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플러스> 2023년 9월호에 ‘119 구급대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원고를 작성한 후 여기저기서 고맙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필요한 얘기를 해줬다는 분도 있었다.
당시엔 ‘내친김에 4부 연재로 우리 안의 모든 얘기를 다 끄집어 내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역시 누구나처럼 계획만 그럴듯할 뿐 쉽사리 다음 얘기를 꺼내진 못했다.
2년이 지난 지금 거의 번아웃 직전에, 마치 버리려던 치약을 있는 힘껏 짜내는듯한 체력으로 다음 얘기를 써보기로 했다.
이번 호에서는 바닥을 찍을 대로 찍고 지하를 뚫고 내려가 멘틀층과 조우하기 직전인 구급대원의 사기에 관해 얘기해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여러 구급대원, 병원 관계자, 의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소방청 통계연보도 활용했다.
“요즘처럼 구급하기 힘든 적이 없다. 메르스나 코로나19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만나는 구급대원마다 하는 말이다. 물론 이렇게까지 망가진 결정적인 원인은 의료대란의 영향이 크다. 그러나 전편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의 필수 의료는 그전에도 이미 서서히 끓여지는 냄비 속 개구리처럼 망가져 가고 있었다.
구급대 통계 소방 조직에서 구급대는 인원에 비해 너무 많은 출동을 나가고 있다. 전체 인구수 감소에도 출동 건수가 는다는 건 <FPN>의 다른 기사를 통해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래도 한 번 더 짚어 본다면 2024년 전체출동 544만6051건 중 구급 출동 건수는 총 348만6526건이었다. 전체의 64%에 해당한다. 물론 구급대가 구조와 화재 현장에 나가는 경우도 많으니 실제론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소방서 소속 출동대 기준 5만1679명 중(총원 6만6059명) 구급대원은 1만2288명으로 23.7%에 불과하다. 아주 보수적으로 잡아서 23.7%의 인원으로 64%의 출동을 나가야 하는 상황이니 불평등하다는 생각이 들고 격무로 느끼는 게 지극히 당연하다.
무엇이 구급대원 사기를 떨어뜨리나 1. 조직 내에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 통계로 드러나는 부분은 아니지만 당장 서 비상 연락망만 봐도 진압대의 소방위, 소방장 비율과 구급대의 소방사, 소방교 비율이 돋보일 것이다. 그중에서 주 처치를 제외하고 보조 처치의 계급비율은 더 심각하다.
주 처치가 연가 간 사이 소방사+소방사 2인 구급대도 흔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모 노조가 진행한 구급대원 정책 설문 조사에서도 구급대원의 경력이 짧고 연령대가 낮다는 통계가 확실하게 드러났다.
이유는 너무 간단하다. 고참이 될수록 구급차를 타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전문자격자야 어쩔 수 없지만 그렇지 않은 2급이나 무자격자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낮은 계급의 직원들이 도맡는다.
심지어는 서무와 도급을 맡으며 구급대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구급대가 편하고, 좋고, 일하고 싶은 조직이라면 당연히 이런 현상은 반대로 나타날 테다.
이런 상황이니 구급대의 복지개선은 더 더디게 이뤄진다. 지금은 늘었다고 하지만 예전부터 구급대에는 고참이 없었다. 하지만 계급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그다지 체감되지 않는다.
전날 밤새 출동 다녀와 초죽음이 된 구급대원을 앞에 두고 “어제는 별일 없었습니다”라며 센터장 출근 시간에 인계하는 팀장이 줄긴 했다. 하지만 아직도 구급대원이 느끼는 업무의 불공평함은 의료대란과 더불어 가중되는 상황이다.
어느 공채 대원이 화재대응 1급 자격을 땄다고 가정해보자. 주변에서는 “오 열심히 하네”, “더운데 고생했네”라고 할 것이다.
인명구조사 1급을 땄다고 가정해보자.
