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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구급대 이대로 괜찮은가?- 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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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강릉소방서 안지원 | 기사입력 2025/09/02 [10:00]

119 구급대 이대로 괜찮은가?- Ⅲ

강원 강릉소방서 안지원 | 입력 : 2025/09/02 [10:00]

지난 호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문제 개선보단 처벌이 우선되는 사회 분위기

필수의료가 이렇게 망가졌고 앞으로도 별다른 비전이 없는 건 감옥에서 속옷 바람으로 여전히 큰 뉴스거리를 만들어 주고 계신 그분이 친 사고가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처벌 위주의 우리 사회 문화가 기인한 측면도 클 것이다. 어쩌면 이게 가장 큰 원인일 수도 있다.

 

상징적인 의료 유죄건 이후로(물론 그 의사의 잘못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의료계 전반에 보이는 책임에 대한 회피. 이게 현재 병원선정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소송 천국이라는 미국도 의료종사자의 형사 처벌이 그렇게 많지 않다고 한다. 다만 그들은 막대한 금액의 보험을 든다는 사실이 우리와 다른 부분일 테다.

 

사람을 갈아서 만든 이 의료체계는 언제든 인간에 의한 오류, 과오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구급대도 마찬가지다. 대원들에 의한 잘못이나 실수가 발생하면 그것의 원인이 되는 시스템적 개선보단 처벌 위주의 정책이 펼쳐지는 현 분위기는 구급대원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부분 중 하나다.

 

한번 솔직해져 보자. 소방사ㆍ소방교ㆍ소방사로 이뤄진 구급대가 나가서 처치나 행위를 잘못해 문제가 발생했다. 이렇게 출동대를 구성한 소방서에는 책임이 없을까? 충분한 경력과 자격을 갖춘 인원을 배치하지 않은 조직운영에는 문제가 없을까? 

 

지금도 예전 제천 화재 때 가장 크게 징계받아야 할 사람은 출동한 현장직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시 본부에서 일하며 인원을 그렇게 구성해 제대로 대응력을 발휘할 수 없게 만든 사람, 다시 말해 대표자가 가장 크게 처벌받아야 한다. 근데 그 대표자가 징계권자라니….

 

얼마 전 교사들을 대상으로 심폐소생술 교육을 나간 적이 있다. 그분들 역시 최근 발생한 현장체험 사고 문제로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앞으로 현장체험에 따라가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지금은 병원도 몸을 사리고, 우리도 몸을 사린다. 모두 다 같이 책임을 나누고 위험을 분산하는 게 아니라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폭탄 돌리기 사회가 돼 가고 있다. 

 

우리가 근무하는 이 분야는 사람의 생명을 다룬다. 따라서 문제가 생겼을 때 엄중한 책임을 다 피해갈 수 없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민원이라도 걸리면 뭔가 우리가 잘못한 것처럼 몰고 가는 이 분위기. 게다가 잘못한 게 없다는 걸 어떻게든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지독한 유죄추정의 원칙. 늘 불안한 마음을 한쪽 가슴에 지고 걸어가야 하는 가시밭길이 우리의 직장이고 일터다.

 

병원 한번 가기 정말 힘들다

3차 병원은 2차 병원으로, 2차 병원은 3차 병원으로… 무한 핑퐁 속에서 전화기를 붙들고 ‘내가 뭐 하고 있는 건가’라는 자괴감을 느끼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니다. 환자평가를 열심히 해서 문제를 찾아내면 오히려 수용이 안 되고 못 하면 못 하는 대로 무능한 대원으로 낙인찍히는 딜레마.

 

‘요새 구급대원 능력의 척도는 현장 처치를 얼마나 잘하느냐가 아니라 병원에 잘 데려가는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물론 모든 지역에서 이런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이렇게 다 망가진 상황에서도 꾸역꾸역 돌아가는 지역은 또 돌아간다. 

 

유독 문제가 되는 지역들이 있다. 내가 근무하는 강원도처럼 오히려 병원이 한 군데밖에 없어서 거기가 아니면 안 되는 지역은 또 그런대로 돌아간다. 

 

그 지역 병원 선생님들은 지역에 대한 사명감으로 한 번이라도 환자를 들여다 봐주신다. 실제로 병원 사전연락 그게 왜 필요하냐고 하시는 고마운 분도 있다.

