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화재진압 적합 장비 갖췄다던 서울시, 알고보니 ‘엉터리’분말 소화기를 전기차 전용으로 홍보, 일부 언론사 그대로 기재… 잘못된 인식 확산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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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PN 최누리 기자] = 서울시가 전기차 화재 대응을 위해 구비한 장비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전기차 화재에 적응성이 없는 분말 소화기를 마치 전기차 화재진압 소화기로 홍보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이달 1일 ‘서울시, 신종 재난 전기차 화재 선제 대응… 훈련 실시’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 자료엔 전기차 화재진압에 적합한 장비를 구매하고자 지난 8월 17일 전문가 자문회의를 거쳐 소화수조와 질식소화덮개, 차량하부 직수장치, 전기차 화재용 소화기 등을 청사 지하 주차장에 배치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문제는 ‘전기차 화재용 소화기’다. <FPN/소방방재신문> 취재 결과 서울시는 전기차 화재용 소화기로 분말 소화기를 비치했다. 일반 화재와 함께 전기차 화재를 대응하기 위함이라는 게 서울시 관계자 설명이다.
우리나라는 A급(일반), B급(유류), C급(전기), K급(주방) 등 화재 유형에 따라 소화기의 적응성을 구분하고 있다. 분말 소화기는 질소나 이산화탄소 등 고압 가스를 이용해 탄산수소나트륨 또는 제1인산암모늄 분말로 화재를 진압할 수 있다. 보통 A, B, C급 화재에 사용하고 있다.
배터리의 경우 화재가 발생하면 내부 온도가 순식간에 1천℃ 이상 치솟으며 불이 번질 수 있는 ‘열폭주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배터리에 열적 또는 전기적, 물리적 충격이 가해져 온도가 상승하면 분리막이 분해되면서 쇼트(합선)가 발생한다. 이후 양극재와 음극재가 만나 과도한 전류가 흐르고 열폭주를 일으키며 화재 또는 폭발로 이어진다.
하지만 서울시는 자체 판단에 따라 분말 소화기를 비치하고 전기차 화재용 소화기를 갖췄다고 홍보했다. 이렇게 배포된 보도자료를 여러 언론이 활용하면서 자칫 공인 전기차 화재진압용 소화기가 보급되고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배터리 화재진압용 소화기에 대한 법적ㆍ인증 기준조차 없기 때문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자문회의 땐 소화기에 대한 내용이 없었다”며 “(전기차) 화재 초기 때 직원들이 이를 확인하고 소방관이 도착하기 전 선제 조치 차원에서 불을 꺼야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구비했다. 화재를 진압한다는 개념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분말 소화기는 A, C급 화재에 적응성이 있기에 일반 화재는 물론 전기화재 때 활용하기 위해 구매한 거다”며 “보도자료의 전기차 화재용 소화기란 표현은 부적절했다”고 문제성을 인정했다.
배터리 화재 전문가로 알려진 강경석 구리소방서 소방장은 “배터리 화재 특성은 열폭주 현상으로 정의할 수 있다”며 “열 전이 현상에 의해 주변 배터리로 불길이 퍼질 수 있어 재발화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산화물계 전이 금속 구조인 양극재는 산소를 포함해 분말 소화기의 질식소화 특성으론 진압이 어렵다”면서 “전기차나 ESS엔 배터리가 모듈ㆍ팩 단위로 장착되는데 견고히 밀봉ㆍ실링되면서 분말 소화기의 적응성은 매우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근본적인 소화 목적으로 사용하는 건 추천하지 않지만 화재 확산 지연이 목적이라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소방관이 아닌 일반 시민이 전기차 초기 화재를 진압할 경우 위험할 수 있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그는 “전기차 화재 시 원칙은 119에 즉시 신고하고 신속히 대피해야 한다”며 “배터리 열폭주ㆍ전이 현상으로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 원칙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화재 초기 상태라면 주변 옥내소화전을 활용해 진압을 시도하고 주변에 소화기만 있으면 주변 가연물로 불길이 퍼지지 않도록 하는 용도 정도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누리 기자 nuri@fpn119.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