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다 모르고 땅벌집을 걷어찬 게 아니라 심술궂은 아이가 벌이 꿀 모으는 게 신기해서 작대기로 벌집을 쑤신 것이다.
우리나라 엔지니어링 업계는 감리제도의 도입으로 급팽창하여 건설산업의 총생산과 고용효과 창출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으나 도입초기 너무 급격한 팽창으로 몇 가지 문제점을 배태하였다.
첫번째가 기술사의 수급문제이다. 갑자기 도입된 감리제도에 의해 기술사 공급에 병목이 생겨 기술사를 대량 배출하였다. 문제는 합리적 수급 판단에 의해 적정 수를 배출한 게 아니라 기술사가 받는 평점 때문에 감리업체들이 무한정 요구하는 대로 배출함으로써 이제는 보통 감리업체 과장급 정도면 다 기술사 자격을 따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나라 엔지니어들이 그렇게 수준이 높아서 웬만한 엔지니어가 다 기술사 수준이면 얼마나 좋으랴만 현실은 그렇지 못해서, 어느 학원의 광고 문구처럼 장판지만 외우면 합격하는 게 현실이고, 그 현실을 바탕으로 우리 기술사가 다른 나라와는 전혀 다른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쉽게 딴 기술사도 명색이 기술사이니 때이른 진급으로 직급 인플레가 심화되고 실제 과장급 이하는 아직 나이어린 초중급 보조 기술자들뿐이다.
둘째, 인정기술자제도이다. 기술사를 대량 배출함에도 불구하고 특급기술자가 모자란다는 이유로 나이만 먹으면 모조리 특급으로 인정을 해버리는 놀라운 특혜가 베풀어졌다.
특급으로 불러준다고 해서 진짜 전문기술자가 되는 게 아닐진대 이것은 전적으로 평점을 위한 감리업체들의 수요에 맞춘 것일 뿐 실제 기술자들의 수준과는 하등 상관이 없고, 오히려 전문업체 평가구조를 왜곡하는 함정이 되어버렸다.
그럼으로써 이제 감리회사는 아무나 대충 긁어모은 인력으로 만들 수 있고 그 기술력을 판단할 변별력도 없고, 적당히 벌어먹다 문제 생기면 폐업함으로써 기술적 책임도 질 필요가 없는 그야말로 감리업자 천국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셋째, 전반적 이공계침체현상의 조장이다. 건설업계가 이공계를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공대 졸업생 다수가 건설업계로 진출하는 현실에서 기술사 자격을 남발하는 바람에 기술자를 평가하는 데 제도적 변별수단이 없어짐으로써 자기계발 동기와 성취 욕구를 박탈하는 결과가 되어 기술자로서의 비전을 팽개치는 트렌드가 형성되었다.
지금 엔지니어링이나 감리업의 용역대가 기준을 보면 특급기술자나 수석감리사의 인건비가 대기업이나 공기업의 과장수준에 머물고 있다. 고용의 지속성이나 복지수준까지를 고려한다면 대리 수준밖에 안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바로잡고자 기술사 단체들이 오래 노력해 왔고 그 문제점을 인식한 정부가 늦게나마 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한 지금 소방업계에서는 거꾸로 가는 행정시책 때문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 것이다.
소방방재청이 지난해부터 꾸준히 저지르고 있는 말썽을 보면 그 내용을 대충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감리기술자 수요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켜 기술사 부족 병목사태를 유발하고, 그를 기화로 소방기술사를 대량 배출토록 한다.
둘째, 소방기술 분야의 실제 종사경력과 관계없이 유사경력 또는 회사 면허를 기준으로 소방기술자 경력을 무차별 인정함으로써 인정기술자제도를 실시한다.
셋째, 아무나 전문감리업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하여 완전한 평등(?) 경쟁 환경을 만들고, 소방기술자의 처우를 우리나라 타 분야의 잘못된 수준에 맞도록 하향평준화한다.
실제로 소방방재청의 어느 공무원은 우리나라 소방기술사들의 급료가 너무 높으니 이를 낮춰야한다고 노골적으로 주장해 왔다. 그런 것이 공무원의 관심 사항인가?
