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을 주행하던 차량에서 불이 나 42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어이없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5명이 숨지고 3명이 얼굴 등에 중화상을 입었다. 다른 차량에 있던 34명도 유독성 연기를 들이마셔 치료를 받고 있다.
이날 화재는 터널 내부를 달리던 폐기물 집게 트럭에서 시작됐다. 불은 금세 트럭에 실려있던 폐기물로 옮겨붙으며 거세졌고 이윽고 방음터널 벽면과 천장을 태우기 시작했다. 터널의 3분의 2 이상을 태우는 데 2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확산한 이유는 방음터널 자재가 불쏘시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 방음터널엔 아크릴로 불리는 플라스틱 소재인 ‘폴리메타크릴산메틸(PMMA)’이 쓰였다. 폴리메타크릴산메틸은 방음터널에 자주 쓰이는 자재지만 인화점이 약 280℃로 화재엔 취약하다. 연소 시엔 이산화탄소와 일산화탄소, 메탄 등의 유독가스도 발생한다.
방음터널에 불이 붙으면 터널 내부 온도가 480∼3400℃까지 치솟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폴리메타크릴산메틸 재질의 방음터널은 삽시간에 불쏘시개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무엇보다 화재로 재료가 녹아 바닥으로 떨어진 뒤에도 바로 굳지 않고 연소하는 특성이 있어 다른 차량에까지 옮겨붙을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이번 화재와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지난 2020년 8월 20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나들목(IC) 방음터널을 달리던 승용차에서 화재가 발생해 불이 천장을 타고 번졌다.
방음터널의 방재기준은 2016년 국토교통부의 ‘도로터널 방재시설 설치 및 관리지침’이 개정되면서 처음 도입됐다. 소화설비와 자동화재탐지설비, 피난구 등을 갖춰야 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방음터널 자재의 불연 기준은 없었다. 합성수지로 분류되는 방음판은 합성수지에 요구되는 소방청 고시의 방염성능기준만 준수하면 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그동안 방음터널의 방음재 불연 기준 문제를 수차례 지적해왔다.
이렇게 위험이 상존해 있지만 방음터널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환경정책기본법’과 ‘소음ㆍ진동규제법’에 따르면 도로변이나 교통 소음은 주간엔 65, 야간은 55㏈로 규정돼 있다. 도로 주변 건물이 고층일 경우 지붕 없는 방음벽만으론 이런 소음 기준을 맞추기 어려운 실정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번 화재 사고에 엄중한 경각심을 갖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미국 등 선진국은 방음터널에 불연소재를 사용토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엔 관련 규정이 없다. 화재에 취약한 방음터널도 일반터널처럼 소방 규정을 적용할 수 있도록 법령을 정비해야 한다.
전국 52곳에 설치된 방음터널 대다수가 비상시 연기와 유독가스를 빼내고 신선한 외부 공기를 불어 넣는 제연 설비를 갖추지 않는 것도 문제다. 방음터널은 일반 터널로 분류되지 않아 스프링클러 등 소방설비가 없어도 되고 안전점검 대상에도 빠져 있다. 유사 사고의 발생 가능성이 큰 안전 사각지대인 셈이다.
이제라도 방음터널의 방음판 불연 기준을 강화하고 반복적으로 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서둘러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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