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현장을 접해본 적이 없는 일반인들은 물만 뿌리면 불이 꺼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재난현장에서 인명구조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부상자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기만 하면 인명구조가 되는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이들은 화재진압이나 구조·구급과 같은 현장 활동을 ‘몸으로 때우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 쯤으로 치부해 버리기도 한다.
문부규 소방방재청 대응전략팀장
물론 화재진압의 기본은 방수 - 즉 물을 뿌리는 일 - 이고 인명구조의 기본은 부상자를 위험상황에서 구출하여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실제 재난현장은 생각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화재진압이 '몸으로 때우는 일'이라고?
수많은 주변 환경 하나하나가 변수로 작용하여 영향을 미치며, 이에 따라 현장상황은 아주 복잡하고 다양하게 전개된다. 경우에 따라 불을 끄기 위해 뿌린 물이 화재를 확대시키기도 하고, 고열의 수증기가 되어 소방대원을 덮치기도 한다. 또 성급한 부상자 구출이 후유증에 의해 오히려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따라서 효과적으로 현장활동을 수행하기 위해서, 소방대원들은 복잡하게 전개되는 현장상황을 정확하게 분석·예측할 수 있는 지식과 경험 그리고 판단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도 현장 활동은 단순한 업무라는 오해를 받고 있을까?
그 이유는 지금까지 현장에서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체계화하고, 이를 현장활동에 적용하기 위한 노력이 다소 부족하였기 때문이다. 현장활동은 경험이 중요하므로 이론적으로 정리할 수 없으며, 매 상황마다 서로 다르므로 표준화할 수 없다는 인식이 깊어 선뜻 체계화·표준화하지 못했다.
물론 이를 위한 노력이 이전에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1년도에 ‘소방활동 지침’을 제정했고, 구조·구급분야도 각 상황별 활동내용을 정리하여 왔다.
그러나 기존의 지침은 적용범위가 제한적이고 내용의 구체성이 부족하여 재난현장 표준작전절차(sop)로 활용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현장경험·국제기준 묶어 '표준작전절차' 수립
소방방재청 개청 후 그간의 노력을 종합하고, 현장활동에 필요한 이론과 경험을 매뉴얼화하는 작업을 추진했다. 그 결과 이제 재난현장 표준작전절차(sop) 수립을 눈앞에 두고 있다. 재난현장 sop는 선진국에서 이미 현장활동과 관련하여 이론적으로 검정된 내용, 그동안 문서화되지 않고 일선 소방대원들간에 구전으로 전달되던 현장경험, 그리고 응급의료 등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가이드라인 등을 포함하여 구체적으로 체계화한 것이다.
재난현장 sop는 수립과정에서 내용상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재난분야 민간전문가 및 소방학교 담당교관 등으로 구성된 연구진이 초안을 만들고, 그 초안에 대하여 sop의 실제 운영주체가 되는 일선 소방관서의 의견을 반영하여 수정하였고, 그 수정안을 다시 검토하는 등 여러 단계를 거쳤다.
이런 과정을 거쳐 수립되는 재난현장 표준작전절차는 ‘현장지휘 sop’, ‘재난유형별 sop", '화재유형별 sop', '대응단계별 sop', '표준보고절차’ 등 5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부분은 현장활동시 각 상황별로 준수해야 할 행동지침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제 재난현장 sop 수립으로 소방활동의 수준이 한 단계 향상됨은 물론 보다 질 높은 대국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흔히들 소방행정은 현장성이 강하다고 말을 한다.
그런데 오랜 경험과 지식을 융합하여 단번에 체계화한다는 것이 간단한 작업도 아니며, 재난현장 sop를 수립하였다고 여기서 끝이 난 것은 더더욱 아니다. sop 내용의 타당성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검증하고 잘못된 부분을 끊임없이 수정·보완해 나갈 때 현장 적용성이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