그가 주장하는 소방기술사들의 급료가 어디에서 입수한 정보인지 알 수 없고 그 현실성을 공감할 수 없으나 소방기술사들의 급료가 높은 것이 공무원 직무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그 때문에 감리업이 쇠퇴하는가? 소방기술사 급료를 낮추면 그 차액은 어디로 가는가? 건축비에서 소방시설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인지, 전체 감리비 중에서는 소방감리비가 얼마나 차지하는지, 안전을 담보하는 비용이 그 정도 비율만으로도 괜찮은 것이지 당국자는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이상으로 볼 때 우리 소방당국은 정부가 공식 사업으로 추진하는 기술사 제자리 찾기 정책과 정확히 반대방향으로 매진하는 것이 눈에 띠며, 또한 이 사회의 안전욕구에 무관심하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다.
같은 분야의 기술자들을 적으로 만드는 이유는 독야청청한 권위의식 때문인가? 조변석개로 정책을 흔들어 정부의 정책 신뢰성에 타격을 입힘으로 무엇을 얻으려는가? 타 분야의 장삿속에 영합할 만큼 강력한 로비가 작동하는 것인가? 우리 소방당국이 추진해야할 방향은 그런 식으로 제 식구를 들볶는 게 아니다. 마음 안 맞는 가족이 지나가는 남보다 더 미운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제 가족 먹을 것을 빼앗아 남 주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니다. 소방방재청 개청을 추진할 때 우리 소방식구들이 얼마나 응원하였던가? 우리도 이제 구심점을 잡아 떳떳한 독립 기술분야로 성장할 꿈에 부풀어 우리 모두 자기계발을 위해 노력하자고 기술소집단을 만들고 웬만하면 대학원 진학을 하도록 서로 권고하여 이제 앞서가는 지식집단을 이루나 했더니 남의 집 종으로 팔아버리겠다는 청천벽력이다.
새로 진입하는 타 분야의 업자들이 우리 소방 발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면 무엇이 문제이랴. 허나 기술발전은 감리업자들의 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감리업자는 오로지 이익을 위해 존재할 뿐이며, 그 이익 추구의 과정에서 기술적 기여가 이루어지도록 정책을 운영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기술적 변별력으로 업체를 평가할 수 있어야하고, 기술자들의 능력 또한 그 자격과 경험에 의해 평가할 수 있어야하는 것이다. 기술자 개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적정 범위의 일만 하도록 단속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소방분야의 떡을 나누려고 덤비는 타 분야의 업자들이 그간 어떤 방식으로 일반 소방 감리업을 운영해왔는지는 아마도 소방당국만 모르는 것 같다.
그간 소방업계가 감리업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많은 탈법현상이 노정되어 왔고, 최근엔 어느 지역에서 집단 탈법행위가 적발되었다한다.
건설관계법 중 처벌규정은 소방관계법이 제일 무겁다. 그런데도 왜 이런 일이 빈발할까?
아주 사소한, 기술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는 시공사항, 행정적으로 얼마든지 수정, 보완 또는 재 접수가 가능한 사소한 행정절차 등을 문제 삼아 소방업체를 그리도 들볶으면서, 정작 단속해야할 탈법행위는 외면해 버리고 오로지 소방업계에 책임을 돌리는 구실로만 삼아왔던, 정리하자면 기술자의 개인적 실수는 처벌하고, 감리업자의 탈법은 묵인해 왔던 소방당국의 행태가 이런 현상을 조장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오로지 내 좁은 시야 탓일까?
소방당국이 소방엔지니어링을 제대로 된 기술로 평가하지 않는 것은 이해가 가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소방기술이 오로지 법적기준에만 맞추면 되는 것으로 경직된 법체계를 운용해 왔던 당국의 책임문제이다.
소방당국이 우리 소방엔지니어링을 위해 할 일이 많다.
소방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기술자들의 사기를 고양시켜야하고 소방산업이 해외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연구개발의 바탕을 마련해야하고, 엄격한 검사규정을 충족시키도록 검사 시스템을 확립해야하고 모호한 법규정으로 인한 민원 때문에 담당공무원들이 야근을 다반사로 하면서도 억울한 범법자를 양산하지 않도록 규정을 정비하고 그 운영 시스템을 개선해야하고, 등등....., 할 말이 무척 많다.
참여정부의 공과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지만 누구나 공감하는 하나의 트렌드가 바로 권위의식 버리기 아닌가? 제발 시대에 뒤떨어진 권위의식을 버리고, 이런 식으로 소모적인 패싸움을 유도하지 말고, 진정 이 사회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같이 고민하기 위하여 머리를 맞대볼 수 없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