으로 보지 못한 채 전화나 무전으로 제한된 정보만 접한 상황에서 현장보다 더 보수적인 결정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판단의 신중함이 아니라 책임 소지의 두려움에서 비롯된 소극적 판단으로 해석됩니다.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기 위해 병원 이송을 선택하는 구조’ → 구급대원에게도, 보호자에게도, 환자에게도 가장 무책임한 선택은 아닌지(이 부분은 구급지도 의사와 갈등을 유발하려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마주하는 판단의 어려움과 제도적 한계를 공유하려는 목적으로 작성합니다).
환자의 마지막 시간은 소생술이라는 이름으로 소비되고 보호자의 의사는 무력화되며 구급대원은 윤리적 고통과 실무적 허탈함을 떠안는 결과로 이어지는 건 아닌지….
소생술 유보 중단의 윤리적 이슈는
참고문헌 ‘죽음과 관련된 생명윤리적 문제들’ 에서는… 이번 원고를 준비하며 수많은 자료를 찾아보는 과정에서 유독 마음에 깊이 남은 책이 한 권 있었습니다. 바로 구인회 교수님의 ‘죽음과 관련된 생명윤리적 문제들’(2008, 아산재단 연구보고서 제114집, 집문당)입니다. 현장의 어둠 속에서 조심스레 손을 잡아주는 듯한 한 줄기 빛 같은 책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다룬 심폐소생술 유보ㆍ중단에 관한 핵심 내용을 아래와 같이 정리해봅니다.
생명을 지킨다는 것, 때로는 떠나보낼 줄 아는 용기 우리 구급대원은 매일같이 생사의 갈림길에 선 사람들을 마주합니다. 심폐소생술은 분명 생명을 살리는 가장 강력한 도구지만 때로는 그 도구가 삶보다 죽음을 더 아프게 만들기도 합니다.
되돌릴 수 없는 죽음 앞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살아 있다’는 전제 아래 손을 멈추지 못합니다. 누군가의 마지막을 지켜줄 수 있는 순간조차 ‘의무’와 ‘절차’라는 이름 아래 깨질 때가 있습니다. 구급대원은 단지 심장을 압박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삶과 죽음 사이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순간을 마주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마다 자신에게 묻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과연 이분을 위한 것인가?” “이 판단을 내가 감당할 수 있는가?”
현재 소생술을 시행할 권한은 있지만 유보하거나 중단할 권한은 없는 현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로 인해 생명을 살리는 우린 무력해지고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은 외로워 집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구급대원이 감정 없는 매뉴얼의 도구가 아니라 판단하고 존중하며 결정할 수 있는 존재로 설 수 있도록 사회는 그들의 판단에 대한 권한과 그 판단을 지켜주는 책임의 울타리를 함께 마련해야 합니다.
생명을 지킨다는 것. 그것은 때로 소생이 아니라 존엄을 선택하는 일입니다. 그 선택이 가능해지는 날 우린 비로소 진정한 응급의료의 의미를 다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참고문헌 1) 119구급대원 현장응급처치 표준지침 2) 박송이. ‘보호자의 소생술 거부에 따른 구급대원의 소생술 유보의료지도 요청에 대한 법적 고찰’. 한국의료법학회지 29.1(2021) 3) 김승환. ‘연명의료중단 결정의 법적 의미와 보험법적 쟁점에 관한 연구’. 고려대학교 법무대학원(2021) 4) 임명옥. ‘보호자 거부에 의한 구급대원의 소생술 유보에 관한 인식도 및 실태분석’. 경북대학교 수사과학대학원(2022) 5) 김아진. ‘응급의료에서 심폐소생술에 관한 결정’. 이화여자대학교(2014) 6) Das, N., et al. (2024). Estimation of Time since Death from Rigor Mortis, Postmortem Staining, and Decomposition: An Autopsy-Based Study. SSR Institute International Journal of Life Sciences. 7) 구인회(2008). ‘죽음과 관련된 생명 윤리적 문제들’ 서울: 집문당 8) 김기운(2010). ‘Practical Emergency Medicine’. 제4판. 군자출판사
경남 진주소방서_반명준 : emtbmj@korea.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7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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