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집 제거 소방관 순직 인정 안돼” 논란 확산위험 업무 중 입은 위해라니… 모호한 연금법 개정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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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 제거를 위해 출동했다가 말벌에 쏘여 숨진 소방관의 순직 신청이 기각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청원게시판에는 시민들이 서명운동에 나서는 등 "벌집 제거가 왜 위험직무에 속하지 않냐"는 비난의 화살이 인사혁신처로 향하고 있다.
관련 법률이 모호한 탓에 화재진압이나 구조ㆍ구급 이외의 업무 중 사망하는 소방관의 순직처리가 여전히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관련 법률을 하루빨리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故 이종태 소방관은 지난 9월 7일 산청군 중태마을의 한 과수원 주인으로부터 벌집을 제거해달라는 신고를 받고 동료 소방관과 함께 현장에 출동했다.
벌집이 달린 감나무 주변에서 이 소방관은 동료 소방관의 보호복 착용을 도왔고 보호복을 착용한 동료 소방관은 벌집 제거에 나섰다. 당시 이종택 소방관은 보호복을 착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벌집 제거 작업 현장의 인근에 있다가 벌에게 눈 등을 10여 차례 이상 쏘였다. 즉각적인 응급처치가 이뤄졌지만 결국 쇼크사로 숨졌다.
유가족들은 이종태 소방관의 순직 승인을 요청했지만 인사혁신처 순직보상심사위원회는 이 소방관이 위험직무를 수행하다 사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순직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냈다.
소방활동 중 숨졌는데… 순직 인정 왜 안되나
이종태 소방관의 순직이 기각된 배경은 공무원연금법(제3조 2항 라) 때문이다. 이 법에는 소방공무원의 순직 범위를 화재진압과 구조ㆍ구급업무 또는 이에 준하는 위험업무 중 입은 위해로만 한정짓고 있다.
위험업무의 구체적인 범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이종태 소방관과 같이 생활민원 처리 중 사망할 경우 인사혁신처 순직보상심사위원회의 심사를 반드시 거쳐야만 한다.
반면 경찰의 경우 순직의 범위를 범인이나 피의자를 체포하다가 입은 위해를 비롯해 ‘경찰관 직무집행법’을 근거로 경비나 작전, 교통단속과 교통 위해 방지 업무 중 입은 위해 등도 순직 범위에 포함하고 있다.
소방의 직무가 국민의 생활과 밀접한 생활안전 분야까지 확산되고 있지만 명확한 순직 범주에는 아직까지 포함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소방의 생활안전활동은 지난 한 해에만 33만3,451건에 이르며 이 중 벌 퇴치ㆍ벌집 제거 건수는 11만7,534건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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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안전처는 지난 7월 소방기본법에 소방활동에 벌집 제거 등의 업무가 포함되도록 생활안전활동 조항을 신설했다. 그러나 이 같은 규정이 공무원연금법과 연계되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고위직 소방관은 “소방은 고드름 제거와 끼임ㆍ고립에 따른 구조활동, 벌집 제거 등 일상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생활안전의 민원 업무도 처리하고 있다”며 “소방관들이 업무에 대한 명분을 찾을 수 있도록 위험업무에 대한 구체적인 범위가 공무원연금법 내에도 정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금법 개정 수차례 시도됐지만 때마다 ‘무산’
소방관 순직과 관련한 공무원연금법 개정은 국회에서도 여러 차례 추진된 바 있다. 하지만 심의과정에서 대부분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새누리당 황영철 의원이 지난 2012년 발의한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은 소방공무원이 ‘소방기본법’에 의한 직무수행 중 입은 위해를 순직으로 인정토록 하는 내용을 담았었다.
또 올해 8월에는 새누리당 정용기 의원이 “소방공무원의 직무상 위험이 법률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지나치게 협소하게 규정돼 있다”며 관련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이 법률안들은 특별한 진척이 없는 상태다. 순직 요건인 직무 위험성에 준한다고 보기에는 다소 어려운 소방시설 오작동 조치, 119 접수 대민지원활동(열쇠 개방 등)까지 포함하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나마 황영철 의원이 대표 발의했던 법률안 중 일부가 반영돼 ‘위험업무 중 입은 위해’라는 문구가 들어갔지만 이조차 구체성이 떨어져 사실상 있으나 마나한 내용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순직과 공무상 사망 어떤 차이 있나
법률상 순직과 공무상 사망의 가장 큰 차이는 현충원 안장 여부와 유족에 대한 보상 수준이다.
만약 출동 중 사망한 소방관의 ‘순직’이 결정되면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지만 ‘공무상 사망자’가 현충원에 안장되기 위해서는 ‘국립묘지법’과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등을 별도로 따져봐야 한다.
유족에 대한 보상금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법률상 순직 공무원의 유족에게는 ‘순직유족연금 ’외에 ‘순직유족보상금’이 일시금으로 지급된다.
순직유족연금으로는 20년 이상 근무자를 기준으로 사망 당시 기준소득월액의 42.25%에 해당하는 금액을 받는다. 순직유족보상금으로는 공무원 전체 기준소득월액 평균액의 44.2배를 지급받게 된다.
순직 미인정 시에는 유족연금과 유족연금부가금, 유족보상금이 지급되는데 유족연금과 유족보상금은 20년 이상 공무원을 기준으로 각각 사망당시 기준소득월액의 32.5%와 23.4배를 받는다.
순직 기각에 국민들 뿔나…인터넷 서명운동 확산
지난 18일 다음 아고라에는 '말벌퇴치 중 숨진 소방관의 순직신청 기각을 취소하고 인정해 달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자신을 한 소방관의 딸이자 평범한 대학생이라고 소개했고 "많은 소방관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국민을 위해 일하고 있다"며 "말벌 퇴치도 시민의 안전을 위한 소방관의 엄연한 업무 중 하나“라며 순직인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 같은 청원글이 올라오자 누리꾼들은 “당연한 것을 이렇게 청원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이런게 바로 비정상의 정상화이다. 제발 더 이상 편협한 해석과 논리를 자제하길 바란다”며 서명에 동참하고 있다.
신희섭 기자 ssebi79@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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