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이 말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표현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하는 뜻이 담겨져 있다.
자신의 어려운 형편과 미안한 마음, 그리고 언젠가는 꼭 갚겠다는 굳은 의지를 솔직하게 표현해서 상대를 감동 시켰을 때 천 냥이나 되는 많은 빚을 유예 받거나 탕감 까지도 받을 수 있는 만큼 자신에 대한 표현을 잘 한다는 것은 그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가늠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뜻일 것이다.
“고맙다”는 말을 진심으로 표현하면, 상대방은 나에게 더욱 고맙게 해주려 애쓸 것이고, “잘했다”고 칭찬해주면 그는 더욱 잘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지상정(人之常情)인데 우리사회에는 이「표현」에 인색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얼마 전 「멍텅구리들의 자화상」이란 수필집을 출판 했는데 수필집으로는 세 번째 출판 이였다.
나는 젊은 시절을 소방관으로 보냈기 때문에 특별히 마음먹고 전국 주요 도시에서 근무하고 있는 100명의 소방서장들에게 책 한권씩을 증정했다. 책값은 고사하고 우편 송료까지 부담해서 친정 부모님에게 자랑하고 싶어 하는 새댁 같은 심정으로 책을 보내 드리면서 그 책갈피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동봉했다.
「저는 젊은 시절 7년간을 소방공무원으로 근무한 후, 32년간을 소방 공사업에 종사하다가 후배에게 물려주고, 뜻한 바 있어 63세의 나이로 문단에 등단해서 집필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수필집 2권과 여행체험기 1권 등 3권의 책을 출판한 바 있는데, 이번에 우리들 삶의 모습을 그린 “멍텅구리들의 자화상”이란 세 번째 수필집을 출판 했기에 존경하는 서장님께 드립니다.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이 책이 5개의 장(章)으로 구성돼 있는데 그 중 1개의 장(章)을 “119지킴이”라는 소방이야기로 꾸며 보았습니다.
수필집에 소방 이야기가 들어가는 것이 잘못하면 독자들에게 딱딱하고 생소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저자로서는 피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러나 제가 소방공무원으로 재직 했을 때 가장 아쉽게 생각했던 것이 소방의 어려운 실상들을 세상에 전달해줄 수 있는 선배가 없었다는 것이 였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감히 제가 그 역할을 감당해 보고자 하는 뜻에서 첫 걸음을 딛어 보았습니다. 공무에 바쁘시더라도 한번 읽어 주시고, 괜찮다고 생각되시면 주위에 일독을 권해주시기 바랍니다.
나아가 격려와 더불어 비평이나 편달을 주시면 저에게 큰 힘이 되어 용기를 가지고 앞으로도 소방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쓰겠습니다.」
그러나 책을 발송한지 4개월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격려와 비평」은 커녕 “고맙다”, “수고했다”또는 “책을 잘 받았다”는 전화 한마디가 없다.
처음 얼마동안은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름대로의 독후감을 말해 주려는가 보다”하고 기대감도 갖어 보았으나 지금은 섭섭한 마음뿐인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우리가 표현에 인색하기는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부부간의 대화가 “밥 먹자.”, “자자”이 두 마디 밖에 없다는 우스개 소리까지 있지 않은가?
가까운 친구 중에 h라는 초등학교 동창생이 있다. 얼마 전 그의 부인이 딸들의 초청을 받아 한 달여 동안을 미국에 가서 딸들이 사는 모양이랑 그동안 떨어져 있어 보고 싶었던 손주들도 보고 딸들의 안내로 미 서부지역을 돌며 관광을 하고 귀국했다.
귀국한다는 부인의 전화를 받은 h는 반가운 마음에 “내가 차를 가지고 공항으로 나갈께”했다. 그러자 부인은 “바쁜데 뭐하러 나와요. 아들애가 나온다고 했는데(사실은 좋으면서도)”하고 대답했다.
귀국 하는 날 공항에서 아들 내외와 손주들이 있는 앞에서 부인을 맞은 h는 반가운 마음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서 “잘 다녀왔어?”하고 부인에게 인사겸 물었다. 부인도 “네, 잘 다녀왔어요.” 간단하게 대답하고 나서 마중 나온 아들 내외랑 손주들을 부둥켜안고 반가와 했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온 후 두 내외만 남게 되었을 때 부인은 h에게 물었다. “그래, 한 달 동안 내가 없으니까 좋습디까?” 그러자 h는 “좋은 것도 있고...나쁜 것도 있고...그렇지 뭐” 덤덤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부인은 “좋은 건 뭐고, 나쁜 건 뭔데?”하고 다그쳤다. h는“좋은 건 잔소리 안들으니까 좋았고, 나쁜 건 저녁에 집이 좀 허전한 것 같애”하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부인은 “그랬어요?”하고 말았다. 부인이 듣고 싶었던 한마디는 “한 달 동안 당신이 없으니까 정말 못살 것 같았어 보고 싶어 혼났어. 여보 사랑해!”하면서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살며시 안아주고 등이라도 두드려 주었으면 하는 것 이였다.
그날 저녁 두 사람 사이에는 썰렁한 분위기가 돌았는데 사실 h라고 그런 마음이 없었겠나? 만은 멋 적어서 표현을 못한 것 뿐 이였다. 표현이란, 하기에 따라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깝게 만들어 주고, 가정이나 사회를 밝게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