“노력 많이 했네. 대단하다”
그럼 이번엔 응급구조사 1급을 땄다고 가정해보자.
“????”, “와, 구급 계속하려고?” “오… 구급이 적성에 맞나봐?”
물론 우스갯소리를 더해서 한 얘기지만 대충 어느 느낌인지 공감들 하실 거로 생각한다. 예전에 자진해서 2급을 따러 간다고 했을 때 “그걸 굳이 왜?”라고 대단히 의아해하던 많은 분의 반응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구급ㆍ구조ㆍ화재 중 구급이 조직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단편적으로 보여주지 않나 싶다.
2. 체감되지 않는 인센티브 어쩔 수 없는 업무 비중의 편차가 있다면 그에 대한 보상은? 지금도 3인 구급대가 충족되지 않는 데다가 시도별로 전문 구급대원 비율이 천차만별인 상황에서 신규 소방공무원 중 구급특채가 차지하는 비율이 대폭 상향돼야 하는 건 너무 당연하다.
그러나 그렇게 하더라도 노령화로 인한 구급 수요 증가와 그를 따라가지 못하는 구급대원 증원, 점점 높아져만 가는 국민의 눈높이, 더 망가질 게 분명해 보이는 필수 의료 등은 앞으로 구급대원으로서의 삶이 녹록지 않음을 예상케 해준다.
그래도 예전보다 구급대원의 노고에 대해 “고생한다”고 말해주는 직원이 많아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단순히 말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실질적인 보상이 이뤄져야 하는 곳이 직장이다. 인터뷰한 많은 구급대원은 “결국 금융치료가 가장 확실하고 빠른 해결책”이라고 입을 모았다.
가뜩이나 낮은 구급대원의 사기에 찬물을 부은 건 개정된 구급 수당 ‘20만원’이다. ‘그나마 구급대원 하니 수당이라도 받지’라는 마음은 이제 ‘다 같이 수당 받는데 굳이 뭐하러 구급대원 하냐’는 것으로 바뀌어 버렸다.
물론 다 같이 급여가 인상된 건 전체의 행복, 공리 같은 부분에선 개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반대로 고생한 만큼 더 수당으로 보전받고 싶다는 구급대원의 측면에서 보면 꽤 허탈한 일이 됐다.
구급 수당이 인상되고 펌뷸런스가 활성화되면서 구급 현장이 수월해졌냐 하면 이마저도 체감하지 못하는 대원이 많다. 여전히 환자가 많든 적든 구급대 홀로 출동을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펌프차는 구급을 좀 해본 반장, 주임님들이 탈 땐 좀 다르지만 여전히 소극적으로 있다가 귀소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심지어는 펌뷸런스 업무도 구급대원에게 넘기는가 하면 지금도 내근 구급담당자가 펌뷸런스 업무를 하고 있다(구급 내근에 관해 얘기하면 또 할 말이 종일이겠지만 다음을 기약하기로 한다).
결국 직장인에게 내 주변인보다 과중한 업무에 대한 보답은 ‘금전적 보상’이 최고다. 구급대원 한다고 승진이 되는 것도 아니고, 타 직렬로 간다 해도 수시로 집 나간 구급대원을 잡아와야 한다는 얘기를 들어야 하고, 수당은 별 차이가 없고 가산금도 아주 미미하다. 거기에 아직도 출동간식비를 공금으로 쓰는 곳이 있다고 한다.
“돈이 유일한 해답은 아니지만 차이를 만들어 낸다” – 버락 오바마 –
구급대원 처우 개선에 대한 해답 중 사실 제일 어려운 게 인력과 예산 문제일 것이다. 그런데도 느리지만 지속해서 발전해 나가야 하는 것 역시 인력과 예산이다.