 

오히려 병원이 여러 군데라 좋을 것 같은 지역에서 서로 “우린 못 받아요”를 시전한다. 이 병원은 저 병원을 욕하고 저 병원은 또 다른 병원을 욕한다.

 

지역 응급의료시스템의 중심을 잡아줄 기관의 부재가 너무나 크다. 하도 답답해서 도 응급의료 담당 부서에 민원성 문의를 한 적이 있다.

 

“새로 온 지 얼마 안 돼 업무파악을 못 했으니 문서를 내리겠습니다”

 

… 장난하십니까? 그냥 때려치우자, 때려치워.

 

상황이 이러하니 응급의료가 망가진 지역은 기피 대상 1순위가 됐다. 고참들이 그 지역을 안 가려고 인근 시군으로 피해가자 그곳은 또 뉴비들의 천국이 됐다(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문제가 되는 강원도의 한 지역에서 일하다 인사발령으로 6개월 동안 떠났던 적이 있었다. 그때 앓고 있던 위궤양이 저절로 나아지는 것 같았다).

 

이젠 품질보다 구급대원 사기 향상에 집중할 때

해결방법은 솔직히 보이지 않는다. 해결이 간단한 문제였다면 굳이 이렇게 지면의 힘을 빌려 이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

 

예전에 남녀 화장실 비율이 달라 여자 대기 줄이 길어져 비율을 맞추라고 지시했더니 오히려 남자 변기를 폐쇄했다는 전형적인 탁상행정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우리가 그런 행정을 하고 있진 않은지 돌이켜 봐야 한다.

 

지치고 너덜너덜해진 구급대원들을 끌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펼친들 정책저항만 심해질 뿐이다. 위에서는 왜 직원들이 새로운 정책에 불만만 늘어놓고 저항하는지 또 나름 불만이 많을 수 있다.

 

얼마 전 위치 알림 서비스라는 사업을 시작한다는 문서를  봤다. 119에 신고를 하면 출동차량의 위치를 신고자가 조회해 볼 수 있는 서비스다. 이미 다른 지역에서는 시행 중이고 몇 개 지역만 미시행인 상황이었다. 아마 지금 일하는 이 환경에 만족한다면 이런 업무가 하나쯤 늘어도 기꺼이 수용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근거 중심이 아닌, 효과성 검증도 없는 저런 정책을 시작한다고 할 때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대번 직원들은 “이제 우리한테 카카오택시처럼 별점도 먹이겠네?”라는 자조 섞인 농담을 하곤 한다(지금과 같은 분위기에선 실제로 그걸 하려는 사람도 있을 거다). 누가 그런 새로운 정책을 반기고 순기능을 이해하면서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까.

 

이런 어려운 상황일수록 새로 추진하는 정책은 신중하고 근거 중심적이어야 한다. 정치적, 그냥 선심성 정책추진은 병든 구급대원을 더 곪게 만든다.

 

요즘처럼 AI가 잘 보급된 시대에는 어떤 정책의 효과성이나 근거에 대해 AI가 쉽게 찾아준다. 그런 쪽으로 AI를 활용하진 않으면서 AI 선제 대응이라는 둥 구급대원을 쉬지도 못하게 도로로 내모는 정책은 우릴 뭐로 생각하는 건지 그저 기가 막힐 뿐이다. 

 

게다가 구급대원만큼 선심성 정책을 추진하기 좋은 부서가 없어서인지 특수시책이 남발한다. 그게 진짜 국민과 국민의 안전을 책임질 구급대원을 위한 행위인지 고민해줬으면 한다.

 

우린 왕서방이 돈을 벌기 위해 굴리는 곰이 아니다(그나마 최근 조사 결과에서 실효성 없던 단순이송 서비스가 많이 없어졌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2018년 즈음 청에 새로 온 간부란 분이 어느 워크숍 자리에서 한 얘기가 지금도 기억난다. 

 

“구급대원 복지를 대폭 향상시키고 대신 그만큼 전문성도 키워내겠습니다. 그건 감내해야 해요” 

 

포부는 아주 우렁차셨다. 어떤 복지가 향상됐는진 모르겠지만 전문성을 빌미로 일은 참 많이 늘었다. 이후 그분은 진급하고 다른 곳으로 가신 거로 안다. 늘 이런 식이다.

