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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돌아왔다- VIII

#8. 나는 오늘도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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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계양소방서 김동석 | 기사입력 2026/01/02 [10:00]

오늘도 나는 돌아왔다- VIII

#8. 나는 오늘도 돌아왔다

인천 계양소방서 김동석 | 입력 : 2026/01/02 [10:00]

불길이 걷힌 산에 서 있던 그날이 아직도 선명하다. 타버린 나무들은 검은 잔가지만 남아 있고 봄이라 부르기엔 지나치게 쓸쓸한 바람이 흘렀다. 

 

경북 의성, 국가소방력 동원령이 내려진 그 현장에서 뜻밖의 장면을 봤다. 온통 잿빛이던 풍경 속 작은 꽃봉오리 하나가 흙을 밀어 올리고 있었다. 연약한 생명이 참혹함과 맞서는 방식으로 조용히 버티고 있었다.

 

그 순간 이후 이 기록을 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현장과 일상 사이에서 흔들리던 생각을 붙잡아 둘 무언가가 필요했다. 누군가에게 닿을지 모르는 작은 기록이지만 적어도 스스로에게는 언젠가 정면으로 마주해야 할 이야기들이었다.

 

되돌아보면 이 시리즈는 출동과 복귀의 일상을 따라가며 그동안 외면해 온 감정들을 꺼내는 과정이었다. 소방차에 올랐던 그날부터 출동과 복귀 사이에서 무너지고 일어섰던 순간들, 그리고 어느 출근길에 남아 있던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까지. 그 모두는 극적이라기보다 오래 누적된 현실의 한 조각에 가까웠다.

 

그 시간들을 버텼지만 버텼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사명감은 때로 흐릿해지고 책임감은 자신을 몰아붙이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무너짐은 한 번이 아니었고 회복은 늘 충분하지 않았다.

 

그러나 흔들림 속에서도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했다. 다시 일어서게 하는 건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옆에서 묵묵히 함께 버티던 동료들의 존재라는 점이다.

 

이 글을 쓰며 뒤늦게 깨달았다. 누군가의 손끝에서 건네온 짧은 온기, 피로한 눈빛 속의 작은 신호, 말없이 등을 두드리던 순간들이 얼마나 큰 회복이었는지를.

 

현장은 종종 잔인했지만 그곳에도 여전히 삶의 흔적이 남아 있고 그 흔적은 다음날로 데려가는 작은 불씨가 됐다. 의성의 그 꽃처럼.

 

이제 마지막 페이지를 쓰며 깨닫는다. 완벽히 회복된 상태와는 아직 거리가 있다. 어떤 날은 깊은 수렁처럼 무겁고 어떤 날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걷는 듯하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 그런 시간을 견디는 법을 조금은 알게 됐다는 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길을 혼자 걷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글을 읽고 있을 동료들 중에도 여전히 버티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무너졌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같은 불길 속에 서 있었고 같은 어둠을 견뎌 왔다는 증거일 뿐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서로를 내일로 이끌 힘이 된다.

 

오늘도 돌아왔다.

 

무너졌던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며. 그리고 언젠가 다른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기 위해. 살아 있는 오늘로 돌아왔다.

 

이번 글이 누군가에게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틈이 되길 바란다. 누구에게나 한 송이의 꽃이 피어나는 순간은 찾아온다. 그것이 잿빛 속에서라도, 혹은 최악의 날 한복판이라도.

 

이제 다음 출동을 기다린다. 다만 예전과 다르게 하나를 더 알고 있다. 넘어진 자리에서도 우리는 다시 돌아올 수 있다. 그리고 그 사실만으로도 내일을 살아갈 이유는 충분하다.

 

 

인천 계양소방서_ 김동석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6년 1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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