당장 출동가산금의 4건부터 지급 폐지, 상한 폐지 등을 고려해 봐야 한다. 그래서 고생하며 출동한 만큼 미미하지만 보상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성과상여금이나 승진에 대해서도 괄목할 만한 개선이 있어야 ‘그래, 구급대 병원 선정도 안 되고, 주취자에게 시달리고, 잠도 못 자고, 고생하지만 이런 맛이라도 있어야지. 사람을 살리는 성취감도 있고…’ 라며 그나마 버틸 수 있을 거다.
개중에는 “왜 구급대원 처우만 개선돼야 하냐. 직렬 간 형평도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당신. 구급대원도 아니고 앞으로 구급대원 할 생각도 없잖아?
3. 존중받으며 일하는 문화 부재 나름 응급의료체계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을 간접이든 직접이든 경험해 본 많은 대원은 “존중받으며 일하는 그들의 삶이 너무 부럽다”고 말한다.
나도 2017년 미국 EMS 연수 때 구급대원과 병원 의료진 간의 인계가 매우 인상 깊었다. 귀국한 이후로 의료진이 듣든 말든 인계하려고, 잘하려고 노력했다. 어느 정도 라포가 쌓인 이후엔 상당히 경청해 주는 의료진의 태도에 대해 긍정적인 변화를 느끼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와 의료대란 이후로 모든 게 망가졌다. 예전도 좋진 않았지만 지금은 최악이다. 서로 으르렁대며 서로의 커뮤니티와 SNS에 헐뜯으며 지내는 중이다.
망가진 시스템 속 가장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못 잡아먹는 이 상황이 너무나 안타깝다. 물론 들여다보면 개인적인 능력, 인성, 의지 등에 의해 조금 더 나은 상황도, 못한 상황도 있을 거다.
사실 이 모든 구성원은 사람을 갈아 넣어 만들어지는 싸고, 접근성 높고, 효율 좋은 우리나라 응급의료 시스템의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피해자들끼리의 싸움에서도 구급대원은 철저히 을이다. 병원 선정을 위해 이리저리 전화를 돌리고, 사정하고, 뾰족새 같은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에 ‘참을 인’ 자를 마음속에 새겨야 한다. 병원에 도착하면 사인 하나를 받기 위해 하염없이 기다리고 기다린다.
물론 우리의 환자평가나 처치에 대해 병원 의료진의 불신과 불만이 많은 것도 어느 정도 이해한다. 우리가 생각해도 이해 안 되는 평가나 처치를 한 동료(그리고 나)를 볼 때면 부끄럽기도 하다.
우리의 부족함을 알고 극복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지만 어떤 때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현장에 대한 몰이해, 너무 이해가 안 되는 수용거부, 특유의 거만한 태도는 아무리 상대 처지에서 생각하려 해도 아쉬운(열 받는) 부분이다.
거기에 결국 그런 부분으로 다투기라도 하면 보통은 우리가 진다. 우린 공무원이란 이유로 민원에 아주 취약하다. 국민신문고에 민원이 올라오면 뭐라도 답변을 해야 한다.
보통은 ‘우리가 잘못했고 교육시키겠다’는 말로 끝이 난다. 물론 대쪽같이 잘라주시는 분도 있지만 아닌 분이 더 많다.
어이없는 의사와 한 판 붙고 민원이 걸렸는데 잘잘못을 따지기도 전에 이미 담당자가 가서 빌고 와버렸다. 격투기로 치면 그라운드에서 암바를 잡으려고 손을 움켜쥐었는데 상대가 탭을 쳐버린 격이다. 그래놓고 본인이 민원을 탈 없이 해결했다고 의기양양해서 돌아다닌다.
이쯤 되면 싸운 의사보다 내부 담당자 때문에 더 화가 난다. 내 개인의 사례지만 많고 많은 사례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다음 호에서는 개선보다는 처벌이 우선되는 사회 분위기, 지표가 조직을 망친다(feat 가라와 조작), 정말 병원 한번 가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구급대원, 이젠 품질보단 사기 향상에 포커스를 맞춰야 할 때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 보겠다.
강원 강릉 소방서_ 안지원 : ajwon119@korea.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8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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