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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 길라잡이/직무②]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는 소방의 외교관, ‘소방 국제협력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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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원 | 기사입력 2025/04/03 [15:10]

[소방관 길라잡이/직무②]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는 소방의 외교관, ‘소방 국제협력 전문가’

장시원 | 입력 : 2025/04/03 [15:10]


소방관도 여권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나?

 

2010년 처음 소방방재청에서 근무했던 때의 일화다. 같이 근무하게 된 선배가 관용여권을 신청해둬야 한다고 귀띔해줬다. 사실 그냥 농담인 줄 알고 웃으며 넘겼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결국 관용여권을 만들게 됐다. 미국과 영국, 호주, 일본, 중국 등 주요국가의 소방당국과 서신, 이메일, 전화 등을 통해 협력을 도모하고 해외자료를 찾아 분석할 뿐 아니라 필요한 경우에는 비행기를 타고 해외에 직접 출장을 다니는 아이러니한 상황까지 생겼다.

 

자신도 모르게 소방 국제협력 전문가로 세계를 누비고 있었고 소중한 경험을 토대로 성장해 나갈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은 ‘글로벌 소방기획가’라는 꿈을 가질 수 있게 해줬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현재도 모 기업에서 미국, 캐나다, 유럽 등의 국외 법인과 협력하며 글로벌 임직원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사실 요즘처럼 국경을 넘는 대규모 복합재난이 빈발하는 시대에서 소방 국제협력이 특별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당시엔 국제협력 직무가 크게 발전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굉장히 생소했고 이색적이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소방 국제협력 직무는 소방청, 시도 소방본부에서 소수의 인력이 담당하기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현재 소방관을 꿈꾸는 학생들이나 신임 소방관들에게 ‘소방 국제협력 전문가’라는 직무를 소개해주고자 한다(참고로 해당 직무 명칭은 필자가 임의로 붙인 용어로 정식 소방직제나 용어로 사용되지는 않는 점을 주의 바란다).

 

소방 국제협력 전문가는 단순히 해외 기관과 연락을 주고받는 연락관이 아니다. 재난 예방ㆍ대응과 관련된 국제 트렌드를 파악하고 외국의 선진 시스템을 국내에 도입하거나 반대로 한국의 우수한 소방정책과 기술을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해외재난이 발생한 경우 재난 발생 국가의 소방당국과 긴밀히 협력하고 조율하는 핵심 업무를 맡기도 한다.

 

이러한 직무를 수행하려면 해외에서 발생한 주요 재난에 대한 정보를 수시로 파악해야 한다. 국제회의를 기획하거나 참여하는 등 소방정보교류의 장을 통해 국제적 네트워크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

 

따라서 소방 국제협력 전문가는 기본적으로 외국어 능력을 갖춘 직원을 선발한다. 이들은 일종의 ‘소방 외교관’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만큼 세계 각국과의 협력을 통해 더 안전한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소방 국제협력 전문가의 주요 임무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보겠다. 2010년에 소방방재청에서 주최하는 아시아소방기관장 회의(IFCAA, International Fire Chiefs' Association of Asia)를 기획하는 업무를 시작으로 국제협력 업무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 회의는 아시아 각국의 소방청장과 소방서장이 한자리에 모여 재난 대응 체계, 화재 예방 정책, 구조ㆍ구급 기술 등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장이다. 

 

회의 개최를 위해 각국의 소방 정상들에 대한 의전 방향과 회의 안건, 만찬 행사, 국가별 회담 등을 준비하면서 힘들었지만 국제적 통찰력을 키울 좋은 계기였다. 그리고 ‘우리만 잘하면 된다’는 시대가 끝나고 국가 간 협력과 공조가 재난 대응에서 가장 강력한 전략이 되는 시대에 도래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또 하나의 인상 깊은 경험은 ‘한일 소방행정 세미나’ 기획이다. 이 행사는 20년 넘게 지속된 한ㆍ일 양국 간의 전통 있는 교류 행사로 한국과 일본이 번갈아 주최하며 소방정책과 기술을 상호 비교ㆍ분석하는 자리다. 

 

이 자리에서는 양국의 대형 화재 대응 사례를 공유하기도, 제도적 개선 방안을 함께 고민하기도 한다. 그 과정을 통해 쌓인 신뢰와 협력은 단순한 행정 교류를 넘어 재난 대응 파트너십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렇게 일본 소방청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했기에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을 당시에는 현장에서 일본 외무성, 소방청 등과 협력해 한국 국제구조대의 활동 범위를 조정하는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또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공포와 혼란 속에 있던 시절에는 영국에서 파견 근무를 했다. 당시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19 봉쇄조치를 해제했다. 그러면서 영국인들의 사회적 활동이 급격히 증가했고 그동안 치료받지 못했던 사람들의 의료진료와 구급차 서비스가 폭주했다. 결국 영국의 응급의료시스템 수요는 마비되고 구급차 또한 부족한 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이와 관련한 현상을 분석하고 시사점을 도출한 견문 보고서를 한국의 소방본부에 전파해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했다. 그밖에 중국 공안부 소방국장과의 교류 행사 기획, 미국 소방관 공사상자 발생 현황 수집ㆍ분석 보고서 작성 등 다양한 경험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소방 국제협력 전문가의 역할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더욱 확대되는 추세로 보인다. 소방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으로 27개의 개발도상국에 소방장비와 기술을 원조하고 있다. 또 각국 소방관을 초청해 구조ㆍ구급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이제는 ‘K-소방’이라는 브랜드로 기술과 시스템을 해외로 확산하는 단계에 이른 것 같다.

 

소방 국제협력 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단순한 행정 능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외국어 실력은 물론이고 국제적 감각과 외교적 자세, 그리고 무엇보다 ‘재외국민을 보호하겠다는 마인드’가 필요하다. 

 

현재는 소방청 기획재정담당관실 국제협력계와 일부 소방본부에서만 소수의 인력이 국제협력 직무를 맡고 있어 소방 국제협력 전문가가 되는 길이 녹록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소방을 준비하는 수험생이나 신입 소방공무원들에게 이 글을 통해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소방의 세계는 생각보다 훨씬 넓고 다양하다는 사실이다. 반드시 화염 속으로 뛰어들지 않아도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사회의 안전을 높일 수 있는 길은 많다. 아마 소방 국제협력 전문가라는 직무는 그중에서도 소방의 미래를 확장해 나가는 선두에 있을 것이다. 

 

장시원 j.siwon_thepoin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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