 

본부든 청이든 사실 구급 담당 부서에서 구급대원의 복지를 늘리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복지는 돈과 예산, 인력이 들어가야 확연히 좋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저 쓸데없는 일을 더 늘리지 않고, 가라 행정이 사라지고, 그전에 남발된 각종 월보나 보고 등 오래된 것들은 폐기하는 식으로 행정이 간소화돼 현장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현장 대원들은 ‘위에서 우릴 생각해주고 있구나. 어려운 시기에 도와주려고 노력하는구나’라고 생각할 거다.

 

위에서 우리와 관련한 이 외부 환경을 타개해 주지 못할 거란 걸 잘 안다. 성과 또는 과시용 특수시책을 만들어 가뜩이나 없는 기운 빼지 말고 구급 본연의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줘도 충분하다.

 

지금은 사기를 올리는 게 곧 품질을 높이는 것이다. 기운찬 구급대원들은 알아서 공부한다. 안 시켜도 한다. 장기적으로는 인원과 예산, 조직개편이 수반된 구급대 분리도 해결책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구급대원

예전 재밌게 본 어느 연구에서 전체 개미 노동자 중 20~50% 정도가 관찰 기간 거의 활동하지 않거나 임무에 소극적이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Temnothorax rugatulus 종 군체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전체 개미의 약 40%는 대부분 시간에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거로 보고됐다고 한다.

 

활동량별로 구분하면 열심히 일하는 개미(상위 20~30%), 중간 수준의 활동을 하는 개미(약 30~40%), 거의 일을 하지 않는 ‘노는 개미’(약 20~50%)다.

 

한 연구에서는 26.3±19.9%의 개체가 전체 관찰시간의 10% 미만만 사회적 과업에 투입됐고 12.3±11.0%는 5% 미만만 일했다고 보고했다(Lazy workers are necessary for long-term sustainability in insect societies, Eisuke Hasegawa et al.).

 

우리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나처럼 나무와 전기 아까운 줄 모르고 이런 하소연을 온ㆍ오프라인에 장문으로 써대는 투덜이 개미가 있는가 하면 똑같은 환경에서도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나가는 20%의 구급 개미가 있다. 

 

▲ 집단 중에는 나 같은 투덜이 개미도 일부분 있을 것이다.

 

선후배를 가리지 않고 정말 존경스러운 개미… 아니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더한 일이 닥쳐도 열심히 또 성실하게 일할 것이다. 그런 성향을 타고난 사람은 어디에든 있기 마련이다.

 

그 중간에 있는 개미들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서 조직의 성패가 갈리기 마련이므로 지금 구급대원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린 오너 회사가 아니다. 막말로 월급 주는 사람이 서장, 본부장은 아니란 의미다. 그럼 그들의 역할은 뭘까? 조직을 잘 운영해서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할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책무 아닌가? 사람마다 의견은 다를 수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 구급대원은 적절한 처치로 환자 예후를 좋게 만들고, 그 환자 보호자가 고맙다며 손을 잡아주고, 가물에 콩 나듯 세이버를 받으면 ‘그래, 이 맛에 구급하는 거지’ 하고 넘어가는 데 이골이 난 사람들이다.

 

병원과의 트러블, 어이없는 비응급 출동, 무언가 항상 무시당하고 차별당하는 것 같은 조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예산과 인력이 수반돼야 이 환경이 개선되는 건 맞지만 우릴 생각해주는 분위기, 일 하나 줄여주려는 작은 행정, 이런 돈 안 드는 것만으로도 답답한 현실에선 힘이 돼 줄 수 있다. 말로만 소방조직은 하나라고 외치기 전에 구급대원을 실적의 일부로만 볼 게 아니라 같은 직원으로 봐주면 좋겠다. 

 

지난 호에 이어 이번 호도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다. 또 많은 구급대원과의 인터뷰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넣으려고 노력했다. 마음에 안 드는 내용이 있어도 건설적인 대화는 언제든 환영이니 이메일(ajwon119@korea.kr)로 문의 주시면 좋겠다. 

 

모쪼록 이번 여름은 제발 무사히 넘어가길….

 

 

강원 강릉 소방서_ 안지원 : ajwon119@korea.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9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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